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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마음을 움직이다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느헤미야의 끈질긴 기도였습니다 조급하게 움직이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움직이십시오
느헤미야는 술관원이었습니다. 술에 독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기 위해 술관원은 왕에 앞서 술을 마시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술관원은 왕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는 군주 앞에 정기적으로 나아가 대화를 나눌수 있는 관계였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군대의 지휘관 보다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본 사람
느헤미야가 술관원으로 출세함으로 이방에서의 설움은 사라지게 됐습니다. 안전과 행복한 삶이 보장된 것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기죽을 필요도 없고 약자의 아픔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기도할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그동안의 고난과 고통을 보상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오르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어려움을 통해 배운 가치를 잊고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움켜 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권력의 묘미에 병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민족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시온의 예루살렘 성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비록 높은 지위에 올랐을 지라도 낮은 곳에서 압제당하고 있는 민족을 늘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형제 하나니로부터 훼파된 고향땅, 예루살렘 소식을 들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참을 수 없어 느헤미야는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습니다. 울면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아픔과 기도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자신보다 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훨씬 성벽재건을 갈망하심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 성벽 재건을 위해 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가지 않고서도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성벽재건의 일을 뒤에서 잘 도와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일을 수행하는 한 사람으로 기꺼이 헌신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본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곳에 갑니까? 자신의 능력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헌신이고 믿음입니다.
마틴 루터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진실하고 담대한 확신이다. 믿음은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여 수천 번도 목숨을 걸만하다.’라고 정의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성벽 재건을 가로막는 장애물
기도가 끝난 후 느헤미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현실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기회를 주실 것을 신뢰하며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2장 1절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소식을 접한 것은 기슬르월, 우리의 월력으로 12월 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로 다가온 것은 니산월, 4월경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에 목숨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4개월을 더 기다린 것입니다.
이렇게 지체된 이유 두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역사적인 이유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환상을 처음 경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제2차 포로기간 때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이 에스라를 중심으로 성벽을 재건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도시국가의 왕들로부터 모함을 받고 이 일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에스라 4장 11~16절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서편에 있는 신복들은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에게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우리가 이제 궁의 소금을 먹는 고로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보내어 왕에게 고하오니 왕은 열조의 사기를 살피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찌라 이 성읍이 훼파됨도 이 까닭이니이다 이제 감히 왕에게 고하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을 필역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서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주변에 있는 나라들은 예루살렘과 그 왕국을 몹쓸나라로 취급했습니다. 패역한 족속, 반역하는 민족이라며 고발한 것입니다. 이에 왕은 성벽재건을 하지 마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게다가 주변에 있는 나라의 왕들에게 그 성을 잘 감시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결국 성벽재건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자신이 가까이 모시는 왕이었습니다.
성벽재건을 방해하는 상황적 이유도 있었습니다. 대개 페르시아의 왕들은 잔인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배하는 나라들을 압제했고 못된 정치를 펼치곤 했습니다. 그로 인해 왕을 암살하려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왕은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부하조차도 의심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아닥사스다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이 왕은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좀처럼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왕에게 가장 큰 충성과 신뢰를 바쳐야 하는 느헤미야, 항상 왕과 대면해야 하는 느헤미야의 마음속에는 성벽재건에 대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은 날마다 느헤미야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왕에게 가서 마음속에 담고 있는 속얘기를 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오해를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의 법에 따르면 좋지 않은 조짐이 보인다 싶을 때 왕은 그 자리에서 사형을 언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느헤미야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습니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알지 못하지만 가장 적합한 시기에 얘기를 꺼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처지에서 본다면 성벽재건을 가로막고 있는 두번째 장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누리고 있는 권력, 지위가 그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이 됐습니다.
태산보다도 큰 장애물 앞에서 느헤미야는 왕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기다렸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하나님께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잠언 21장 1절을 보십시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느헤미야는 인내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기다리며 기도해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제게 ‘사람이 귀신보다 더 무섭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간섭하고 방해하고 막고 있는 것은 상황과 더불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나 사람이 우리의 삶을 방해할 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느헤미야처럼 끈질기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스스로에 대해 실망과 낙심이 찾아올 때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끈질긴 기도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에서부터 자유케 하는 능력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을 바라보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전제를 내 걸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으면 철옹성같은 사람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질문, 정직한 답변
당시 신하는 왕을 유쾌하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항상 용모와 표정을 밝게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니산월 이날에는 근심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정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음을 직감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왕은 평소에도 느헤미야의 건강상태를 확인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술을 마시기 전에 왕은 느헤미야가 평안한지 살펴보았습니다. 왕은 느헤미야의 얼굴을 보며 평소와는 뭔가 다름을 느꼈습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왕의 반응에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엄마에게 속마음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그는 어찌할 줄 모르며 두려워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일단 곤혹스런 상태를 넘긴후 적당한 때에 자신의 마음 상태를 말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순간에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지혜를 선택했습니다.
지혜로부터 정직한 마음은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마음에서는 지혜가 나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애써서 감추려 했던 마음을 하나님께서 드러내심을 알고 진실하게 대답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유대인의 랍비들은 대개 질문에는 질문으로 대답하곤 했습니다. 느헤미야도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왕에게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느헤미야는 이 사건과 마음에 있는 속사정의 결론을 왕에게로 돌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 이스라엘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결정을 왕이 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왕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지혜로운 질문, 정직한 답변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고 오히려 이스라엘의 문제, 정치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호소했습니다. 느헤미야의 답변에는 두 가지 지혜가 숨겨 있습니다.
먼저는 왕에게 충성하는 느헤미야의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고 그분이 주신 사실을 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왕을 찬양했습니다. 왕에 대한 충성을 간략하게 나타낸 것입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 ‘나의 열조에 있는 성읍’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닥사스다왕이 자신의 조상들의 무덤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자신의 열조에 대한 근심을 나타냈습니다. 이 지혜로운 대답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바꿨습니다. 인간의 권력은 자유와 평등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느헤미야는 왕의 권력에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왕의 너그러움과 개인적인 사랑에 자신의 문제를 호소했습니다. 왕은 자신이 총애하는 술관원의 아픔을 통감하고 자신의 힘으로 결정해야함을 알게 됐습니다. 그를 돕기 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군주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4개월을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모두 쏟아 놓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침묵하며 하나님께 묵도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계획을 설명하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순간의 침묵이었습니다.
기도와 병행한 주도면밀한 계획
느헤미야는 왕에게 자신의 속사정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 자신의 존재를 의탁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계획을 왕에게 정확하게 보고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5~8절까지 느헤미야는 자신이 준비했던 계획을 상세히 말합니다. 필요한 것들에 대해 철저히 준비된 계획을 보고했습니다. 이동원목사님이 그리스도인이 쉽게 빠지는 두 가지 극단에 대해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먼저는 기도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계획하는 사람들입니다. 처리해야 할 어떤 일이 있을 때 기도하지 않고 자기의 지혜대로 하는 경우입니다. 신앙과 관계없는 계획입니다. 또 하나의 극단은 기도는 열심히 하는 반면 계획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둘 다 잘못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끈질기게 기도하면서 왕에게 어떻게 말할 지를 계획했습니다. 기도 가운데서 세밀한 것을 하나님과 의논하면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전략을 세웠습니다.
여러분의 사업과 신앙은 관계가 있습니까?
자녀의 교육과 기도생활은 관계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선택과 믿음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 계획했고 계획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사람에게 묻고 자신의 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하나님과 그런 관계를 가졌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이 7,8년 전에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거절한 사실을 알고 예루살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개인적인 문제로 왕에게 접근했습니다. 아닥사스다왕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신하의 근심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느헤미야에게 얼마나 준비됐는지를 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필요한 기간을 말하고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러한 준비된 모습을 보고 왕은 느헤미야의 요구를 수락했습니다.
즐거워하는 왕의 모습을 보고 느헤미야는 두번째 전략을 펼칩니다. 필요한것을 얻는 단계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목재를 얻게 해 주시도록 부탁했습니다. 왕은 즐겁게 요구를 허락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얻게 됐습니다.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느헤미야의 끈질긴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한편으로 ‘기도만 하면 되나’하는 생각을 갖을 수 있습니다. 아닥사스다왕이 자신의 현실적인 필요와 상황에 관계없이 그냥 느헤미야를 도와준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페르시아의 왕인 아닥사스다가 느헤미야의 요구를 들어준 데는 다른 요인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주전 460년에 이집트에서 헬라인들을 중심으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페르시아에게 위협이 됐습니다. 주전 440년대에는 시리아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페르시아군은 이들을 격파했지만 소규모의 저항이 계속 그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말을 들은 왕은 그 사건들을 기억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 속에서 느헤미야의 충성과 지혜와 철두철미한 전략이 확인되는 순간, 이 사람이라면 이집트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나라를 보호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거침없이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느헤미야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행동했듯 왕 또한 자신의 필요에 따라 결정했고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느헤미야는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은 일을 사람으로부터 허락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인정받았으면 사람에게도 인정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사람도 동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열정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움직였고 이 세상과 함께 자신의 사역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주어진 삶을 지혜롭고 정직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태도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장애를 어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괴롭힌다고 해서 그 사람을 도외시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장애를 치우시고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선한 일을 도모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