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여.
지난 봄의 일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모처럼만에 깨복동이들의 모임을 가졌다. 몇 년 만의 모임이라 그런지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코로나기간 동안 서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필자는 옆지기를 잃었고 한 친구는 평생 모은 전재산을 잃었다. 그 친구는 박물관에서 근무했는데 어렵사리 한두 푼씩 모아놓았던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한순간에 날려먹었다.
집안의 사촌이 주식투자를 권해서 모은 돈을 믿고 맡겼던 모양이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꽤 큰돈이라는 말만 들었다. 성격도 까칠하고 까다로울 정도로 깔끔해서 두번의 결혼실패도 있었다.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며 십여 년을 홀로 살았던 친구다. 누구에게도 신세지는 것을 싫어해서 밥 한끼 허투루 사는 친구가 아니었다.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절제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한푼, 두푼 모았던 돈이었다. 헌데 한순간에 모두 잃고 엉엉 울며 필자에게 하소연을 했었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위로해주며 토닥거렸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친구에게 연인이 생겼다. 그리 미인은 아니었지만 사람 좋게 생긴 여인이었다.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었다.
필자는 부러운 마음에 시샘도 하였다. 그리고 진심으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다. 그런데 몇 달 후 통화에서 친구의 목소리가 어눌했다. 어디 아프냐고 물으니 어느 날부터 몸짓이 부자연스러워 병원에 갔더니 뇌종양이란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로 들렸다. 술도 마시지 못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아침, 저녁 운동도 열심히 했었던 친구였다.
평생 모은 돈을 잃은 스트레스였을까? 어떻게 단 몇 달 만에..
머리의 종양이 위험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다른 병원에서는 수술을 못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만 가능하다고 하여 수술예약을 받았단다. 수술을 받으러 가는 날 친구에게 말했다.
"넌 충분히 강한 녀석이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해라."
"걱정하지 마. 잘 이겨낼테니까."
이것이 친구와 나눈 온전한 대화의 마지막이었다. 수술은 다행히 잘되었는데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때문에 대전의 재활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입원 할 때 온전하지 않은 정신만 빼놓고는 육체적으로는 매우 건강한 상태였다. 그리고 두달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에 논산의 요양병원으로 옮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이 좋아진 상태라고 해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런데 휠체어에 앉아 소변주머니를 차고 머리는 박박 깎아서 마치 외계인 같았다. 다른 사람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필자만 겨우 알아보았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친구를 바라보며 나오려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 어떻게 사람이 겨우 몇달 만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그리고 며칠 전 친구의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그를 보러 올라갔다. 뼈 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몰골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잠들어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면회를 마치고 내려오는 차안에서 엉엉 울었다. 어릴 때 옆집에 살면서 동기간처럼 지냈던 친구였다. 싸우기도 하고 웃고 울던 X알 친구였다.
며칠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그 친구의 행복한 얼굴을 본 것이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지경이 될 수 있을까. 이십여 년 직장을 다니면서 결근은 물론이고 지각 한번 하지 않았던 고지식한 친구다. 술, 담배도 하지 않았던 바른생활 남자였다. 그런 친구에게 운명은 너무 가혹한 것만 같았다.
인생사 새옹지마(人生事塞翁之馬)라고 하지만 너무 가혹하다. 아무리 그만의 팔자라고 해도 세상의 불공평함에 가슴이 답답하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한번 떠난 말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비록 세상을 다 가진다고 할지라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덧없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여..
해강.
#인생무상, #새옹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