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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카톨릭 교회의 성경을 변개한 역사 고증으로 그들의 실체를 밝히 드러냄.
“성경에서, 전능하신 분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45:22)
로마 교회는 옆에 서서, 누가 전능하신 구세주의 이 말씀들을 들어야 하고 듣지 말아야 하는 지를 감히 결정한다. 만일 누군가 그 말씀들을 들으려면, 그녀의 허락에 따라야 한다. ...피조물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들을 수 있도록 허락하는 권세를 가진다는 것은, 최소한 하나님의 것과 동등한 권위와 능력을 갖겠다는 것이며, 적어도 하나님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그분의 뜻을 전달하시는 방식을 규제하거나 통제하는 권리를 갖는 것과 같다."
윌리암 맥거빈, 프로테스탄트, 1819.
로마와 성경
서문
“카톨릭 때리기" 라는 비난에 대한 대답 한마디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는 바는, 우리가 이 책을 출판하자마자, 우리의 비방자들은 우리가 로마 카톨릭교도 증오자들이라고 반발할 것이며, “카톨릭 때리기"와 편협한 파벌주의라고 매도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주장은 다른 사람의 심령을 살펴보는 능력을 요구한다는 것과, 우리는 누구도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주님이 우리의 증인이시건대, 우리는 결코 로마 카톨릭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우리는 증오심을 품고 있지도 않고, 야비하지도 않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기를 원치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의 진실한 복음에 대한 열정만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에 의해 거짓 복음들을 경고하라고 배워왔다(갈1), 충실한 목자는 이리들에게 저항한다.
우리의 기도는 모든 로마 카톨릭교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경의 충분성을 깨닫는 것이다. 몇 년 전, 호주 서부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카톨릭교도인 한 중년의 부인 집을 방문했다. 그녀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녀의 죄들이 사해진 것을 깨달았는지, 그리고 그녀가 천국에 갈 것인지를 우리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잠시 주저하더니, 곧 자신이 그것을 알지 못하며, 누구도 그러한 것을 깨달을 수 없다고 믿는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나에게 말하기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고, 미사에 참석하였으며, 최상을 원한다고 했다. 우리는 히브리서의 다음 구절을 그녀에게 읽어주며, “이는 그분께서 한 번의 희생예물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
원히 완전하게 하셨음이니라”(히10:14), 예수님의 속죄사역의 충분성과 완전성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로 인해 믿는 자에게 영생을 보증하시는 말씀들을 그녀에게 읽어주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내가 이런 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이름을 믿게 하려함이니라”(요일5:13).
이 초로의 부인의 태도는 아무런 안전성도 주지 못하는 로마의 거짓 성례(聖禮) 교리의 슬픈 열매를 보여준다. 이는 단번이고 영원하시며, 넘치도록 충분하신 갈보리의 속죄사역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판을 몇 개월 앞두고 가편집된 본 서의 한 초고에 대한 언급에서, 한 로마 카톨릭 독자는 다음과 같은 평을 해주었다. “카톨릭에 대한 적(敵)은 누구라도 당신의 친구이며,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보다 카톨릭교도들을 공격하는데 보다 더 주력하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톨릭교도들에 대한 비합리적인 증오에 사로잡혀 상식을 다 갉아먹는 쓴 뿌리를 주의하라. 그것은 당신에게 좋게 봉사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콧구멍 안에 악취가 될 것이다.”누군가 오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때마다, 이 잘못된 고소는 항상 따라다닐 것이다. 나는 대답했다. “나의 친구들은 카톨릭교도들에 대한 적이 아니다. 나의 친구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인간이 만든 유전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시편119:128을 보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나 또는 내가 역사적 기독교 분파들에 대해서 믿는 바가 아니며, 당신 또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자에 관해, 그리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유일하신 말씀인 성경에 관하여 믿는 바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단번의 영원하신 희생을 통해,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음이니라”(히10:14),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들에 철저히 갖추어지게”(딤후3:16-17)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음을 의미한다."
나는 로마를 진실한 기독교의 대적(對敵)으로 간주하는데, 이는그것의 교리들과 역사 때문이다. 내가 로마주의의 본질을 만든 것이 아니다. 나는 단순히 그것을 문서화했다. 나는 로마 카톨릭교도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나는 불경스런 로마 카톨릭 시스템을 증오한다. 진화 또는 공산주의 또는 다른 어느 거짓 시스템을 증오하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나는 로마 시스템을 증오한다. 가짜이면서도 진실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증오한다. 그것이 사람과 진리 사이에서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증오한다. 그것의 과장된 주장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독점적인 중보사역을 손상시켜왔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증오한다. 그 거짓 교리로 인해 그들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잃어버린 채 영원으로 갔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증오한다.
이 시스템을 증오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누가 반대하는가? 시편기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119:128). 주 예수 그리스도는 니골라당의 행위들을 미워하라고 교회들에게 말씀하셨고, 주님은 친히 니골라당의 행위들과 교리를 미워하신다고 교회들에게 격려하셨다(계2:6,15). “니골라당”이라는 용어는 “사람들을 정복하다” 라는
의미이며, 아마도 후에 로마 카톨릭의 형성을 초래했던 교만한 성직교계제도 사상의 초기 배경을 의미했다.
그의 유일한 동기가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를 적이라고 비방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두려운 기벽(奇麻)이다. 그래서 바울은 거짓 선생들에 의해 잘못된 길로 인도되던 갈라디아인들에게 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함으로 너희의 원수가 되었느냐”(갈4:16).
루터 성경에서 발췌한 삽화가 루카스 크라나크의 바빌론 창녀
로마 카톨릭 교회만이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해 왔던 유일한 조직은 아니었으나, 다른 어떤 조직도 로마 카톨릭보다 더 공격적으로 박해하거나 보다 오랜 기간 동안 박해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하나의 세계 종교 음녀에 관한 계시록 17장 예언의 부분적 성취라고 믿는다. 이 예언은 주님의 재림 직전까지 있을 적그리스도의 통치가 끝날 때까지 완성되지 않을 것이며, 로마는 의심할 바 없이 현 에큐메니칼 운동의 최종 결과, 다른 배도한 교회들과 조직들의 한 덩어리로 연합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모든 이 종교적 음녀의 외형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발견된다. 세속 정부들과 함께 어울리며, 거대한 부를 누리고, 자색과 자주색 옷을 걸치고, 성도들의 피에 취해있다. 천년 이상 동안, 분리주의자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로마와 계시록 17장의 음녀를 동일시해왔다. 9세기 말엽에, “테르간두스, 크레베스의 주교는 교황을 적그리스도, 그렇다, 늑대라고 불렀고 로마를 바빌론이라 불렀다”(Martyrs Mirror, 5th English dedition, p.240), 10세기에, 아르눌퍼스, 오를레앙의 주교는 라임에서 열린 전체 회의에서,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불렀다(Peter Allix, The Ecclesiastical History of the Ancient Churches of Piedmont, 1821, p. 229), 11세기에, 투르의 베렝거는 로마의 교리를 비난하였고, 로마 교회가 사탄의 교황청이라고 주장했다(George Faber, The History of the Ancient Vallenses and Albigenses, 1838, p.159), 왈덴시스들은, 그들의 오랜 역사에 걸쳐, 교황을 적그리스도들로 규정지었다. Noble Lesson이라는 제목의 1100년대 왈덴시스 논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적그리스도, 예언된 성도들의 살인자는 일곱 언덕을 가진 도시에 군주처럼 앉아 있으며, 그의 진실한 특성 안에 드러나 있다.” 12세기에, 대략 1120년 경, 적그리스도에 관한 논문은 로마의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분별하였다. 죠지 파베르는 이것이 피터 발도(Peter the Valdo)의 작품이라고 정의한다(Faber, pp.379-384). 1206년 몬트리올 회의에서 알비겐시스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로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가 아니라, 순교자들의 피에 취한 혼돈의 창녀 교회이다. 로마의 교회의 정치는 선하지도 거룩하지도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지지도 않았다” (Peter Allix, The Ecclesiastical History of the Ancient Churches of the Albigenses, 1821 edition, first published in 1692, p.178). 로마 종교재판관들에 의하면, 보헤미아에 있는 왈덴시스들의 부락이었던, 보헤미안은 다음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 설명은 14세기에 주어진 것이지만, 13세기의 자료를 사용한 것이다. “그는 말하길, 최초의 오류는 로마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악한 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며, 계시록의 짐승을 탄 음녀라는 것이다. 그들은 교황이 모든 오류들의 머리이자 주모자라고 선언한다. (Allix, Ancient Churches of Piedmont, pp.242-259), 14세기와 15세기의 롤라드들은 “로마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신앙심 없는 이교도들의 교회이다. 아울러 그들은 그 교회의 주교들과 성직자들과 함께, 모든 교회의 법들을 경시한다." (Allix, Ancient Churches of the Albigenses, p. 142).
종교개혁 시대를 통해, 로마는 창녀들의 어미로 여겨졌다. 1560년, 9월 9일, 칼라브리아의 장 루이스 파스칼레 목사는, 로마에서 교황 비오 4세 앞에서 산 채로 화형당하기 직전에, 그 교황에게 돌아서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적이자, 그분의 백성들의 박해자이자, 성경의 적그리스도라고 단언하며, 그와 모든 그의 추기경들이 어린양의 보좌 앞에서 그들의 잔인함과 살인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는 설교로 유언을 마쳤다.”(J.A. Wylie, History of the Waldenses, c1860,p. 120)
종교개혁 지도자들 모두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간주했다. 루터는 말했다, “나는 교황이 가면을 쓰고, 체화(體化)된 악마라고 믿는데, 왜냐하면 그는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Table Talks, Vol.54, No.4487, p.346), 슈말칼드의 기록들은 교황을 “배도한 적그리스도”라고 불렀다. 칼빈은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른다(Treatise 1:276). 제 2의 스코틀랜드 신앙고백(1580)은 교황을 “로마인 적그리스도”라고 부른다. 아일랜드의 신앙고백(1615), 80항은 교황을 “죄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사보이 선언(1658)은 교황을 “적그리스도” 라고 부른다. 성경 번역자 윌리암 틴데일은 그의 논문 The Practice of Prelates와 1534년판 그의 신약 서문에서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구별했다. 17세기, 18세기, 19세기의 그들의 계승자들도 이 견해를 고수했다. 많은 초기 프로테스탄트 성경들이 계시록 17장의 자주색 여자를 묘사하는 극(劇)적인 목조 조각들을 실었는데, 분명하게 배도한 종교 시스템을 한 로마 카톨릭 교회를 보여주고 있다. 루터의 신약에 수반된 그것들은 크라나크에 의해 만들어졌다. 로마와의 연합(Union with Rome)이라는 제목의 1893년 그의 작품에서, 영국 국교회의 크리스토퍼 워즈워드 주교는 그 당시 '프로테스탄트들 사이에서 만연해 있던 한 견해를 피력했다. “… 로마 교회의 이마 위에, 하나님의 성령님에 의해 인도받아 사도 요한의 손에 의해 기록된 대문자로 씌어진 그 비문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 광경에 전율한다.” 이 예들은 거의 끝이 없을 정도로 부지기수다. 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들, 침례교도들, 그리고 다른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오늘도 로마를 계시록 17장으로 분별하고 있다.
이 책을 저술하는 우리의 목적에 관한 한마디
우리의 목적은 네 가지이다. 첫째, 우리 현 세대들에게 이 역사에 관하여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알려진 대로, 로마는 그 역사가 기억되기를 원치 않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자주 출판하는 사람들은 카톨릭 옹호자들과 동조자들에 의해 심각하게 비방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사를 알지 못하면 현재의 현상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근대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난 2000년 동안의 교회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현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교회사에 무지한 이유 중 하나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건전한 자료들의 부재이다. (특화된 신학적 도서관을 방문할 수 있는 사람들 또는 값비싼 재판본과 절판된 제목들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량의 자료들을 구할 수 있겠으나,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둔 바는 일반적 그리스도인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의 부재를 말한다). 북아메리카는 다양한 종류의 기독교 서점들로 채워져 있으나 극소수만이 건전한 교회사를 진열하고 있을 뿐이다. 대중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역사들은 대부분 로마에 대해서 왜곡된 것으로서, 그 안에서 그들은 로마를 그리스도인 교회의 순수한 형태로 다루며, 수세기에 걸친 분리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와 그들이 당한 박해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다루지 않는다. 두 번째 목적은 세기를 흘러 내려오면서 전해져온 성경의 역사를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주요 언어들로 번역되는 자취를 훑어볼 것이며, 이를 대하는 로마의 태도를 살펴볼 것이다. 세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알고 지키도록 하나님의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성경을 지켜왔던 이전 세대들이 치렀던 그 대가를 깨달음으로써, 현재의 우리는 이 동일한 예전부터 흘러온 배도를 직면하여 매우 담대하고 용감해질 수 있다. 이 시대는 화해와 평화 분위기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있어서는 담대함과 전투가 항상 요구되어왔다. 우리도 하나님의 진리를 위한 전투열에서 후퇴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네 번째 목적은 이전의 영어 성경사에 관하여 상세하게 이 세대에게 재차 알리고자 함이다. 1611년 판본을 둘러싼 세부사항들은 수많은 책에서 다루어져왔으나, 그 이전까지 즉 위클맆부터 1611년까지는 현재 활자화되어 일반적으로 교회들에서 읽혀지는 대부분의 책들 속에서 간과되어 왔다. 따라서 우리는 위클맆, 틴데일, 커버데일, 매튜, 그리고 그 뜨거웠던 시대를 경험했던 다른 사람들의 전기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백성 중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 받을 이단들을 은밀히 들여와 심지어 자기들을 사신 주님을 부인하기까지 하고 신속한 파멸을 재촉하는 자들이니라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파멸의 길들을 따르리니 그들로 인하여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을 것이라 또한 탐욕으로 인해 그들은 거짓된 말들을 가지고 너희에게서 이득을 취하리니 이제 그들에 대한 심판은 옛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졸지 아니하느니라”(벧후2:1-3)
1611 에디션 kjv 한국킹제임스성서협회
제1장 거짓 교리들과 실천들로 성경을 가리워 온 로마 카톨릭
사도 교회들의 특징
로마 카톨릭주의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분명히 그 기원을 이해해야만 한다. 로마 카톨릭은 사도 시대까지 즉 특별히 베드로에게까지 그 전통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도들의 가르침과 사도 교회들의 특징을 로마 카톨릭교리와 비교해 볼 때 그것이 거짓임이 명백해진다. 신약 성경에서 발견되는 다음 특성들을 염두에 두라. 우리는 각 요지와 그에 상응하는 성경의 전 구절을 기록하였는데, 담대하고 기쁘게 이 진리들과 이 무오한 구절들을 우리가 믿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분성..
사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고, 그분이 유일하신 주인, 중보자, 대제사장 그리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의 머리라고 설명하였다.
“이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분 중재자가 계심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니라”(딤전2:5)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것같이 그분 안에서 행하되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입어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너희가 굳게 서서 그 안에서 넘치도록 감사하라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유전을 따르고 세상의 초등원리를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라 그분 안에는 하나님의 신격의 모든 충만하심이 몸의 형체로 거주하시고 너희도 모든 정사와 권능의 머리이신 주님 안에서 완전하며”(골2:6-10)
“또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기초 모퉁잇돌이 되셨으며”(엡2:20)
“이제는 전에 멀리 떨어져 있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3)
“이분께서는 항상 살아 계시므로 변하지 아니하는 제사장 직분을 가지셨느니라 그러므로 또한 주님께서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나니 주님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심이라”(히7:24,25)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한 분 곧그리스도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또 땅에 있는 사람을 너희 아버지라부르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라."(마23:8,9)
은혜의 충분성.
사도들은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 사역을 통해 값이 치러진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며 행위의 가미함 없이 오직 믿음을 통한 은혜로 받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행위들이나 의식들이나 “성례식들을 구원에 더하지 않았다. 그들은 율법과 은혜를 혼합시키지 않았다.그들은 구원 이후 행위들은 구원의 열매이자 증거라고 가르쳤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니 곧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니라 하시니라”(요6:29)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10).
“만일 그것이 은혜로 된 것이면 더 이상 행위들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그것이 행위들로 된 것이면 더 이상 은혜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행위가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롬11:6).
“이제 일하는 자에게는 그 보수를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오직 일하지 아니하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을 의롭게 하시는 그분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 행함들이 없이도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로 여기시는 사람의 복됨에 관하여 다윗도 말하였으니 말하기를 복되도다 자기 불법들을 사함받고 자기 죄들을 가리우심을 받은 자들이여 복되도다 주님께서 죄 없다고 여기실 사람이여 함과 같으니라”(롬4:4-8).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들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새 출생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주셨으니 그분의 은혜로 인하여 의롭게 된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소망에 따라 상속자들이 되게 하심이라”(딛3:5-7)
“또한 그 증언은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1,12).
대속의 충분성.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한번 그리고 영원하신 희생으로 그 죄가 영원히 대속되었다고 사도들은 가르쳤다. 그리스도 속죄사역의 완전한 충분성은 믿는 자가 영생을 소유하고 있고(요일5:13) 죽음 이후 즉시 천국으로 들어간다(고후5:6-8, 빌1:23, 딤후4:6)는 사실에서 볼수 있다.(실제 성경에서는 부활 직전까지 잠을 잔다고 여러번 묘사 됨)
“그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 한 번에 모든 사람을 위하여 드리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거룩하게 됨을 얻었느니라”(히10:10)“ 이는 그분께서 한 번의 희생예물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음이니라” (히10: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나니”(히10:19)
성령님의 충분성.
사도들은 특별한 의미로 성령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거주하시기 위해 오순절에 세상으로 오셨다고 가르쳤다. 그분은 구약 시대에는 그들 안에 현존하시지 않았다(행2; 엡1:12-14), 성령님은 사도들에게 모든 진리를 풀어주셨고(요16:13), 그들로 하여금 신약 성경을 기록하도록 안내하였으며, 그분은 개별적인 믿는 자들 안에 거주하시며,그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그들이 진리와 오류를 분별할 수 있게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의 신실하시고 내주하시는 교사이시자 안내자이시다. 베뢰아 사람들은 칭찬받았는데, 그들이 “그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신중하게 그들이 듣는바를 분별하였고, 성경 말씀에 어긋남이 없는지 시험하였다(행17:11).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을 “고상하다”고 기록하신다.이는 개인적인 해석권이라 불린다. 그것은 성경적인, 하나님 주신 특권이자 책임이다.
“그러나 너희는 거룩하신 분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고 너희는 모든 것들을 아느니라”(요일2:20)
“그러나 너희는 주님에게서 받은 그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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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므로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며 또 그 기름부음이 진리요, 거짓이 아니니 그 기름부음이 너희를 가르쳐준 그대로 너희가 그 안에서 거주하라”(요일2:27)
“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그 일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러한 것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들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알아서 그분을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4-16)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하여서 완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 말씀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살펴보므로 "(행17:11)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입증된 자로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나도록 부지런히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을 알고자하는 열심은 4세기 중 일반 기독교 인구들 중에서 지속되었다. “사회 어느 계층에서든, 여자들과 남자들 사이에서, 기독교를 그 심령의 중요한 관심사로 두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 연구에 열심히 매진하는 것이 특별한 그들의 표라고 간주되었다.”(Neander, General History of the Christian Religion, 3, p.377),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려는 이 열심은 진정한 신약 기독교사회의 특징 중 하나이며, 건전한 교회들 사이에서 언제나 분명히 보여져 왔다.
사도들의 충분성.
사도들은 자신들이 유일하게 교회들의 기초를 놓도록(엡2:20) 그리고 신약 성경을
완성하도록(벧후3:2) 하나님께 택해졌다고 가르쳤
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 목적을 위해 선택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역을 입증할 수 있는 은사들을 보였다(막3:14-15;행2:43;3:1-8;4:33; 5:12-16; 19:11-12; 고후12:12). 이 직임이 이 사람들의 죽음 이후에도 영속되어졌다는 기록은 신약에 없다. 그러한 사람들을 어떻게 선택하였는지를 교회들이 깨달을 수 있는 방침들이나 지침들도 나타나 있지 않다. 수세기를 이어오면서 교회들은 직접적으로 주님의 사도들의 사역 위에 세워져 왔다. 그것이 신약 성경에 우리를 위해 기록되어 있다. 계시록 21:14은 우리에게 영원을 통해 12사도들만 있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또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기초 모퉁잇돌이 되셨으며”(엡2:20)
“진실로 사도의 표적들이 너희 중에서 모든 인내와 표적들과 기적들과 능력 행함으로 이루어졌으니”(고후12:12)
“또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거기에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들이 있더라”(계21:14)
“너희로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전한 말씀들과 주님 곧 구주의 사도들인 우리에게 주신 그 명령을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니라”(벧후3:2)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또한 사람에 의해서 된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자로부터 그분을 일으키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도가 된 바울은...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확실하게 말하노니 내가 선포한 복음은 사람을 따라 난 것이 아니니라 내가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된 것이니라”(갈1:1,11,12)
신약 교회의 충분성.
사도들은 교회에게 속하는 분명한 지침들을 주었다. 그들은 교회의 행정에 관하여 설명했다. 그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선출하는데 있어 세부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교회의 의식들, 프로그램, 교수법, 재정, 그리고 교제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들은 각 교회가 머리되시는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 아래서 자율적이라고 강조하였다. 사도들이 한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 관하여 말할 때, 그들은 복수 형태의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 갈1:3,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들~ 고후8:1), 계시록은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복수)에게 주셨지, 아시아에 있는 교회(단수)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각 교회는 각각의 메시지를 주님으로부터 받았다. 거기에 어떤 형태의 교회들끼리의 연합체 구성에 대한 언급은 결코 없다. 각 모임은 하나의 자주적, 자율적 조직으로서 말씀을 받았고, 존중되었다.계시록 1장에서, 우리는 또한 각 교회가 주님의 영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황금 촛대들”(계1:12)로 상징되어있다. 각 교회는 하나의 자율적인 빛이다. 아시아 지역에 하나의 촛대(단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곱 개의 개별적인 촛대들(복수)이 있었다. 각 교회는 대사명을 이행하고자 했으며, 그렇게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전하고, 훈련시키고, 침례하고, 안수하고,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다. 행13:1-4; 살전1:7-8; 빌2:15-16을 비교하라.이렇듯 주님께서 바울과 바나바를 그들의 선교 사역을 위해 부르셨을때, 안디옥에 있는 교회는 이를 알리고자 예루살렘에 기별하거나, 다른 교회 본부들에 이 사역을 위해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단순히 사람들을 안수하였고, 그들을 파송하였고(행13:4), 그 사람들이 자기 사역을 마쳤을 때, 그들은 이 교회로 돌아왔고 그들의보고서를 제출하였다(행14:26,27).
각 사도 교회는 각각의 지도자들을 가지고 있었다. “감독”, “장로” 그리고 “목사” 라는 용어들은 모임에서 동일한 직책을 말하며, 교회 지도자 사역의 세 가지 다른 양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목사는 무리의 목자로서 교회의 지도자를 뜻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양육하고,그 모임을 보호하는 그의 사역을 말한다. “목사(pastor)”는 헬라어 poimen을 번역한 것으로, 신약에서 16번 “목자(shepherd)”로 번역되기도 하였다(마9:36; 25:32; 26:31; 막6:34; 14:27; 눅2:8, 15, 18, 20; 요10:2, 11, 12, 14, 16; 히13:20). 신약의 헬라어 단어에서, “무리를 먹이다”(행20:28; 벧전5:2)는 “무리를 목양하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목사”와 “목자”로 번역되는 동일한 어근의 단어로부터 나온 것이다. 장로는 교회 지도자의 성숙성과 책임성을 뜻하며, 그가 그 교회의 본이 되어야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감독은 교회 지도자의 권위를 의미하며, 그가 그 교회를 관할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감독"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또한 “관할하다”로 번역되기도 한다(행 20:28; 벧전5:2).
이 용어들이 그 모임에서 동일한 직책을 의미한다는 것은 그들이 쓰여진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디도서 1장 5,7절에 “장로들”과 “감독들은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모든 세 용어들은 같은 직위에 적용된다. 17절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장로들”이라 불린다. 28절에서 감독과 목사를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들이 사용된다. 베드로전서 1장 5절에는 또한 교회에서 같은 직위를 뜻하는 것으로 이 용어들을 사용한다. 1절은 “장로들”을 뜻하고, 2절은 이 장로들을 감독자들(감독들)이자 목자들로 말하고 있다. 이 용어들이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한 명의 목사는 한 명의 장로이자 한 명의 감독이다. 이것들은 분리된 직책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신약 모임에 있어서 지도직의 한 가지 직책을 설명해주는 세 가지 용어들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스스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알게하려는 것이라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전이니라”(딤전3:15)
성경의 충분성.
사도들이 성경을 믿음과 행실을 위한 충분한 권위로 믿었음을 디모데후서 3:16-17절로부터 명백히 알 수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 잡아주며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들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여기서 “완전하다”란 용어는 죄없는 완벽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완전'과 '충분의 의미로 사용된다. 17절의 후반부는 전반부를 한정한다. 완전성은 “모든 선한 일들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음 문제는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사람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 완전한 성경구절들을 담고 있는지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첫째, 사도들은 성경의 완성을 위해 영감을 약속받았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사도들에게 성령님께서 그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실 것과 주님께서 그들이 알아야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할 말들이 많이 있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을 감당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만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그분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하시리라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듣는 그것만 말씀하시며 또 너희에게 일어날 일들을 보이시리라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리니 그분께서 내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주시리라 아버지께서 가지신 모든 것들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분께서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하였노라”(요16:12-15).
예수님의 약속의 이행에 있어서, 신약 계시록은 성령님의 영감 아래에서 사도들에 의해 완성되어졌다. 신약 성경들을 형성시킨 사도들의 기록들은 1세기 교회들에 의해 성경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도 베드로는, 바울의 서신들에 관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할 때, 그것들을 성경이라고 언급했으며 그것들을 구약 예언들과 동등하게 두었다.
“또한 우리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라고 여기라 우리의 사랑받는 형제 바울도 자기가 받은 그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그의 모든 편지들 속에서 이런 것들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배우지 못하고 견고하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5,16).
사도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영감을 약속하셨다는 것을 깨달았고(요16:12-15),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계시를 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 교회에게 보낸 바울의 기록을 살펴보라.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확실하게 말하노니 내가 선포한 복음은 사람을 따라 난 것이 아니니라. 내가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은것이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된 것이니라”(갈1:11,12)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바울의 말씀들을 보라.
“이러므로 우리가 또한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를 드림은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중에서 살아 역사하느니라"(살전2:13)
데살로니가 신자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다고 믿었다!
또한 1세기 교회들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베드로의 말을 살펴보라.
“사랑받는 자들아 내가 이제 너희에게 이 두 번째 편지를 쓰는 것은 이 두 편지들로 기억나게 하여 너희의 순수한 마음들을 일깨우고자 함이니 너희로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전한 말씀들과 주님 곧 구주의 사도들인 우리에게 주신 그 명령을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니라"(벧후3:1,2)
사도들의 명령이 구약의 예언들과 동등하다고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상기시켜주었다. 분명히 이는 사도들이 모든 교회들에게 가르치고자 심혈을 기울였던 것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이미 가르침받지 않았던 어떤 것을 기억할 수 없었다.
제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긴밀하게 맺어진 공동체였다. 그들이 이러한 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하는 중임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그리고 그들이 그와 같은 신약서신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러한 일들을 부인하고, 신약 정전(正典)의 형성이 사도들 이후 세기에야 비로소 일어난 일종의 거의 우연한 일이라고 19세기와 20세기의 근대주의자들은 주장해왔다.
둘째, 우리는 성경이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이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진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사랑받는 자들아 함께 나누어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글을 쓰려는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주신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써서 너희를 권면해야 할 필요를 느꼈나니”(유3)
“믿음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통해 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신약 진리의 실체를 의미한다. “단번에 전해주신”이란 용어는 이 진리의 실체가 특별한 한 시간상의 기간에 주어졌다는 것과 완성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것은 신약 성경들을 말한다. 이 구절은 기독교 믿음이 점진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해 주어져왔다는 사상을 반박한다.
셋째, 매우 중요한 말씀이 성경의 마지막 서의 마지막 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의 완성을 의미하시며, 모든 사람에게 성경에 더하지 말고, 성경에서 빼지도 말라고 경고하신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하나니 만일 누구든지 이 말씀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 안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또 만일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제거해 버리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 밖으로 거룩한 도성의 밖으로 또 이 책 안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제거해 버리시리라하시니라”(계22:18-19)
성경에 준하는 새로운 계시나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이 장에 기록된 심판에 처해진다. 계시록은 성경을 완성하고 있다.
이 견해, 즉 신약이 사도들의 사역기간에 형성되었다는 것과 그들의 죽음 훨씬 이전에 완성되었다는 것은, 근대주의 학자들에 의해 부정되어지는 것이나, 오늘날의 보수주의 학파들과는 논쟁선상에 있지 않다. 1976년 Redating thew Testament라는 책에서, J.A.T. 로빈슨은 신약성경의 모든 기록들이 AD70년 이전에 씌여졌다고 기록한다. 그는 계시록이 가장 마지막 즉 AD68년 중반에서 AD69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F.F. 브루스는 비록 그 자신이 종종 근대주의적 입장을 취하기는 하지만, 로빈슨의 연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빈슨 박사의 경우는 너무나 철저하고 상당히 합리적이어서, 이제부터 누구도 그의 논거들에 훨씬 신중한 연구를 기울이지않고는 이 문제를 다룰 수 없을 것이다.”(F.F. Bruce, The NewTestament Documents, p. 20).
넷째, 완성된 성경 정경은 제 2세기에도 인정되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신약 정경이 393년 히포 공의회(Council of Hippo)에서 비로소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은전적으로 거짓이다. 우리가 아는바에 따르면, 신약은 사도들의 사역동안에 형성되었고, 제 1세기 교회들에 의해서 신약으로 인정되었다.제 2세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신약의 완성된 정경으로 인정하였고, 사도들의 기록들을 구약과 동등한 권위의 성경으로 받아들였다. 일례로, 이레니우스(125-192)는 현존하는 그의 논문들에서 신약 여러 권에서 1,800개의 인용문들을 발췌하였고, 그것들을 “얼마동안, 의문의 여지가 없는 권위로 인정받아왔다고 암시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였다.(Miller, General Biblical Introduction, p.140). 이레니우스는 4복음서와 오직 4권만을 성경으로 인정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217)은 4복음서와 대부분의 다른 신약 서신들을 인정하고 인용하였으며, 그것들을 “신성한 성경”이라고 불렀다. 터툴리안(150-220)은 7,200개의 인용구절을 신약 성경으로부터 발췌하였고, 그것들을성경으로 인정하였다. 제2세기에 만들어진, 라틴 이탈라(Itala), 역본은 “현재 신약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책들을 포함시켰다. (Hentz,History of the Lutheran Version, p.59). 제 2세기 후반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약성경의 목록은 1740년 이태리 밀라노, 암브로시아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이 2세기 목록은 신약 정경의 모든 책들을 포함하고 있다(Ibid., p.60).
다음의 뛰어난 주석은 19세기의 H.L. Hastings의 Anti-Infidel Library에서 인용한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오늘날의 수천의 불신자들은 실제로, 몇몇 의결수, 또는 술수 또는 기만에 의해 니케아 공의회가 성경의 정경을 확립시켰고, 진실한 것들과 그들이 소위 '그럴듯한 복음서들'이라 부르는 것들을 분별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일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어떠한 권위나 근거로도, 그러한 일은 어떠한 공의회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마을 위원회의 표결이 한 국가나 나라의 법률들을 결정할 수 없는 것처럼, 더더욱 공의회의 표결들이 신약의 정경을 결정할 수 없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읽고, 믿고, 인용하는 것과 같은 성서를 읽고 믿고 인용하였으며, 동일한 방법으로 우리는 그것을 믿고 인용한다. 그리고 공의회들이 그 주제를 쓸데없이 다루기 이전 몇 세대전에 그들은 이렇게 하였다. 그리고 이 사실들의 증거들은 풍부하고 반박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문제를 연구하기위한 기관들은 넘치고, 쉽게 어느 지적인 학생들이라도 접근할 수 있다. 에딘버러의, T. 클락에 의해 출판된, the Ante-Nicene Library는 8절판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권평균 약 500페이지 된다. 이 8절판 12,000페이지 출판물에는, 니케아 공의회가 소집될 때인, AD325년 이전에 살았던 가장 저명한 기독교 저자들 중 대략 15-20여명의 현존하는 거의 모든 작품들이 실려있다. 그 중 한권은 또한 초기시대들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져왔던, 그러한 그럴듯한, 비정경적이고 허구적인 복음서들과 행전들에 대한 잔존기록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12,000 페이지에서, 그 모든 권들은 구해서 볼 수 있는 것들로서, 비교해볼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자들에 의해서 원본들과 비교될 수 있도록, 영어로 된 번역문에서 회의론자들은 신약 성경들의 기원에 관한 문제와 관련된 불가항력적으로 많은 증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저자들은, 그들 중 몇몇은 사도들과 동시대인들이었고, 다른자들은 그들의 바로 계승자들로서 그들의 교우들과 동시대인들과 아주 친밀한 자들이었는데, 자신들의 저술들에서 그들이 받았던 신약책들에 관하여 그리고 신뢰하던 그 책들에 대한 자신들의 존중에 관한 가장 긍정적이고 실수가 없는 증거들을 보여준다. 오늘날 모든 교회 모임들에서 인용되고 읽혀지는 것과 같은 성경의 페이지들과 구절들을 그들은 인용한다. 그들은 우리가 인용하는 성경책들을 인용한다. 그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인용하듯이 그것들을 인용한다. 그들은우리가 그것들을 받아들이듯 그것들을 받아들였고, 이는 니케아 공의회 또는 다른 여느 공의회가 성경의 정경에 관한 어떠한 논의를 하기오래 전이었다.
AD155년 또는 156년에 순교했던, 폴리갑은 86년간 예수님을 위해 사역하였다. 그는 자신의 오랜 신앙생활 중 약 30년 동안 사도 요한과 동시대를 보냈는데, 그는 요한의 제자였다. 그는 빌립보로 보내는 자기의 서신에서 신약으로부터 거의 40 구절을 인용했다. 그리고 AD140년경 또는 사도 요한의 죽음 이후 약 40년 이후에 편지를 보낸 순교자 져스틴은 거듭거듭 우리가 현재 신약에서 읽고 있는 같은 말씀들을 인용하고 있다. AD178년 이레니우스의 기록에서, AD194년의 클레멘트의 기록에서, AD200년 터툴리안의 기록에서, 그리고AD230년의 오리겐의 기록에서 신약으로부터 8,723 인용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거기에는 우리가 정경으로 인정하는 모든 책들이 포함되어 있다.
Demonstration of the Truth of the Christian Religion책 6장에서, Keith 박사는 신약으로부터 다수의 인용문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여전히 현존하는 작품들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으로서, 그 작가들을 우리는 열거했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요한 3서, 유다서를 제외한 신약의 모든 책으로부터, 이레니우스에 의해 767구절이 인용되었다. 야고보서와 요한2,3서, 유다서를 제외한 모든 책으로부터 클레멘트는 389구절이 인용되었다. 야고보서, 요한3서, 베드로후서, 유다서를 제외한 신약의 모든 책에서 터툴리안은 1802구절을 인용하였고, 반복구절들까지 포함된다면, 3000구절이 넘는다.반면에 현존하는 오리겐의 저서들은 5765개의 인용 구문들이 신약에 포함된 모든 책으로부터 발췌되었다.
우리가 명명한 이 저자들은 니케아공의회 이전에 기록했던 저자들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신약 성경의 신뢰성에 관한 문제들을 영원히 종식시키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다음을 알 수 있다. 즉 만일 니케아 공의회가 소집된 그 당시에 우리의 신약에 포함된 모든 기록들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면, 신약 성경에 들어있는 모든 사실과 진술들뿐만 아니라, 또한 현재 신약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문장들은 니케아 공의회가 소집되기 오래 전에 생존하면서 신약성경을 진리이자 권위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인용하였던 사람들의 현존하는 기록들로부터 발견되지 않았어야 했다. 그리고 만일 현재 분실된수많은 그 당시의 다른 기독교인들의 기록들을 찾을 수 있다면, 그안에 인용된 성구의 숫자는 의심할 바 없이 대단히 증가할 것이다.
우리는 이 주제에 관련된 몇몇 사실들만을 간략하게 일괄해 보았으며, 그것은 신약에 포함된 서신들의 권위성과 고전성을 제시해주며, 그것들이 사도 시대에 존재했었음과 신뢰할 만하고 권위 있는 기록으로서 사도들의 손들로부터 교회에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H.L. Hastings, Anti-Infidel Library).
이렇게 완성된 헬라어 신약 성경은 성령님의 인도하심 아래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회전되어 읽혀지고 받아들여졌다. 오늘날 이 초기 세기에 대한 글을 쓰는 성경학자들 중 다수가 부인하거나 전적으로 간과하는 점은 신약의 정경성과 영감 받음에 있어서 성령님의 사역이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기록을 적기 위해 자신들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았으며, 초대 교인들도 자기 지혜에 의지하여 그 기록들을 성경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다. 신약 성경의 말씀들은 성령님의 영감을 통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이고, 주님의 양들은 거짓 목자들로부터 그분의 음성을 구별할 수 있고, 그들의 선한 목자들의 음성을 알 수 있다(요10:4,5,27).
다섯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전을 따르도록 권고하는 구절들은 사도들에 의해 주어진 영감받은 전통들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이후에 따르는 사람들의 영감받지 아니한 유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유전은 신약에서 두 방법으로 사용된다. 첫째는 그것은 영감에 의해 주어진 사도들의 가르침을 의미한다(살후2:15,3:6). 교회들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진 대로, 이 전통에 순종해야 한다. 둘째, 유전은 종교적 선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고자 하는 영감받지 않은 교리들을 의미하며, 그들은 그것에 따라서 인간의 생활을 종속하고자 한다(마15:1-6; 막7:9-13; 골2:8). 이러한 의미에서의, 전통은 실제로 비난받는다.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들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였으니라 하시니라”(마15:9)
"너희는 물려받은 너희 유전을 핑계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시키고 있고 또 그와 같은 많은 일들을 너희가 행하느니라 하시니라”(막7:13)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유전을 따르고 세상의 초등원리를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라”(골2:8)
우리는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 그분이 우리에게 완성된 계시를주셨기에, 성경을 초월하는 예언들, 환상들, 음성들, 방언들 또는 유전들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우리는 교회들이 신앙과 행실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는다.
예언된 배도.
신약의 예언은 교회시대 전체에 걸쳐 평행하게 활동하는 “기독교정신”의 두 가지 분리된 흐름을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그것은 진실한 사도적인 교회들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것에 대해 지옥의 문들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것들은 박해받고, 미움받고, 경시받으나, 그것들은 예수님 오실 때까지 세대를 이어서 존속할 것이다. 주 예수님은 그분의 신실한 자들에게 약속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은 무엇이든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느니라”(마28:20). 둘째, 배도한 교회들이 있을 것인데, 그것들은 증가할 것이고 세대가 흘러가면 갈수록 악하고 더 악하게 될 것이다(살후2:3, 딤전4:1-3; 딤후3:13;4:3-4; 마24:4,5,11,24; 벧후2:1-22; 요일4:1-6; 유4-19; 계17:1-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도록 주의하라...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속이리라...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할 수만 있다면 그 택하신 자들까지도 미혹하리라”(마24: 4,11,24)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행 20:29,30)
“아무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를 받는 모든 것 위에 자신을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그가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내가 이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그로 하여금 자기 때에 나타나게 하려고 제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너희가 아나니 이는 불법의 신비가 이미 활동하고 있음이라 오직 지금은 막는 자가 있어 그가 길에서 옮겨질 때까지 그를 막을 것이요 그리고 나서 저 사악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님께서 자기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하시고 그분께서 오실 때의 그 광채로 그를 멸하시리라”(살후2:3-8)
((적리스도의 '적' anti- 1)대리, 2)적.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역사적으로 교황권이 유일하다))
“이제 성령님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으로부터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에 귀를 기울이리라 하셨으니 그들 자신의 양심이 화인 맞음으로 마비되어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리라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삼가라 명령할 것이나 음식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니 진리를 믿고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4:1-3)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갈수록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딤후3:13)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귀가 가려워 그들 자신의 정욕을 쫓아 선생들을 많이 두리라 또한 그들은 진리로부터 그들의 귀를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들을 따르리라”(딤후4:3-4)
“그러나 백성 중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받을 이단들을 은밀히 들여와 심지어 자기들을 사신 주님을 부인하기까지 하고 신속한 파멸을 재촉하는 자들이니라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파멸의 길들을 따르리니 그들로 인하여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을 것이라 또한 탐욕으로 인해 그들은 거짓된 말들을 가지고 너희에게서 이득을 취하리니 이제 그들에 대한 심판은 옛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졸지 아니하느니라”(벧후2:1-3)
“사랑받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들어왔음이라”(요일4:1)
“사랑받는 자들아 함께 나누어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글을 쓰려는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주신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써서 너희를 권면해야할 필요을 느꼈나니 이는 몰래 들어온 어떤 자들이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정죄를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들이요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이라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방종으로 바꾸어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니라”(유3-4)
“또 일곱 대접들을 가진 일곱 천사들 중 하나가 와서 내게 이야기하며 내게 말하기를 이리로 오라 내가 많은 물들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여주리라 땅의 왕들이 그녀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의 거주자들도 그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도다 하고 그가 나를 영 안에서 광야로 이끌어 가니라 또 내가 보니 한 여자가 주홍색 짐승위에 앉아 있는데 그 짐승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고 일곱 머리들과 열 뿔들을 가졌더라 그 여자는 자주색과 주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들과 진주들로 장식하고 그녀의 손에는 금 잔을 가졌는데그 잔은 가증한 것들과 그녀의 음행으로 인한 더러운 것들로 가득하니라 그녀의 이마 위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니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창녀들의 어미라 그리고 땅의 가증한 것들이라 하였더라 또 내가보니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으므로 내가 이 여자를 보고 이상하게 여기며 내가 크게 놀라니”(계17:1-6)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들은 현재의 “교회 시대"의 과정들을 묘사하며, 그것들은 배도의 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배도(apostasy)”는 진실한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말한다.] 누룩의 비유는, 일례로, 한 여자가 밀가루 세 말에 누룩을 넣어, “전체가 누룩에 퍼지게 하였다.” 성경에서 누룩은 죄와 오류를 상징한다(고전5:6; 갈5:9). 따라서 이 비유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는, 심지어 사도들의 날 동안에 거짓 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그 오류가, 전체 종교에 누룩이 퍼질 때까지, 점진적으로 세대를 거듭하여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의 최종적인 성취는 계시록 17장에 드러나 있다.
배도는 사도들의 생존 기간에 시작되었고, 지속적으로 세대를 통하여 증진되어왔다. 요한은 기록한다. “어린 자녀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 함을 너희가 들은 바와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일어났나니 이로써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을 아느니라”(요일2:18), 미래에 한 적그리스도, 단수가 있을 것이라고 요한은 가르쳤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복수의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선행된다. 우리는 적그리스도, 단일한 자는 다니엘 9-11장, 마태복음 24장15절, 데살로니가후서 2장 3-12절, 그리고 요한계시록 13장에 묘사된 종말까지 왕국을 통치할 죄의 사람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적그리스도들, 다수자들은 사탄적 속임수와 인간이 만든 유전을 위하여 사도시대의 진리를 거부하는 모든 자들을 말한다. 따라서 그 “적그리스도”는 한 사람이자 한 시스템 모두에 해당된다. 그것은 한 사람이자 많은 자들이다. 역사 전체에서 교황들은 적그리스도와 동일시된다는 의미는 후자의 의미이다.
동일한 진리를 가르치는 또다른 구절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7-8절이다. “이는 불법의 신비가 이미 활동하고 있음이라 오직 지금은 막는 자가 있어 그가 길에서 옮겨질 때까지 그를 막을 것이요 그리고 나서 저 사악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님께서 자기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하시고 그분께서 오실 때의 그 광채로 그를 멸하시리라” 사도 시대에 “불법의 신비"는 이미 일하고 있었고, 그것은 단 기간 동안 이 세상의 왕좌를 차지하게 될, 죄의 사람, 사악한 한 사람, 적그리스도의 등장으로 절정을 이룰 것이다. 우리는 이 절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직전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배운다. 왜냐하면 사악한 그자는 “예수님의 오실 때의 그 광채로”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불법의 신비”는 마귀의 프로그램이며, 그에 따라서 마귀는 독보리와 배도를 뿌림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부패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계시록 17장에서 “비밀, 큰 바벨론"과 연합한다.
성취된 배도.
우리가 보았듯이, 믿음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은 사도들의 생존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들은 거짓 선생들에 의해 부추겨졌다. 사도서신들 중 대부분은 오류를 바로 잡고 없애기 위해 씌어졌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써야했다. “너희를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그분을 이렇게 속히 떠나 너희가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음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갈1:6).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인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려 못박히신 것이 너희 중에서 너희의 눈앞에 밝히 보이셨는데 누가 너희를 미혹하여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였느냐”(갈3:1).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게, 바울은 그들이 사탄의 책략 아래 일하는 거짓 선생들에 의해 잘못 인도되는 위험에 처해있음을 알고 있다고 편지를 써야했다. “그러나 뱀이 그의 간계로 이브를 속인 것같이 너희의 생각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변질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와서 우리가 선포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선포하거나 혹은 만일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또는 너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그를 잘 용납하는도다...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들이요. 속이는 일꾼들이요.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 그러므로 사탄의 사역자들이 의의 사역자들로 가장한다 하여도 결코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3, 4,13-15).
최초의 세기에 이미 그러한 배도의 씨앗들이 존재했으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로마 카톨릭주의와 동방 정교회의 형성으로 꽃피울 것이었다.
(1) 어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처음 사랑을 버렸는데, 그것은 배도로 향하는 첫 걸음이었다(계2: 4, 5).
(2)어떤 이들은 우상숭배와 연합되었다(고전10:14-21; 요일5:21).(3)어떤 이들은 성경 진리들을 영적 의의로 해석하였다(딤후 2:17-18).
(4) 어떤 이들은 교회들에서 불법적인 권위들을 행사하고자 했는데, 이는 성직 교계제도를 향한 첫걸음이었다(요3 9-10; 계2:6, 15).(5) 어떤 이들은 율법과 은혜, 믿음과 행위를 혼합시킴으로써 복음을 변질시켰다(갈1장; 딤전1:3-11).
(6)어떤 이들은 금욕주의를 실천했다(골2:4, 8, 20-23).
사도 시대의 끝 무렵 몇몇 교회들은 이미 깊이 부패되었다. 계시록에 기술된 일곱 교회들 중, 세 교회는 심각하게 오류의 영향을 받고 있었고, 또 다른 교회는 거의 전적으로 배도했다.
다음 몇 세기동안에, 이러한 초기의 오류의 씨앗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였고,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정교 교회들의 성립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초대 교회들의 역사와 카톨릭의 형성을 깊이 연구하는 것이 이 책에서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이에 관한 정보는 많은 일반교회 역사들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도시대 교회들을 특징짓는 일곱 가지 충분성에 대해 부인하는 교리를 살펴봄으로써 간략하게 이 배도를 설명하겠다.
그리스도의 충분성을 부정함.
배도한 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한 충분성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충분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인간들 사이에 모든 다른 종류의 연결시키는 중보자들을 추가하고 있다. 그 교회 자체가 신성한 은혜의 집행자가 되어, 그리스도와 사람들 사이에 서있다. 특별한 계급의 “성인들이 만들어졌고, 그들에게 하는 기도들이 드려졌고,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어졌다. 마리아는 속죄 사역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것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죄없는 하늘 여황으로 숭배받는다. 그녀에게 하나님의 어머니와 영원한 처녀라는 칭호들이 주어졌다. 그녀에게 기도들이 드려졌다. 기적들이 그녀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믿어졌다. 배도교회들은 또한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충분성에 만족하지 못한다. 특별한 성직계급이 백성들에게 성례를 베풀고 희생들을 드리기 위해 특별히 생겨났다. 배도교회들은 또한 머리로서의 그리스도의 충분성에 만족하지 못한다. 교황과 다른 종교적 직책들에게 그 교회들 위에 위치한 머리로서의 지위가 주어졌다.
은혜의 충분성을 부정함.
배도 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값없이, 공로 없이 얻는 은혜로서의 은혜의 성경적 정의를 변경시켜서, 행위들과 성례들을 혼합시켰다. 은혜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얻어진 것이고, 성체들을 통해서 베풀어지도록 그 “교회”에 주어진 것으로 믿는다. 배도 교회들이 “오직 은혜로 얻은 구원”을 가르쳤을 때, 그들은 한 죄인이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에게 나아갈 수 있고, 죄들의 완전한 사함과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은 한 죄인이 “거룩한 어머니 교회”를 믿고, 성례에 참여함으로써 “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세는 그것의 근본적인 상징적 의미로부터 왜곡되어서, 은혜의 실질적인 수단들이 되어 그 영세를 통해서 참여자들은 영적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대속의 충분성을 부정함.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의 충분성이 미사로 인해서 부인되었다. 배도교회들은 주님의 만찬을 간단한 기념 식사에서 정교한 신비적 의식으로 왜곡시켰으며, 그것을 통해 그 요소들은 실질적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고, 그분은 각각의 미사마다 새롭게 희생되어졌다. 대속사역의 충분성은 또한 연옥에 의해 부인되었는데, 연옥은 보상에 따른 죄 씻음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전에 죄가 씻겨지게 되는 장소를 연옥이라고 믿는다. 이는 인간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 보혈로 완전히 씻어졌다는 것에 대한 대단히 뻔뻔스러운 부인이다.
성령님의 충분성을 부정함.
배도 교회들은 성령의 감동에 의해 교리를 분별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권리를 부인했다. 대신에 사람들은 그들이 신비한 성직제도의 사역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가르쳐졌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그들은 모국어로 된 성경을 읽는 것이 금지되었다.
사도들의 충분성을 부정함.
배도 교회들은 사도적인 연속성을 주장했으며, 그에 따라서 사도들의 권위가 카톨릭 성직체계로 흘러왔다고 주장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 교황들이 사도 베드로의 후예들이라고 주장했으며, 마태복음 16장 19절에 기술된 열쇠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열쇠들은 지상에서 영적인 권위를 상징화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진실로 교회가 세워진 반석은 베드로 자신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주 약한 기초임에 틀림없다!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고전10:4; 벧전2:6). 교회가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다고(고전3:11; 엡2:20)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16:18절에서 말씀하신 그 반석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것은 베드로가 16절에서 고백했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믿음이 또한 열쇠이다.
교회의 충분성을 부정함.
교회들은 종교적 교계제도들을 형성시켰는데, 그것은 교회들 위에 예수님 홀로 머리되심을 침해하는 것이었다. 신약 교회의 자율성이 유명무실해졌다. 많은 비성경적인 종교적 지위들과 명칭들이 만들어졌다. 대주교들, 수석대주교들, 고위성직자들, 수사들, 주교들, 총대주교들, 교황들. 세속적이거나 거듭나지 못한 교회 지도자들은 그들 소유의 모임들을 통치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의 영향권을 넓히길 원했다. 황제의 명령들의 도움으로, 그들은 연합하였고 관구들을 만들었다. 그들은 다른 교회들이 그들의 권위에 복종하기를 요구했다. 그들은 공의회를 열었고 교리들과 결정들을 만들어 그것으로 모든 교회들을 결속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권리침해에 반대하는 자들과 유일하게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아래서 자신들의 하나님 주신 자율성을 단호히 유지하려는 자들은 이단자들로, 불화를 일으키는 폭도들로 구분되었다. 다음 발췌문은 이 권리침해의 놀라운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제 4세기 경에 콘스탄틴 하에서 그 제국은 4개의 현으로 나뉘어졌고, 이 현들은 관구로, 그리고 관구들은 교구로 구분되었다. 한 인간의 그 교회에 대한 정책에 따라 강제된, 그 새로운 구획정리는 날마다 더욱더 뚜렷해졌고, 그 성직자들 사이에서 계급의 분화도 이루어졌다. 주교 위에 주교가 일어났다... 한 교구에 속한 주도(主都)는 그 주교에게, 수석주교와 같은, 수도대주교의 호칭을 주었다. 한 관구의 수도대주교 관하 도시는 총주교 대리의 지위를 그 목자에게 부여하였다. 그 총주교 대리 위에 4명의 주석 또는 총대주교들을 두었다. 그 질서는 최초로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확고하게 인정받았다. 그 당시에는 오직 이러한 고위의 고관이 3명만 존재했음을 알게 된다. 로마, 안티옥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들. 그러나 4번째가 이제 추가되었다...콘스탄티노플...
계급의 분화는 필연적으로 사법권과 권력의 분화로 이어졌다. 첫 번째는 주교였는데, 그는 그의 교구에서 권위를 행사하였는데, 그에게 그의 회중에 속한 개별적 회원들이 맡겨졌다. 다음은 수도대주교로서, 그는 관구의 종교적 사건들을 관할하며, 모든 그 주교들을 감독하였고, 주교회의로 그들을 소집하였으며, 그들의 보좌를 받아서 그의 사법권 권한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민감한 종교 문제들을 경청하고 결정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관구 내에서 주교들을 서품하는데 필수적인 그의 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으로 총대주교 또는 총주교 대리로서, 그들은 그 교구의 수도대주교들에 대한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교구 회의를 소집하여 그 교구내의 카톨릭 교회의 복지에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조율하고 평결하였다. ... 적절한 시기에 대 총대주교가 생겼다. 총대주교들의 왕좌는 로마였다. ...
378년에 그래티안과 발렌티니안 2세의 법령이 발효되어, 수도대주교에게 하부 성직자들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고, 로마의주교(다마수스 교황)에게는 친히 또는 대리를 통해서든, 수도대주교들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수도대주교 재판에 대한 상소가 로마 주교에게 상달될 수 있었으나, 교황청의 심판에 대해서는상소할 수 없었다. 그의 선고는 마지막 확정이었다. 이 법령은 골 지역과 이태리 지역의 지목구 담당자들에게 하달되었고, 따라서 그것은 모든 서방 제국에서 유효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지목구는 서부 일리리쿰과 아프리카 뿐아니라 이태리에 이르기까지 사법권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 주교는 모든 서방 성직자들에 대한 법적인 사법권을 획득하였다. 주교들이 논란이 되는 사건들을 교황에게 제출하였을 경우, 바람직한 조언을 전달하는 그의 편지들이 교령서한이라 불려졌다. 그리고 이러한 교령집에 로마 종교법학자들은 이후로 성령과 같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
종교적 최고권이 등장하게 된 또 다른 뚜렷한 시간적 배경은 445년이다. 그해에 발렌티니안 3세와 데오도시우스 2세의 기념비적 칙령이 내려졌다. 거기서 로마 교황은 “모든 기독교국의 관리자”로 호칭되었고, 주교들과 일반적인 성직자들은 자기들의 통치자로서 그에게 복종할 것이 명령되었다. 그 칙령은 교황 레오[대제] 의 청원으로 반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 데오도시우스의 칙령으로부터 한.세기 정도 지난 후, 교황에게 보내는 져스티니안의 축하편지가 작성되었는데, 거기에서 그 황제는 이전에 칙령들이 로마의 주교에게 부여하였던 특권을 더욱더 강화하였다.
져스티니안 법전의 편찬과 동시에, 베네딕토 수도회가 출범하였다. 한 세기가 흐르는 동안, 베네딕토회 수사들은 서방으로 널리 세력을 확장시켜가며, 서방에서 로마 교황청에 대한 절대적 복종 교리를 포교하였다. 보니파체 3세를 임명시키는, 606년 포카스 황제의 칙령으로 마침내 종지부가 찍혀졌다. 이것이 로마의 주교를 “하느님의 선민들에 대한 왕”으로 삼으려는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일련의 칙령들 중 마지막이었다. ...
제 5세기 중반에, 우리는 교황청의 근간을 이루는 교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 교회가 베드로 위에 설립되었고, 교황들은 그의 대리자들이라는 교리로서, 칼케돈 공의회 중반에 교황청 특사에 의해 선언되었고, 디오스코루스 사건에 대한 재판에 참석 중이던 신부들의 침묵으로 사실상 인가되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서 그 특사는 말했다, ‘레오, 구 로마의 대주교는 우리들과 종교회의에 의해서, 그 교회의 반석이고 근간이며, 믿음의 토대인 성 베드로의 권위로 그(디오스코루스)를 그의 감독의 직위에서 면직시키는 바이다.'그 교황의 편지 봉독 이후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베드로가 레오 안에서 말씀하신다. 레오의 계승자, 힐라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그 왕국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는 베드로의 대리자' 명칭이 적용되었다. ...
이렇게 우리는 초창기 그 생성에서부터 6세기경 그 공식적, 부분적 발전을 이루기까지, 교황청의 역사를 훑어보았다(J.A. Wylie, The Papacy, Chapter II. "Rise and Progress of Ecclesiastical Supremacy."1888, pp.17-38).
성경의 충분성을 부정함.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을 공공연히 비난하거나 그것이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카톨릭 유전과 성례주의와 사제기능으로 성경을 가려왔다. 카톨릭 교회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자리잡은 채, 하나님의 말씀의 유일한 집행자이자 해석자로 자처했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하신 말씀으로서 성경의 충분성과 권위는 로마의 교리들을 믿는 자들의 마음 안에서 무력한 것이 되어왔다.
우리가 이후의 역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16세기의 트렌트 공의회가 다음을 주창했다는 것이다.
(1) 카톨릭 유전이 성경과 권위 면에서 동등하다,
(2) 외경서들이 성경의 정경서들과 동등하다,
(3) 누구도 카톨릭 교회의 교리와 상반되는 성경을 해석할 권리가 없다.
트렌트 공의회의 결론에서 발표된, 비오 ㅂㅂㅂ4세의 신조는 “거룩한 어머니 교회가 신봉해왔고, 신봉하는 의미에 한해서, 나 역시 신성한 성경을 인정한다. 성경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해석을 결정하는 것은 그 교회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교부들의 만장일치의 동의에 따라서만 그것들을 받아들이거나 해석할 것이다”(Elliott, Delineation of Roman Catholicism, p.6). 물론 트렌트공의회는 단순히 수백 년 동안 로마에 의해 가르쳐졌던 배도교리들을 새롭게 고쳐 말했을 뿐이다. 그 결과는 명백하다. 성경의 권위는 효과적으로 파괴되었다. “실제로, 카톨릭교도들은 결코 확실한 규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성경으로부터 유전으로 돌이킬 수 있고, 유전으로부터 신부들에게로 돌이킬 수 있다. 이것들이 그들과 상충될 때, 그들은 공의회로 날아갈 수 있다. 그리고 공의회가 그것들을 저주할 때, 그들은 교황에게 의뢰할 수 있다. 이렇게 로마주의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기본이 정해져있지 않다. ..."(Elliott, p.17).
사도 교리를 부인함으로써 형성된 배도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도 아니라는 점과, 그렇게 묘사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강조해야한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1세기의 이단들을 언급하면서, 요한은 말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빠져나갔으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주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빠져나간 것은 그들이 우리 모두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보여준 것이니라”(요일2:19). 사도들의 진리를 거절하는 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 강조되어야할 것은, 모든 교회들이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2세기부터 6세기에, 로마 카톨릭 교회가 형성되는 동안, 사도들의 신앙을 충실하게 유지하고자 했던 교회들이 있었다. 이는 이후로 모든 세기동안 변함없었다. 배도자들은 이 다른 교회들을 파괴시키고자 노력했으나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의 교회를 파괴시키기 위해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파괴시켜야했기 때문이다(마16:18, 28:20).
그들의 권위에 대한 거짓 주장들과 함께 거짓 교회들의 등장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거부했던 자들에 반대하는 박해가 왔다. 이 박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해 예언되어 있던 것이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마치 양들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들같이 지혜롭고 비둘기들같이 순결하라 그러나 사람들을 조심하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또 자기회당들에서 너희를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인하여 총독들과 왕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대적하는 증거가 되기 위함이라....또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음에 내어주며 또 자식들이 자기 부모를 대적하여 일어나 부모를 죽게 하리라 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16-18,21-22).
"내가 땅 위에 평안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주러 왔노라 이제부터는 한 집 안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열하되 셋은 둘을 대적하고 둘은 셋을 대적하리라 아버지는 아들과 대적하고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과 딸은 어머니와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그리고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대적하여 분열하리라 하시니라”(눅12:51-53).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하나니 만일 누구든지 이 말씀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안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또 만일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제거해 버리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또 이 책 안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제거해버리시리라”(계22: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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