출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5월2일까지 12승12패로 지구 2위를 지켰다. 워싱턴을 제외하면 강팀이 없는 NL 동부지구였기에 가능했다(당시 AL 중부 4위 미네소타 승률이 .522). 5월3일부터 이어진 5연패를 시작으로 빠르게 침몰했다. 5월에 올린 6승은 7월 화이트삭스, 9월 디트로이트와 더불어 올시즌 월간 최소 승수다. 6월 중순 8연패를 비롯해 5연패 이상 당한 기간만 8차례나 된다. 포스트시즌과 동떨어진 분위기가 되자 트레이드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니섹과 켄드릭, 헬릭슨, 베노아를 모두 넘겼다. 그 대신 마이너리그 유망주 6명과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김현수, 여기에 국제 계약금 보너스 일부를 챙겼다.
마지막 29경기를 통해 16승을 올렸지만 5할 승률을 만회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및 5년 연속 루징 시즌. 최근 5년간 당한 464패는 메이저리그 최다기록이다(화이트삭스 453패). 350만명에 이르렀던 한 시즌 홈 관중도 어느새 190만명으로 줄었다. 결국 또 한 번 칼바람이 불었다. 맷 클렌택 단장은 피트 매카닌 감독을 단장 특별보좌관으로 보직을 이동시켰다(클렌택은 "우리는 매카닌을 경질하는 것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 2015시즌 중반부터 팀을 이끈 매카닌은 5월만 해도 연장 계약을 받았었다(2019년 팀 옵션).
Good : 8월10일까지 필라델피아의 팀 득점 순위는 ML 29위였다(445점). 이랬던 팀이 8월11일 이후에는 팀 득점 ML 7위까지 급상승했다(245점). 8월11일은 리스 호스킨스(24)가 메이저리그에 첫 선을 보인 날이다(.259 .396 .618). 트리플A 홈런(29)과 타점(91) 선두였지만, 1루에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데뷔가 늦어졌다. 첫 4경기 13타수1안타(.077)에 불과했던 호스킨스는 8월15일 샌디에이고전에서 첫 홈런을 때려냈다. 그 경기 홈런 두 방을 치고난 뒤에는 광란의 질주. 역대 최소 경기(17경기)로 통산 10홈런에 도달한 데 이어 30경기 18홈런을 쓸어담았다. 데뷔 첫 34경기에서 18홈런 39타점을 올린 타자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호스킨스가 최초였다.
호스킨스는 단순히 홈런만 치는 타자도 아니었다. 공을 골라내는 선구안이 있었다(첫 34경기 .314 .442 .805). 특히 투 스트라이크 이후 노련한 대처법이 호평을 받았다. 호스킨스는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려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 ops .827은 1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가운데 메이저리그 1위(브라이스 하퍼 .827). 18홈런 중 10홈런을 투 스트라이크 이후 때려냈다. 마지막 16경기에서 보인 침묵(.135 0홈런)과 좌투수 상대 타격(.171)이라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호스킨스의 등장은 올해 필라델피아를 가장 기쁘게 한 일이었다.
필라델피아는 우타자 호스킨스와 짝을 이룰 좌타자도 찾았다. 2015년 콜 해멀스의 유산 중 한 명인 닉 윌리엄스(24)였다(.288 .338 .473). 윌리엄스의 타율은 호세 마르티네스(.309) 앨버트 알모라 주니어(.298)에 이은 내셔널리그 신인 3위(300타석). 윌리엄스는 올해 필라델피아의 마지막 홈런을 친 타자이기도 하다. 지난시즌 부상으로 얼룩졌던 애런 올테어(26)도 반등했다(.272 .340 .516). 올테어는 팀에서 호스킨스 다음으로 장타율이 높았다. 홈런 하나가 부족해서 20홈런 시즌은 놓쳤지만, 9월22일 클레이튼 커쇼에게 만루홈런을 친 첫 번째 타자가 됐다.
작년 12월 5년 3050만 달러 장기 계약을 안겨준 오두벨 에레라(.281 .325 .452)는 후반기 .323 .378 .551로 성적을 끌어올렸다(마이크 슈미트는 에레라를 두고 "언어 때문에 리더가 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가 사과했다). 윌리엄스-에레라-올테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외야진은 조정득점창조력(wRC+) ML 10위(104)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2016년 외야진 wRC+ 78은 ML 30위).

리빌딩이 순조롭게 진행된 타선과 달리 마운드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팀 평균자책점 4.64는 ML 26위. 그런 와중에 애런 놀라(사진)가 에이스로 발돋움하는 쾌거가 있었다(12승11패 3.54). 지난해 팔꿈치 부상으로 모두를 긴장시킨 놀라는 4월 세 경기 후 허리 부상에 시달려 한 달을 고생했다. 첫 9경기 3승5패 4.76으로 휘청거렸는데, 6월23일 세인트루이스전 부터 전혀 다른 피칭을 펼쳤다. 8월18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5이닝 5실점으로 무너지기 전까지 10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행진(6승2패 1.71). 필라델피아 투수가 단일시즌 10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해낸 것은 2013년 클리프 리(11경기) 이후 처음이다. 전매특허 커브와 더불어 체인지업을 실전에 활용하면서 보다 다양한 볼배합을 갖춘 것이 주효했다. 놀라가 리그에서 7번째로 높은 승리기여도(4.3)를 기록하면서, 필라델피아는 더이상 콜 해멀스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Bad : 지난해 토미 조셉은 라이언 하워드를 완전히 밀어내고 1루수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호스킨스의 메이저리그 승격이 늦어진 점, 호스킨스가 초반 좌익수로 뛰었던 이유도 조셉이 있어서였다. 107경기 21홈런으로 기대를 모았던 조셉은, 142경기에 출장했지만 홈런 하나를 더 치는데 그쳤다. 3할대 출루율, 5할대 장타율은 2할대 출루율과 4할대 장타율로 하락했다(.240 .289 .432). 그렇다고 1루 수비를 잘한 것도 아니었으니, 디펜시브런세이브 -10은 메이저리그 1루수 최하위였다. 공격과 수비를 모두 못했던 조셉은 내셔널리그 야수 중 가장 나쁜 승리기여도(-1.1)를 남겼다. 하워드의 마지막 시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2016년 하워드 fwar -1.0).
마이켈 프랑코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230 .281 .409). 팀 내 최다홈런(24)과 최다타점(76)은 전혀 실속이 없는 기록이었다. ops는 3년 연속 하락(.840→.733→.690). 조정득점창조력(76) 승리기여도(-0.5)는 규정타석을 채운 3루수 중 맨 밑이었다. J P 크로포드가 9월에 올라와서 3루수로 나설 때는 벤치를 지키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러자 프랑코를 계속 믿어야 하는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올 8월에 25세가 된 프랑코는 여전히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가 이 잠재력 하나만 보고 언제까지 기회를 줄 지는 의문이다. 클렌택 단장은 시즌 막판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거나 바랐던 성적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의 미래에 확신이 있다"고 전했다. 이 말에 의하면 프랑코의 입지에는 당장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클렌택은 매카닌 감독에게 연장 계약을 안겨줄 때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고 말했었다.
최고 유망주 J P 크로포드(22)의 승격도 생각보다 늦었다. 2013년 드래프트 전체 16순위로 뽑힌 크로포드는 시즌 전 유망주 순위에서 상위권에 올랐다(베이스볼아메리카 12위, mlb.com 7위, 베이스볼프로스펙터스 7위). 빠른 시일내로 메이저리그에 모습을 비출 줄 알았는데, 사타구니 부상을 비롯해 애매한 트리플A 성적(.243 .351 .405)이 데뷔를 지연시켰다. 9월이 되어서야 올라온 메이저리그에서도 선구안을 제외하면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23경기 .214 .356 .300).
구종 분석이 시작된 2007년 이후 올해보다 커브를 더 많이 던진 시즌은 없었다(10.8%). 커브 최다 비중 7위에 오른 필라델피아는 이 현상에 일조한 팀이다(12.7%). 제러드 아이코프(33.1%) 놀라(30.7%) 벤 라이블리(19.8%) 닉 피베타(15.9%)가 커브를 즐겨 던졌는데, 놀라를 제외하면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아이코프 4승8패 4.71, 라이블리 4승7패 4.26, 피베타 8승10패 6.02).
놀라와 함께 선발진을 이끌 것으로 보였던 빈스 벨라스케스도 내리막길을 걸었다(2승7패 5.13). 벨라스케스는 강력한 구위를 자랑하는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약 1마일가량 떨어졌다(94.7→93.8마일). 두 차례 부상을 당한 것이 그 이유. 9월초에는 오른손 중지에 피가 잘 통하지 않아서 수술을 받았다. 팔꿈치에 이어 손가락까지 다친 것은 결코 좋지 않은 징조. 벨라스케스는 유망주 시절에도 내구성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불펜이 더 어울린다는 평가였다.
전망 : 20대 초중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안착한 타선의 미래는 밝다. 이제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줄 리더의 역할이 중요해졌다(필라델피아는 지안카를로 스탠튼에 관심을 보이는 팀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매카닌의 후임으로 온 게이브 케플러 감독이 구심점이 되어줘야 한다. 인상부터 강렬한 케플러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투사다. 다저스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에는 현재 시대 흐름에 발맞춰 숫자를 파고들었다. 매카닌과 정반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케플러는 컵스 소속이었던 존 말리를 타격코치로 선임했으며, 릭 크라니츠와 더스티 워던도 한 배에 태우기로 했다(필라델피아 마이너리그에 10년을 있었던 워던을 눈여겨 봐야 한다).
반면 마운드가 타선의 리빌딩 속도에 맞출 수 있을지는 아직 의심이 간다. 놀라를 제외한 나머지 투수들이 주춤했던 상황에서 '필라델피아의 루이스 세베리노' 식스토 산체스는 2019년에나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걱정이 덜한 이유는 필라델피아가 발톱을 숨기고 있는 공룡이라는 것. 필라델피아는 작년부터 연간 1억 달러 수준의 중계권료를 받게 되면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큰 돈을 쓸 수 있는 팀이 됐다. 수뇌부에서 그 시점을 언제로 잡을지가 관건. 3년 전 임시 사장을 맡았던 팻 길릭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말한 리빌딩은 조금씩 끝이 보이고 있다.
야수 fwar 순위
3.3 - 세자르 에르난데스
2.8 - 오두벨 에레라
2.2 - 리스 호스킨스
1.6 - 프레디 갈비스
1.3 - 애런 올테어
1.1 - 대니얼 나바
1.0 - 하위 켄드릭
0.8 - 닉 윌리엄스
0.8 - 카메론 러프
투수 fwar 순위
4.3 - 애런 놀라
1.9 - 제러드 아이코프
1.5 - 팻 니섹
1.2 - 루이스 가르시아
1.2 - 에두브레이 라모스
1.1 - 닉 피베타
1.0 - 헥터 네리스
0.8 - 벤 라이블리
0.6 - 호아킨 베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