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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장 11-19절.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의 석방을 보고 놀람
설교
베드로가 감옥을 경험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4장 5절에 전도하다가 하루 밤 감옥신세를 진 일이 있습니다.
5장 18절에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미움을 사서 옥에 들어갔다가 천사가 이끌어내 준 것을 경험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12장에서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서 다시 세 번째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는 지난 번 보다 더 엄중하게 네 명의 군사 네 패가 지켰고, 감옥도 3중으로 되어 있는 아주 엄중한 감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엄한 경비와 깊은 감옥도 천사에 의해서 다 풀려졌습니다.
11절.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Peter came to himself, he said, "Now I know for sure that the Lord has sent forth His angel and rescued me from the hand of Herod and from all that the Jewish people were expecting."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καὶ ὁ Πέτρος ἐν ἑαυτῷ γενόμενος, εἶπεν
and the Peter to himself having come, said
직역하면 ‘베드로가 자신에게로 돌아와서, 말했다’란 뜻입니다.
‘정신이 들어’에서 동사(γενό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me) 갑자기 제정신이 확 들은 것을 가리킵니다.
‘이르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말했다’는 뜻입니다.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알겠노라 하여
Νῦν οἶδα ἀληθῶς, ὅτι ἐξαπέστειλεν ὁ Κύριος τὸν ἄγγελον αὐτοῦ
now I have known truly, that sent forth the Lord the angel of Him
‘알겠노라’(οἶδα)는 완료형이고(I have known), ‘보내어’(ἐξαπέστειλεν)는 부정과거로서(sent forth) ‘보냈다’는 것을 뜻하므로, ‘주님께서 그의 천사를 보냈다는 것을 내가 이제 참으로 알았다’는 뜻입니다.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καὶ ἐξείλατό με ἐκ χειρὸς Ἡρῴδου καὶ πάσης τῆς προσδοκίας τοῦ λαοῦ τῶν Ἰουδαίων.
and delivered me from hand of Herod and all the expectation of the people of the Jews
‘벗어나게 하신’(ἐξείλατό)은 부정과거(delivered)로서 과거에 확실하게 구출해내신 것을 가리키고, 원형(ἐξαιρέω)은 ‘끄집어내다, 구해내다, 구출하다’(take out, deliver, rescue)는 뜻입니다.
앞에서는(4:21) 백성들이 사도들 편을 들어주어서 산헤드린 공회가 사도들을 처벌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군중심리가 바뀌어서 백성들이 사도들의 처벌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1. 길거리에 나와 보고서야 베드로는 정신이 났습니다.
처음에는 천사의 활동을 꿈을 꾸는 줄 알았으나, 다시 제정신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천사가 활동하는 세계는 우리의 이성과 경험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세계이나 실제적인 세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고 용서받는 체험도 바로 5차원에 속한 것이지만 3차원에 속한 우리들에게 실제적으로 경험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을 때 실제로 내 안에 있는 죄가 녹아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내 안에 있는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신앙인의 실제적인 체험입니다.
또한 실제로 5차원에 속한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재하셔서 두려워하는 자에게 평안을 주시고, 절망한 자에게 소망을 주시고,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지라도 성령님이 임재하셔서 나를 위로하시고 소망과 생명으로 끌어내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12절.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en he realized this, he went to the house of Mary, the mother of John who was also called Mark, where many were gathered together and were praying.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συνιδών τε, ἦλθεν ἐπὶ τὴν οἰκίαν τῆς Μαρίας τῆς μητρὸς Ἰωάνου, τοῦ ἐπικαλουμένου Μάρκου,
Having considered [it] also, he came to the house of the Mary the mother of John, who is called Mark
‘깨닫고’(συνιδώ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고(Having considered) 확 깨달은 것을 가리키고, 원형(σύνοιδα)은 ‘함께 보다, 이해하다, 알다’(see together, comprehend, know)는 뜻입니다.
‘마가라 하는’에서 동사(ἐπικαλουμένου)는 현재분사 수동태로서(is called) ‘마가라고 불리는’이란 뜻입니다.
‘가니’(ἦ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he came) ‘갔다’라는 뜻입니다.
‘마가’는 마가복음의 기록자이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 교회로 사용하는 예배당의 주인이고, 예수님이 12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신 다락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동생인 바나바는 구브로의 밭을 팔아서 예루살렘 교회에 바쳤던 사람이고, 사울을 안디옥 교회의 부교역자로 불러온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이 마가는 베드로가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한 영적인 아들이었습니다(벧전 5:13).
골로새서 4장 10절에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한글 성경에 번역했는데, 이 ‘생질’이란 단어( ἀνεψιός)는 생질이나 조카(nephew)란 뜻도 되고, 사촌(cousin)으로도 번역되는 단어여서, 많은 역본에는 사촌(cousin)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NASB, NIV, ESV, NLT).
그러나 한글성경과 과거에 흠정역(KJV)에는 ‘생질’(sister’s son)로 번역되어 있고, 다른 역본에는 ‘친조카’(son of the paternal uncle of BarNaba)로 번역되어 있기도 합니다(Aramaic Bible in Plain English).
한글 성경에도 개역성경과 개역개정에는 ‘생질’로 번역되어 있고, 새번역과 공동번역에는 ‘사촌’으로 번역되어 있고, 현대인의 성경에는 ‘조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 ‘마리아의 집’은 최후의 만찬이 거행되었던 다락방이었고(막 14:13-15),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의 임재로 진동했던 장소이고(행 4:31), 당시 예루살렘 교회로 사용되던 장소였습니다.
‘마가’는 1차 전도 여행 때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에 동행했다가 중간에 낙오해서 돌아가버렸던 사람입니다(행 15:38-39).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οὗ ἦσαν ἱκανοὶ συνηθροισμένοι καὶ προσευχόμενοι.
where were being many having gathered together and praying
직역하면 ‘그곳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모여’(συνηθροισμένοι)는 완료분사로서(having gathered together) 이미 모인 것을 가리키고, ‘기도하고’(προσευχόμενοι)는 현재분사(praying)로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더라’(ἦσαν)는 미완료 과거로서(were being) 계속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베드로는 제정신이 들자 먼저 예루살렘 교회로 갔습니다.
그곳은 베드로 자신을 위해서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예루살렘 교회는 마가의 다락방으로 유명한 마가 요한의 집이요 그 어머니는 마리아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안의 남서쪽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남동생이 바나바이고, 마가의 외삼촌이 바나바입니다.
이 바나바는 4장에서 가난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구브로에 있는 밭은 팔아서 바친 사람이었고, 나중에 회개하고 예수님 믿는 바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해주고, 또한 바울을 안디옥 교회에 데리고 와서 사역하다가 선교사역을 같이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의 최후의 만찬도 이 예루살렘 교회 마가의 다락방에서 했고, 오순절 날 120명이 기도한 곳도 여기였습니다.
이곳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기도할 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베드로를 구출해주었습니다.
2.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교회에 와 봤는데 기도하는 사람 하나 없고 썰렁하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기도 소리 저기서도 기도 소리 아침에 가도, 점심에 가도, 밤에 가도, 기도하는 소리가 나는 그런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절.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he knocked at the door of the gate, a servant-girl named Rhoda came to answer.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κρούσαντος δὲ αὐτοῦ τὴν θύραν τοῦ πυλῶνος
having knocked then of him the door of the gate
직역하면 ‘그가 그 대문을 두드리자’란 뜻입니다.
‘두드린대’(κρούσαντ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knocked) 과거에 베드로가 마가의 집 대문을 두드린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προσῆλθεν παιδίσκη ὑπακοῦσαι, ὀνόματι Ῥόδη,
came girl to answer, named Rhoda
직역하면 ‘로데라 이름 하는 여자 아이가 대답하러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영접하러’(ὑπακοῦ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answer) 반갑게 영접하려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ὑπακούω)은 ‘듣다, 시중들다, 순종하다 대답하다’(listen, attend to, obey, answer)는 뜻입니다.
‘나왔다가’(προσ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came) ‘나왔다’는 뜻이고, 원형(προσέρχομαι)은 ‘접근하다, 가까이 다가가다, 다가오다’(approach, draw near, come up to, come near)를 뜻합니다.
‘로데’라는 여자 아이의 이름은 ‘장미’라는 뜻인데, 유대인들은 대개 여자를 문지기로 세웠습니다(요18:16).
1. 전부 기도하고 있었는데 베드로가 두드리는 대문 소리를 듣고 베드로 아닌 다른 성도가 기도하러 늦게 온 줄 생각하고 로데라고 하는 처녀에게 대문을 열어주라고 심부름 키고 어른 성도들은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던 성도들은 베드로가 왔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않았던 것입니다.
3차원의 사람들이란 다 이렇습니다.
그래서 심부름하는 로데라는 여자 아이가 문을 열기 위하여 대문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누구냐고 묻자 베드로가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 아이는 너무 기쁜 나머지 대문 열 생각을 못하고 그냥 기도하는 성도들에게로 뛰어 가버렸습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대문 열 생각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14절.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she recognized Peter's voice, because of her joy she did not open the gate, but ran in and announced that Peter was standing in front of the gate.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καὶ ἐπιγνοῦσα τὴν φωνὴν τοῦ Πέτρου
and having recognized the voice of the Peter
‘알고’(ἐπιγνοῦσα)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ecognized) 확실히 인식한 것을 가리킵니다.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ἀπὸ τῆς χαρᾶς οὐκ ἤνοιξεν τὸν πυλῶνα, εἰσδραμοῦσα
from the joy not she opened the gate, having run in
직역하면 ‘기뻐하여 그녀가 문을 열지 않았고, 달려 들어가’란 뜻입니다.
‘열지 않았고’에서 동사(ἤνοιξεν)는 부정과거로서(she opened) 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달려 들어가’(εἰσδραμοῦσα)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un in) 안으로 달려 들어간 것을 뜻합니다.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δὲ ἀπήγγειλεν ἑστάναι τὸν Πέτρον πρὸ τοῦ πυλῶνος.
but she reported to have stood the Peter before the gate
직역하면 ‘그러나 베드로가 문 앞에 서 있다고 그녀가 보고했다’는 뜻입니다.
‘섰더라’(ἑστάναι)는 완료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stood) 이미 서 있는 것을 가리키고, ‘하니’(ἀπήγγειλεν)는 부정과거로서(she reported) 확실하게 보고했다는 뜻입니다.
1. 이 여자 아이는 베드로의 목소리를 듣고는 얼마나 놀라고 기뻤던지 대문 여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기도하던 분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즉 기도하는 분들만 신경을 쓰고 있고, 정말 베드로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로데라는 여자 아이가 베드로 석방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고 말했습니다.
15절.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y said to her, "You are out of your mind!" But she kept insisting that it was so. They kept saying, "It is his angel."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οἱ δὲ πρὸς αὐτὴν εἶπαν, Μαίνῃ.
they now to her said, You are mad
직역하면 ‘이제 그들이 그녀에게 말하기를, 네가 미쳤다고 했다’는 뜻입니다.
‘말하되’(εἶπ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said) 단호하게 말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네가 미쳤다’(Μαίνῃ)는 현재형이고(You are mad), 원형(μαίνομαι)은 ‘미쳤다, 미친 사람처럼 말하다’(be mad, speak as a madman)는 뜻입니다.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ἡ δὲ διϊσχυρίζετο οὕτως ἔχειν.
she but kept insisting so to be
직역하면 ‘그러나 그녀는 그러하다고 주장했다’는 뜻입니다.
‘그러하다고’에서 동사(ἔχ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be), ‘주장했다’(διϊσχυρίζετο)는 미완료 과거로서(kept insisted)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을 뜻하고, 원형(διϊσχυρίζομαι)는 ‘확실하게 단언했다, 강조하면서 주장했다’( affirm confidently, assert emphatically)는 뜻입니다.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οἱ δὲ ἔλεγον, Ὁ ἄγγελός ἐστιν αὐτοῦ.
they but kept saying, the angel it is of him
직역하면 ‘그러나 그것은 그의 천사라고 그들이 계속 말했다’는 뜻입니다.
‘천사라’에서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이고(it is), ‘말했다’(ἔλεγον)는 미완료과거로서(kept saying) 계속 말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의 천사’란 말은 모든 사람은 그를 섬기는 개인적인 천사가 다 있다는 믿음을 표현한 말입니다. (마 18:10, 히1:14)
뿐만 아니라, 때때로 그 천사는 자신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고, 그 천사가 돌보는 사람과 모습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NIV-SB 1669.
1. 베드로가 왔다고 그러니까 “네가 미쳤다”고 그랬습니다.
지금 누가 돌아오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네, 베드로가 돌아오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막상 여자 아이가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고 말하니까, 기도하던 사람들이 베드로의 석방을 믿지 못하고, 여자 아이에게 ‘네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자 이 여자 아이가 <아니예요. 정말 왔어요. 내가 분명히 들었어요>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한발 양보를 해서 그러면 베드로의 천사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기도하던 성도들은 베드로의 갑작스러운 석방을 믿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자기들의 사고방식대로 석방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지요.
즉 기도하던 사람들은 아마 헤롯 아그립바 왕의 마음이 바뀌었거나 죽었거나 무슨 지진이나 불벼락 같은 것이 떨어져서 베드로가 석방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던 성도들은 앞에서 말한 대로 사도행전 5장 18절에서 천사가 투옥된 사도들을 석방시켜준 사건을 기억하고, 이처럼 천사의 도움으로 베드로가 석방될 수 있음을 기대하면서 기도했어야 합니다.
2. 여기서 우리는 자기가 기도한 것을 믿지 않는 우리들의 불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데 있는 것보다는 자기가 기도한 내용을 믿지 않는 데 있습니다.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예화가 있습니다.
가뭄이 극심했습니다.
온 동네가 목말라 있었습니다.
기우제를 드리고 백방의 방법을 다하지만 길이 없었습니다.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어느 장로님의 가정에서도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그 장로님이 외출하려고 하니까 아들이 <아버지 우산> 그랬습니다.
“야 무슨 우산이냐? 이렇게 날이 좋은데.”
“아버지 지금 비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잖아요.”
그 아들이 아버지한테 우산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들은 어리고 순수해서 비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그대로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도 안 믿습니다.
우산을 가지고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실제적인 모습이 여기에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안 믿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돈을 믿습니다.
결정인 순간에 사람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5-8절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말아라. 진실성이 없는 주문 같은 중언부언하는 기도 하지 말아라’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가복음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베드로가 잡혀들어 갔을 때 베드로가 나오기를 기도했으나 하나님이 그렇게 빨리 응답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응답이 안 될 것이라는 그런 믿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급할 때는 급하게 응답하시고 급하지 않을 때는 급하지 않게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때는 ‘왜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는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만 하는가?’하고 조급해합니다.
마치 엘리야가 기도할 때 하늘의 구름 한 조각 없는 것을 보는 것같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그런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자주 들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75세에 부름을 받아서 이삭을 낳을 때가 백 세였습니다.
25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몇 번 듣지 않았습니다.
이삭을 주시리라고 말씀 들은 후로, 그 말씀을 붙들고 10년을 살았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우리에게 경험과 지식과 지혜와 모든 판단하는 능력을 주어서 우리가 그것을 잘 사용하도록 감동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여 순간마다 성령님과 동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과 판단을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3. 또 한 가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로데>라는 여자아이가 가진 기쁨입니다.
이 여자아이는 기도의 응답으로 베드로가 석방된 것을 보고, 미쳐 대문 열 것도 잊어버리고 너무나 기뻐서 뛰어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기쁨이 우리들의 삶 중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마치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수가성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너무나 기쁜 나머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뛰어 들어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외친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소망 없는 인생으로 쓰레기처럼 살고 있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쁨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그토록 핍박이 심하고 가난했지만, 이 기쁨이 늘 함께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서 성령 강림 사건 직후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1절에서 핍박 중에서도 기뻐하면서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8장 8절에 사울의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전도함으로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39절에는 빌립 집사가 광야에 나가서 구스 내시를 전도함으로 내시가 기쁨으로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에서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회개함으로써 온 유대 교회와 갈릴리 교회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고 성령님의 위로로 부흥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는 고넬료의 가정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 받으므로 이 기쁨이 넘쳤고, 사도행전 11장에는 안디옥에 사는 이방인들이 예수님 믿고 이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12장에서는 로데라는 여자아이가 기도 응답을 받고 이 놀라운 기쁨을 가졌습니다.
16절.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Peter continued knocking; and when they had opened the door, they saw him and were amazed.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ὁ δὲ Πέτρος ἐπέμενεν κρούων·
the but Peter continued knocking
직역하면, ‘그러나 베드로가 문 두드리는 것을 계속했다’는 뜻입니다.
‘문 두드리기를’(κρούων)은 현재분사로서(knocking) 계속 두드리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계속했다’(ἐπέμενεν)는 미완료과거로서(continued) 계속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ἀνοίξαντες δὲ, εἶδαν αὐτὸν καὶ ἐξέστησαν.
having opened [it] then, they saw him and were amazed
직역하면, ‘문을 열어서, 그들이 그를 보았고, 놀랬다’는 뜻입니다.
‘문을 열어’(ἀνοίξ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이고(having opened), ‘보고’(εἶδ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saw) 확실하게 보았다는 뜻이고, ‘놀라는지라’(ἐξέστησαν)도 부정과거로서(were amazed) 깜짝 놀랐다는 뜻이고, 원형(ἐξίστημι)은 ‘놀라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깜짝 놀라다’ (astonish, amaze, am out of my mind)는 뜻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철야 기도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석방을 보고 정신이 나갈 정도로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던 성도들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 것은 불신앙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을 보고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어야 합니다.
17절.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motioning to them with his hand to be silent, he described to them how the Lord had led him out of the prison. And he said, "Report these things to James and the brethren." Then he left and went to another place.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κατασείσας δὲ αὐτοῖς τῇ χειρὶ σιγᾶν
Having shaken then to them the hand to be silent
직역하면 ‘그러자 조용하도록 그들에게 손을 흔들면서’란 뜻입니다.
‘조용하도록’(σιγᾶν)은 부정사형 동사이고(to be silent), ‘흔들면서’(κατασεί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haken) 단호하게 흔든 것을 가리키고, 원형(κατασείω)은 ‘흔들다’(shake)는 뜻입니다.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διηγήσατο αὐτοῖς πῶς ὁ Κύριος αὐτὸν ἐξήγαγεν ἐκ τῆς φυλακῆς,
he related to them how the Lord him brought from the prison
직역하면 ‘어떻게 주께서 그를 옥에서 나오게 하신 것을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나오게 하던’(ἐξήγαγεν)는 부정과거로서(brought) 과거에 극적으로 나오게 하신 것을 가리키고, ‘말하고’(διηγήσατο)도 부정과거로서(he related) 그가 확실히 말했다는 뜻이고, 원형(διηγέομαι)은 ‘완전하게 말하다, 세세히 말하다’( relate in full, describe)이란 뜻입니다.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εἶπέν τε, Ἀπαγγείλατε Ἰακώβῳ καὶ τοῖς ἀδελφοῖς ταῦτα.
he said then, report to James and the brothers these things
직역하면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것들을 알리라고 그가 말했다’는 뜻입니다.
‘전하라’(Ἀπαγγείλατ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report) 반드시 분명하게 전하라는 뜻이고, ‘하고’(εἶπέν)는 부정과거로서(he said) 그가 분명하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여기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이고, 그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의장과 같은 지위에 있었습니다(행 15:13, 갈1:19).
사도 야고보(사도 요한의 형)는 앞의 2절에서 헤롯 아그립바 왕에게 처형당했습니다.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καὶ ἐξελθὼν, ἐπορεύθη εἰς ἕτερον τόπον.
and having gone out, he went to another place
‘떠나’(ἐξελθ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gone out) 훌쩍 떠난 것을 가리킵니다.
‘가니라’(ἐπορεύθη)는 부정과거로서(he went) 홀연히 간 것을 가리킵니다.
이 때 베드로가 간 곳은 예루살렘의 다른 장소가 아니었을 것이고, 아마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사는 어떤 곳으로 갔을 것입니다. Baker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다른 곳으로 피신했습니다.
18절.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when day came, there was no small disturbance among the soldiers as to what could have become of Peter.
날이 새매 군인들은—-적지 않게 소동하니
Γενομένης δὲ ἡμέρας, ἦν τάραχος οὐκ ὀλίγος ἐν τοῖς στρατιώταις,
having come now day, there were disturbance no small among the soldiers
직역하면 ‘낮이 되매, 군사들 가운데 적지 않는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새매’(Γενομένη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me) 확연히 날이 샌 것을 가리키고, 원형(γίνομαι)은 ‘되다, 일어나다’(become, happen)는 뜻입니다.
‘소동하니’는 ‘소동이 있었다’는 뜻이고, 동사(ἦν)는 미완료 과거로서(there were) 소동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τί ἄρα ὁ Πέτρος ἐγένετο.
what then the Peter became
‘알지 못하여’는 의미상 첨가한 것입니다.
‘되었는지’(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became) 확실히 된 것을 가리킵니다.
1. 이전 5장 18절에서도 천사를 통해서 베드로가 석방된 것을 경험했으므로, 이때 군인들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소동만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19절.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Herod had searched for him and had not found him, he examined the guards and ordered that they be led away to execution. Then he went down from Judea to Caesarea and was spending time there.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Ἡρῴδης δὲ ἐπιζητήσας αὐτὸν, καὶ μὴ εὑρὼν,
Herod then having sought after him, and not having found
‘찾아도’(ἐπιζητή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ought after) 과거에 철저히 찾은 것을 뜻하고, ‘보지 못하매’에서 동사(εὑρὼν)도 부정과거로서(having found ) 전혀 보지 못한 것을 가리킵니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ἀνακρίνας τοὺς φύλακας, ἐκέλευσεν ἀπαχθῆναι,
having examined the guards, he commanded (them) to be led away [to death]
‘심문하고’(ἀνακρίνας)도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examined) 엄히 심문한 것을 가리키고, ‘죽이라’(ἀπαχθῆ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로서(to be led away) 반드시 죽게 하라는 것이고, 원형(ἀπάγω)은 ‘데리고 가다, 옮기다, 취하여 가다’(lead away, carry, take away)는 뜻입니다.
원래 이 단어는 ‘체포하다, 투옥시키다’( to arrest, to lead off to prison)는 뜻인데, 유스티아누스 법전에 의하면 죄수를 도망가게 한 파수군은 죄수가 돌아올 때까지 옥에 갇히는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Bruce by Linguistic Key)
‘명하니라’(ἐκέλευσεν)는 부정과거로서 엄히 명령했다는 뜻입니다.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καὶ κατελθὼν ἀπὸ τῆς Ἰουδαίας εἰς Καισάριαν, διέτριβεν.
and having gone down from the Judea to Caesarea, he stayed [there]
직역하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그가 머물렀다’는 뜻입니다.
‘떠나’(κατελθ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gone down) 과거에 확실히 떠나간 것을 가리키고, ‘머무니라’(διέτριβεν)는 미완료 과거로서(he stayed) 계속 머무른 것을 가리킵니다.
‘가이사랴’는 원래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가 유대 총독을 임명하지 않고 있을 때는 헤롯 아그립바 왕이 가이사랴를 수도로 사용했습니다. (행 8:40, 10:1). NIV-SB
1. 완악한 헤롯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회개할 줄 모르고 죄 없는 파수꾼들만 죽이라고 했습니다.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애굽 왕 바로와 같이 완악한 헤롯의 모습입니다.
파수꾼은 책임을 다 했고, 자기 능력으로 천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헤롯이 가이사랴로 간 것은 로마 황제의 생일 축하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다음에 보는 대로 회개하지 않는 헤롯이 자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으므로 하나님의 징계로 죽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기도하고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고,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인도를 따라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