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치의 위기
-누구를 뽑아도 기대는 실망으로-
행촌수필,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이윤상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날, 투표하고 나오는 80대 할아버지에게 출구 조사원이
“누구에게 투표하셨습니까?”
“1번 박근혜 후보를 찍었소.”
“왜 그 분을 지지했습니까?”
“그 분이 후보자 중에서 제일 예쁘게 생겨서 찍었습니다.”
방송에 소개된 그 장면이 최근 농협, 축협, 임협, 산림조합장 선거 날 문득 떠올랐다. 선거 공약은 표를 끌어 모으는 수단이요, 선거가 끝나면 공약은 공수표로 돌아오니 ‘누굴 뽑아도 별 수 없다’는 낭패감(狼狽感)이 민주주의체제 국가마다 안개처럼 퍼지고 있다고 한다. 개표종사원으로 일했던 공무원 후배의 말을 들으니 어떤 투표용지에는
“나는 위 후보자 중에서 아무도 지지할 후보가 없습니다.”
라고 자기 불만을 볼펜으로 써 놓고, 무효표로 만든 투표용지도 있었다고 한다.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환멸, 분노는 민주주의국가들의 공통 현상인 것 같다. 국민의 존경과 갈채(喝采)를 받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다니, 민주국가의 위기가 아닌가.
미국의 퓨리서치센터는 세계 주요국의 국정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해서 매년 발표한다. 2011년 조사에서 미국(21%), 일본(25%,), 프랑스(25%), 영국(32%), 한국(21%), 스페인(15%)가 국정방향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미국은 바닥권이다. 중국국민은 어떤가? 85%로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중국은 미국에서 나온 이 조사 결과를 자기나라 정치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는 선전 자료로 활용한다. 공산당 일당독재의 중국 국민이 민주주의 국가보다 국정 만족도가 높다니, 민주국가 선출직 정치지도자들이 대오각성(大悟覺醒)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공산주의는 러시아에서 보르세비키 혁명이 성공하여 공산주의체제로 70년간 운영되어왔으나 소련의 붕괴로 러시아에서 막을 내렸다. 민주주의는 영국의 권리장전(1689년)이 시초이다. 1689년 1월22일 제임스 2세의 국외탈출을 권리선언에 따라 왕위를 윌리엄과 메리에게 이양한다는데, 컨벤션회의에서 합의했다. 이후 컨벤션회의는 의회로 발전하여 의회민주주의가 싹트게 되었다.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權利章典 Bill of Rights)은 국가제도를 규정한 대헌장(大憲章),·권리청원(權利請願)과 함께 의회제정법이다. 그때로부터 민주주의는 약 325년 간 운영되고 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것은 겨우 100년 남짓밖에 안 된다. 최근에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민주주의를 훼손, 몰락시키는 원인은 무엇일까?
민주국가는 선거를 통해서 대표자, 지도자를 선출한다. 유권자의 표를 끌어 모아야 한다. 장밋빛 공약을 남발하고, 정당 간에 당리당략에 얽매인다. 국민들에게 선심성, 포퓨리즘 공약과 당파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 표가 없는 미래세대를 챙겨볼 여유가 없다. 그러기에 민심은 정치인과 국가체제로부터 멀어져 간다.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도 없지 않는가. 영국 처칠 수상의 명언이 떠오른다.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세습왕조보다는 조금 낫지만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옳은 말씀이다. 지구상에 자국민이 만족할 만한 선거제도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민주정치 선거나 제도모순의 해결책을 찾아서 지혜롭게 개선해 가는 길밖에 없다.
정치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은 컴패션(compassion)이다. 민중의 고통(passion)을 자신도 함께(com)느껴서,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행동을 컴패션이라 한다. 민중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그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서, 헌신적인 엘리트들이 선출되는 나라는 올바른 나라요, 진정한 민주주의 꽃이 피지 않겠는가.
중국식 정치제도가 우월성을 인정받으려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중국이 언론, 출판, 표현, 결사의 자유를 허용하면 공산당 독재정치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까?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가 우수한 제도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정치권은 민주정치의 위기감을 공유하고 반성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정치권은 물론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었다는 보도가 있다. 의회제도가 무너지면 국회의원들의 특권도 자연히 사라질 게 아닌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정당의 당파주의와 결별해야한다. 여야가 적절히 나누어 갖는 타협과 공존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여야가 서로 경쟁하면서도 타협하는 정치야 말로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열쇠일 것이다. 정당의 목표를 정권쟁취에만 둘 것이 아니라, 국리민복(國利民福)에 두어야 한다. 국가발전과 안보를 위해서는 여야가 따로 없고,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한다면, 온 국민의 지지를 받고, 국민의 만족도를 높여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5.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