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땡볕에는 오리알도 익는다."는 중국 속담처럼 초여름의 햇볕은 뜨겁기만 하다. 도시의 콘크리트 숲에서 맞는 더위는 유난히 숨이 ㅁ막히지만, 푸른 산과 계곡을 달리는 바람은 계절의 더위마저도 시원한 청량감으로 바꾸어 놓는다. 바이크 손대장의 제안으로 현충일 연휴를 맞아 평창으로 힐링 라이딩을 떠나기로 했다. 그는 평소에도 답답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자연에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힐링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여행에는 바이크 손대장을 비롯하여 아스트라전(전인구), 모델한(한영성), 그리고 나 스머프차(차성근) 네명이 함께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밴에 싣고 영종고속도로를 달렸다. 평창IC를 빠져나와 장평버스터미널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30분경 이었다. 서울과는 전혀 다른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고 기온은 21도 정도였다. 자전거를 타기에는 그야말로 최상의 날씨였다. 오전 9시 40분, 바이크 손대장을 선두로 금당계곡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장평교를 지나 백옥삼거리에서 좌회전하자 흥전천을 따라 금당계곡로가 이어졌다. 백옥포교를 지나면서 평창강 상류의 아름다운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물줄기와 층층이 솟은 암벽, 그리고 산과 계곡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했다.
자전거 바퀴는 힘차게 굴러갔고,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온몸을 감쌌다. 바람을 깊이 들이마시니 가슴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다. 금당계곡로 곳곳에서는 기암절벽과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유포입구 교차로와 금당교, 어름치 캠프학교를 지나자 작은 봉황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이 바로 금당계곡이다. 계곡 한가운데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 하나가 우리의 발길을 붙잡았다. 바위 위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진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바위에는 봉황대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옛날 어느 사람이 묘자리를 쓰기 위해 이곳의 땅을 파던 중 갑자기 봉황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 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봉황대라 불렀다고 한다. 아직 본격적인 피서철이 시작되기 전이라 계곡은 한적했다. 사람들의 북적임 없이 맑은 물과 산새 소리를 벗 삼아 자연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다. 금당계곡의 여운을 뒤로하고 우리는 벽파령을 향해 다시 페달을 밟았다. 금당계곡로를 따라 약 13,7km를 달린 뒤 중앙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가평초등학교 부근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멈추고 차량으로 이동했다.
약 20분 달려 가리왕산 산림생태관리센터에 도착했다. 하지만 입구에는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관리센터 직원에게 사정을 물어보니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며, 우리가 벽파령으로 가는 길도 잘못 들어섰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아쉬웠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90년 이상 된 적송, 이른바 금강송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중반에 씨앗을 뿌려 자라난 나무들이라고 한다. 울창한 숲 너머로 중왕산의 웅장한 모습이 바라보였다. 우리는 그곳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다시 차를 돌렸다. 이번에는 벽파령 방향으로 제대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몽골리안파크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갔지만 이곳에도 어김없이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후 1시 무렵이었다. 벽파령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차량으로 이동해 바이크 손대장이 인터넷으로 찾아둔 송어의 횟집으로 향했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식당에 도착했다.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운치가 넘쳤고, 양식장에서는 크고 작은 송어 수십만 마리가 떼를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이름난 식당답게 방마다 손님들로 가득했다. 점심 메뉴는 송어회와 송어탕수어, 송어매운탕이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최고의 별미는 단연 송어회무침이었다. 싱싱한 송어회에 각종 채소와 초고추장, 간장, 다진 마늘, 콩가루를 넣고 버무려 먹으니 입안에서 고소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어우러졌다. 연하고 쫄깃한 송어회의 식감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송어탕수어도 버섯과 당근, 양파. 오이 등을 곁들여 나름대로 색다른 맛을 선사했다. 평창에 다시 오면 꼭 이집에 들러야겠다. 누구랄 것도 없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오후 3시 30분, 우리는 다시 차량에 올라 뇌운계곡으로 향했다. 42번 도로를 따라 평창군청과 방림삼거리를 지나 뇌운계곡으로 들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계곡에서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맑은 물과 푸른 산, 그리고 여유롭게 계곡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여행의 마지막 하일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영월의 한반도 지형이었다. 오후 4시 30분경 우리는 42번 31번, 82번, 88번 도로를 따라 한반도 지형을 향해 달렸다. 가는 길에 마루펜션 캠핑장에 잠시 들러 주천강변의 비치파라솔 아래 앉았다. 아스트라전이 준비해 온 말레이시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점심 휴식을 취했다.
향긋한 커피향이 계곡의 바람과 어우러졌다. 하루종일 이어진 라이딩과 여행의 피로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다. 다시 길을 재촉했다. 뇌운계곡에서 한반도 지형 입구까지는 약 50km 남짓 달려 영월군 주천면 부근을 지나 서강로에 접어들자 군등치가 나타났다. 군등치에는 단종의 슬픈 유배길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조 2년인 1457년 6월 28일, 어린 단종이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가던 길에 이 험준한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절벽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힘겹게 오르던 단종이 "이 고개는 무슨 고개인데 이다지도 험한가?"라고 묻자 수행하던 사람이 "노산군께서 오르시니 군등치라 하지요"라고 대답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후 이 고개를 군등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길가에는 단종 유배길과 충절의 길을 기념하는 비석도 세워져 있어 이 길을 지나며 역사의 흔적을 되새겨 볼 수 있었다. 한반도 지형 진입도로에 도착한 우리는 마지막 구간을 자전거로 달리기로 했다. 선암마을 주차장까지 약 3km. 그중 2km 가량은 오르막길이었고 경사도 약 11도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길이었다. 그러나 오늘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다시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마침내 오후 5시 50분경 선암마을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약 1km를 걸어야 했다. 가족 단위 관광객과 연인들이 전망대를 찾고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선 순간 우리 앞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굽이쳐 흐르는 서강이 만들어낸 지형이 마치 우리나라의 한반도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산과 강이 어우러진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강물이 굽이굽이 흐르면서 바깥쪽의 암석을 오랜 세월 깎아 절벽을 만들고, 안쪽에는 흐름이 느려지면서 모래가 쌓이는 자연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금의 독특한 지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연은 참으로 신비롭다.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이 한순간의 풍경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멀리 바라보니 우리가 당초 벽파령에서 보고 싶었던 가리왕산의 모습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비록 벽파령에 오르지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가리왕산을 볼 수 있어 아쉬움을 조금 달랠 수 있었다. 오후 7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평창 힐링투어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영동고속도로 여주휴게소에 잠시 들려 호두과자와 튀긴 감자로 간단하게 저녁을 대신했다. 오늘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평창을 달렸지만, 사실은 아름다운 자연과 우정을 타고 행복을 향해 달렸던 것은 아닐까. 바이크 손대장, 아스트라전, 모델한 오늘 정말 즐거웠다. 다음에도 우리 함께 멋진 길을 달리며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보자. Have a nice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