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악 깍 깍……’.
아득한 유년의 동네와 평화로운 내 맨발의 시간 속을 지나 소리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번쩍, 눈을 뜬다. 까치 소리다.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 왠 까치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간밤의 맹렬한 초복 더위에 앞 뒤 열어 둔 창문 사이로 아침을 깨우며 날아든 소리가 기다리던 한 장의 편지처럼 반갑다.
까치가 찾아든 아파트 정원의 나무들이 술렁술렁 생기가 돈다. 정든 새소리와 풀 향기 솔솔 나는 산천을 두고 이곳 콘크리트 도시에 푸름을 불어넣기 위해 이주한 정원수들이다.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느라 껍질이 갈라지고 가지가 잘려나가면서도 끝내 생을 붙들었다. 숱한 날 이름 모를 소리들 곁에서 신경증에 시달리며 초록을 길어 올린 절절함을 알아주는 것인가. 까치는 한층 목청을 드높인다.
어디로부터 왔는지, 반들거리는 까만 날개를 접고 하얀 배를 보이며 나무의 팔에 안긴 고것들이 볼수록 신기하다. 새 식구를 감싸 안은 정원수들도 여느 때보다 선명해진 녹색으로 갑자기 풍성한 숲이 된 듯하다.
나무의 신성한 기운이 좋아서일까. 가끔 씩 나도 숲을 찾아 나선다. 내가 사는 도시가 머리 아프도록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황량하여 어디에다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모를 때, 실록 우거진 숲길을 찾아들어 까치처럼 초록에 기대곤 한다. 얼마 전 마음 길이 머물렀던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도 그래서 찾은 숲길 중 하나다. 일주문을 바라보며 걷다가 왼쪽 옆길로 들어서면 등나무와 서어나무 굴참나무 느티나무 소나무들이 울창하여 넉넉한 그늘을 주는 곳이다.
그 숲을 찾았을 때다. 숲 안쪽 길로 들어섰다가 멈칫했다. 나무들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아서였다. 수많은 등나무들이 모두 줄기(가지)를 뱅뱅 감아 꼬며 큰 나무를 끌어안고 올라가 있는 형상이 기기묘묘해 사람의 마음을 옥죈다. 등나무는 뜰이나 공원에 그림처럼 서 있는 한 그루의 여유로운 녹음수(綠陰樹) 정도로만 알았던 나는, 생각지 못한 풍경 앞에 다리가 굳어 버렸다.
곧게 오르지 못하는 등나무의 생태를 그때서야 제대로 보았다. 기댈 곳이, 없어 줄기들끼리 꼭 껴안고 올라간 것도 있고, 두 그루가 서로 휘감고 올라가 소나무와 참나무에 가지를 걸치기도 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아서인지 다른 나무 사이에 줄기를 늘어뜨리고 있던 나무가 내 얼굴을 내려다봤다.
‘이 여자 얼어 버렸네! 그럴 거 없어, 우리 이렇게 살거든.’
뿌리만 내리면 가지를 쭉쭉 뻗어 오르는 게 나무인 줄 알았다. 키가 크건 작건 줄기가 두껍건 얇건 모양새만 다를 뿐이라 여겼다. 건듯 보는 타인의 삶이 순탄하고, 흘깃거린 맘의 자리가 양지로 보였듯이…. 삶이란 역시 보는 이의 몫이 아닌 게다. 등나무인들 홀로 꼿꼿한 대나무나 청청한 소나무처럼 올곧은 생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까. 제 운명에 순응하며 꼬이고 비틀리는 곡절 속에서도 어디에든 몸을 지탱해 올라가는 등나무의 간절한 삶을 누가 탓할 수 있으리. 저 고단한 생명력에 숙연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실한 내 삶이 혹 드러날까 봐 슬며시 눈길을 피하던 속내를, 나무들은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티 없이 고운 것들은 숲속에 있는 것 같다. 나비와 풀벌레의 투명한 빛깔이며, 바윗돌, 이끼와 이마를 맞댄 채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맑고 정겹다. 가지마다 옮겨 다니는 새와 가지를 내어 주는 나무가 다정하고, 등성이에 선 나무와 계곡에 내려선 나무가 제자리를 지키며, 곧은 나무나 휘어진 나무가 그림처럼 어우러진 곳이 숲이 아닌가. 받는 대로 족한 삶이니 남의 자리에 연연할 턱이 없다. 버팀목이 되어 주고 조화를 이루어 오히려 여유롭다. 숲의 풍요와 아늑함은 어울림에서 나오지 싶다. 숲을 찾을 때면 숲속 같은 세상을 꿈꾼다. 건조한 아스팔트, 쌩하게 달려가는 자동차, 서로 앞서려는 나와 이웃들, 삭막한 무한 질주 시대에 자연스럽고 유순한 삶이 그리워서인지 팍팍한 땅에서 실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행여 흙이라도 들뜰세라 다지고 다독거려주면 어떨까. 살뜰한 정을 꽃피우는 곳이면 어떨까. 공생(共生)아닌 숲은 없다고 했다.
‘등 운 곡’. 해마다 오월이 오면 등꽃이 구름처럼 피어나는 계곡이라 하여 부르는 범어사 등나무 군락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 꽃 봄을 놓치고 찾아간 칠월의 깊은 등나무 그늘 아래서 마음속 등나무에 밑줄 하나를 그었다. 구름처럼 피워내는 연보라색 등꽃들은 휘어진 세월을 지켜낸 등나무의 꿈일 것이라고, 등나무의 너른 그늘 품은 주어진 자리를 탓하지 아니하고 불경에 귀를 열어 법어를 담아 둔 시간이라고, 내년 봄엔 꽃 피는 등운곡을 만나 보리라.
내게 좋은 책 한 권을 꼽으라면 ‘숲’이라 말하고 싶다. 좋은 책은 한 장 한 장 아껴 가며 읽듯이, 숲의 책장을 가만가만 넘기다 보면 한 떨기 꽃에서도 낙원을 본다. 포르릉대는 작은 새의 노랫소리에 들끓던 세상사가 날아가 버리고, 소나무 울울창창한 장에서는 엄숙하고 경건한 삶을 읽는다. 여러 삶이 깃들었어도 요란하지 않으며 소쇄하고 정갈한 문장들이다. 가슴속이 황량하거나 요동을 칠 때면 천천히 숲길을 걸어 들어 초록에 기대어본다. 혹시라도 옹달치가 사는 맑은 샘에 토끼가, 목 축임 하러 오는 숲길을 만난다면, 신발을 벗어들고 하루를 다 걸어도 좋겠다.
날마다 초록을 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청청한 숲이 되었을 테다. 오늘 아침 까치가 찾아들어 풍요해진 정원 숲이 그래서 더욱 생생하다. 숲을 찾아드는 것은, 마음에 물기를 얻는 일 아니던가.
첫댓글 염 작가님 문장들이 참으로 아름답게 흘러갑니다. 둥글고 모난 작은 돌맹이들을 돌아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