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만한 물가가 있는 관포교회에서 드리는 새벽이슬 같은 이야기 (주일저녁예배)
말씀 앞에 세워보니 못난 가룟유다
설교 : 조용안 목사
날짜 : 2020. 10. 31.
본문 : 사도행전 1:18-20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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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조용안 드림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본격적인 기도가 시작됩니다. 500명 중에 120명만 남았습니다. 베드로가 초대교회 공동체의 대표 의장으로 일어서서 가룟 유다의 배신과 자살이 성경의 예언임을 지적합니다.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감당할 사람을 세우자고 성경적 근거를 제의합니다. 12사도를 정비하는 것은 마치 엘리야가 불로 응답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12돌로 단을 수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이 임하실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우리에게 무너지고 허물어진 부분을 살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첫째, 불의의 삯을 좋아했던 가룟 유다
본문 18절에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직무에 합당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봉사직무가 아니라 불의의 삯을 좋아했습니다. 돈 벌려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이용해서 돈 벌려고 하면 안 됩니다.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돈에 취미가 있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는 것을 보고 세상적으로 성공하려면 예수님을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 12:5-6). 이때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주간인데 300데나리온짜리 향유를 조금 부은 것이 아니라 전부 부으니 가룟 유다의 마음이 부글부글했습니다. 300데나리온은 1년 연봉인데 가난한 사람을 300명 먹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돈 넣어놓으면 빼먹기 좋은 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허비한다고 의분을 내는 것처럼 위장하고 성내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인간적인 계산을 해보니 예수님 말씀과 자기 생각이 맞지 않으므로 그길로 예수님을 팔 궁리를 한 것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벧전 5:2). 목적을 잘못 가지고 예수님께 나오면 언젠가는 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교회는 부자 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믿어 생명을 얻는 곳이고 하늘나라 영생을 얻는 곳입니다.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벧후 2:15-16). 직분까지도 돈을 버는데 덕을 보고자 감당한다면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발람이 됩니다. 불의의 삯으로는 결코 즐거움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 돈을 써 보지도 못했던 발람 선지자나 가룟 유다는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교회는 봉사하는 곳입니다. 희생하고 봉사하면 하나님께서 생활에 필요한 것을 채우십니다. 자기가 감당해야 할 직분을 깨닫지 못하고 불의의 삯을 따라가면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버리십니다. 직분은 명예직이 아니라 희생하는 것입니다. 교회 직분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직분으로 불의의 삯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위해 바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며 세우시는 것입니다.
둘째, 가룟 유다의 못난 최후의 모습
본문 19절에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볼 때 사건 자체만 본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사건을 본 것입니다. 우리는 비참한 사건을 볼 때 성경을 통하여 보고, 즐거운 사건을 볼 때도 성경을 통하여 보면 찬양과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비참한 사건을 볼 때도 성경을 통해서 보면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1-2). 다니엘은 포로 생활 70년 되어갈 때도 두루마리 성경인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깨달았습니다. 다니엘은 할아버지가 되었음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70년 비밀을 알고 흥분했습니다.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 만에 끝남에도 준비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우리와 유사합니다.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막 14:43-46).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잡기 위해 위선적인 종교인들과 함께 검과 몽둥이 든 무리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돈과 욕심에 눈, 귀, 마음이 닫혀버린 그는 지금 이 일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을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자기가 입 맞추는 그를 단단히 묶어서 끌고 가라고 지시합니다. 가룟 유다는 생명이신 예수님의 볼에 입을 맞추고 끝내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가룟 유다는 제자였지만 진정한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였고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과 세상을 이길 힘을 갖지 못한 육신적이며 세상적인 명목상 그리스도인, 무늬만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갓개큐티 매일 묵상했다면 재물의 유혹을 이겼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보고 들은 것을 생활에 적용했더라면 어리석은 결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성령 충만을 구했더라면 죄를 범치 않았을 것입니다. 배반 후에라도 예수님께 돌아와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예수님께서 용서했을 것입니다. 못난 유다처럼 되지 말고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제자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셋째, 말씀을 적용하는 베드로
본문 20절에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다윗의 예언을 가룟 유다에게 적용합니다.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는 거하는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면 모든 교제가 끊어집니다. 다윗의 적들은 메시야 적들의 원형이거나 전조입니다.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시 69:25). 베드로는 시편의 의미를 예수님의 적들에게서 가룟 유다에게 적용합니다. 그런 다음 베드로는 가룟 유다를 대신할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필연성을 근거로 시편을 인용합니다.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시 109:8).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되었는데 다윗이 쓴 시입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은 다윗의 예언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베드로가 적용함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결정해야 할 첫 번째 중요한 사항으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자를 결정하는 일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마지막 유다 이야기하는 동안 베드로는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시편의 두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베드로는 광범위하게 성경을 읽고 연구했음이 분명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기 때문에 그들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그 말씀이 그와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였습니다. 가룟 유다처럼 자기 직분을 헛되이 사용하면 자기 직분 거두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중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으므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진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 없이도 얼마든지 역사하십니다. 모세의 비서였던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다스렸으며 요단강 건널 수 있었으며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었으며 땅을 분배할 수 있었습니다.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삼상 15:22-23).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은 인간의 똑똑함보다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묵상(하가)'은 깊이 생각하다, 으르렁거리다는 뜻입니다. 맹수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이 말씀 앞에서의 내 모습이기 원합니다.
댓글은 사귐입니다. 댓글은 영의 생각입니다. 댓글은 믿음 생활의 동력입니다. 말씀댓글에 참여하시면 말씀의 풍성함이 더하여집니다. |
@ 아멘.
@ 주일 말씀을 듣고 말씀, 댓글 일기를 쓰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신명기 33:29).~♡♡
@ 불의의 삯을 좋아했던 가룟 유다.
불의의 삯만 탐내다가 직분에 합당하게 살지 못했던 가룟 유다를 보면서
희생과 봉사로 직분을 감당하겠습니다.
@ 가룟 유다의 못난 최후의 모습.
베드로처럼 가룟 유다의 삶과 비참한 죽음을, 나의 삶을 성경을 통하여 직시하겠습니다.
@ 말씀을 적용하는 베드로.
가룟 유다의 사도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리라는 시편 말씀을 적용하는 베드로를 보면서
나에게 준 직분과 면류관을 뺏기지 않도록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 주님!
말씀을 깨닫고 말씀 앞에 나를 세움으로 나를 돌아보고 말씀을 붙들고 전진하길 원합니다.
@ 말씀을 매일 묵상함으로 무너진 나의 믿음을 세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말씀 앞에 나를 세워 말씀의 적용을 받으며
말씀으로 사로잡힘의 삶을 살도록 붙들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 말씀 앞에 세워보니 나도 부끄러운 모습투성입니다.
늘 말씀 앞에 나를 세워 믿음의 길로 바른길로 나를 세워가겠습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 모습이 아닌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인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날마다 말씀 앞에 나를 세우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말씀 앞에 나를 세워 못난 나를 발견하고 말씀 앞에 나를 세워가길 원합니다.
@ 주님 직분 맡은 자로서 이익이 되는 곳에만 봉사하고 희생하는 자가 아니라
이익이 되든 안 되든 모든 곳에서 봉사하며 희생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매일 아침 정한 시간에 오늘 말씀을 그냥 눈으로 보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나에게 적용하는 매일이 되어지는 아침이 되길 원합니다.
@ 말씀의 비밀을 깨닫는 자는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