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3권 5-45 시절節序 4 구일九日
구일독하일九日獨何日 구일이 유독 무슨 날이기에
이연협아정怡然愜我情 즐겁게도 내 마음을 흡족케 하나?
행간리하국行看籬下菊 가다가 울타리 밑 국화 보고는
면회도연명緬懷陶淵明 아득히 도 연명을 생각케 하고
소년수유지笑撚茱萸枝 웃으며 수유茱萸 가지 휘어잡다가
요억두자미遙憶杜子美 멀리 두자미杜子美를 기억케 하네.
락모룡산정落帽龍山頂 용산龍山 마루서 모자 떨어뜨린 일
천재풍류사千載風流士 천년千年에 풍류 좋은 멋장이 선비요
전재등왕각展才滕王閣 등왕각滕王閣에서 재주 펼쳐 보인 것
만고복고자萬古腹藁子 만고에 문장이 배에 그득한 사람일세.
사인막이원斯人邈以遠 그 사람들 아득하고도 멀지마는
차일년년유此日年年有 이날만은 해 마다 해 마다 있네.
등고차원촉登高且遠矚 높은 데 올라서 또 멀리 보다가
명정백의주酩酊白衣酒 백의인白衣人이 주는 술에 만취 하자
강개차광가慷慨且狂歌 비분강개하다가 또 미친 듯 노래하니
위락당여하爲樂當如何 그 즐거움이 당연 어떠할거냐?
배회망부진徘徊望不盡 서성대며 바라보길 다하지 않아
장공일안과長空一鴈過 끝없이 먼 하늘엔 기러기 외로이 지나간다네.
►이연怡然 기쁘고 좋음.
►‘쾌할 협愜’ 쾌快하다(마음이 유쾌하다) 만족滿足하다. 맞다
►면회緬懷 지난 일을 생각함.
►수유茱萸 수유나무의 열매.
9월 9일[重陽]에 높은 산에 올라가서 이 열매를 머리에 꽂으면 마귀를 쫓는다고 한다.
/<풍토기風土記>
독재이향위이객獨在異鄕爲異客 타향의 외로운 나그네 되어
매봉가절배사친每逢佳節倍思親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어버이 그리는 정 더 간절하네.
요지형제등고처遙知兄弟登高處 올해도 우리 형제들 높은 그 산 오르겠거니
편삽수유소일인偏揷茱萸少一人 머리에 수유 열매 돌려 꽂다가는 한 사람 모자람을 문득 깨달으리.
/<왕유王維 9월9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
귀래득문수유녀歸來得問茱萸女 돌아오며 수유 따서 술 파는 여인에게 물어보나니
금일등고취기인今日登高醉幾人 오늘 등고 놀이에 몇 사람이나 취했던고?
/<장악張諤 구일연九日宴>
►등왕각滕王閣
황학루黄鹤楼 악양루岳阳楼 등왕각滕王阁 봉래각蓬莱阁은 중국 4大 명루名楼이다.
당唐 고조高祖 이연李淵의 막내아들 원영元嬰이 홍주자사洪州刺史로 있을 때
강서성江西省 남창현南昌縣 남창의 서쪽 공강을 바라보는 곳에 지은 전각殿閣.
원영이 등왕에 봉작封爵되어 있었기로 등왕각이라 부른다.
왕발王勃의 序와 한유韓愈의 記로서 유명하며 누각산수화의 화제로서 그려진다.
계화界畫의 대폭으로서 악양루岳陽樓, 황학루黃鶴樓의 그림과 대폭對幅 또는 3폭대對로 된다.
명나라 하영夏永의 작품이 있다.
왕발王勃이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꿈속에서 江神이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등왕각을 중수한 낙성식이 있으니 참석해 글을 지어 이름을 내라.’ 하기에
왕발이 ‘여기서 남창까지는 7백리인데 하룻밤 사이에 당도할 수 있습니까?’ 하니
‘배에 오르기만 하면 내가 바람을 빌려 주리라.’ 하더라함.
과연 왕발은 하룻밤 사이에 등왕각에 이르러 등왕각 시와 서문을 지어 문명을 떨쳤다.
등왕고각임강저滕王高閣臨江渚 등왕 높은 누각 강가에 임했는데,
패옥명란파가무佩玉鳴鑾罷歌舞 옥 소리 방울 소리 가무도 사라졌구나.
/<왕발王勃 등왕각滕王閣>
수사천간로일단誰使天慳露一端 하늘이 아끼는 絶境의 한 자락을 누가 여기 드러냈는가
등왕고각이무안滕王高閣已無顔 경치 좋다는 높은 등왕각도 이미 무색해졌네.
/<신예辛裔 여흥청심루차운驪興淸心樓次韻>
왕발王勃(649-676)의 자는 자안子安, 6세 때부터 문장을 쓴 천재였다.
당 고종 때 뛰어난 재주를 인정받아 박사博士가 되었으나
여러 왕족들의 우열을 닭싸움에 비유하여 투계격문鬪鷄檄文을 썼다가 고종高宗의 노여움을 사
자신은 유배되는 신세가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벼슬이 깎이어 교지로 쫓겨나게 되었다.
교지자사交址刺史로 먼저 간 부친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에 南海에 빠진 것이 원인이 되어 죽었다.
‘초당사걸初唐四傑’로 꼽히는데 글을 지을 때는
먼저 먹을 많이 갈아놓고 술을 마신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숨 잔 뒤 일어나
붓을 휘둘러 글을 짓는데 한 자도 고칠 자가 없어 사람들이 복고腹藁라고 했다.
함형 2년(671년)에 염백서가 홍주의 목사가 되어 등왕각을 중수하고
여기서 큰 잔치를 했는데 손님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그 사위 오자장吳子章에게 글을 준비해오도록 미리 명하였다.
종이와 붓을 내어와 손님들에게 두루 청하였으나 감당하지 못하였다.
왕발은 자리에서 가장 어렸으나 사양하지 않고 종이와 붓을 받았다.
도독이 화가 나서 아전을 보내어 그 글을 엿보게 하였다.
문득 알리고 다시 알려 왔는데 말이 갈수록 뛰어났고
마침내 놀라 멍하여 “하늘이 낸 재주로구나.”하였다.
왕발王勃은 9월 9일 南昌 땅에서
〈등왕각서滕王閣序〉를 지어 대문장가로서 이름을 전하게 되었다.
►복고腹藁(腹稿) 배 안에서 초고를 쓰다.
글을 억지로 생각해서 짓는 것이 아니라 붓을 들기 전에
반복적으로 構想을 익히는 것을 가리켜 복고腹稿, 묵고黙稿라고 함.
당唐 나라 왕발王勃의 글 짓는 버릇이 먼저 먹을 잔뜩 갈아 놓고 술을 마신 뒤
이불을 둘러쓰고 한 숨 자고 일어나 곧 붓을 잡고 줄줄 써 내려가는데
한 글자도 고치는 일이 없어서 당시 사람들이 ‘복고’라 했다/<당서唐書 왕발전王勃傳>
►‘볼 촉矚’ 보다. 뚫어지게 보다. 자세仔細(子細)히 보다
►명정酩酊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술에 취함. 이취泥醉.
일석도재귀日夕倒載歸 해 질 녘에 두건을 거꾸로 쓰고 돌아오면서도
명정무소지酩酊無所知 술에 곤드레 취해 그걸 알지 못하더라.
/<진서晉書 산도전山濤傳>
종사일명정終思一酩酊 마침내 그대와 한 번 명정코자 하니
정소안지두淨掃鴈池頭 그대 집 안지 못가를 깨끗이 쓸어 두오.
/<두보杜甫 희제기상한중왕戱題寄上漢中王> 3首
좌구욕성환명정坐久欲醒還酩酊 술 깨려고 오래 앉아 있다가 오히려 또 곤드레만드레 되니
(백낙천白樂天)
벽천잔월영화지碧天殘月暎花枝 푸른 하늘 기우는 달이 꽃가지를 비추네(정단程但)
/<임유정林惟正 추일유작秋日有作>
►백의주白衣酒 백의인이 주는 술. 선비의 술.
원래 백의송주白衣送酒라는 말이 있는데 동진東晉 때
도연명陶淵明이 9월 9일 날 술 생각은 났으나 술이 없어
동쪽 울타리 아래의 국화菊花를 뜯어 쥐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백의 입은 사람이 차차 가까이 오더니 자기 집으로 찾아왔다.
그 당시 그 고을 태수太守인 왕홍王弘이 술을 보내어 온 것이었다.
●장질부章質夫 장질부가
송주육호서送酒六壺書 술 6병과 서찰을 보냈다는데
지이주부달至而酒不達 술이 오지 않아
희작소시문지戱作小詩問之재미 삼아 시를 지어 물어보다/소식蘇軾
백의송주무연명白衣送酒舞淵明 백의사자 가져간 술이 도연명을 춤추게 한 것처럼
급소풍헌세파굉急掃風軒洗破觥 누추한 집 쓸어내고 깨진 항아리까지 씻었는데
기의청주육종사豈意靑州六從事 생각도 못하였네 맛 좋은 술 여섯 통이
화위오유일선생化爲烏有一先生 하나도 남지 않고 없어져버린 뒤에
공번좌수지신해空煩左手持新蟹 부질없이 왼손에 갓 잡은 게 들고서
만요동리후락영漫繞東籬嗅落英 국화울타리 서성대며 꽃 냄새를 맡는구나
남해사군금북해南海使君今北海 남해의 장태수 오늘날의 북해라
정분백합향춘경定分百榼餉春耕 봄갈이 때도 반드시 술 백 통을 나눠주겠지
►백의송주白衣送酒
진晉나라 때 강주자사江州刺史 왕홍王弘이
중양절에 도연명에게 술을 보내 마시게 해준 것을 가리킨다.
‘白衣’는 일반적으로 관청에 속한 하급관리 또는 관리가 시키는 일을 하는 하인을 가리킨다.
‘白衣’를 ‘白衣送酒’의 의미로 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