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장에서는 여호와가 말씀한다. 유다 백성을 불러서 서로 변론하자고 한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된다고 했다. 예수님의 보혈이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한다. 유다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징계하시고 바벨론에서 새롭게 신앙을 만든 후에 예루살렘으로 회복시켜 주신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사 1:18-31)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여호와의 초청이시다. 그 초청의 상대자는 죄인들이다. 초청의 제목은 상의하자고, 죄의 문제를 의논하자고, 이것이 기독교인 것이다. 죄의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늘 초청을 발하신다. 하나님의 일이 오늘도 이 일이요, 우리의 순응할 일도 이 일이다. 다른 문제는 다음이요 우선적으로 논할 문제는 죄의 문제이다.
초청하시면서 이미 허락하여 주신 말씀이 있으니 이것이 복음이다. 허락된 사죄(赦罪), 칭의(稱義), 성성(成聖)의 성사를 예고하심이다. 죄가 비록 주홍 같다 함은 두 번 물드림과 같다는 말이니 거듭 지은 죄라고 하는 말이다. 진홍 같다 함은 피 빛을 말함이나 무슨 무서운 극악한 죄라도 하는 말이다. 범죄의 습관성이나 극악한 죄라도 하는 말이다. 눈과 같이는 의롭다 함을 받음이요, 양털과 같다 함은 거룩함을 입었다는 표이다. 눈은 대지를 덮음이니 주님의 대속이 나를 덮어 의롭다 함을 받게 하심이요, 양털 같이 희다 함은 거룩하게 됨을 말씀함으로 받을 것이다.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이상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복음을 받으면 이렇게 받을 말씀이다. 마음으로 달게 받음이 즐겨 순종함이다. 억지로 순종함은 굴종이니 이렇게 말고 단 마음으로 살면 “내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 30:16). 항상 전쟁을 겪느니만치 금년 농사한 것을 먹지 못한 때도 있었으나 순종할 때에 적의 침략도 없으므로 소산을 먹을 수 있으리라는 말이겠다.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위 말씀의 반대로 초청에 거절하면, 복음을 거절하면 하는 말씀이겠다. 칼에 삼키우리라 전쟁에 침략에 망하고 만다는 말씀이다. “열방 왕들의 손에 붙이사 칼에 죽으며”(스 9:7),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는 1:20, 본절과 40:5, 58:14, 세 번만 있는 말씀으로 이사야의 통일성의 증거가 되는 말씀이다.
[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성성에 대한, 신부에 대한 슬픈 노래의 표현이다. 신실한 성읍 예루살렘 또 신부가 정조를 꼭 지키더니 오늘은 정조를 잃고 말았다. 창기란 정조를 잃은 자를 가리킨다. 공평과 의리를 여기 말하였다. 예루살렘 하면 다윗 성이다. 그의 처세 그 자신의 처세를 생각케 한다. 만민이 다같이 이런 도의가 있었다.
남에게 대하여 공정하게 자신에게 대하여 편벽됨이 없이 의리란 의도, 남에게 자신에게 남에게는 관대하게 내게는 가혹하게 이것이 의로운 일이요, 의리있게 사는 일이겠다. 그러던 성성이 이제는 살인자뿐이란 범죄 한 후 살벌한 에덴 낙원 같음을 뜻한다. 골육상쟁도 다윗 때에도 있기도, 질투 시기도 다 살인자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요일 3:15),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22]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순 은이 못되고 술에 물이 섞였으니 순도가 아니다. 진짜가 아닌 가짜를 말하기도 가증한 바리새인 같은 의식을 표한다고 칼빈 선생도 본 것이다. 상술의 허위를 말함이기도 하다. 우리 복음의 순수성을 잃은 것은 더욱 이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만민의 생활상을 말함이기도 하다. “저희가 마시기를 다하고는 행음하기를 마지아니하며 그 방백들은 수치를 기뻐하느니라”(호 4:18).
[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도적을 다스릴 관리가 방백들이 도리어 그들과 한편이 되며 도적질한다. 그런 일이 오늘도 우리 주변에 들리고 있다. 뇌물이 성행한다. 반드시 사례 물을 바쳐야 일이 처리된다. 오늘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벌써 이스라엘에 그런 일이 있은 것을 통탄한 말씀이라고 보여진다. 예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의 부패상 패역상이 보인다. 역대하 24:17~22절에 패역상을 말하기도 하였다.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 군장과 재판장은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에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미 7:3). 모세의 명을 순종하지 않음이다. “너희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출 23:8). 고아와 과부에게서는 뇌물을 받을 수 없는 고로 그들의 일은 돌보지 않는다고(약 1:27)의 진정한 경건이 결여한 때문이다.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셨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실 때와 내게 적이 되실 때를 비교하면 이 말씀의 두려움을 알만하다. 불순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자기 적으로 삼는다는 말씀이다. 내 대적이라 함은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적으로 삼음을 말씀하심이다. 그가 보응하셔야 마음이 편하시다고 순종하지 않는 자를 원수 시 함도 말씀하신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망하게 하시며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 너희가 들어가 얻는 땅에서 뽑힐 것이요(신 28:63), ”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에게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시원하리라“(겔 5:13).
[25]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버리고.”
여호와의 손은 언제나 일하시는 손이다. 선민을 징계하는 손이기도, 선민을 구출하는 손이기도 하시다. 손이 쉬심은 방치하여 두심이다. 이제 방치하여 두지 않으시고 손이 동하신다. 순수한 물질을 얻으려면 용광로에 광석을 넣어 녹이 듯이 선민을 구출하는 손이기도 하시다.
“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철이나 납이나 상납이나 모아서 풀무 속에 넣고 불을 붙여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와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 두고 녹일 것이라”(겔 22:2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서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슥 13:7).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 3:3).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내게 혼잡물을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은사가 있을 때에 쉽지도 아니하나 지나면 깨끗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포로된 것 또 망한 것은 다 이를 상징한다.
[26]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다.
그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처음과 같이, 본래와 같이”는 범죄하기 전과 같이, 모세를 통하여 신정(神政)하시던 때와 같이로 볼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일이 포로로 귀환할 때를 가리킨 것이라고, 교회시대를 가리킨 것이라고, 재림시를 가리킨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사사나 모세는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이요, 왕정이 되기 전에 사사로 저희들을 치리한 바 있고, 왕정이 생긴 다음에 모사를 세워 왕을 보필하였다고 본다. 이들을 정직하게 하여 일으킨다로 볼 것이다. 이렇게 일으키시고 회복하신 후에라야 예루살렘이 의의 성읍이 되며 신실한 성읍이 된다. 재림 시에 교회의 위치를 가리키기도 하거니와 오늘 내 마음이 이에 도달하여야 할 것이다. 새 예루살렘의 단장으로 주님을 기다림을 가리킨다.
[27]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시온은 예루살렘 또는 오늘의 교회, 하나님의 선민을 말함이라고 받을 것이다. 공평과 의로 구원함을 받는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구원, 예정에 의한 구원, 선택에 의한 구원을 공평한 구원이라면 공평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의로는 심은 대로의 원리대로 우리의 본분인 회개의 본분을 가리킨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으로 높임을 받으시며”(사 5:1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심이니라”(롬 3:26).
[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다.”
“패역자”는 역천자 같은 자, 불효한 자 같은 자, “죄인”은 하는 말은, 여기선 택함을 받지 아니한 자, 믿지 아니한 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며, 여호와를 버린다는 말은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7). 여기 버린다 함은 그의 통치를 싫어함을 말씀한다. 자행자지를 말한다. 이런 자들은 멸망을 선언하신다.
[29]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나무를 중심해서 동산에서 우상을 섬기며 이방 신을 섬긴 일은 허다하였다. “너희가 상수리 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음욕을 피우며”(사 57:5),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사 65:3),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사 45:16). 수치나 부끄러움은 아담 하와를 연상하면 된다. 거기서 나뭇잎 옷이 나온 것이다. 또 가죽 옷이 나온다.
[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 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생명 없는 것을 말함이다. 잎사귀가 말랐으니 동화 작용이 못될 것이다. 그 나무는 죽는 것이다. 물 없는 동산이니 그 동산이 죽은 것이다. 거기 생물이 없는 것이다.
[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같아서 함께 탈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강한 자는 권세 잡은 자를 가리킨 말이기도, 삼오라기는 메마르며 타기 쉬운 것을 상징한다. 얼른 타버릴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 행위는 불티같다 함은 불탈 연료가 된다는 것이다. 가연성은 그의 행위에 비례한다.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며”(사 66:2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