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진면
행정리구역: 법정리 5개 / 행정리 16개
행정리구역 : 법정리 5개 / 행정리 16개 |
인구수 : 남 1,603명/ 여 1,687명 |
가구수 : 1,548호 |
면 적 : 25.99㎢ |
읍면장 : 방해권 |
주 소 :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회진중앙길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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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진면 진목리 진목마을
□ 죽산안씨, 경주이씨,김해김씨, 기타 성씨를 가진 마을이다. 산으로 둘러쌓여 해안에 인접된 마을로 1950년대에 진목농장이 간척되었고 1970년대에 덕촌농장이 간척된 후로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인구 : 115세대 298명(남 :139명, 여 :159명)□ 전 : 0.32㎢, 답 : 0.8㎢, 평당평균 : 10.08㎡ □ 이장 : 장세정 (011-604-6054) ○ 1500년대초 하동정씨가 설기하였다고 하나 상고할 수 없으며○ 1595년대 임진왜란 당시 죽산안씨가 란을 피하고 이곳 「참냉기골」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경주이씨가 뒷골로 이사와 터를 잡아 현주하고 있다.○ 진목 마을은 양쪽에 높은 산이 둘러쌓여 있고 산의 중턱 깊숙한 곳을 생활터로 잡았는데 이곳에 참나무가 자생하고 있어「참냉기」 라고 하다가 진목으로 개명해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삭금리를 통합하여「진목리」로「대흥면」에 속해 있다가 1986년 4월 1일 분면으로「회진면」에 속하게 되었다. ○김덕빙 졸 원 종내범 최병선이 탄생되어 일찍이 서원을 설립하여 수십명의 목사와 공직자를 배출하였으며 그분들의 공적비를 건립하고 단을 모시고 매년 3월10일에 문하생과 지방유지들이 모여 제호을 모시고 있다.○인물로는 소설가 이청준 작가가있다. {선학동나그네} 소설을 임권택감독 100번째영화 [천년학]으로 만들기도했다○매년 7월이면 못생긴 호박나라 축제도열리고 있다. 볼거리로는 못생긴 호박과 이청준 작가의 생가가 있다.
◆ 회진면 진목리 이진목마을
김해김씨 , 밀양박씨 , 경주이씨, 등이 성촌되어있으며,인구 113세대, 264명(남:136, 여:128)으로전 : 0.18㎢, 답 : 0.46㎢, 호당평균 : 5.5㎡이장 : 이창희 (011-9430-5367)주업으로는 농수산업을 겸 하고있으며, 특산물로는 해태, 미역 등이있다 1700년경 달성서씨가 설기하였다하나 상고할 수 없고 인천이씨, 김해김씨등이 입주 성촌되었다한다. 바다가에 인접해 있어 마을앞의 넓은 모래밭에 돌맹이가 많았고, 김이 많이 채광되어 삭금이 삭그미라 하다가 하루 아침에 많은 김을 채광할 수 있다고하여「삭금」이라 불리었으며 마을앞을 통과하는 도로를「황금선」이라 부르고 1939년 개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진목리」에서「진목」 다음으로 큰 마을이라 하여 행정구역 정리시「이진목」이라 칭하고 있다. 해안에 인접된 마을이나 1970년대에 덕촌농장을 간척한 후로 농어업 지대이며 옛날에는 자지포 해태가 생산되었는데 장흥군에서는 제일 맛이 좋은 해태를 생산하였다한다. 마을입구에 200년 가량된 팽나무가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로 마을을 가꾸고 있다.
◆ 회진면 진목리 안삭금마을
해안에 인접된 마을이나 1970년대 덕촌농장을 간척한후로 해태생산을 겸한 농어업지대이다. 1986년 8월7일 군수포괄사업으로 회관 18평을 신설하였다.인구 53세대 105명(남:48명, 여:57명)으로 김해김씨, 경주이씨, 인천이씨,기타 성씨 들로 성촌 되었으며, 전답은 전 : 0.1㎢, 답 : 0.33㎢, 호당평균 : 7.05㎡이고주업으로는 농수산업을 겸하고 있는 마을이다 . 마을유적으로는 선암전설, 신선이 말을 타고 신성앞산 각씨봉을 찾아갔다는신선암 전설이있다.이장 : 김경호 (011-623-5833)특산물 : 해태 1500년경 경주정씨, 초계최씨, 밀양박씨의 3인이 완도에서 입향하여 경주정씨는 진목으로 최씨는 다른 곳으로 이거하고 밀양박씨가 설기했다하나 훨씬 그 이전에 마을이 형성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후 1700년경 경주이씨가 삭금에서 입향하여 살았다고 한다. 1925년 이덕일이「삭금」에서 사업에 실패한 후 「안삭금리」에 입주하여 금일에 이름. 본래「삭금」의 원마을로 입구 및 가구가 늘어「삭금」의 안쪽에 터를 잡게 되었는데「안삭금」이 또는 「안삭그미」로 하다가 「내삭금」이라 칭하였으며 1983년 「안삭금」으로 개칭하였고 1986년 7월1일 내무부 조례승인으로 정식「안삭금」으로 되어 금일에 이름.
◆ 회진면 회진리 이회진마을
성씨 : 경주이씨 ,김해김씨 , 여산송씨, 기타 인구 : 37세대 70명(남 :34명, 여:36명) 전:0.18㎢, 답:0.29㎢, 호당평균:9.59㎡ 이장 : 선형열 (010-2655-0665)주업 : 농수산업특징 : 해안의 포구에 인접되어 있는 마을이나 농업위주의 농어업지대이다.1930년에 본리거주 이성재가 자력으로 60㏊를 간척하여 농장이 형성되어 있고 상류 저수지에는 금잉어가 서식하고 있어 황금 민물낚시터로 유명하다.문화유적 : 경성바위 전설 마을 뒷산의 형국이 용 2마리가 싸우는 모습으로 용이 마을로 내려오면 마을이 망한다 하는데 그 길을 이 바위가 막아준다 하여「경성」바위라 한다. 고려시대 때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 않다. 1800년경초 경주이모씨가 경성바위에 앉아서 마을터를 보니 마을 뒷산은 용두마리가 싸우는 형국이고 앞산은 거북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으로 장차 수군 장수가 태어날 것 같아서 터를 잡았다고하며 「지동」「산저」「선자」를 통털어「회진」이라 하다가 행정구역개편시 분활하여 오늘에 「이회진」이라 칭한다.마을뒷산에 연화도수형의 명당이 있다는 풍수설에 의해 「연월」이라고도 하였다. 이회진 마을은 회진면에서 2km 떨어져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며 원래 연동이란 마을로 불리워 졌다가 지금은 이회진 마을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정자가 아담하게 마을앞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서로 주민들에 뜻을 모아 푸른 장흥가꾸기 일환으로 마을 주변 정자 가꾸기를 추진해 도로변에는 철쭉꽃과 편백나무가 마을앞에 아름답게 피어 알록달록 아름다움 꽃의 향연과 초록의 물결을 이루고 또한 마을앞 저수지에는 노인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연꽃을 가꾸어 팔월에는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사철 꽃이 지지 않는 아름다운 마을로 변모해가고 있을뿐만 아니라 특히, 이청준 작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 되었던 공지산은 주민들의 건강 휴양촌으로써 아름답고 볼거리가 다양한 등산로가 개발되어 관광 명소로 손색이 없을것으로 생각 됩니다.
◆ 회진면 회진리 산저마을
경주최씨 , 경주김씨 , 경주이씨 , 기타 여러 성씨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 : 49세대, 107명 (남:53명, 여:54명)□ 전:0.18㎢, 답:0.22㎢, 호당평균 :6.06㎡ □ 이장 : 최귀홍 (011-646-5637)□ 주업 : 농수산업□ 특징 : 마을 뒤 260m의 공지산이 있는데 측량기점으로 쓰이고 있다.□ 인물 : 이세종(변호사), 이상태(비행사)□ 문화유적 : 솔태거리 전설 : 산저리 동부도상에 예부터 자식이 죽게 되면다음자식과 부모를 위한다는 풍습으로 죽은 자식을 망태에 넣어달아 매는 풍습이 있었다하여 솔태거리 전설이 구전되어오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성촌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상고할 수 없으며 청주한씨인 사경이 조선 후기에 「회진」에서 떨어져 나와 설기하여 성촌되었다 한다.공지산 밑에 위치한 마을이라하여 1936년경에 「산저」라고 칭하였다. ○ 이청준 작자「선학동나그네」의 기초가된 마을로 임권택감독의 100번째 영화「천년학」이 촬영되었던 촬영세트장이 자리잡고있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전 주민의 협동과 단결로 3만여평에 유채밭을 조성하였고 그로인하여 올 봄에는 전국 각지에서 유채꽃을 보기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였다. 천년학의 배경이된 학산(공지산)과 어울려진 유채밭은 제2의 제주도로 변모하였다.
◆ 회진면 회진리 산저마을
경주최씨 , 경주김씨 , 경주이씨 , 기타 여러 성씨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 : 49세대, 107명 (남:53명, 여:54명)□ 전:0.18㎢, 답:0.22㎢, 호당평균 :6.06㎡ □ 이장 : 최귀홍 (011-646-5637)□ 주업 : 농수산업□ 특징 : 마을 뒤 260m의 공지산이 있는데 측량기점으로 쓰이고 있다.□ 인물 : 이세종(변호사), 이상태(비행사)□ 문화유적 : 솔태거리 전설 : 산저리 동부도상에 예부터 자식이 죽게 되면다음자식과 부모를 위한다는 풍습으로 죽은 자식을 망태에 넣어달아 매는 풍습이 있었다하여 솔태거리 전설이 구전되어오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성촌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상고할 수 없으며 청주한씨인 사경이 조선 후기에 「회진」에서 떨어져 나와 설기하여 성촌되었다 한다.공지산 밑에 위치한 마을이라하여 1936년경에 「산저」라고 칭하였다. ○ 이청준 작자「선학동나그네」의 기초가된 마을로 임권택감독의 100번째 영화「천년학」이 촬영되었던 촬영세트장이 자리잡고있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전 주민의 협동과 단결로 3만여평에 유채밭을 조성하였고 그로인하여 올 봄에는 전국 각지에서 유채꽃을 보기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였다. 천년학의 배경이된 학산(공지산)과 어울려진 유채밭은 제2의 제주도로 변모하였다.
◆ 회진면 회진리 선자마을
□ 성씨 : 진주안씨, 전주이씨, 인천이씨, 기타성씨가 상주하고 있다□ 인구 : 46세대 93명(남:46명, 여:47명)□ 전 : 0.11㎢, 답 : 0.07㎢, 호당평균 : 439㎡.□ 이장 : 강신한 (010-4161-6082)□ 주업 : 농수산업, 특산물 :해태□ 특징 : 마을앞 바다에 탱자섬이 있는데 모래와 소나무 숲으로 둘러쌓여 민물시에는 섬이되고 썰물지에는 육지가되는 아름다운 섬이다 지금은 개인 사유지로 되어있다. ○ 전주이씨가 1600년대쯤 설기하였다하며 그후 경주최씨, 경주김씨가 입주하여 성촌하였으며 1981년경 입래 「회진」에 속하던 마을이 행정구역 개편시「선자」라 하였다.○ 마을 뒷산 계욕에 나무가 울창하여 「목골」이라 하다가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마을 지형이 부채모양으로 펼쳐 있다하여「선자」라 칭하고 현재에 이름. ○ 청정해역을 끼고 있는 마을로써 자연산 무공해 식품인 미역, 꼬시래기, 다시마등을 생산 판매하고있다 그로인해 선자에는 타 마을보다 젊은 사람이 많이 상주하고 있다.
◆ 회진면 회진리 동구마을
□ 성씨 : 경주이씨, 김해김씨, 밀양박씨, 기타 가 상주하고 있으며□ 인구 : 145세대 362명(남:185명, 여:177명)□ 전:0.09㎢, 답:0.23㎢, 호당평균 :3.26㎡□ 이장 : 김형상 (010-3602-5981)□ 주업 : 상업 ○ 광산김씨가 조선초기에 바다 부근의 연안을 따라 설기하였고 그후 1554년<조선명원9년>에 전라도 우수영에 속한 수군만호가 보성군 회령면으로부터 이동, 이곳에 동을 쌓아 왜군과 대처한 후 경주이씨, 김해김씨 등이 입주하여 성촌하였다.○ 1554년 전라도 우수영에 속한 수군만호가 이곳에「회령진」이라하고 왜군과 대처한 후 1895년 <고종32년>에 폐하자 그때 성의 이름을 따라「회진」으로 불리어 오다가 가구 및 인구가 늘어나자 1974년 3개 마을로 자체분구<동,서,남>하면서 동쪽에 있다하여 동구라 칭하였고 1981년 장흥군 조례 승인을 얻어 금일에 이름. ○ 회진항을 인접하고 있는 항구 및 상업, 어업, 농업을 겸하고 있는 곳으로 동백리 해수욕장을 연결하는 항구 및 항로이다.○ 완도군 「금일읍」과 「약산면」을 연결하는 장흥군의 유일한 이종 항구이다. ○ 지금은 일종항 공사가 진행중이다
◆ 회진면 회진리 서구마을
□ 성씨 : 경주김씨, 김해김씨, 해남윤씨, 인천이씨, 기타 , 경주이씨등이 상주□ 인구 : 80세대 160명(남:76명, 여:84명)□ 전:0.16㎢, 답:0.35㎢, 호당평균:6.37㎡□ 이장 : 이상문 (011-632-6157)□ 주업 : 농수산업□ 특징 : 바닷가에 자리잡은 포구로 「회령진」 회진성의 옛터로써 회진성의 복원을 진행중에 있다○「대덕읍」에서 회진면으로 분면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의 하나는「회진」(동,서,남구)에서 나오는 어업소득이 높은 것을 들 수 있다. ○ 조선중엽 광산김씨가 설기하였다하나 상고할 수 없고 1554년(명종9년)에 보성군 회령면 으로부터 이동 전라도 우수영에 속한 수군만호의 진으로서 수군의 조련과 왜적에 대처한 요충지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대흥면」의 지역으로 1895년 성이 폐하자「회령진」이라 칭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회진리」라하여「대흥면」에 속하다가 1974년 3개 부락(동,서,남)구로 나눠왔고 1986년 4월1일자로「회진면」으로 속하게 되었다. □ 인물 : 이종덕(초교 교장), 김영달(전 면장)□ 문화유적 : 회진성 : 수군만호의 진으로 마을 뒷산에 축성되었으며 둘레 1.2㎞,높이 4m, 폭 1.8m의 토성 또는 우성으로 왜군의 침입에 대처하였으며 전라도 우수영의 발진기지로 하였으며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시 이곳에서 발진하였다.
◆ 회진면 회진리 남구마을
□ 성씨 : 경주이씨, 김해김씨, 경주김씨, 기타등으로 상촌되어있으며□ 인구 : 170세대 365명(남:174명, 여:191명)□ 전:0.13㎢, 답:0.30㎢, 호당평균:6.14㎡□ 이장 : 이영동 (010-9181-5175)□ 주업 : 농수산업 ○ 광산김씨가 조선초기 설기하였고 그후 1554년(명종구년)에 전라도 우수영에 속한 수군만호가 보성군 회령면으로 이동 이곳에 진을 쌓아 왜군과 대처한 후 경주이씨, 김해김씨 등이 입주하여 성촌하였다.○ 원래 「회진」인데 가구와 인구가 늘어나자 1974년 3개 부락(동,서,남)으로 분류 자체건영해 오다가 「회진」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1981년 장흥군 조례의 승인을 얻어 금일에 이르고 있다. □ 특징 : 1981년 부녀회가 조직되어 상호 부녀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있는 마을로 농수산업을 겸하고 있다. 면관내 경로효진시범 마을로 지정되어 경로사상을 배양하고 가훈갖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물 : 박주건(1군사령부 중령), 박주식(1사단 중령)
◆ 회진면 회진리 덕흥마을
□ 성씨 : 경주이씨 , 밀양박씨, 김해김씨, 기타성씨가 상주하고 있다.□ 인구 : 103세대 215명(남:109명, 여:106명)□ 전:0.18㎢, 답:0.66㎢, 호당평균:7.85㎡□ 이장 : 유영옥 (010-5191-6135)□ 주업 : 농업□ 특징 : 1960년대에 간척사업으로 형성된 관덕농장의 광활한 평야를 끼고 있어 농사가 주업이나 일부 농가는 해태생산도 겸하고 있으며 관덕농장 간척 사업시 취로했던 월남난민 20여 세대가 현지로 이거 생활하고 있다. ○ 정확한 년대는 알 수 없으나 밀양박씨가 관산읍「지정3구」에서 이주하여 설기 하였다하며 그후 경주이씨, 김해김씨 등이 입주 성촌하였다.○ 임진伶?당시 회진성의 밖이라하여 「북리」라 불리었으며 1962년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우환을 없애고자 「덕흥」이라 개명하고 금일에 이름. ○ 인물로는 대덕읍장을 하신 황혁주 읍장님이 계시고○ 농사가 많아 젊은 사람이 많이 살고 있다
◆ 회진면 덕산리 덕산마을
□ 성씨 : 장수황씨 , 김해김씨, 해남윤씨, 기타 성씨가 상주하고 있으며□ 인구 : 96세대 227명(남:105명, 여:122명)□ 전:0.23㎢, 답:0.75㎢, 호당평균:8.99㎡□ 이장 : 황경천 (010-3611-6247)□ 주업 : 농수산업□ 특징 : 장흥군에서 천도교가 제일 먼저 전파된 곳으로 일제치하시에는 많은 독립운동 자금을 각출 송금하였으며 전국 천도교 복교주인 황생주가 거주하다가 타계하였다 ○ 장수황씨가 조선중기에 「덕도」의 섬에 정착하여 설기하였다고하며 「덕도」는 현재의 「덕산」「장산」「신상」이 있으며 1965년 간척사업으로「덕도」와「회진」이 연륙되면서 관덕농장이 생겨 농어업을 겸하고 있다.○ 덕도에서는 가장 큰 산밑에 묘같이 생긴 마을터를 「덕산」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천관산」을 흠모하는 외로운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옥토가 조성되어 큰 소득을 얻고 있으며 소형국위 젖줄이 있어 사계절 수원이 풍부한 마을이다. □ 인물 : 황의철(한양공대 교수), 황주연(육군 중령)□ 농사가 많이 있어 젊은 사람이 많이 있으며 하우스와 청정행역을 끼고 있어 무공해 식품을 채취할뿐아니라 소를 많이키워 마을 소득이 높아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회진면 덕산리 장산마을
□ 성씨 : 남양홍씨, 해남윤씨, 김해김씨, 기타 성씨가 상주해 살고있다□ 인구 : 84세대 177명(남:88명, 여:89명)□ 전:0.30㎢, 답:0.39㎢ 호당평균:6.70㎡□ 이장 : 윤주식 (010-2078-4316)□ 주업 : 농수산업□ 특징 : 부녀회와 청년회가 잘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특히 앞바다 갯벌에서바지락 양식을 하여 여기에서 채취된 바지락으로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 정확한 년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초에 남양박씨가 강진 「작천」에서 이주하여 이곳 마을에 설기하였다하며 그후 해남윤씨 김해김씨 등이 입주, 성촌하였다.○ 마을의 형국이 긴뱀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장사」또는 「장사등」이라 불렀는데 1936년 간척사업으로 연육되자 「장산」이라 개칭, 금일에 이르고 있음.특히 고록원 이세옥이 마을앞의 간척지를 공원하여 주민의 생활이 풍요롭게 되자 많은 가구가 이주해와 성촌을 이루었고 그들의 공적비가 저수지 앞에 세워져있다. □ 인물 : 홍구균(교장), 윤기주(교장)□ 문화유적 : 「수효사」라는 이름의 사찰이 있다.
◆ 회진면 덕산리 노력마을
□ 성씨 : 광산김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기타성씨가 상주해있으며□ 인구 : 81세대 187명(남:103명, 여:84명)□ 전:0.09㎢, 답:0.28㎢, 호당평균 :5.05㎡□ 이장 : 최매섭 (010-8876-5583)□ 주업 : 농수산업, 특산물 : 미역, 각종 어종□ 특징 : 유인도로서는 장흥군에서 유일한 섬이였는데 지금은 다리가 놓아져서육지로 되었다. 농어, 장어를 잡아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농어업을 겸하고 있는 마을이다.○ 노력마을에 명덕교 노룡분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명덕초등학교와통합하여 폐교된 상태이다. ○ 1300년전 진주안씨가 입향 시조로 설기하였다하나 그 후손은 현재 없으며 그후 광산김씨, 김해김씨, 경주최씨 등이 입주 성촌하였다 한다.○ 「장사리」가 뱀 형상과 같고 죽도가 너구리 형국이었는데 뱀이 너구리를 잡아먹기 위하여 오다보니 노룡이 현재의 「노력도」에 위치하고 있기에 뱀이 오지 못하고「죽도」 현 위치에 머물러「노룡」이라 불리우다가 「회진」의 만호 벼슬이 자신의 신분에 해가 될까봐「노룡」을 늙은 노(老)자에 힘력(力)으로 개칭하여 「노력」이라고 하였다. 섬에서 육지로 변하면서 교통이 편리해져 마을주민들도 승용차를 가지고 입출입을하고 있으며 해안도로가 형성되어 마을에서도 주행이 가능하다.
◆ 회진면 대리마을
□ 성씨 : 김해김씨, 경주김씨, 경주이씨, 하동정씨, 기타성씨가 상주하고있다.□ 인구 : 128세대 323명(남:148명, 여:175명)□ 전:0.33㎢, 답:0.51㎢, 호당평균:6.31㎡□ 이장 : 김백운 (010-5399-7787)□ 주업 : 농수산업, 특산물:해태□ 특징 : 지주식 해태건홍 이었으나 그후 부류식으로 건홍하게 된 후 해태가공공장만도 10개소가 설입되어 부촌으로 탈바꿉하고 있다. ○ 조선중엽 하동정인 시삼이 화순에 거주하다 그의 아들 정학동을 래덕도에 단신으로 이주하였고 그후 고씨가 토착하였으나 폐하고 평산신씨와 결혼하여 번손하였으며 당시 원도청(현 대리)에 거주한 후 김해김씨, 경주이씨 등의 순으로 입주하여 현재에 이름○ 고려말 고씨가 토착하여 「큰동리」라 하다가 「원도청」이라 하였고 그 후 마을이 형성되면서 「도청리」라 불리어 오다가 1905년경「대리」로 개칭하여 금일에 이름 □ 인물 : 김재주(항일독립투사)□ 문화유산 : 고살바위 전설 : 고씨가 설기하였으나 큰 홍수로 인하여 고씨가 매몰됨과 동시 마을앞 바다가 매립되어 버렸고 뒤산에는 괴이한 바위가 나타나서 고씨가 멸한 흔적이 남았다하여 「고살바위」라 한다○ 전어바위 전설 : 바다가 매립되면서 전어가 한곳에 몰려 떼죽음을 한곳에 우뚝솟은 바위가 있어 「전어바위」라 하였다. ○ 2008년 10월15일 대리 115-12(하나지)에 전국최초로 해양낚시공원을 조성 개장하였고 산지수산물의 신속한 양육판매를 위해 수산물 위판장을 건립 하였다.
◆ 회진면 신상리 1구 마을
경주김씨, 인천이씨, 밀양박씨, 기타성씨들로 이루어졌으며,인구 : 92세대, 209명(남:104명, 여:105명)전:0.23㎢, 답:0.57㎢, 호당평균:7.4㎡이장 : 김병문 (019-611-5518)주업 : 농수산업, 특산물 :해태특징 : 80년대 까지는 지주식 해태 건홍 이었으나 그 후 부류식으로 건홍하게된 후 많은 해태가 생산되고 있으며 가공공장만도 7개소가 설립되어 있어 부촌으로 탈바꿈하였다. 1600년경 경주김씨가 사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덕도」동편 큰 산기슭에 터를 잡았고 그 후 김해김씨, 인천이씨, 밀양박씨 등이 차례로 입주하여 성촌하면서 바다에서 나오는 소득으로만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 1936년 관덕농장 간척사업으로 농지가 조성되자 부님이 많이 모여 살게 되었다. 일제시대 이전에는「잿몰」「새태골(새(新)터」이란 이름으로 불리어 오다가 해방 후 김병숙이 이장직에 있으면서 「신상리」라 칭하였으며 인구와 가구가 늘어나자 「신상1구」와 「신상2구」로 분류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김가공공장이 있어 많은 해태를 생산하고 풍부한 어족 자원이있는 바다를끼고있어 주민들의 삶이 윤택하다 마을 앞을 끼고있는 해안에는 해안도로가 있어 드라이브코스로 적합하다
◆ 회진면 신상리 2구마을
□ 성씨 : 김해김씨, 청주한씨, 해남윤씨, 기타성씨가 성촌하고있으며□ 인구 : 103세대 251명(남:122명, 여:129명)□ 전:0.19㎢, 답:0.49㎢, 호당평균:6.07㎡□ 이장 : 김대성 (011-466-7379)□ 주업 : 농수산업, 특산물 : 해태□ 인물 : 한승원(소설가) ○ 1500년경 김화고씨가 이곳에 들어와 현재의 고집터에 자리를 잡고 용암산과 용천이 길게 뻗어있어 장래에 큰 인물이 배출될 것이라 판단하고 살았다하며 뒷산 높은 바위가 고씨의 터에 기를 주었다하여 그 후 이곳을 떠난 뒤 청주한씨, 김해김씨, 해남윤씨가 이주하여 성촌을 이루고 금일에 이름○ 앞산이 용형국이라하여 「용암산」이라 하였고 또한 장래에 큰 덕이 온다하여「래덕산」이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후 많은 사람이 운집하여 살게되자 「중촌」이라 불리어오다가 「신상」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지금은 마을 주민들간에「신덕」이라고 개칭하여 불리우고 있으며 군 조례에의해 개칭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해태가공공장이 있어 많은 김을 수확할 수있으며 그로 인해 마을이 부촌으로 되었다. 소설가 한승원씨가 태어난 마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