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영정화
풍문으로 들었소*
아버지 생신날에 아들 내외가 찾아왔다
상을 차린 우리 며느리 기특다
한술 뜨려는 차에
건넛방에 재운 젖먹이가 깨어
배가 고픈지 운다
모유 수유를 고집하는 어린 며느리가 대견타
아버지는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어여, 가서 젖 먹여라
며느리는 그 길로 보따리 챙겨 떠났다
식구들은 황망히 닫힌 문만 바라보다가
생일상은 차가운 울상이 되어 버렸다
집으로 돌아간 아들이 전화한다
성희롱으로 고발한다 어쩐다
폭탄이 되어 터져버린 며느리란다
젖먹이에게 젖 먹이라는 말이
성희롱이라니
누구에게나 있는 젖이지만
먹일 수 있는 젖은 오직 어미지 않던가?
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무슨 말을 골라 해야 하는지
너희들 다 내 젖 먹고 컸다
어머니는 못내 울화가 치밀어 드러누웠다
우리 집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1980년 함중아와 양키스의 노래 제목 인용
떠나니? 아니.*
진실은 너무나 거대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침묵 대신 광기로 피를 흘린다
서늘하고 붉은 단물을 흥건히 흘리는 수박처럼
심장을 찢고 돋아난 날개로 대지를 덮으며
자궁을 찢고 나온 아기를 품에 안고서
피 흘리는 벌거벗은 몸을 잎사귀와 가지로 가렸지
입속에서 토해낸 온갖 오물을 침상에 두고
화살 맞은 뿔이 난 사슴을 숲속에 놓아주었지
미간의 불안을 감추고 날아가는 짙은 눈썹에서
키스를 부인하는 부러진 날개가 다시 추락한다
자해한 흔적을 남겨두고 싶은 그녀는
고집스럽게 응석을 부리는 영원한 관종
익사시킨 슬픔이 헤엄쳐 떠오르면 희열에 압도되어
복부에 갇혀 돌아가고 있는 나침반이 들려주는
색깔의 소리를 항상 듣고 떠나려 한다 말했었지
평온한 연필을 뾰족하게 깎고
언제나 앞을 보는 무한원점까지 간 캔버스
언제까지나 짧고 긴 자화상
그녀는
떠나니? 아니.*
*프리다 칼로의 일기에서
간장*
시간이 숨을 쉬는 동안 물 익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항아리 속에서 듣는 모든 소리는 부질없고 경쾌하다
바닥까지 내려간 어둠은 곰팡이 꽃을 피우고
계절 냄새를 맡은 메주가 소금에 문드러지면
어머니 살도 흐물거려 절인 젓갈인 양 삭아갔다
볕 좋은 날엔 뚜껑을 열고
세월의 구수한 짠 내를 들이키며
짠물의 소리를 듣느라 귀가 빨개진 고추
보면 볼수록 까매지는 눈을 크게 뜬 숯
햇살과 바람 녹인 소금물이 곰삭게 맛 드는 비결은
비밀이지만
세상에 태어나 죽고 사는 것이 비밀이지만
보고 듣고 말하는 것들에 스스로 생채기를 만들었다
골마지가 주름진 틈 사이로 길을 찾을 때면
무위로 깨어나려는 장맛의 소리를 들으려나
일생을 맛 하나로 승부 삼는 간장
몇 방울의 짠맛으로도 단맛이 되는 일상의 요리
살아가는 짠 내도 단내가 될 수 있을
항아리 속에 엎드려 지낸 나날들
잘 삭아 농익는 소리에
짠맛 든 나에게도 단맛 돌날 있겠지
비밀이지만
*제17회 동서문학 은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