黎國,又作耆國、飢國, 先秦小型諸侯國,在今山西省黎城縣東北。一說在山西省長治市西南。
여국은 또한 기국(耆國), 기국( 飢國)이라고 하는데 선진(先秦)시대에 소형 제후국이었는데, 현재의 산서성 여성현 동북에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산서성 장치시 서남쪽에 있었다고 한다.
商朝末年 (帝辛晚期) 祁姓黎國被周武王所滅並遭到了周人的屠城, 祖伊向帝辛告急而商代史官作《西伯戡黎》。
상나라 말년(제신 만기)에 기성 여국(祁姓 黎國)이 주무왕에게 멸망하여 주나라 사람들에게 도성을 빼앗기니, 조이(祖伊, 제신의 신하)가 제신(帝辛)에게 위급함을 고하니 상나라 때 사관이 《서백감여(西伯戡黎)》를 지었다.
[참고영상 : 家苑 이윤숙 : 庚衍(경연학당: 경연서원) | (제3권16편) 家苑「서경대관」 商書 제16 西伯戡黎(서백감려)편 - Daum 카페]
《 今本竹書紀年》記為帝辛四十四年西伯發(周武王)伐黎。周武王分封畢公高之後重建姬姓黎國。春秋時期,黎侯被狄人逼迫,遷居衛國,黎國的臣子作《式微》《旄邱》兩首詩,責備衛國不能救黎國。
<금본죽서기년(今本竹書紀年)>에는 기록되기는 '제신(帝辛, 제위 : 前1075年—前1046年 ) 44년(前 1032年) - 에 서백발(주무왕)이 여국을 정벌하였다' 하였다.
주무왕은 필공고의 후손을 봉하여 여국을 다시 세웠다.
춘추시기에 여후가 적인(狄人)의 핍박을 받아 위국(衛國)으로 옮겨 거했는데, 여국의 신하가 《식미(式微)》《모구(旄邱)》 두 수의 시를 지었는데, 위국( 衛國)이 여국을 구하지 아니함을 책망하였다.
[참고자료 : 시경詩經 國風 邶 11. 式微(식미) : 네이버 블로그 ]
[참고자료 : 시경詩經 國風 邶 12. 旄丘(모구) : 네이버 블로그 ]
公元前594年, 晉國滅 赤狄潞氏 ,重立黎國,之後黎國之地併入晉國。
기원전 594년, 진국(晉國)은 적적로씨(赤狄潞氏)를 멸하고, 다시 여국을 세웠으나, 그 후 여국의 땅은 진나라로 병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