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요한복음 5장 22-24절
5:22 οὐδὲ γὰρ ὁ πατὴρ κρίνει οὐδένα ἀλλὰ τὴν κρίσιν πᾶσαν δέδωκεν τῷ υἱῷ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5:23 ἵνα πάντες τιμῶσι τὸν υἱὸν καθὼς τιμῶσι τὸν πατέρα ὁ μὴ τιμῶν τὸν υἱὸν οὐ τιμᾷ τὸν πατέρα τὸν πέμψαντα αὐτόν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5:24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ὅτι ὁ τὸν λόγον μου ἀκούων καὶ πιστεύων τῷ πέμψαντί με ἔχει ζωὴν αἰώνιον καὶ εἰς κρίσιν οὐκ ἔρχεται ἀλλὰ μεταβέβηκεν ἐκ τοῦ θανάτου εἰς τὴν ζωήν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묵상할 내용: "주님을 높이는 것과 주님을 이용하는 것 (2)"
- 초대교회의 이익을 위해 주님의 심판을 제거하는 악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 위에서 권력을 부리기 위해 더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들의 욕망들은 그렇게 움직이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그것을 위한 사회적 제도와 법들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자유’라는 명목으로, ‘행복’이라는 명목으로 그런 제도와 법을 정당화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富)를 소유하지 못하고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나태함’이라든지 ‘무능력’이라는 단어로 매도(罵倒)하며 그들보다 낫다고 여기는 자신들의 위치를 뿌듯해합니다.
이런 잘못된 인식과 삶의 태도가 종교를 만나면 돌이키기 힘든 오류로 빠져들게 됩니다. 신이 그런 부와 권력을 공인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착각은 종교의 경전이든 목사나 사제의 선포를 통해 강화됩니다. 마치 신이 특정한 사람을 인정한 결과 부와 권력을 그 존재에게 준 것으로 단정하며 선포하는 것은 그런 부와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 그 사람이 저질렀던 진리를 거스르는 수많은 행위를 정당화는 범죄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것이 법적으로 정당한 것이었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런 법은 신의 법과는 상관이 없는 ‘가짜 법’들일 뿐입니다. 다수 인간의 합의로 만들어진, 때론 권력자의 사익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신의 법을 대체하고 파괴해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은 결단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부자(富者)들에 대해 냉혹하게 평가하신 부정적인 내용들이(마 19:24 :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 10:25 :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눅18:25 :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무시되고 목사들과 사제들의 설교에 묻혀버리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 욕망으로 세뇌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부와 권력과 명예를 향한 제동장치 없는 사람들의 질주는 멈춰지지 않습니다. 그런 질주는 결국 신의 뜻과 정의를 파괴하는 것이며 신의 나라에 대한 반란일 뿐입니다. 그런 질주를 멈추지 않는 것이 사탄의 저주받은 존재들의 특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