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유정 산문 <책 읽기> 25 03 20
2024년 12월 말까지 읽던 신문을 중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날 책상 밑으로 들어가 보니 책꽂이 아래쪽에 보이는 책이 읽지 않은 책이다. 한두 권이 아니다. 신문을 구독하니 책 읽을 시간이 적어 못 읽은 책이 그대로 꽂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2025년 새해는 『책 읽는 해』로 정했다. 열심히 읽으면 일주일에 1권, 잘하면 연 50권 이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못 읽은 책을 다 읽으려면 10년은 걸릴 것으로 보았다는 이야기.
독서계획을 세우려면 읽지 않은 책을 고르고 옮겨놓고 하자니 그것도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냥 보이는 대로 빼보고 읽은 책은 책 위쪽에 ○ 동그라미 표시를 하기로 하였다. 다만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두꺼운 책을 먼저 읽자는 생각으로 10권을 우선 뽑아놓았다. 고영성·신영준의 <완벽한 공부법>, 앨빈 토플러의 <권력 이동> <부의 미래> <제 3의 물결>, 싸르트르의 <존재와 무>,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제드 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 데이비드 브룩스의 <소셜 애니멀>, 서울공대 교수들의 <축적의 시간>까지이다.
두꺼운 책 중에 E.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그림이 많고 또 일부는 원판만큼 크게 나와 있어 실물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말 잘 만들어진 책이다. 두고두고 보며 참고할 만하다. 그 다음으로 읽을 책은 임희완의 <서양사의 이해> 조디 피콜트의 <마이시스터즈 키퍼 쌍둥이 별>, 캐미 가르시아와 마거릿 스톨의 <뷰티풀 크리처스> 등등이 있다. 언젠가는 읽겠지만, 두고 보자.
3월도 다 지나간다. 지금 읽는 책을 끝내면 10권 읽었다. 우선 고영성, 신영준의 <완벽한 공부법>부터 먼저 읽어야겠다.
2025년 우선 독서 목록
| 저 자 | 책 이름 |
| 저 자 | 책 이름 |
1 | 고영성 신영준 | 완벽한 공부법 | 6 | 에밀리 브론테 | 폭풍의 언덕 |
2 | 앨빈 토플러 | 부의 미래 | 7 | 제드 러벤펠드 | 살인의 해석 |
3 | 앨빈 토플러 | 제 3의 물결 | 8 | 앨빈 토플러 | 권력 이동 |
4 | 싸르트르 | 존재와 무 | 9 | 데이비드 브룩스 | 소셜 애니멀 |
5 | 루트번스타인 | 생각의 탄생 | 10 | 서울공대 교수들 | 축적의 시간 |
<그럼. 왜 나는 책을 읽으려고 애쓰는가?>라는 명제가 떠올랐다. 나를 알기 위해서다. 그럼, 책을 읽지 말고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는가?>, 맞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모르면 비교 연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사는 방법을 알려면 마주 앉아, 서로 이야기를 하며 묻고 대답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의 생각을 담은 글을 읽어야겠다고 생각된 것이다.
제일 먼저 떠오른 분은 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 김형석 님이시다. 그래서 김 교수님 책을 여러 권 읽었고, 그리고 교수님 생활대로 내가 따라 하는 것이다. 말이 그렇지 얼마나 내가 따라 할 수 있겠는가, 느낌대로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 저 사람 따라 하려고 하는 것이 내 삶이 되고 만 것이다.
내가 시를 소개하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 한다. 맞다. 나도 모르고 올리는 것이 많다. 모르니까 나도 찾아본다. 그의 시 해설집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래도 안 풀리는 시는 혼자 생각을 많이 하지만 생각할 때뿐이고 결국 무슨 말인지 모른 채 넘어가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다. 제일 어려운 시는 기형도 시인이다.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 이해할 수 없는 시가 여럿 나온다. 오늘은 긍정적인 시, 읽기 편한 시와 함께 3편을 소개합니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늙은 사람 기형도
그는 쉽게 들켜버린다
무슨 딱딱한 덩어리처럼
달아날 수 없는,
공원 등나무 그늘 속에 웅크린
그는 앉아 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용하는 자세로
나의 얼굴, 벌어진 어깨, 탄탄한 근육을 조용히 핥는
그의 탐욕스런 눈빛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내가 아직 한 번도 가 본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 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 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갑자기 나는 그를 쳐다본다. 같은 순간 그는 간신히
등나무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여전히 입을 벌린 체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의 육체 속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 무엇이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입속의 검은 잎 기형도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떠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기형도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정외과 졸업.
1984년 중앙일보사 입사, 정치부· 편집부· 등에서 근무.
1985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 시 「안개」가 당선 입단.
그는 이후 독창적이며 강한 개성의 시들을 발표했으나
1989년 29살 아까운 나이에 타계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이 시집에서 기형도 시인은 일상 속에 내재하는 폭압과 공포의 심리 구조를 추억의 형식을 통해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로테스크 현실주의 명명될 그의 시 세계는 우울한 유년 시절과 부조리한 체험의 기억들을 기이하면서도 따뜻하며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시 공간 속에 펼쳐 보인다.
유정 생각 : 내가 읽어보기에도 어려운 시들이 많습니다. 그럼 어쩌겠습니까, 그저 읽고 또 읽으며 생각하고 또 상상하며 그를 추적하려고 할 뿐입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이야기라고 하고 싶지만, 세상에 스물아홉 살의 기형도는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첫댓글 정민형, 우리나이에 대단한 독서량 이네요. 그 열정이 존경스럽습니다. 정민형이 올려주는 독후감이 제겐 피가되고 살이됩니다. 고맙습니다. 지난번에 올려준 '웰컴투 마이 글로벌 하우스'를 구입해서(품절돼서 중고로 구입) 이제 고1이된 손녀에게 읽으라고 보내줬습니다. 좀 엉뚱발랄하고 글로벌한 마인드의 작가에게서 배울점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우와, 드디어 책을 구해서 손녀에게까지 보냈다고요! 정말 글로벌하신 생각이십니다! 책이 그렇게 마음을 울리고 전해지는군요!
고맙고 근사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