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전사물(佛殿四物)
사월초순 첫 일요일, 선운사에는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염불소리 목탁소리 따라 동백숲에서는 동박새 동백꽃에서 울고,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선운사 경내에 들어선 나는 범종각의 불전사물 앞에 우두커니 서있다.
불전사물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범종각 안에는 범종,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 등 범음구(梵音具)가 함께 걸려있다.
조석으로 예불이 시작되기 전에 이 네 가지 범음구를 쳐서 장중하고도 사뭇 엄숙한 소리를 진동케 하는 각각의 소리에는 불법의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아침 예불은 보통 3시에 이루어진다.
이때 도량석이라 하여 목탁을 치면서 천수경이나 법성게를 독송하며 사찰 경내를 한 바퀴 도는 의식이 있다. 사찰 경내의 모든 잠든 이들에게 예불 시각이 되었음을 알리는 의식이다.
도량석이 끝나면 종송(鐘頌)을 하는데 이를 ‘쇳송’이라고도 한다. 법당 구석에 놓인 작은 종이나 금고 중의 한 가지를 치면서 장엄 염불을 외운다.
장엄 염불은 극락세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아미타부처의 공덕을 찬양하고, 불ㆍ보살과 부모의 은혜를 감사하는 내용이다.
종송이 끝나면 드디어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의 순으로 불전사물을 울린다. 이 사물의 소리를 사바세계에 진동케 하는 이유는 불법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소리로서 널리 전하는데 있다. 범종은 지하세계에 있는 중생에게 그리고 법고는 지상의 중생을, 목어는 물속에 있는 중생을, 운판은 날짐승을 교화하는 법의 소리를 전하기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범종(梵鐘)
범종은 절에서 4부 대중을 모으기 위해서나 때를 알리기 위해서 치는 큰 종으로, 흔히 종루에 달아두는데, ‘범종’은 일반 종과는 구분되는 명칭으로 사찰에서 사용하는 종이란 뜻이며, 청정한 불사에 사용하는 종이라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범종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법구로 범종의 소리는 우주의 모든 중생의 영혼을 교화하고 제도하기 위하여 울리는 대자대비의 음성인 것이다.
범종의 구조는 매다는 부분인 종 고리부와 두들겨 소리를 내는 종 몸체로 구분된다. 동일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일찍이 불교가 전래된 동남아국가의 범종들은 모두 종 고리 부분에 용을 장식하고 있다.
『용왕경』에 의하면 용의 아홉 자식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포뢰(浦牢)’는 소리 내어 울기를 잘하는 습성을 지녔는데, 특히 포뢰는 겁이 많아 커다란 고래를 보면 더 큰 소리를 내어 운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뢰를 종 고리로 삼고 당목을 고래의 형상으로 하여 종을 치면 크고 장중한 종소리를 염원하는 발상에서 착안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종에서는 중국종이나 일본 종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장식으로써 종 고리 부분에 음관이 있다. 즉 중국종이나 일본종의 종 고리 양식은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머리를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쌍룡 양식으로, 한국종과 같은 음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종은 한 마리의 용이 화려하게 장식된 대나무 형상의 원통을 등에 지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형상은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을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으로서 한국종의 탁월한 창의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범종에는 비천녀상(飛天女像) 등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범종 중 유명한 것은 다음과 같다.
조선 초기에 제작된 지장보살이 부조되어 있는 갑사범종(보물 478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범종은 문양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주조수법을 보이고 있는 상원사종(725년), 이 보다 50여년 후에 완성된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리는 성덕대왕신종(771년)은 크기도 거대할 뿐만 아니라 그 외부 문양과 소리의 아름다움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종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한국범종은 신라양식과 고려양식, 조선양식으로 약간씩의 양식변천을 이루었다. 신라종과 고려 종은 순수한 우리 선조의 창의력에서 이루어진 형식인데 반하여 불교 배척시대였던 조선조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이른바 혼합적 양식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다시 신라종의 형식이 한국 종의 절대적인 양식으로 널리 유행하여 조성되고 있다.
법고(法鼓)
선운사 큰북은 범종각에 다른 불전사물과 같이 있다. 법고(法鼓)는 그 크기에 따라 대고(大鼓) 또는 홍고(弘鼓)라 하는 큰북과 작은북인 소고(小鼓)로 구분된다. 법고루를 따로 두는 중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법고를 범종과 같이 종각에 설치하고 조석 예불 때에 사용한다. 또한 법당에서 염불 의식 때 주로 사용되는 소형의 법고는 승무(僧舞)에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법고는 ‘불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북소리가 세간에 널리 울려 퍼지듯이 불법의 소리로서 중생의 마음에 진동하여 ‘일심을 깨우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와 같이 법고에는 불법을 널리 전하여 중생의 번뇌를 물리치고, 해탈을 이루게 한다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법고에는 그 소리로서 지상의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불법의 서원이 담겨있다. 즉 쇠가죽으로 제작되는 법고는 지상중생 제도의 의미를 부가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법고의 소리를 내는 양쪽 면에는 소의 가죽을 부착하여 조성한다. 피혁은 살생 금기의 교리적 법치에 따라 반드시 자연사한 소의 것을 이용해야 한다. 또한 양면에 부착되는 쇠가죽은 암소와 수소의 것을 각각 부착하여야 좋은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이는 음양의 조화를 따른 것이다. 즉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소리, 조화로서 파생되는 울림이야말로 중생의 심금을 울려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다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북의 몸체 부분에는 보통 용을 단청하거나 드문 경우에는 조각을 하기도 한다. 또한 두드리는 양면의 중심부에는 만(卍)자나 태극문양을 장식하거나 범자진언(眞言)을 묘사하기도 한다.
법고를 받치는 법고좌는 주로 사자ㆍ해태ㆍ거북ㆍ연꽃 등의 형상으로 조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단순한 사각형 틀을 짜서 그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법고를 칠 때는 마음 심(心)자를 그리면서 2개의 북채로 두드린다. 법고를 치는 승려의 타법에 따라, 또한 북소리를 듣는 이의 마음에 따라 들리는 느낌이 다르겠지만, 여명(黎明)의 고요 속에 흩어지는 북소리는 장엄하기 그지없다.
목어(木魚)와 목탁(木鐸)
목어와 목탁은 본래 대중들에게 일시에 알리기 위한 신호용구로 쓰였던 것으로, 물고기 모양으로 된 것은 목어라 하며, 둥근 형상의 것을 목탁이라고 한다.
불교의 모든 도구는 본래의 기능성보다 부여된 교리적 상징성이 더욱 중요시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물고기 형상으로 조형되는 이 목어에는 두들겨 내는 그 소리로써 물속의 모든 생명체를 제도한다는 불교적 서원을 담아 불전사물의 의식법구로써 사용하고 있다.
목어의 윤회와 관련된 연기설화 한편을 소개한다.
중국 장강 동정호가의 어느 절의 한 고승에게 아주 게으르고 말썽 많은 제자가 있었는데, 나쁜 짓만 골라하다가 병에 걸려 일찍 죽게 되었다. 결국 그 제자는 과보의 윤회를 거쳐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는데 그것도 등에 나무가 솟아나, 헤엄도 제대로 못 치고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승이 배를 타고 지나다 슬피 우는 그 물고기를 보고 전생에 자신의 제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물고기는 전생에 지었던 죄를 참회하며, 등에 자란 나무를 없애 주기를 애걸하였다. 스승은 제자를 불쌍히 여겨 그를 위해 수륙재(水陸齊)를 베풀어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 날 밤 꿈에 그 제자가 나타나 자신의 등에 난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훗날 대중들의 교훈으로 삼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래서 스승은 그 나무를 잘라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대중을 경책(警責)하였다는 내용이다.
또한 ‘물고기는 밤낮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졸지 말고 늘 깨어서 꾸준히 수도에 정진하라는 뜻에서 그 형상으로 목어를 조성하였다’고도 한다.
또한『후한서』⌜이응전(李膺傳⌟의 등용문에 의하면 ⌜황하 상류에 ‘용문’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그곳에는 물살이 매우 빠른 폭포가 있고, 그 속에 잉어와 같은 큰 물고기들이 용문폭포를 오르지 못하고 이무기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용문폭포를 오르기만 하면 용(龍)이 된다는 뜻에서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이 거기서 생겼다. 절에서 쓰는 목어의 생김새가 용의 머리에 잉어의 몸체로 이루어지는 까닭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운판(雲版)은 범종ㆍ법고ㆍ목어와 함께 불음(佛音)을 전하는 불전사물(佛殿四物)의 하나로서 ‘대판(大版)’이라고도 부른다. 그 외형은 대개 뭉게구름 모양으로 조형되며, 표면에 보살상이나 범자ㆍ구름ㆍ달 등을 부조하기도 하고 가장자리에는 승천하는 용을 장식하기도 한다. 또한 중앙상부에는 매달 수 있도록 고리구멍을 마련한다. 운판에 부조된 글자는 보통 범자 ‘옴마니반메홈’의 육자진언이다.
운판이 사찰에서 언제부터 제작, 사용되기 시작하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시대 이전의 유물이나 문헌상의 기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원래 운판은 선종사찰 특유의 법음구로서 재당(齎[가질재[제] 탄식하는 소리 제]堂)이나 부엌 앞에 이것을 매달아두고 대중을 모이게 하거나 공양시간을 알리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특히 밥이 다되어 뜸을 들일 때 3번 치므로 화판(火版), 바릿대를 내릴 때 길게 치므로 장판(長版)이라고도 부른다.
운판이 구름 모양으로 조형된 까닭을 화재예방의 염원적 상징조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구름은 곧 물이 되기 때문에 불을 다루는 부엌에서 운판의 형상을 조형하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른 의식법구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일반적인 기능성에 더하여 교리적 상징성이 한결 중요한 목적으로 부가되었다. 즉 운판은 아침ㆍ저녁 예불 시에 중생교화를 상징하는 의식법구로 소리를 통해 허공을 헤매는 고독한 영혼을 천도하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조류계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금고(金鼓)ㆍ반자(飯子) 선운사 금고(金鼓)는 대웅보전 안에 있다. 금고는 글자 그대로 쇠북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른 말로, '금구(禁口)'ㆍ'반자(飯子ㆍ半子)'라고도 불린다. 범종ㆍ법고ㆍ목어ㆍ운판 등의 불전사물이 아침, 저녁의 예불 시나 중요한 법회의식 때 사용되는 반면에 금고는 지금도 공양시간이나 대중의 집회를 알릴 때에 주로 사용되는 신호도구이다. 금고는 법당 내ㆍ외부에 간단한 현가(懸架)를 설치하고 매달거나, 간혹 처마 끝에 매달아놓고 나무망치모양의 당목으로 쳐서 소리를 낸다.
법당 앞 백일홍은 아직 잎도 피지 않았는데 범종각 옆 목련은 이미 지고,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