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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18 백복령~닭목재(석병산)
닭목재와 석병산
‘산’의 뜻인 ‘닥’이 ‘닭’으로 옮아가
- 백두대간 강릉의 ‘닭목’도 ‘깊은 산골’ 의미 -
‘가재울 안쪽 노루목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면 꿩말이 있고, 거기서 더 올라가 매봉 줄기의 닭재를 넘어 소내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돝골에 이른다.’
억지로 만든 문장이지만, 이 속에는 무려 7가지나 되는 동물 이름이 나온다.
가재가 많아 가재울이고, 노루가 많아 노루목이며, 꿩이 많아 꿩말일까? 매(鷹)처럼 생겨서 매봉이고, 닭 전설이 있어서 닭재이며, 소(牛)와 관련이 있어 소내이고, 돝(돼지)을 많이 길러 돝골일까?
-동물 관련 이름 전국에 많지만
동물 관련 이름이 무척 많다. 이러한 예는 다른 나라에서는 그 유례가 드물다.
전국에 동물 이름의 음(音)을 가진 땅이름이 너무 많은 것에 주목해 오다가 이에 흥미가 있어 그러한 이름들을 취합해 보았다. 긔고, 그러한 이름들이 붙게 된 이유에 관해 생각을 많이 해 보았다.
그런데, 상당수의 이러한 땅이름들이 그 동물과는 전혀 관계 없음에도 그 이름을 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몇 가지를 펼쳐 보기로 한다.
① 가장자리의 뜻 ‘갖’이 ‘가재’로
‘가재울‘이라는 땅이름이 무척 많다. 그리고, 비슷한 땅이름에 ‘가잿골’, ‘가잿말’ 등이 있는데, 대개 가재가 많아 그 이름이 붙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자로는 주로 음차(音借)되어 ‘가좌(佳佐.加佐)’로 표기되고 있다.
-가재목(加佐); 경북 문경시 산북면 가좌리(加佐里)
-가재올(佳材月); 경기 용인시 원삼면 가재월리(佳材月里)
-가재울(佳才); 경기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佳才里)
-가재울(加佐);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가좌동(加佐洞)
-가재울(加佐); 경기 이천시 부발읍 가좌리(加佐里)
-가재울(佳佐); 충북 청원군 남이면 가좌리(佳佐里)
가재가 많아 ‘가재울’이라면 ‘붕어골’, ‘새웃골’ 같은 것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런 땅이름은 별로 없다. ‘가재울’이나 ‘가잿골’ 중에는 ‘가장자리’의 뜻으로 이름 붙은 것이 무척 많다. 즉, 들의 가장자리거나 내의 가장자리에 있을 때 이러한 이름이 붙는다. ‘’은 ‘가장자리’의 옛말이다. 이 말과 ‘마을’의 뜻인 ‘울’ 또는 ‘골’과 합해질 때 그 사이에 ‘애’가 개입되어 이런 이름이 될 수 있다.
갖+울=갖애울>가재울
갖+골=갖애골>가재골(가잿골)
② 구석의 뜻 ‘구억’이 ‘꿩’으로
‘구석’의 옛말 또는 방언은 ‘구억’이다. 그리고, 이 말의 뿌리말은 ‘’이다. 이 ‘’은 ‘구시’, ‘구세’, ‘구이(귀)’ 들의 말로도 옮겨지면서 많은 관련 ‘구서’(부산시 금정구 구서동), 구셋골(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서하리의 구수곡) 등의 이름을 이루어 놓더니, ‘마을’이란 뜻의 ‘말’ 앞에서는 ‘구석말’, 구억말‘이 되다가 결국 경음화하여 ’꿩‘과 전혀 관계 없는 ’꿩말‘까지 만들어 놓았다.
구억+말>구억말>구엉말>꾸엉말>꿩말
그래서, ‘구억’이나 ‘꿩’자가 들어간 땅이름 중에는 ‘구석의 마을’이란 뜻의 것이 많다.
-궉말(꿩말);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시미리의 궉말
-꿩마(雉洞); 경북 예천군 풍양면 풍신리의 치동(雉洞)
-꿩매(雉山); 전남 영광군 군남면 설매리의 치산(雉山)
-꿩뫼섬(雉島); 전북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雉島里)
③ 늘어진 곳의 ‘너르(느르)’가 ‘노루’로
‘넓다’를 전라도쪽에서는 ‘누릅다(노릅다)’,
충청도쪽에서는 ‘느릅다’,
경상도나 강원도쪽에서는 ‘널따’라 한다.
땅이름에서도 ‘넓다’는 뜻이 지방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한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는 ‘넓다’는 뜻과는 전혀 관계없는 쪽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즉, ‘넓다’는 뜻의 ‘너르’가 음의 변화로 ‘누르’가 되어 ‘누렇다’는 뜻으로 간 것도 있고, ‘널’로 되어 ‘날판지’와 같은 뜻으로 간 것도 있으며, ‘널’이 ‘날’로 되어 ‘날다’의 뜻으로까지 간 것도 있다. 입을 많이 오무려 발음하는 전라도 등의 지방에서는 ‘노루(獐)’가 되기도 했다.
-노루목(獐項);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獐項里)
-노루고개(獐峙); 강원 영월군 북면 연덕리
-노루골(獐里); 강원 양양군 현북면 장리
④ 산의 뜻 ‘뫼’가 ‘매(鷹)’로
‘산이 매(鷹)처럼 생겼다’, ‘산에서 매 사냥을 했다’, ‘매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이런 얘기와는 달리 ‘산’의 옛말이 ‘메(뫼)’이므로 ‘매산’, ‘매봉’, ‘매봉산’이 되고 이것이 한자로 옮겨져 ‘응산(鷹山)’, ‘응봉(鷹峰)’, ‘응봉산(鷹峰山)’이 된 경우가 많다.
-매봉(鷹峰); 강원 인제군과 양구군 사이
-매봉(鷹峰); 경기 가평군 상면
-매봉산(鷹峰山); 경북 청송군 부남면
-매산등(鷹山); 전북 장수군 산서면 학선리
⑤ 작거나 좁은 곳의 뜻 ‘솔’이 ‘소’로
새‘가 ‘쇠’로 되면서 ‘쇠머리’, ‘쇠꼬리’ 같은 낱말에서의 ‘쇠’처럼 ‘소(牛)’의 뜻으로 가기도 해서 그와 관련된 뜻으로 생각하게 된 땅이름도 많다. 그리고, ‘사이’의 뜻인 ‘새’가 ‘쇠’로 되었다가 ‘쇠(소)’로 취해진 땅이름도 적지 않다.
-소내(牛川); 경남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소놋골(손오); 경남 거창군 남상면 송변리
-쇠골(牛洞); 전북 김제시 금구면 하신리
-쇠내(牛川);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천리
-쇠묵(牛項);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중산리
-쇠일(牛谷); 경기 이천시 백사면 우곡리
-쇠재(牛峙); 강원 영월군 수주면 도원리
⑥ 크다는 뜻이나 산마루는 ‘말’로
‘말뫼(말미)’라는 땅이름이 전국에 무척 많다. 더러는 말(馬)과 관련한 내력이나 전설이 깃든 것도 있으나, 대개는 꼭대기라는 의미의 ‘’에 연유한 것들이다.
‘(말)’은 한자로 옮겨질 때의 곡식의 양을 재는 그릇의 ‘말(斗)’ 로 생각하여 ‘두산(斗山)’이 되기도 했고, 짐승의 말로 생각하여 ‘마산(馬山)’, ‘마봉(馬峰)’, ‘마현(馬峴)’, ‘마치(馬峙)’가 되기도 했다. 마등령의 ‘마등(馬等)’은 ‘묏등’의 취음이다. 또 경남 함안군 가야읍의 ‘말산(末山)’은 ‘말미’의 ‘말’을 음 그대로 딴 것이다.
말뫼는 지방에 따라 ‘말무’, ’말매‘라고도 한다.
‘말무덤’‘은 대개 말을 묻은 무덤이라고 전해지면서, 충성스러운 말 이야기와 관련되는 전설이 얽혀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말무덤’은 ‘+무덤(마루무덤)’으로 큰 무덤 또는 꼭대기에 있는 무덤이란 뜻으로 붙여진 것이다.
산마루를 넘는 고개란 뜻의 ‘마루티(티)’는 ‘말티’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말티’ 자체가 고개 이름인 셈인데, 여기에 또 ‘고개’가 붙어 ‘역전(驛前)앞’과 같은 식의 첩어식 지명이 돼 버렸다.
경기도 고양시의 정발산(59.3m)은 말의 머리처럼 생겨서 ‘말머리(馬頭)’라고도 부른다.
또,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 지역은 땅모양이 말의 머리처럼 생겨서 ‘말머리’라 했다면서 행정 지명의 ‘마두리(馬頭里)’로 되었다고 한다.
경남 의령군 유곡면에도 말의 머리처럼 생긴 ‘말머리덤(말대가리)’이 있어 마을 이름이 ‘말머리’인데, 역시 행정 지명이 마두리이다.
그러나, 산모양이나 지형이 말대가리의 형상이어서 ‘말머리’라 했다는 것은 일반적인 지명 정착의 과정으로 볼 때 타당성이 적다. ‘말머리’는 바로 ‘머리’, 즉 산정을 뜻하는 것이다.
평북 안주와 태천에는 ‘마두산(馬頭山)’이 각각 있는데, 모양이 말의 머리 같아서가 아니라 ‘말모루’‘가 ‘말머리’로 불리다가 한자로 붙여진 것이다.
⑦ 도드라진 지형 ‘돋’이 ‘돼지’로
‘돼지’의 옛말은 ‘돝’이다. 그래서, 지금도 ‘멧돝 잡으려다 집돝까지 잃는다’ 속담
‘돼지’란 말은 ‘돝+아지’란 말이 합해서 된 ‘돝아지’가 ‘도야지’로
땅이 도드라진 곳이면 ‘돋골(돗골)’이 된다. 우리 조상들은 땅이름을 짐승과 결부시키기를 좋아했기에 ‘돋’을 ‘돝’으로 풀어 적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전국에는 실제 ‘돝(돼지)’과 전혀 관계 없음에도 ‘돝골(돗골)’이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돌’의 옛말이 ‘돍’ 또는 ‘돗’이어서 이것이 ‘돝’으로 옮겨가 돼지 관련 지명처럼 된 것도 있다.
-돝골(猪洞); 전북 정읍군 소성면 신천리, 경남 진양군 진성면 이천리
-돝머리,도투머리(猪頭; 전남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 충남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
-돝울음삼(猪鳴山); 경기 이천시 (도드람산)
-돝너리봉(猪噬峯); 서울 은평구 불광동
-도토성이(猪城); 충남 홍성군 홍북면 내법리, 충남 서산시 해미면
-돝마루(猪旨); 충남 서산시 서산읍 석남리
-돝귀동;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보성리
-돝밭(猪田); 경북 의성군 안평면 신안리, 전남 강진군 군동면 화산리
-돝내(猪川); 인천 강화군 선원면 창리 (돈내)
-시조 설화에도 나오는 닭
닭은 우리의 시조 설화에도 닭이 나온다.
경주의 계림(鷄林) 숲은 경주김씨 시조의 설화가 깃들어 있다..
계림 숲은 경주시 교동 1번지 경주향교 북동쪽에 있는 숲으로, 예부터 신성한 숲으로 여겨 와 원래 시림(始林)이라 불리던 곳인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신라 제4대 탈해왕(脫解王) 9년(65) 3월 어느 날 밤, 임금이 이 근처를 거닐다가 나무 사이로부터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이상히 생각한 임금은 다음날 새벽 호공(瓠公)을 보내 알아보게 했더니 그가 돌아와 아뢰기를 한 절터에 금빛의 작은 궤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서 흰닭이 울고 있다‘고 했다. 임금이 궤를 가져오게 해서 열어 보니 옥동자가 그 안에서 나왔다.
임금은 크게 기뻐 ‘이 아이는 하늘이 내게 보내 준 아들’이라 하고 잘 길렀다. 아이는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그래서, 임금이 그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성을 ‘금(金)’이라고 하였다. 이가 바로 경주김씨의 시조가 되고 뒤에 그 후손이 신라의 김씨 왕계를 잇는 영광을 얻는다. 숲의 이름은 닭이 울었다 해서 계림(鷄林)이 되었고, 그 뒤엔 이것이 국호로도 되었다.
알지의 7대손 미추가 조분왕의 왕녀에게 장가들었으나, 아들이 없어 추가 대신 왕위에 오름으로서 신라에서 처음으로 김씨왕이 생기게 되었다.
계림 숲에는 현재 계림김씨(경주김씨)의 시조 탄강 유허비가 있다. 이 곳엔 1930년경까지도 아름드리 느티나무, 팽나무, 홰나무, 쥐엄나무 들이 90여 그루 있었는데, 지금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이 숲은 1936년 2월 21일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사적 18호이다.
-닭 울음은 희망을 약속
닭의 울음은 ‘밝음’ 즉 희망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던 우리 조상들은 닭 울음과 관련한 땅이름을 즐겨 붙였다. ‘닭우리(달구리)’, ‘계명(鷄鳴)’ 등의 땅이름이 바로 그것이다.
전북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는 ‘닭국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원래 이 이름은 닭이 울었다는 듯의 ‘달국재(닭울재)’라는 이름에서 나왔다고 전하고 있다. 이 이름은 이 고개를 처음 낼 때 닭 우는 소리가 났었다는 전설에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닭이 우는 형국의 산이라 해서 계명산(鷄鳴山)이라 이름붙은 산을 많이 볼 수 있다. 전북 고창군의 부안면, 경남 합천군의 봉산면, 경북 안동시의 길안면,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등에 있는 계명산이 모두 그런 설에 따라 붙여진 것이라 전한다.
충북 충주시에 계명산(鷄鳴山) 있는데, 이 고을의 진산이 된다.
원래 이름은 ‘닭의 발‘의 뜻인 계족산(鷄足山). 이 고장에 지네가 많아 주민들이 골치. ‘지네는 닭과 상극이니 닭을 길러 없애라.‘하는 도인의 말을 따라 그 말대로 하니 지네가 없어져 계족산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산으로 인해 충주 읍내의 부자들이 망하므로 객망산(客亡山)이라 부르다가, 계족산, 객망산의 산이름이 별로 좋지 않다 하여 1958년 현재의 이름으로. 계명산(鷄鳴山)은 닭이 운다는 뜻이고, 닭이 울면 날이 밝으므로 이 고을에 새 광명이 찿아들라는 주민들 기원이 담긴 이름
금빛의 닭이 알을 품고 앉은 모습의 명당을 금계포란형(金鷄包卵形)이라고 한다. 이러한 곳에 집을 짓거나 묘를 쓰면 자손이 번성하고 부(富)를 누린다고 믿어 왔다. 전국에는 이런 명당이 많은데, 대개 ‘닭’자 땅이름이 붙어 있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경남 남해시 삼동면 물건리 등에 있는 달기봉(계봉. 鷄峰), 닭섬(계도.鷄島) 등에 그런 명당이 숨어 있다고 전하고 있다.
경북 예천군 예천읍 생천리의 나붓들 서쪽 고개인 ‘닭우리고개’는 닭이 울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한자로는 계명현(鷄鳴峴)이다. 이 고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 근처 용문면 선리에 사는 가난한 서씨가 짚신장사를 해서 그 아들을 가르쳐 마침내 그 아들이 벼슬을 하여 고을 원으로 도임하게 되었다.
서씨는 그 아들을 보려고 하인에게 업혀서 백전리 신거리에 가서 그 아들을 만나 보고 어찌나 기쁘던지 정신없이 즐기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는데, 이 고개에 이르러 닭이 울었다.
그런데, 힘이 없어 하인에 업혀 넘어오던 서씨는 닭 울음 소리를 듣더니 금방 힘이 솟아 단숨에 집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부터 이 고개를 ‘닭우리고개’라 했고, 한자로 ‘계명현’이 되었다 한다.
근처 백전리의 신거리도 이 짚신장수 서씨의 전설에 연결돼 있다.
서씨가 짚신장사를 할 때 신을 삼아 가지고 장날마다 예천읍에 가는 길에 늘 대추나무가 있던 길목에서 쉬어 갔는데, 그것은 무거운 짚신 뭉치를 땅에 놓지 않고 그 대추나무 가지에 걸어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서씨가 쉬어 가던 그 길목을 ‘신거리(신걸이)’라 했다. 나무에 신을 걸어 놓고 쉬어 갔던 자리라 해서란다.
닭이 울면 밝은 꿈이었다. 그래서 ‘달구재’, ‘덜구니’ 등의 마을 이름이 ‘닭의 울음’과는 관계 없음에도 한자로 옮겨질 때는 ‘계명(鷄鳴)’이 되었다. 전북 고창군 심원면 만돌리,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등에 있는 달구재나 달구니 등의 산이나 마을이 그런 예다.
‘달구’는 바로 ‘산(山)’ 옛말 ‘닥’, ‘닭’을 바탕으로 나온 이름. 대구의 옛 땅이름 ‘달구벌(닭벌)’은 ‘산의 벌’ 즉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안의 들판이란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깊은 산중이라 ‘닭목’ 이름 얻어
땅이름의 원뜻을 풀이하는 데 있어서 현음(現音)의 글자 그대로 무조건 뜻을 연관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땅이름에 ‘말’의 음(音)이 들어가면 ‘말(馬)’과 관련을 짓고, ‘노루’의 음이 들어가면 ‘노루(獐)’과 관련을 짓는 일이 많은데, 좀더 신중을 기할 일이다.
앞에서의 여러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땅이름은 같은 뜻의 것이라도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달리 불리거나 표기될 수 있으며, 시대에 따라서 상당한 음의 변천을 겪은 것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닭’의 음이 들어간 땅이름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닭’과 연관을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닭’이란 음은 ‘닥’과 비슷하다. 따라서, ‘닥’을 동물로 실체화해서 ‘닭’으로도 표기함은 뜻의 생성을 위해서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닭’의 옛말은 ‘’으로, ‘닭’, ‘돍’ 등으로 불러 왔다.
전남과 제주 지방에서는 ‘닭’을 주로 ‘돍(독)’으로 많이 불러 왔다.
지금도 제주도에선 ‘달걀’을 ‘독새끼’라 한다.
‘독새끼’는 글자 그대로 독(닭)의 새끼란 뜻이다.
닭의 새끼라면 당연히 병아리여야 할 텐데도 제주도에선 ‘병아리’를 따로 ‘빙애기’ 또는 ‘비야기’라고 한다.
‘닭’이 ‘’이었음은 <두시언해> 등의 옛 문헌들에서 나타난다.
․‘하 기 춤츠놋다’(하늘 닭이 춤을 춘다)
․‘ 해 기르놋다’(닭을 많이 기른다)
․‘새뱃 소리 드러’(새벽 닭 소리를 들어)
‘달걀’은 옛말로 ‘알’인데, 북한에선 현재 ‘닭알(닥알)’로 불러 남한과 조금 다르다.
‘달’은 ‘산’이란 뜻 외에 단순히 ‘땅’의 뜻을 갖기도 했다. 이것은 지금의 말의 ‘달구질’이란 말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가 있다.
‘달구질’이란, 집 지을 터를 단단히 다지는 짓을 뜻한다. 이 말은 ‘달(땅)’과 ‘질(행동)’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달(닭)+질=닭질(달구질)
즉, ‘땅’이라는 말과 ‘질’이라는 말이 합쳐 ‘달구질’이란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전국에 퍼져 있는 땅이름 중에 ‘닭실’, ‘닭재’ 등 ‘닭’이 들어간 것이 적지 않은데, 이 중에는 그것이 단순히 ‘산’의 뜻으로 들어간 것이 많다.
‘달’이나 ‘닭’의 음이 들어간 이름들이 평야 지방에서는 별로 볼 수가 없고, 주로 산지에 많음은 이것이 원래 ‘산’의 뜻이었음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닭목(계항동-鷄項洞)에서 왕산리로 가는 고개가 ‘닭목재(닥목재)’이다.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묫자리가 있다 해서 이 이름이 나왔다고 하고는 있지만, 아마도 ‘산골짜기의 목(길목)’이란 뜻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짙다.
‘닭목재’란 이름을 낳은 그 고개 밑의 닭목 마을은 아주 깊은 산골 마을이다. 좁디좁은 긴 골짜기 안에 폭 파묻힌 마을이다. 여북하면 이 마을에서 한참 내려간 곳에 약간 들이 있는 마을 이름이 ‘벌마을’일까? 골짜기 안에 콕 박힌 닭목 마을이고 보니 그나마 골짜기라도 조금 넓고 다리 정도라도 있는 냇가, 숨통이라도 틔어 줄 듯한 마을이니 벌마을로 불렀음직하다.
‘닭목’의 ‘닭’은 분명히 ‘산골’의 의미를 깊이 지녔음직하다. 또, ‘닭목’의 ‘목’도 ‘길목’의 뜻보다는 ‘골목’의 ‘목’처럼 ‘좁음’의 뜻을 가졌음직하다. 전국에는 ‘닭목(닥목)’이란 마을이 경북 성주군 수륜면 계정리, 경남 고성군 회화면 당항리 등 무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