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얼마전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한 쇼킹한 증언을 하여 체포당한 조웅 목사의 정보라인이었던
문명자 기자의 취재 파일(단행본) 전문(全文)인데 분량이 많은 관계로 편의상 1, 2편으로
나눠 게시합니다.
1편(1~3부 수록), 2편(4~7부 수록)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문명자 지음
- 백악관 출입기자 문명자의 40년 취재파일
[77년 10월 20일 하원 윤리위원회 청문회(위원장 존J.플린트)]
증인: 김상근 (전 주미대사관 중앙정보부 참사관, 76년 11월 미국에
망명)
심문자:
포튜인(Fortuin) 특별검사
통역 안홍균
(플리트 위원장은 개회선언과 증인과 통역의 선서가 끝난
후 카메라 사용 금지를 요청했다.
청문회장 증인석 앞에는 이른바 '백설작전'과 관련된 증거자료들이 제시되어 있었다.)
"'두벌의 옷'은 20만 달러를 의미"
Q: 74년 10월 23일 무슨 일로 김한조를 만났습니까?
A: 저는 그 날 김한조의 집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김한조는 그때 저에게 "서울에서 옷 두벌이
나에게 올 것이 있는데 혹시 서울에서 전화가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 '옷'이란 돈을 의미
합니다.
Q: '두벌의 옷'은 얼마를 뜻합니까?
A: 20만 달러입니다.
Q: '서울에서 전화 왔느냐"라는 것은 '중앙정보부의 양두원 장군에게서 전화가 왔느냐'라는 의미
입니까?
A: 그렇습니다.
Q: 당신도 양두원과 통화했습니까ㅏ?
A: 했습니다.
Q: 내용은?
A: 저는 김한조 집에서 그의 앞에서 양 장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김한조와 양 장군이 먼저 통화
했습니다. 그는 "내가 이 프로젝트를 굉장히 열심히 추진하고 있는데 옷 두벌이 지금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후 김한조가 수화기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 때 양장군이 저에게 세 가지 지시를
했는데 첫째는, 옷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남은 옷을 해밀턴 박사에게 주라. 둘째, 30일 이내
에 해밀턴 박사가 하고 있는 일의 결과를 보고해라. 셋째, 해밀턴 박사가 하고 있는 일이 절대 누설되지 않도록 확인해라"는 것이었습니다. 해밀턴 박사란 김한조를 의미합니다.
Q: 74년 11월 8일 박왕규와 대화했습니까?
A: 예.
Q: 박왕규는 박청일로 알려진 사람입니까? 74년 당시 그의 직위는
무엇입니까?
A: 맞습니다. 그는 양 장군의 보좌관이었습니다.
Q: 박왕규와는 언제 어디서 얘기했습니까?
A: 11월 8일 11시 30분경에 주미대사관에서 서울에
있는 그와 전화로 얘기했습니다.
Q: 그가 뭐라고 얘기했습니까?
A: "11월 18일경 미 의회에서 의원들이 한국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이 사실을 해밀턴에게 전달
해라. 만일 미 의회가 하국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압력을 가할 것 같으면 한국을 지지하는 방향
으로 논의를 돌리도록 해밀턴에게 전달해라'는 것이었습니다.
Q: 비판적 관점에서의 압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A: 미국 의회가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삭감하는
방향으로 나오는 것을 뜻합니다.
Q: 미 국회의원들의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면 김한조가 하는 일은 그 말을 막는
것입니까?
A:
그렇습니다. 그 일도 김한조가 하는 일 중의 일부입니다.
Q: 당신이 김한조에게 전달한 '기록'이란 어떤 종류의
것입니까?
A:
서울 양두원 장군이 보낸 미국 내 반정부 인사들의 명단인데 서울에서 우리 대사관에 보낸
외교행낭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지시에 따라 김한조에게 전달했습니다.
Q: 김한조는 그 명단을 가지고 무었을 했습니까?
A: 김한조가 8월에 서울에 갔을 때 그들 사이에 무슨
약속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한조는
"반정부 인사들의 명단을 주면 서울에서 얘기한 대로 내가 모두 조사해서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Q: 그 명단에 수록된 인사들은 한국인들입니까? 미국 시민들입니까? 모두 몇
명입니까?
A:
한국인도 있고 영주권자도 있습니다. 모두 7~8명 정도 되었습니다.
Q: 김한조가 그 명단을 받아 어떻게 처리했다고 서울에
보고했습니까?
A: 보고서를 낸 것으로 압니다. 그 명단에 든 사람들을
처리하기 위해 국회의원 또는 백악관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문제 외에도 김한조는 서울에 보고서를 자주 보냈습니다.
미국 의회의 활동상황이라든가, 유신에 대한 미국언론들의 보도 태도, 학계동향 등은 물론이고 자기 집에 누구를 초청 했다든가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스타] 독자란에 기고문이 실린 것 등등이 주요 보고사항 이었습니다.
Q: 74년 1월 23일 김한조를 만났을 때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A:
김한조는 나에게 "백설작전을 위해 내 돈 70만 달러를 썼다. 이 돈을 받아야겠는데 혹시 나에게 돈이 온 것이 없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당시는 한국에서 유신체제에 대한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을 때였는데 김한조는 "한국의 국민 투표를 지지하는 특별성명서 같은 것을 미국
국회의원들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국회의원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받은
영수증이라면서 1백 20달러짜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 영수증 사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을 한국에 보고 했습니다.
Q: 영수증은 어디에서 받은 것입니까?
A: 워싱턴의 산스시라는 레스토랑에서 발행한 것입니다.
Q: 75년 3월 31일(날짜 확인) 김한조를 다시 만났습니까?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A:
김한조의 집에서 만났는데 그는 지난번과 같은 얘기를 되풀이 했습니다. "나는 백설작전을 위해 내 돈을 60~70만 불을 썼다. 우리집에
텔렉스까지 갖다 놓아서 상당한 돈이 든다. 나는 열심히 일
하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별로 감사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다. 이전까지는 백설작전을 위해 시간을 쪼개 일했는데 이제는 이 일이 나의 전업이 되었다. 나는 시간당 10~12불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등의 얘기를 늘어놓았습니다.
Q: 김한조가 텔렉스를 어디다 설치했는지 봤습니까?
A: 자기 집 차고 옆방에 텔렉스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Q: 김한조는 주로 누구와 텔렉스 교신을 합니까?
A: 서울 양두원 장군 사무실과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Q: 당신이 박동선을 처음 만난것은 언제입니까?
A: 71년 초쯤으로 기억합니다. 우리 대사관에 있는
임규일 대령의 소개로 내가 박동선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Q: 임규일은 그 때 무슨 일을 맡고 있었습니까?
A: 한국중앙정보부 소속으로 주로 미 국방성 관리들을
접촉하는 일을 했고, 두 번째로는 의회담당을 했습니다.
Q: 의회담당이란 의회와의 연락관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까?
A: 연락관 역할보다는 의회 모니터 활동이 주요한
임무입니다.
Q: 임대령이 왜 당신에게 박동선을 소개했습니까?
: 나는 그 때 워싱턴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람들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임대령이
나를 박동선의 집에 데려갔는데 처음에 유재신이라는 사람이 우리를 맞았고, 그 다음에 박동선과
만났습니다.
Q: 박동선이 의회로비를 하는 데서 한국 중앙정보부 워싱턴 지부에서는 주로 임대령이 지원사업
을 한
것입니까?
A:
예 그렇습니다. 김한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중략>
Q: 김한조가 거래하고 있다는 미국 국회의원 중 한 사람이라도 이름을 밝힐 수
있습니까?
A:
김한조는 걸핏하면 "미국 의회에 나의 전위대가 있다"라는 소리를 잘했습니다. 그러나 전위대에 속해 있다는 국회의언 이름은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김한조가 "미국 대통령
특별보좌관과 잘 통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Q: 미국 대통령 특별보좌관이라면 어느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입니까?
A: 포드입니다.
Q: 포드의 특보는 한 사람밖에 없는데.(그 때 사회자가 '그 부부는 비공개 사항'이라면서 질문을
가로막음.)
Q: 김한조의 '전위대'가 속한 정당 이름은?
A: 미국 공화당입니다.
Q: 전위대 멤버는 몇명입니까?
A: 김한조가 말하기를 모두 5명이라고 했습니다.
"박동선은 건달이고 내가 진짜 로비를 한다."
Q: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박동선과 관련돼 있다는 것을 김한조에게 들은 일이
있습니까?
A:
있습니다. 김한조는 "박동선은 의회 로비를 한다면서 건달같이 왔다갔다하면서 중앙정보부
양두원 실장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 박동선 뒤를 캐려고 12명의 기자들이 쫓아다닌다. 박동선은
건달이고 내가 진짜 로비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습니다.
Q: 75년 4월 25일 김한조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A:
"돈에 대해서 전화로는 얘기 못 하겠으니 우리 집에 오라"고 해서 다음날인 4월 21일 김한조의 집에 갔습니다. 김한조는 "지난 1월에 한국에
갔을 때 내 돈 2만 8천불을 썼다. 이 문제에 대해
양두원에게 편지를 쓰겠으니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음날이 4월 22일 편지 때문에 다시 그의 집에 갔었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전화가 와서 4월 26일 김한조의 집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김한조는 "내가 양두원 장군에게 모든 것을 보고했고 그가 나에게 전화했을 때도 같은 얘기를 했다"면서 돈
얘기를 되풀이했습니다. 저는 그 날 저녁 11시 15분쯤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니 김한조가 다시 전화를 했는데 "방금 양 장군과 통화했다. 75년 1월 건에 대한 옷보따리를 보내오는 일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양 장군이 못 알아듣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Q: 옷은 돈을 뜻합니까?
A: 그렇습니다.
Q: 5월초에 김한조가 또 한국에 갔습니까?
A: 그렇습니다.
Q: 돌아온 후 김한조와 대화했습니까?
A: 그렇습니다. 돌아온 후 김한조는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 서울에서 온다"라고 말했습니다.
Q: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란 무엇입니까?
A: 김한조가 제게 말하지는 않았고, 혼자서 "백설작전에
필요한 자금.."이라며 중얼거렸습니다.
그 후 김한조가 "첫 번째 물건이 왔느냐"고 묻기에 나는 "못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Q: 그 대화 후에 서울 중앙정보부로부터 추가로 돈을 보내는 문제에 대해 연락이
있었습니까?
A: 있었습니다.
Q: (게시되어 있는 증거 자료들을 가리키며) 여기 전시된 문서중 어느 것이 그 때 추가로 돈을
보낸다는 메시지를 담은 문서입니까?
A: (게시되어 있는 문서 중 하나를 가리키며) 여기
10개의 문서는 모두 내가 서울과 연락한 문서
중 일부인데. 겉봉에 '극비' '김상근 서기관에게' 뒷면에 '한국중앙정보부 75년 6월 3일'이라고 씌어 있는 두 통의 편지가 물으신 문서입니다. 한 통에는 편지가. 한 통에는 30만 달러 짜리 수표와 7,563달러 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고 (확인)다른 한 통에는 편지가 들어 있습니다. 편지에는 "수고가 많다. 이 편지를 받은 즉시 나에게 연락하기 바란다. 함께 보낸 물건은 지체없이 해밀턴 박사에게 전달해 주기 바란다. 만약 물건이 도착하지 않았으면 빨리 연락 주기 바란다. 건투를 빈다. 박왕규"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박왕규는 양두원의 보좌관입니다."
Q: 그 돈을 어떻게 했습니까?
A: 지시대로 김한조에게 전달했습니다.
Q: 그 시기에 서울로부터 추가로 현금이나 수표을 받은 것이
있습니까?
A:
있습니다.
Q: 그러면 전시된 자료 중 어느 것이 관련 문서입니까?
A: 11번(전시된 자료는 모두 일련번호가 붙어 있었슴)
입니다. 11번은 6월 말쯤에 받은 편지입니다. 편지 안에는 박동선 이름으로 된 세 장의 수표가 들어 있습니다. 편지에는 "당신이 고충이 많은
줄 안다. 이 임무가 끝나고 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모든 결과가 좋게 나타나면 나는 특히 당신에게 보답할 것이다. 여기 동봉하는 세
장의 수표를 은행에 예치하고 보안에 조심하라. 이 편지는 읽고 난 후 불태우라. 양두원"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Q: 당신은 지시대로 수표를 은행에 예치했습니까?
A: 세 장의 수표를 라그스 내셔널 뱅크에 있는 나의
개인구좌에 입금 시켰습니다.
Q: 은행 기록에 의하면 당신은 당시 수표 3장을 모두 다른 날짜에 입금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40만
불을 찾았는데 그 돈을 누구에게 주었습니까?
A: 최제영이라는 워싱턴에 사는 한국교포에게 주었습니다.
Q: 최제영은 '뉴욕상사'의 사장입니까?
A: 그렇습니다.
Q: 그 돈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A: 나는 전혀 모릅니다.
Q: 전시번호 14번의 이 40만 불짜리 영수증은 최제영에게 받은
것입니까?
A:
그렇습니다.
Q: 김한조는 8월에 또 한국에 갔습니까?
A: 그렇습니다.
Q: 갔다와서 그가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A: "나는 8월 한국 방문 때 내 돈 10만 달러를
썼다. 물론 나는 억만장자니까 그 정도 쓰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양두원을 만났을 때도 "왜 백설작전에 내
돈을 써야 하나? 여기에는 정부자금이 나와야 되는 것 아닌가. 두 번째로 받은 30만 달로도 미국
국회의원들에게 다 뿌렸다"고 얘기했다고 나에게 전했습니다.
Q: 국회의원 누구누구에게 돈을 뿌렸다고 얘기했습니까?
A: 이름은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Q: '백설작전'에 대해 묻겠습니다. 당신이 백설 작전에 대해 최초로 들은 게
언제입니까?
A: 나는 74년 8~9월 경에 김한조로부터 그 얘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그 뒤에 박왕규(양두원의
보좌관)로 부터 편지가 와서 자세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Q: 그 편지로 지시받은 것을 얘기해 보시오.
A: 한국의 이익을 위해 김한조가 박동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광범위한 범위의 미국 저명인사
들과 접촉할 것인데 앞으로는 박동선보다는 김한조를 접촉하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오후에 속개>
"중정이 지목한 반정부 인사 1호는 문명자 여사"
Q: 백설 작전에 대한 질문에 들어가기 전에 당신이 이야기 한 것에 대해 몇가지 추가로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이 이야기한 것에 대해 몇가지 추가로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이 양두원으로부터 받아
김한조에게 전달했다는 반정부인사 명단에 오른
사람들의 이름을 밝혀 주십시오.
A: 첫째로 문명자 여사...
Q: 쥬리 문으로 알려진 그사람 말입니까?
A: 네
Q: 그 밖에 누가 있습니까?
A: 워싱턴 교포인 정기용, 장성남씨, 한민통 사무총장인
이건팔씨, 김대중 씨의 처남인 이성호 씨
등이 있습니다.
Q: 김대중 씨가 누구입니까?
A: 박 대통령의 반대파인 야당 정치인입니다. 대통령
후보이기도 했습니다.
Q: 당신이 박동선에게서 나온 40만 불을 최재영에게 전달했다고 했는데 최가 운영하는 회사이름
이
무엇입니까?
A: 유나이티드 영 컴퍼니(United Young
Co.)입니다.
Q: 그 회사는 한국중앙정보부와 연결된 주요 정보
제공자입니까?
A: 그렇습니다. 70년대 후반 박청일(박왕규의 가명)이
워싱턴에 있을 때 이 회사로부터 여러가지
정보와 자료들을 공급받았습니다.
Q: 그러면 최재영이 40만 불을 어디에 썼는지 모릅니까?
A: 나는 모릅니다.
Q: 박동선의 활동과 관련해서 당신은 어떤 일을 했습니까?
A: 박동선으로부터 업무내용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
외교행낭편으로 서울에 보냈습니다. 거기에는 미국 국회의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다든지 국회의사록에 박 대통령을 칭찬하는 발언이 실렸다
든지 하는 내용이 씌어 있었습니다.
Q: 거기에 국회의원 이름은 없었습니까?
A: 서울로부터의 마지막 지시서에 박과 관련을 맺고 있는
국회의원 명단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Q: 몇 사람쯤 됩니까?
A: 거기에는 국회의원뿐 아니라 미국 저명 인사의 이름도
있었는데 모두 40~50명 정도 되었습니다.
Q: 박동선에게도 백설작전의 지시를 전달했습니까?
A: 서울에서 온 원본을 복사해 사본을 박의 집에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Q: 박은 서울과 텔렉스로 교신했습니까?
A: 그가 직접하지 않고 이봉양이라는 박의 고용인이
텔렉스를 사용했습니다.
Q: 76년 4월 백설작전에 관해서 이봉양이 텔렉스를 받은 것이
있습니까?
A:
본국에서 지시가 왔다고 이봉양에게서 얘기를 들었습니다.
Q: 그 지시가 한국 중앙정보부 본부에서 온 것이 맞습니까?
A: 그렇습니다.
Q: 그 때 이봉양이 받은 지시 내용은 무엇입니까?
A: "당분간 빙산작전에 대한 지시를 중단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Q: 75년 8월 중순(어느해인지 확인) 경에 김한조 이외의 중앙정보부 에이전트에 관한 연락은 없
었습니까?
A: 있었습니다. 8월 말경 김한조가 나에게 전화해서
"나는 대단히 실망했다. 한국중앙정보부가 나 이외의 딴사람을 돕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세한 것은 만나서 얘기하겠다." 고 말했습니다.
그를 만났더니 "한국정부가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해 달라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그를 추천한 사람은 함병춘 주미대사"라고 말했습니다.
Q: 함병춘 대사가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입니까?
A: 김한조가 말하기를 "내 전위대 중 한 사람이 그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서울 정부측은 나를 통
하지 않고 내 전위대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함병춘 대사가 얘기했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한국정부 내에서는 "김한조가 자꾸 돈을 내라고 하는게 김한조를 통하지 말고
현지 대사가 국회의원과 직접 접촉하는 것이 어떠냐"라는 말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듣고
김한조가 노발대발한 것입니다. 또 내가 정확히느 모르지만 김한조 외의 다른 에이전트를 통해
국회의원들과 연결을 시도한 예도 있습니다.
Q: 함병춘 대사가 직접 국회의원들을 접촉한다는 내용의 얘기를 들은 일이
있습니까?
A:
저도 국회의원들과 접촉하는 다른 길을 모색 했었습니다.
Q: 왜 그랬습니까?
A: 김한조는 "국회의원들과 한 번 접촉하는데 2만 불이
든다. 경쟁자가 있기 때문에 그 이하는 안
된다"는 식이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그를 통해 백설작전을 계속하는 데 흥미를 잃은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Q: 김한조가 몇 명의 국회의원들에게 2만 불씩을 뿌렸다는
말입니까?
A:
거기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습니다.
Q: 김한조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언제입니까?
A: 76년 7월 입니다.
Q: 박동선은?
A: 76년 9월 초순에
마지막으로 만났습니다.
77년 10월 20일 하원 윤리위원회 의원들의 보충질문]
-퀼렌 의원: 당신이 망명하려고 최종 결심한 것이 언제입니까?
-김상근: 76년 11월 23일 밤입니다.
-퀼렌 의원: 특별히 그 날 행동을 개시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상근: 그 날 겪은 몇가지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어제 증언했던 망명
동기에서 빠뜨린 부분을
하나 추가하겠습니다. 76년 3월 내가 서울에 갔을 때 윤승국 전 주미대사관 중앙정보부 공사를
만났는데 그가 굉장히 불쾌한 표정으로 "도대체 미국에서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냐. 너는
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제대로 알고 있는 거냐"라고 힐난해서 당혹했던 일이 있습니다.
코리아게이트 관련 보도가 시작되고 난 후 한병기 유엔주재 부대사가 서울에 갔다왔는데 김영환
주미대사관 중앙정보부 공사가 뉴욕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한대사가 "신직수 부장이 양두원 실장
에게 '나도 모르게 그따위 작전을 하다니 이게 무슨 짓이냐'하고 대단히 책망했다"는 말을 하더라고 했습니다. '뭔가 잘못되고 있구나' 하던 차에 11월 23일 [뉴욕타임스]에 "양두원 장군과 김상근이 이 사건에 대한 인책으로 해임됐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최제영을 만나 "나는 지금 수사를 당하고 있으니 도와 달라"는 얘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자마자 한국 중앙정보부의 해외담당 미주국장으로부터 국제전화가 왔습니다. 그가 내게 "당신 최제영을 만났나?" 하고 묻기에 "지금 만나고
돌아왔습니다"라고 했더니 "그 내용을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그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한국대사관 통신과에 있는 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앞으로 본국에 보고할 때 통신과를 통하지 말고 당신이 알아서 메시지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는 나보다 아랫사람인데 나에게 말하는 투가 전과 달리 대단히 냉담하고 무례했습니다. 나 자신의 문데에 대해 나는 모르고 있는데 주위 사람들은 뭔가를 많이 알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진짜로 그만둬야 할 때구나'라는 느낌이
들어 최종적으로 망명 결심을 한 것입니다.
-퀼렌 의원: 양두원은 당신에게 굉장히 많은 지시서를 보내면서 그것을 불태우라고 계속 지시 했는데 어째서 당신은 그것을 보관하고
있었습니까?
-김상근: 양두원 장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긴 했지만 지시 내용중 굉장히 무리한 것도 많고 심지어 지시 자체가 말이 안 돼 제
선에서 묵살한 것도 있습니다. 만일 앞으로 상황이 변화했을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저는 그 서류들을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코크란 의원: 김한조가 추진한 백설작전이란 것은 미의회와 행정부에 박 정권에 대한 비판을 약화시키기 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를 통해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 삭감등을 철회시키려고 한 것인
가요?
-김상근: 네 그렇습니다. 김한조가 미국 의회, 정부, 백악관, 언론, 학계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한국 정부를 도울 수 있다고 너무 과장에서 말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 사람은 교포사회의 반정부인사들도 자신이 처리할 수 있다고
장담했는데 내가 보기에 그는 미국사회는 물론 한국 교포사회에서도 별
영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코크란 의원: 그런 사람이 자기 활동에 무려 70만 불을 썼다는 사실이 우습지 않습니까?
-김상근: 그렇습니다. 김한조는 미국
국회의원들에게 돈을 뿌린다고 얘기했는데 미국 의회가 열려 있는 9월에는 한국에 가 있었고, 휴회가 돼 국회의원들이 모두 자기지역으로 돌아갔을
때에 워싱턴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그 돈을 언제 어떻게 썼다는 것인지 저는 이해가 잘 안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