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사진입니다....왜냐하면 사랑채 누마루에서 식사하고 있는 한쌍의 자태가 너무 이쁩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아마도 고향이라는 정서를 모르는...)고택을 찾아서 정서와 문화를 맛본다는 것은 바로 인성교육이고...예절교육인 것이죠....삶이란...생로병사生老病死를 자기전에 1분만이라도 생각할 수 있을 터...
의성향토사연구소 김홍배소장님과 김정중 사무국장님과 함께◐ 안동역사기행답사를 진행하는 중에 두번 째 들른 곳이 치암고택입니다.향산고택뒤에 있는데....향산고택은 문이 잠겨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후손이 살면서 관리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봅니다.
'향산 이만도'는 제 고조부 나암 박주대공의 친구분이었고 그 며느리 김락 여사는 바로 생질녀입니다.(생질녀라는 뜻을 모르면 간첩이니까 퍼뜩 검색해서 공부좀 하이소).조부인 향산 이만도(1대 예안의병대장,경술국치 때 자정순국)와 아들인 이중업(파리장서운동),손자인 이동흠(상해군자금,대한광복단사건)형제분,그리고..향산의 며느리인 김락여사(3.1만세운동)는 4대가 독립유공훈장을 받았죠...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1호
이 집은 조선 고종때에 언양현감, 홍문관 교리를 지낸 치암 이만현(1832-1911)의 고택이다.
그는 퇴계선생의 11대손이며 문과(文科)로 벼슬길에 나아가 삼사(사간원,사헌부,홍문관)의 관료로 성심을 다하여 진충보국(盡忠報國)하였으나, 은퇴 후 만년에 경술국치를 당하자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어 이듬해 세상을 마쳤다.
이집은 당초 도산면 원촌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 지역으로 인하여 1976년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건물규모는 본체 22칸 ㅁ자형 기와집으로 5간의 솟을대문과 바깥채가 있다. 집의 구조는 안채보다 사랑채가 더 높고, 사랑채의 좌우가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의 특이한 형태이며 사랑채에 감실(龕室)이 있고, 높다란 헌함(軒檻)마루가 특색이다.
안동댐 건설로 도산 원촌리에서 이 곳으로 이건했다.
원촌리는 안동댐이 수몰 안됐으면 지금의 안동 하회마을 만큼 아기자기한 민속마을이 되었을 곳이다.퇴계 이황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이육사 생가도 원촌리에 있었다.현재 목재고택이 남아있는데 이육사의 따님인 이옥비여사가 기거하고 있다.
◐이육사문학관,목재고택과 이옥비여사(이육사 따님),농암종택,경북독립기념관 등에 관한 자료는 요기참고.
http://cafe.daum.net/gaetuel/Td3b/7
우는 의성향토사연구소 소장님,좌는 사무국장님.
좌는 필자,중앙은 주손인 이동수 철학박사,
신독(愼獨)은 중용과 대학에서 나온 말이고 퇴계와 율곡이 강조하였다.혼자 있을 때도 삼가고 삼가하라는 뜻이다.
차실에서 뒷마당(뒤란)을 내다본 풍경
예천 맛질 미산고택 박갑로
안채는 들어가면 이순신장군한테 혼날 것 같아서 못들어가겠군요...ㅎ
사랑채 누마루인 청풍헌
안동시에서 야심차게 지원한 명품장독대.
치암고택에서 나와서 도산서원 건너편 부포,의촌,역동,삼산리를 찾아 가는 길이다.퇴계로와 도신문
◐안동역사기행답사 기초자료는 요기참고- http://blog.naver.com/gaetuel/20073556459
◐안동하회마을 충효당과 양진당 자료는 요기참고 http://cafe.daum.net/gaetuel/TlCI/48
◐목재고택과 이옥비여사(이육사 따님),농암종택,경북독립기념관 등에 관한 자료는 요기참고.
http://cafe.daum.net/gaetuel/Td3b/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