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수난 : 공회에서 심문을 받으심(마26:57-27:10)
산헤드린 공회는 율법의 최고 통치기관이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예수께서 사형에 합당하다고 판정한 산헤드린 공회 재판은 모든 복음서마다 불법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합법적인 재판은 대낮에 성전 방에서 개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에 모인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민란이 두려워서 유월절에는 예수를 죽이지 않기로 의견을 모은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은밀한 제안을 받은 후에는 즉시에 예수를 체포한 후에 밤새도록 심문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사형에 합당하다고 판결한 후에
날이 밝자 예수를 당시 유대 총독이던 빌라도에게 보낸다.
이처럼 예수께서 잡히시고 심문을 받으심에 대하여 누가복음에서는 무리의 죄를 강조한다.
이는 밤중에 불법적으로 소집된 공회가 예수를 사형에 합당하다고 판결하고(눅22:66-71),
무리가 일어나서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로마의 반역자로 고발하였기 때문이다(눅23:1).
그러나 요한복음은 대제사장들과 유대인의 죄를 강조한다.
이는 대제사장 가야바가 민족을 위해 희생할 한 사람으로 예수를 지목하고(요11:47-52),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심문을 받으셨기 때문이다(요18:12-24).
그들은 사형에 합당하다고 판결한 후에(요18:19-23)
예수를 죽이고자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기 때문이다(요18:28-40).
그러나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예수를 죽이려는 유대 당국자들의 확고한 의지와 재판의 불법을 강조한다.
마가복음은 가룟 유다와 무리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 가자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 서기관들이 모여들었다고 기록한다(막14:53).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증거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막14:55).
재판장에는 많은 증인이 있었으나 증거가 일치하지 않았으며(막14:56)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성전 파괴자로 증언하였으나 그 증언조차도 일치하지 않았다(막14:57-59).
이처럼 마가복음의 공회 재판 상황은 거짓 증인을 내세워서 예수를 죽이려는 아수라장의 모습이다.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 먼저 예수를 데리고 갔다고 기록한다(요18:13).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한 사람이다(요18:14).
이러한 가야바의 말을 기록함은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 양임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는 대제사장만이 유월절에 잡을 양을 지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갔다가 헤롯에게 보내졌으며
다시 빌라도에게 보내져서 재판을 받았다고 기록한다(눅23:1-11).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재판을 받을 만한 죄가 없으심을 말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가자
거기에는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었다고 말한다(마26:57).
이는 율법에 따르면 두 사람 이상의 증거만이 합당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제사장과 온 공회는 예수를 죽일만한 거짓 증거를 찾았으나 찾지 못한다(마26:59-60).
후에 두 사람이 와서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고 합디다”
라고 증언한다(마26:61).
이러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대제사장은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고 묻는다(마26:63).
이에 예수께서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고 말씀하신다(마26:64).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에서는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라고 물었으며(요18:33)
예수께서는
“그렇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다”
고 말씀하신다(요18:36).
이러한 답변은 예수께서 자신의 무죄를 변증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이방 통치자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증언이다.
후에 나아온 두 증인이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합디다”
라고 말한다(마26:61).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대제사장이
“왜 아무런 반박이 없는가?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라고 하여도 예수께서 잠잠히 계시자
그는
“내가 너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고 묻는다(마26:62-63).
그런데 두 사람이 ‘성전을 헐고 다시 지을 수 있다’고 한 말과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짓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광야여행 중에 짓게 하신 성막에 거주하시면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셨다.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두었을 때는 시내산에 임하셔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셨다.
이후에는 7년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 모여서 율법을 읽게 하시고
여호와께 순종하겠다는 언약 순종식을 반복하도록 하셨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7년마다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관계를 갱신하셨다.
가나안에 입성한 후에 다윗이 이방 나라를 정복하여 나라를 완성하였을 때는
자신의 보좌에 다윗을 앉히시고 율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셨다.
이처럼 구약의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었을 때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광과 안식을 주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영원히 함께 살 처소를 짓게 하셨다.
이는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가 완성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갱신하셨다.
따라서 두 사람이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고 말하니(마26:61)
대제사장은 그 의미를 깨닫고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
라고 예수께 물은 것이다(마26:63).
이는 하나님 아들이 오시면 이전보다 더 큰 영광으로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예루살렘 성전 영광보다 더 큰 영광으로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전을 헐면 사흘에 지을 수 있다는 말은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보내신 메시야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내가 너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고 물은 것이다(마26:63).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고 답변하신다(마26:64).
이러한 예수의 답변에 대하여 누가복음은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로다”
만 기록하고(눅22:69)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은 빠져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이 두 가지 내용 모두를 언급한다.
이는 예수께서 세우신 천국이 율법 나라와는 다른 나라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태복음의 내용이며 뼈대이다.
다윗과 그의 후손 왕들은 여호와의 대리 통치자이다.
그들은 모세율법으로 국가 정사를 도모함으로 다윗왕국이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봉사하였다.
모세율법의 통치가 이스라엘의 삶 구석구석에 미치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다윗왕국은 율법이 시행된 율법의 나라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족보로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 성전과는 다른 새로운 성전을 세우러 오신 하나님 아들이시다.
그는 모세율법과는 다른 참되고 온전한 하나님 뜻이 시행되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따라서 예수께서 세우실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세워진 세상에 속한 성전이 아니다(히9:1).
세상에 속한 성전에서는 땅에서 나서 세상에 속한 제물과 예물,
죄가 지배하는 가나안땅의 소산물로 드리는 제사가 시행된다.
이는 죄로 인하여 죽은 제물과 불을 통과한 곡식을 예물로 죽은 제사를 한다는 말이다.
반면에 예수께서 세우신 성전에서는 산 제물로 산 제사를 한다.
산 제사는 산 제물로 하는 제사이다.
산 제물은 땅의 소산물과 화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이는 종말에서는 우리만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증언한 내용이다.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의 증거를 묵살하고 사형을 선고한다.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 내용을 인정하면,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위치나 삶의 토대가 무너진다.
산헤드린 공회원은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로 구성된다.
대제사장은 제사장이 들어가지 못하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다.
제사장은 백성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이들 모두는 백성들보다 여호와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특권을 가졌다.
여호와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사모하고 소망하는 일이다(시84:1-12).
이처럼 고귀한 위치에 있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백성들과 한마을에 거주한다.
그러면 백성들이 제사장과 장로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겠는가?
그들은 길을 가다가 제사장과 장로들을 만나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인사할 것이다.
결혼잔치가 있다면 가장 높은 자리에 그들을 앉게 할 것이다.
가나안땅에서 수확한 소산물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여 십일조로 그들에게 줄 것이다.
따라서 율법통치가 지속이 되는 한, 제사장과 장로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가 있다.
반대로 예수를 시인하고 인정하면
그들이 누리는 사회적인 명망과 부족함이 없는 기득권이 사라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가르침은 모세율법과는 다른 이단이다.
유대 백성들이 모두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율법을 버린다면,
율법을 버린 조상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받아서 망한 것처럼,
로마 군대가 유대 사회를 온전히 멸망시킬 것이다.
그래서 대제사장 가야바는
한 사람이 대신 죽은 것이 온 유대 민족이 망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 것이다(요11:47-52).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께서 사형에 합당하다고 판정한다.
이에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저주하며 맹세한다.
이러한 베드로의 배반에 대하여 복음서 가운데서 마태복음이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이는 베드로가 새 이스라엘의 수장이며 신약교회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잡히신 예수를 따라갔으며 산헤드린 공회 재판석에서 재판과정을 방청하였다(마26:69).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를 신성을 모독한 죄,
곧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라고 칭한 죄,
여호와의 처소인 성전을 부인한 죄를 물어서 사형선고를 내린다(마26:65-66).
이처럼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를 사형에 합당하다고 판정하자
베드로는 슬슬 꽁무니를 빼기 시작한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신분이 들키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며 저주까지 한다(마26:69-74).
재판을 방청하던 사람들이 예수와 같은 편이라고 몰아가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다(마26:70-74).
닭이 울자 베드로는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한다(마26:75).
이처럼 베드로는 예수를 저주하며 모른다고 부인하였고(마26:69-75)
가룟 유다는 예수께서 정죄가 되자 자결하였다(마27:3-5).
유다가 예수의 피 값인 은 삼십을 성전에 반납하자(마27:5)
대제사장들은 피 값은 성소에 둘 수 없다고 생각하여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터로 삼는다(마27:6-7).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마태복음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마27:9).
그런데 마태가 인용한 구약은 스가랴서 말씀이다.
스가랴서는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라고 기록한다(슥11:12-13).
그런데 마태는 이러한 스가랴서 말씀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말한다(렘32:6-15).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십칠세겔을 지불하고 사라고 하신 밭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회복할 기업의 보증이며 확증이다.
그래서 마태는 예레미야가 땅값으로 치른 은 십칠 세겔을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판 은 삼십으로 대체하여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다고 말한다(마27:9-10).
이는 토기장이의 밭을 나그네 묘지로 사용함은 나그네가 그 밭의 주인인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 값이 기업이 없는 나그네와 이방인의 담보가 되게 하신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