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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산악회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장구목이 → 장구목이 임도 → 정상 삼거리 → 가리왕산 -(1시간 30분)→ 마항재 -(50분)→ 중왕산 -(20분)→ 1,160 고개 -(1시간 10분)→ 도치동 첫 민가 -(30분)→ 하안미리(5리 배일동) 버스 종점' 6시간 코스를 탐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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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加里旺山]
높이: 1,562m
위치: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평창군 진부면
정선군과 평창군에 걸쳐 있는 정선의 진산인 가리왕산은 산이 높고 웅장하다. 능선이 끝없이 펼쳐진 초원지대로 육중하고 당당하며 자작나무와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5월 하순께에는 산기슭 곳곳에 취나물, 두릅 등 수십 종의 산나물이 돋아나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가리왕산은 전형적인 육산이다. 산 능선에는 고산식물인 주목, 잣나무, 단풍나무 등 각종 수목이 울창하다. 가리왕산은 벨패재(일명 벽파령), 성마령, 마전령 등 수많은 고개로 이루어져 있고, 갈왕산이라고도 불리며 유명한 정선아리랑의 고장이기도 하다.
가리왕산에는 8개의 명승이 있다. 맑은 날 동해가 보인다는 가리왕산 상봉의 망군대, 백발암, 장자탄, 용굴계곡, 비룡 종유굴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제1경인 망운대가 으뜸이다. 상봉 망운대에 서면 오대산, 두타산, 태백산, 소백산, 치악산 등의 명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상 부근에는 주목과 천연 활엽수가 숲을 이루고 있다.
숙암 방면 입구는 약 4㎞ 구간에 철쭉이 밀집 자생하고 있고, 북쪽 기슭으로 흐르는 장전계곡과 남쪽으로 굽이치는 회동계곡이 있다. 깎아지른 암벽과 기암괴석, 울창한 수풀, 맑고 시원한 계류가 어우러진 회동계곡 입구에 가리왕산 자연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가리왕산 자연 휴양림 계곡이 절경이고 골짜기를 가로질러 놓인 3개의 구름다리가 운치가 있다.
인기 명산 51위 (2010~2011 자체 통계 순)
가리왕산은 능선이 끝없이 펼쳐진 초원지대로 5월 하순께 곳곳에 산나물이 지천을 이룬다. 여름 산행지로 6~7월에 인기가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가리왕산 8경이 전해질만큼 경관이 수려하고, 활엽수 극상림이 분포해 있으며, 전국적인 산나물 자생지로 유명. 특히 백두대간의 중심으로 주목 군락지가 있어 산림유전자원보호림과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는 등 경관, 생태적으로 가치가 큰 점에서 선정되었다. 동강(東江)에 흘러드는 오대천과 조양강의 발원지이며 석회암 절리 동굴인 얼음동굴이 유명하다. 산의 이름은 그 모습이 큰 가리(벼나 나무를 쌓은 더미)같다고 하여 유래되었다. - 한국의 산하
중왕산[中旺山]
높이: 1,376m
위치: 강원 평창 대화면, 평창 진부면
일명 주왕산이라고도 한다. 태백산맥의 중앙산맥에 속하는 산으로 북쪽에 백석산(白石山, 1,365m), 서쪽에 중대갈봉(1,013m), 남쪽에 청옥산(靑玉山, 1,256m), 동쪽에 가리왕산(加里旺山, 1,561m)·중봉(中峰, 1,433m) 및 하봉(下峰, 1,380m) 등이 솟아 있다. 동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오대천(五臺川)으로 흘러가고,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회동리를 거쳐 용탄에서 남한강의 본류로 흘러든다. 산 북쪽의 진부면 장전리는 일찍이 화전촌락으로 조사·연구된 지역이며, 서쪽의 대화면 하안미리는 일찍부터 농업지역으로 개발된 곳이다. 정선읍 회동리 일대에 분포하는 소위 회동리 석회암에서는 실루리안 코노돈트(Silurian conodont)가 발견되었고, 이는 우리나라 고생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회동리에서 정선읍 용탄리에 이르는 고위침식면에는 석회암 용식 지형인 돌리네(Doline)가 곳곳에 분포한다. 서쪽의 대화는 과거 서울과 강릉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였으나 영동고속도로 개통 이후 교통 중심지의 기능이 쇠퇴하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월 1일 지방선거일을 맞이하여 당일 산행을 위해 그 전에 사전 투표하기로 하고, 천고지 중 갈만한 곳을 찾다가 요즘 늘 이용하는 안내산악회 게시판에서 가리왕산행을 발견했다. 가리왕산이야 평창 동계 올림픽 준비가 막바지를 향해 달리던 2018년 1월 20일 창우, 흥수와 같이 심설 산행[산행기]으로 다녀와 당분간은 다시 갈 계획이 없으나, 가리왕산과 능선으로 이어진 주왕지맥의 주산 중왕산(주왕산)에 오르기 위해 4월 5일 신청했다. 비록 중왕산은 주왕지맥의 주산이기는 하나, 명산 선정 기관 그 어디도 쳐주지 않아, 안내 산악회에서는 전혀 찾지 않는 산이라, 대중교통으로 다녀올 방법을 모색했으나, 쉽지 않았다. 해서 다른 해결책으로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가리왕산으로 간 다음 능선을 따라 중왕산에 오른 후 귀가는 대중교통으로 하기로 했다. 그래도 전체 비용은 대중교통 즉 버스와 택시 조합에 비하면 싸고, 산행 시간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가리왕산까지는 간다고 해도 날머리인 하안미리 가평초등학교(폐교) 지역이 평창에서도 오지에 속하는지라, 가까운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자주 있는 게 아니다. 가평초등학교에서 장평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버스 5편 중 오후는 '13:51', '18:16' 두 편에 불과하다. 그중 13시 차야 애초 대상이 아니니, 오후 6시 16분 버스가 유일하다. 산악회 계획에 따르면 산행 시작 시각이 10시고, 대략 코스를 검토해본 바 6시간이면 충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말인즉 16시면 산행이 끝난다는 얘기다. 고로 가게 하나 없는 오지에서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2시간 동안이나 멍때리고 있어야 한다. 해서 그나마 교통이 편리한 가까운 곳을 찾아보니, 4km 거리에 '하안미사거리'가 있고, 거기서 이용할 수 있는 버스가 최소 4대가 있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지도를 확인해본바 금상첨화로 서너 개의 식당도 있다. 식당이 문을 열었으면 버스를 기다리는 대략 1시간 동안 하산주를 마실 수 있다. 최소 하나는 영업하겠지?!
일기예보에 의하면 산행 당일 날씨는 맑고 화창해 조망은 좋으나, 꽤 더울 거로 예상되어 얼음물을 많이 준비하고, 먹거리는 평소와 같이 준비한다. 물론 귀경은 산악회 버스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버스 내에서 사용하는 물품이 들어 있는 보조 파우치는 가져가지 않는다. 충전기는 열외! 그리고 오지 탐험이 될 확률이 높아, 오랜만에 오지용 칼을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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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휴일을 맞아, 평소 토·일과 같이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와 양재로 향했다. 마을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5시 57분 열차를 타는 바람에 양재역에 6시 38분에 도착했다. 산악회 버스 출발까지는 22분이 남았다. 지난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승차장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가 시간에 맞춰 나갔으나, 굳이 그럴 이유가 없어 바로 나가기 위해 위로 올라가 개찰구를 통과하며 앞을 보니, 청과물 가게에서 틈새 상품으로 김밥과 떡을 사고 있는 등산객이 보였다. 오늘은 이른 새벽에 문을 열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대단하다.
12번 출구로 양재역을 빠져나와 마을버스 정류장을 지나며 보니, 서너 명의 등산객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규모의 안내산악회 두 곳이 정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어 버스 출발 시각인 아침 6시 50분부터 7시 10분까지는 등산객으로 마을버스 타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는데, 어느 순간 등산객이 많이 줄어 뭔 일인가 궁금했었다. 이후 그중 한 산악회 게시판에서 산행을 검토하다가 민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건너편으로 정차 장소를 옮겼다는 걸 알았다. 하긴 휴일 아침에는 양재역 12번 출구부터, 국립외교원 앞을 지나, 버스정류장까지 각지로 떠나는 서너 개 산악회의 20여 대의 버스가 엉켜 일대 혼란을 빚으니, 민원이 없는 게 이상할 수도. 한가한 마을버스 정류장을 지나,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해 보니, 산악회 버스 출발 시간에 비해 좀 이른 시각이지만, 많은 등산객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에서 걸어 내려오거나, 택시, 자가용으로 속속 도착하는 등산객을 구경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도가 목적지라 다른 곳보다 10분 이른 6시 50분에 외교원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줄지어 들어왔다. 어느 산인지, 앞창의 LED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지리산 천왕봉이다! 그것도 1, 2호 차 두 대다. 아니, 이 시간에 출발해서 천왕봉 왕복이 가능한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폰으로 산악회 게시판에 들어가 산행 계획을 확인해보고 더 놀랐다. 코스는 예상대로 중산리에서 시작해 천왕봉, 장터목을 거쳐 다시 중산리로 하산하는 12km 조금 넘는 환종주다. 거기에 주어진 시간이 6시간 30분, 그래야 당일 서울로 돌아올 수 있을 테니. 6시간 30분 만에 천왕봉 환종주가 가능한지, 내가 쓴 몇 개의 산행기를 찾아 같은 코스로 천왕봉 도착에 걸린 시간을 확인해보니, 모두 4시간 내외다. 고로 난 절대 제시간에 마감할 수 없는 산행이다. 혹시 나만 그런가 해서 국립공원공단에서 만든 지도를 확인했다[기사]. 9시간을 책정하고 있다. 그럼 나도 빠른 축에 속한다. 그런데, 버스 두 대를 채우고도 좌석이 모자랐다는 것에 그 모든 등산객에게 진심의 경의를 보냈다. 그리고 솔직히 낙오자 없이 마감했는지 궁금하다???
원거리 산행을 위한 버스 4대가 떠나고 좀 있으니, 7시 출발 버스가 줄지어 들어온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내가 타야 할 '갈왕산(가리왕산)'행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백두대간 '늦은목이~고치령' 산행 때 버스를 놓쳐 못 갔던 경험이 있어 민감하게 버스 앞창의 목적지를 확인했으나 없다. 해서 늦기 전에 인솔 대장에게 전화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몇 대의 버스가 더 들어와 다가가 보니, 갈왕산행도 있다. 내가 타야 할 버스는 매번 출발 시각인 7시가 지나 도착하는 이유가 뭘까? 만원의 버스라 배낭을 짐칸에 넣고, 패드와 카메라만 들고 버스에 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피곤했는지 잠이 들어 휴게소에서 깼다. 딱히 할 일은 없었으나,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일렬로 늘어선 관광버스의 목적지가 궁금해 사열했다. 와중에 같은 산을 가는 다른 산악회를 발견하고 반가웠다. 등산방에서 설왕설래했던 바에 따르면, 저기에 최소 ‘돌고래 조’가 타고 있어야 한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휴게소를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다 익히 아는 바이나, 인솔 대장이 쉽지 않은 산행이라고 강조하는 게 조금 걸렸다. 갈왕산 즉 가리왕산은 초행이 아니고, 하산 때 심설에 빠져 조금 고생은 했으나, 장구목이에서 정상까지는 힘들었던 기억이 없는 거로 봐서 표고차가 많아야 700여 미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6시간이라고 했다. 산악회 게시판에는 6시간 30분이다. 당연히 승객 중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그건 겨울용 소요 시간으로 오늘은 6시간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 말을 듣고 지난 가리왕산행을 복기해보니, 정상까지 4.7km에 2시간, 날머리까지 8km에 3시간, 해서 5시간이면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나의 주왕산(중왕산) 코스는 거리나, 등산로 상태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어, 목표 소요 시간을 가리왕산 코스보다 1시간 더 긴 6시간으로 잡았다. 그렇게 결정하고 버스가 진부에 들어서는 순간 휴게소에서 들고 탄 배낭에 모든 걸 때려 넣고,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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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55분경 버스가 장구목이로 들어서는데, 이미 도로 갓길에는 10여 대의 자가용이 주차해 있고, 바로 입구 계곡에는 두 남성이 세족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버스가 정차하는 순간 배낭을 둘러메고, 문이 열리자 바로 차에서 내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등산 앱을 기동했다. 그런데, 빠른 승객은 내가 그 몇 장의 사진을 찍는 동안 이미 산행을 시작하고 있는 게 보였다. 미지의 주왕산으로 달려야 하는 나는, 더 급하나, 인솔 대장이 쉽지 않은 산이라는 말을 확인하기 위해 장구목이의 고도를 확인해보니, 426m, 최소 700m는 넘을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다 갈왕산 해발 고도가 1,561m니, 약간의 오차를 고려하더라도 표고차 1,100m가 넘는다. 사실 대한민국 산 중 산행 들머리와 정상이 1,000m가 넘는 표고차를 가진 산은 그렇게 많지 않다. 고로 인솔 대장이 버스에서 쉽지 않은 산이라고 한 말이 맞다!
올려야 할 고도와 거리 등 필요한 정보를 다 확인한 후 바로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2018년 올랐던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나, 당시는 한겨울이라 계곡이 얼어붙었을 뿐 아니라, 눈에 덮여 그 참모습을 보지 못했다. 해서 각 안내 산악회에서 가리왕산 이끼 계곡을 얘기하며 그 들머리로 장구목이로 하는 것에 약간의 의혹을 품고 있었는데, 비록 다른 산의 이끼 계곡에 비하면 부족한 느낌이 있기는 하나, 이끼 계곡이라 불리는 게 당연했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 급경사의 등산로를 올라가는 산행이라, 힘들고 땀이 쏟아졌으나, 짙은 녹음 속으로 난 길을 따라 옆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를 감상하며 오르자, 어느새 힘든 걸 망각한 자신을 발견했다.
앞선 등산객 몇을 추월해 30분가량 급경사를 오르자 첫 이정표가 나타났다. 정상까지 2.8km, 장구목이에서 1.4km의 거리다. 고로 장구목이에서 정상까지 4.2km다. 내가 알고 있던 4.7km와는 차이가 있다. 해서 당시 산행기를 찾아봤으나, 4.7km의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사용했던 등산 앱을 근거로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정상까지 1/3을 왔다. 소요 시간은 30분. 모든 걸 버리고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시간만 더 가면 정상이다. 그럼 1시간 30분 만에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물론 실제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걸 가능하면 두 시간 내로 줄이는 게 목표지만. 다리를 건너 오른쪽에 있는 이끼 계곡의 모습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기며 올라가, 10시 45분에 2018년 당시 잠깐 쉬면서 스패츠를 착용했던 곳이라 생각되는 곳에 도착했다[산행기]. 이 글을 쓰며 당시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았지만?
1차 목표가 임도에 도착하는 거라, 임도가 보이기만 바라며 위를 보고 가는데, 10시 52분경 저 위로 임도 비슷한 게 있는 거 같아, 신이 나서 올라갔더니, 임도가 아니라, 꽤 널찍한 쉼터다. 두 명의 등산객이 쉬면서 간식을 먹고 있고. 그리고 등산로는 너덜로 바꼈다. 계곡을 따라 난 길이라, 지금까지의 등산로도 너덜이었으나, 그 규모가 달랐다. 오죽하면 지금까지는 없던 목책에 밧줄을 건 안전시설을 설치했겠는가? 그 안전시설에 의지하며 약간 위험하기도 한 너덜을 따라 올라가자 그렇게 보고 싶었던 임도가 나타났다. 그 시각이 11시 4분이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1.6km, 지금까지 온 거리는 2.6km, 걸린 시간은 1시간 9분 정도. 그럼 2시간 이내에 정상에 도착하는 게 가능해 혹시나 하고 임도의 해발 고도를 확인했다. 1,050m, 정상과의 표고차는 500m가 넘는다. 한 시간이 넘게 걸려서 올라온 거리가 2.6km에 달하는 데 올라온 표고는 600m에 불과하다. 고로 남은 거리와 표고를 고려하면 한 시간 내에 올라가기 쉽지 않은 구간이다. 그런데도 일단 목표를 12시 이전에 도착하는 걸로 잡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와중에 등산로도 너덜이라 몇몇 등산객에게 길을 내주며 오르다 보니, 위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도 있었다. 장구목이에서 산행을 시작한 등산객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 10여 대의 자가용과 우리를 포함 두 대의 버스가 있고, 반대편에서 시작한 등산객도 있을 테니, 꽤 많은 등산객이 이 산중에 있어 하산 중인 등산객을 만난다는 게 놀라울 건 없었다.
헉헉대며 오르자, 정상까지 1.2km가 남았다는 이정표 나타났다. 현재 시각 11시 29분! 25분 동안 고작 400m 올라왔다는 얘기다. 고로 정상까지 1.2km를 30분 내에 가는 건 불가능이라, 12시까지 도착하겠다는 목표를 포기하고 10분 더 늘려 12시 10분으로 수정했다. 그리고 다시 10분가량 올라가자 또 이정표가 있었는데, 정상까지 1.1km 남았단다. 고작 100m 올라오는데, 10분 조금 안 걸린 거다. 그리고 11시 51분에 정상까지 700m가 남았다는 이정표에 도착했다. 그나마 400m에 17분이 걸렸으니, 대단히 양호하다. 해서 등산 앱으로 현재의 고도를 확인했다. 1,500m 근방이다. 거의 다 올라왔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자 그 유명한 주목 군락지다. 군락지에서 주목의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오르기 시작해 12시 9분에 정상 삼거리에 도착했다. 12시 10분까지 정상에 도착하겠다는 1차 수정 목표도 실패했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기도 하다.
확실히 눈구름 속에 갇혀 올라갔던 갈왕산 정상과 내리쬐는 햇볕으로 비록 찌는 듯한 더위나, 맑고 청명한 날씨 속에 올라가는 정상은 보이는 게 달랐다. 먼저, 비록 꽃은 졌으나 열병하듯이 늘어선 철쭉 터널이 눈에 띄었다. 그 터널을 통과해 12시 16분에 갈왕산 정상에 도착했다. 변경된 목표 대비 6분이 더 걸렸다. 널찍한 정상에는 각각의 들머리에서 올라온 등산객이 여기저기 흩어져 점심을 먹거나, 쉬고 있었다. 돌탑 좌우에 정상석이 각각 있었는데, 돌탑 왼쪽이 주 정상석인지, 탑에 가려 보이지는 않으나 인증을 찍는 소리가 들려와, 아무도 없는 오른쪽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겼다. 2018년에는 두 정상석 모두에서 인증을 남겼지만. 그리고 돌탑을 사진으로 남기고 재빨리 정상을 떠나 이번 산행의 주목적인 주왕산(중왕산)으로 출발했다.
중왕산을 향해 내려가다가, 미지의 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갈왕산 정상에서 해야 할 것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랐으니, 사방으로 보이는 절경을 사진으로 남기는 거. 오른쪽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은 후 왼쪽 정상석이 비기를 기다리며 눈으로는 중왕산을 비롯해 주왕지맥, 그리고 주변 산을 훑었으나, 사진은 주 정상석을 찍은 후 찍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정상석 사진을 찍고 나서는 정신없이 정상을 떠났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포기하고, 거의 산책로 수준의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며 주변을 둘러보니, 숲 곳곳이 쉼터였고, 각 쉼터에는 혹은 홀로, 혹은 끼리끼리 모여 점심을 먹고 있는 등산객이 있었다. 해서 나도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고 내려가다 12시 28분에 등산로에서 2m가량 들어간 숲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었다.
누군가 점심을 먹었다는 모든 인적을 인멸하고 12시 35분에 식당을 떠나, 가리왕산 휴양림에서 만든 거로 보이는 산책로 수준의 등산로를 따라가 12시 41분에 이번 산행을 주도한 산악회 산행 계획의 A 코스 하산 지점인 휴양림으로 가는 마항치 삼거리에 도착했다.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에는 중왕산 바로 아래에 있는 '마항치 사거리'까지의 거리가 2.3km라는 정보다. 생각보다 짧다. 그럼 내가 애초 날머리인 폐교된 가평초등학교까지 14km 정도라는 계산이 맞을 확률이 높다. 이정표에서 신나는 정보를 얻어 기쁜 마음으로 사거리를 향해 가는데, 과거의 이정표가 있었다. 거기에 의하면 상봉 즉 갈왕산 정상까지 1.5km, 마항치, 즉 마항재까지 1.5km로 딱 중간지점이다. 그리고 내가 지도를 보며 코스를 연구할 때 궁금해했던 절터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완경사의 등산로를 따라 하산해 12시 56분에 헬기장에 도착해 아래를 보니, 급경사의 등산로가 기다리고 있다. 급경사이기는 하나, 상태가 좋은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다 앞서가는 3명의 등산객을 발견했다. 중왕산으로 향하는 이 길에 동행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정말 놀랐다. 해서 산악회와 같이 와 중왕산으로 간다면 그들과 동행하는 게 여려 모로 편리해 소속이 어딘지 알아보려고 메고 있는 배낭을 유심히 살폈으나, 세 명 다, 특별히 소속을 알 수 있는 게 없는 거로 봐서 산악회에서 온 거 같지는 않았다. 기대를 접고 그들을 추월해 내려가는데 이번에는 반대쪽에 올라오는 예닐곱 명으로 이뤄진 팀을 만났다. 중왕산을 넘어오는지는 모르겠으나, 마항재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을 보자, 혹시 임도까지 차가 올라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계속 가자, 저 아래로 임도가 보이고, 그 전에 비석 같은 게 보이는데 그 정체가 궁금했다.
앞으로 돌아가 비석의 글을 "강릉부 삼산봉표(江陵府 蔘山封標)"라고 읽긴 읽었는데, 맞는지 확실하지 않고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봉표? 봉물인가? 해서 옆의 소개문을 읽어 보니, 읽기는 제대로 읽었고, 뜻은 지금과 다르지 않은 "임산물 채취금지"다! 임산물 채취 금지, 정확히는 '산삼', 발견 아니 지금까지 남은 유일한 비석이라는 글을 보자, 번뜩 ‘치악산에 있는 비로봉 황장금표(黃腸禁標)와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산행기]. 전자가, 산삼 채취를 금한 거라면, 후자는 황장목 벌목을 금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목적은 같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임도로 내려가니 꽤 넓은 사거리다. 그리고 그 사거리는 모두 자물쇠를 채운 차단기로 막혀있었다.
마항재 주변에 있는 이정표, 안내문 등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데, 내가 추월했던 삼인방이 마항재에 도착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들었는데, 중왕산으로 올라갈 건 아니고, 마항재에서 내려간다는 거였다. 하긴 마항재에서 갈왕산으로 올라가는 등산객이 있으니, 하산지 중 하나로 마항재를 택한다는 게 놀라울 일은 아니다. 일단 나만의 외로운 산행이라는 건 확정된 상태라, 먼저 중왕산의 해발고도가 1,300m대라, 마항재와의 표고차가 얼마인지 확인했다. 얼마나 올라가야 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사실 마항치까지 급경사를 내려오며, 제발 1,100m 이하로 내려가지 않기를 빌었고, 그 마지노선을 통과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1,000m는 유지하자고 빌고 또 빌었었다. 등산 앱으로 확인한 마항재의 고도는 다행히 1,077m로 중왕산 정상까지 300여 미터만 올라가면 된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등산로 상태에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미지의 세계인 주왕산, 즉 중왕산으로 가는 급경사의 길로 들어섰다. 가리왕산에서 마항치까지가 4차선 고속도로였다면, 비포장도로에 비견될만하고, 인적이 없어 낙엽이 잔뜩 쌍인 길은 미끄럽기까지 했다. 거의 10m 올라가고 숨 한 번 돌리는 식으로 쌓인 낙엽에 미끄러운 급경사를 올라가다가 길을 따라 같이 올라가고 있는 군사시설을 발견하고 이 길이 등산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군사시설은 다른 게 아니라, 군부대 통신선, 일명 삐삐 선이다. 한북정맥 북쪽 지역 능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걸 보자 지금의 길 상태가 이해됐다. 애당초 지금 가고 있는 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군사 작전로다. 등산객은 1년에 서너 명 다닐까 말까 하는. 고로 산악회 리본은 있을망정 이정표는 구경할 수가 없다.
가끔 얼마나 올라왔는지 등산 앱의 고도를 확인하며 낑낑대고 올라가고 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등산객이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해서 비좁은 길을 막고 있을 수가 없어 한쪽으로 길을 비켜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유심히 살펴보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다.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은 없고. 그가 도착해 나를 지나치기 직전 중왕산에 가는지 물어, 그렇다고 답하자, 저 아래, 즉 마항치에서 코 닿을 거로 생각하고 올라갔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고 한탄했다. 해서 내가 잘못 들었나, 마항치부터냐고 물었다. 답은 "그렇다!"다. 나도 넘어지면 코 닿을 봉우리라 생각했는데, 한 시간이라는 얘기에 깜짝 놀라 물었던 거다. 그렇게 몇 마디를 주고받고 나서야 그를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났다. 이번에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일행이다. 다행히 그때 시각이 1시 30분경으로 산악회 마감까지는 아직 2시간 30분 정도가 남아 그라면 날머리인 휴양림에 마감까지는 갈 수 있을 거 같았다. 나야 애당초 그럴 계획도 아니었지만.
그 사람은 마감 시각에 늦지 않게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는 가리왕산 휴양림으로 달려가고, 나는 중왕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 헤어져 다시 헉헉대며 어느 정도 가자, 급경사가 끝나고 완경사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숲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동물이 나타나면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소리 나는 방향을 주시했으나, 기대했던 멧돼지나, 노루는 나타나지 않고, 소리도 더 들리지 않아 다시 위로 올라가는데, 이제는 '부스럭'이 아니라 사람을 부르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리고 그에 답하는 소리가 옆 숲에서 들렸다. 깜짝 놀라 유심히 살펴보니, 심마니 팀이다. 중왕산이 오지 중 오지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다. 등산로 아니, 작전로를 가로지르는 삐삐 선 넘기를 여러 차례 하고, 심마니들이 큰소리로 주고받는 소리를 들으며 위로 올라가 2시 9분에 헬기장인 중왕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1시 18분에 마항치에서 떠났으니, 51분이 걸렸다. 한 시간 내로 올라왔으니, 어디 가서 큰소리쳐도 좋을 거 같은데?!
헬기장인 정상에는 여기저기 장상 표지가 있었다. 조악하나만 정상석도. 그리고 가장 많은 정상 표지와 산악회 리본이 달린 시원한 숲 그늘에는 여성 한 명과 남성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처음 그들을 보고 놀란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아무리 봐도 가리왕산에서 시작한 등산객으로 보이지는 않는 게 마항재나, 반대편에서 올라온 팀 같았다. 해서 그들을 방해하지 않게 주변의 정상 표지나,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인증을 찍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본의 아니게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었는데,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정확히 그게 뭔지는 몰랐다. 와중에 목에 거대한 카메라를 매고 있던 사람이 카메라를 바닥에 두고 인증을 찍는 걸 보더니, 부탁하면 되지 그게 뭐 하는 짓이냐고 뭐라하며 인증을 찍어줬다. 덕분에 그 사진사의 재촉으로 점심을 먹고 비워준 자리에서 인증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인증을 남기는 걸 보더니, 그들 중 한 명도 인증을 요청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은 ‘뭐 하러 찍냐?’고 핀잔을 줬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대화다.
주왕지맥의 주산인 주왕산(중왕산) 정상인 헬기장에는 보기에 따라 네 방향으로 길이 나 있는데, 그들이 먼저 내가 가려고 하는 방향과 비슷한 곳으로 내려갔다. 그들이 가고 나서, 주변의 사진 몇 장을 더 찍고 왔던 길로 내려가 올라오며 봐두었던 길로 갔다. 그런데 그 길이 중간에서 없어져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그들이 내려간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애당초 길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그들 넷은 각자 흩어져 길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초보라서 그런지, 길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닌 곳을 찾는 걸 보며, 등산 앱의 지로를 토대로 길을 찾았다. 길은 주왕지맥 주 능선답게 마항치에서 올라오는 길과 비교하면 산책로 수준으로 좋았다. 해서 그들에게 여기가 길이라고 알려주자, 알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답을 듣자,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고, 이상했던 모든 게 해결됐다. 확실히 하기 위해 그들 중 인증을 찍어준 사람에게 ‘약초를 깨냐?’고 묻자, 다른 사람이 ‘산삼을 찾고 있다!’고 답하자, 그 사람이 ‘나물을 캔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중왕산에서 두 팀의 심마니를 봤다.
심마니들을 뒤로하고 주왕지맥의 주 능선을 따라 하안미리, 즉 가평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를 찾기 위해 수시로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하며 가던 중 반가운 리본을 보고 당연히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정상을 떠나 15분가량 가자, 저 아래로 빨간 리본이 보이고, 산림 지대에서 가끔 보이는 조사 도구도 보였다. 거기서 조금 더 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좌는 주왕지맥, 우는 가평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그 시각이 2시 34분으로 애초 목표였던 4시까지 가평초등학교 앞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계곡으로 내려가는 그 길은 주왕지맥과는 궤를 달리했다. 급격히 고도를 낮춰야 하니 급경사야 당연하나, 사람이라곤 다녀본 적이 없는 거 같이 낙엽이 쌓여 있고, 와중에 너덜이라 대단히 위험했다. 더위와 초긴장 상태로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수시로 수통을 꺼내 물을 마시며 내려가 3시가 조금 못 되어, 주 계곡에 도착했다.
주 계곡에 들어서자 급경사가 완경사로, 길도 그나마 다닐 만한 수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돌로 쌓은 담장이 보이는 게 과거 ‘화전민의 흔적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빨치산? 3시 13분경 계곡을 건너,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앞뒤를 둘러보니, 차량이 다닌 흔적이 있다. 즉 과거 임도로 사용했던 길이다. 고로 마을이 멀지 않다는 거다. 역시 예상대로 멀지 않은 곳에 포장도로가 있고, 거기에 도착한 시각이 3시 18분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300여 미터를 내려가자 최신의 건물군이 보인다. 아무리 봐도 펜션은 아니고, 그렇다고 주택도 아닌 정체가 불분명한 건물이라 사진을 한 장 찍고 그 앞을 지나며 보니, "천지당"이라 쓴 비석이 있었다. 역시나.
천지당을 지나자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타나고 그 다리 건너에서부터는 2차선의 아스팔트 도로다. 고로 이제부터는 가평초등학교 버스 종점까지, 그리고 하안미사거리까지 위에서는 뜨거운 햇볕이 아래에서는 그 뜨거운 열기를 반사하는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 최소 6km, 최고 8km를 걸어가야 한다. 해서 다리 아래로 내려가 세수로 열기를 식힌 다음 배낭에 매달고 다니는 수건을 계곡물에 푹 담아서 목에 감는 거로 강행군의 준비를 마치고, 큰 밭은 자동으로 작은 밭은 사람이 물을 주는 광경을 보며 빠른 속도로 달려 3시 44분에 보호수를 지나, 3시 45분에 영업 중인 가평 송어횟집을 지났다. 거기를 지날 때는 약간 망설이기도 했으나, 버스 정류장까지의 거리와 버스 시간이 명확하지 않아, 미련을 버리고 계속 전진했다.
미련을 버리고 시속 4.8km/h 정도로 내려가 3시 50분에 마침내 과거 가평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번 중왕산행의 날머리다. 여기서 장평으로 가는 버스는 6시 18분에 있다. 해서 송어횟집에 돌아가 2시간 동안 술을 마실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랬다가는 완전히 뻗을 거 같다는 생각과 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가 아주 애매한 게 내가 아는 시간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산행 전 계획했던 대로 4km 거리에 있는 사거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숫자가 붙은 비닐하우스의 용도가 뭔지 궁금해 사진을 찍으며 보니, 육묘장이었다는 걸 확인하기도 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했었다는 기념비가 있는 마을 통과할 때는 그 기념비를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거의 100m마다 생수를 꺼내 목을 축이며 달려 목표한 시각인 5시보다 20분 정도 빠른 4시 39분에 하안미사거리에 도착하는 거로 이번 산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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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에 도착 후 빠르게 장평 방향 버스정류장의 위치를 파악했다. 지도로 보기에는 사거리에서 꽤 멀어 보여, 계획을 세울 때 하산주를 버스 정류장과 가까운 맞은편 식당에서 마실 예정이었다. 그런데 실제는 사거리에서 20여 미터의 거리에 불과하고, 식당 또한 30여 미터에 불과했다. 나의 뇌가 느끼는 실제와 지도의 차이다. 고로 굳이 번거롭게 버스 정류장 맞은편 식당으로 갈 이유가 없다. 여기까지 6.5km, 1시간 20분 동안 그늘 한 점 없는 아스팔트 한증막을 빠른 속도로 내려오느라 지쳐, 비록 거리는 얼마 되지 않으나, 가까운 곳에 식당을 두고 거기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멀리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영업 중인지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가까운 식당을 찾아보니, 바로 눈 앞에 '가리왕산 가든'이 있다. 문제는 실내가 어두운 게 문을 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거. 일단 부딪혀 보기로 하고 식당으로 다가가 출입문에 붙어 있는 메뉴를 살펴보니, 혼술에 적당한 안주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부페백반 선불입니다. 7,000원'이라고 써서 붙인 안내문이 있다. 서울 사무실 밀접한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한식부페다. 그런데, 이 동네에 점심으로 한식부페 식당이 영업할 정도의 손님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산을 다니다 보면 전혀 손님이 없을 거 같은 동네에 간이 건물의 한식부페는, 근처 공사장 인부를 대상으로 하는, 일제 잔재인 함바집을 한식부페로 바꾼 것에 불과한데, 주변에 공사장도 보이지 않고, 와중에 '점심 도시락 주문을 받는다'라는 광고를 보면, 좀 먼 거리에 공장이 있는 게 아닐까?
이 동네 환경이야 어쨌든 내게 중요한 건 하산주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중문 건너편에 장판이 깔린 내부와 그 한쪽 주방에서 일하는 주인장이 보였다. 해서 등산화 끈을 풀며, 주인에게 안주할 만한 게 있냐고 물었다. "삼겹살 2인분을 굽지는 않을 거고, 된장찌개, 순두부찌개가 있습니다!"가 주인장의 대답이다. "남기는 한이 있더라도 삼겹살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그럼 "제육볶음 좀 만들어 줄까요?" 한다. 별도 메뉴는 아니나, 한식부페의 주 반찬인 거 같다. 당연히 "대환영입니다!" 한마디하고, 등산화를 벗고 들어가려니, 신발을 벗지 않아도 된다고. 진작에 얘기하지. 어쨌든 식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순두부찌개와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 시각 유일한 손님으로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한 후 등산화를 벗어 버리고, 맨발로 냉장고 앞으로 가 선택의 여지가 없어 이슬이 한 병을 들고 왔다.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전형적인 한식부페 밑반찬을 안주로 이슬이를 홀짝이다가, 순두부찌개와 제육볶음이 나와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찌개나, 제육이나, 너무 맵다. 애초 밥은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매운 걸 중화시키기 위해 먹어야 했다. 와중에 생고추를 먹고 있는 스스로에 놀라기도 하며, 이슬이 두 병을 비우고, 비록 버스 시간이 6시 8분이라고는 하나, 시골 마을 정류장의 버스 시간이야 기사 마음이라 '아차' 하면 놓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사명산행 때 놓친 경험도 있어[산행기], 5시 50분경에 식당을 나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서쪽으로 지는 햇볕을 정면으로 받는 간이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린다는 건 고역 중의 고역이라, 뒤로 보이는 그늘진 쉼터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주위를 둘러보며 노닥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량을 보니, 간이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승객이 보이지 않으면, 버스 또한 빠른 속도로 지나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낭패다. 어쩔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가 태양과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있는데, 왼쪽에서 달려오는 버스가 보였다. 만약 뒤의 쉼터에 있었다면, 놓치기 딱 좋은 속도다. 버스를 발견하자마자 벌떡 일어나, 도로로 접근해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워 무사히 버스를 잡아탔다. 그렇게 탄 버스는 지금은 보기 힘든 시골 버스의 정취를 그대로 풍기며 종점인 장평터미널로 달려 6시 24분에 도착했다.
장평터미널에 도착 후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하다, 그런데 언제 왔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직 동서울행 버스 출발까지는 20여 분이 시간이 남아, 승차장에 있는 의자에 앉아 담장 너머의 식당을 보자 언제 왔었는지 기억이 났다. 흥수와 둘이 거문산, 금당산 연계 산행 후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해 담장 너머로 보이는 '장평메밀막국수' 집에서 하산주를 즐겼다[산행기]. 당시 하산주에 대단히 만족했기에 식당을 기억하고 있었다. 익숙한 이유를 확인한 후 승객 대기실에 있는 자판기에서 식혜를 하나, 뽑아 마시고, 예정보다 이른 6시 45분경 도착한 텅 빈 버스에 탔다. 그리고 배낭을 옆자리에 두고 완전히 뻗었다. 산행에 지쳤다기보다는 땡볕의 아스팔트 한증막 1시간 20분의 강행군이 녹초로 만들었는데, 거기에 이슬이 두 병이 방아쇠를 당겼다.
완전히 뻗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8시 25분경이다. 동서울 터미널 도착 예정 시각이 9시니, 서울까지는 아직 멀었다. 그런데,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서울이 멀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조금 있자, 익숙한 경치가 보인다. 비록 임시 휴일이기는 하나 평일과 다름없어, 교통 체증 없이 마음껏 달렸다는 얘기다. 덕분에 예정보다 24분 정도 이른 8시 36분에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다. 영동에서 기차가 아닌 차량으로 서울로 왔던 여행 가운데 예정보다 일찍 온 건 처음인 거 같다. 어쨌든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는 거로 갈왕산(가리왕산), 주왕산(중왕산)의 천고지 연계 산행의 모든 일정을 마감했다.
처음 계획대로 '장구목이 → 이끼 계곡 → 장구목이 임도 → 정상 삼거리 → 갈왕산(가리왕산) → 마항치 삼거리 → 절터 갈림길 → 마항치 사거리(마항재) → 주왕산(중왕산) → 1,160 고개 → 하안미리 갈림길 → 천지당 → 가평초등학교(폐교) → 하안미사거리'의 18.45km(트랭글), 6시간 53분의 중왕산(주왕산) 오지 탐험이었다. 이동 6시간 45분, 휴식 8분!
벼르고 별렀던 천고지 중왕산(주왕산) 정상에서 인증을 남길 수 있어 대단히 만족한 산행이다.
탁월한 조망을 제공한 날씨였음에도, 초면의 중왕산에 정신을 뺏겨 가리왕산 정상에서 주변의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두 명의 친구가 동행할 예정이었으나, 같이 하지 못했는데, 6.5km의 땡볕의 아스팔트 한증막에 안 온 건 정말 잘한 일로, 탁월한 선견지명이다.
올 여름 폭염과 비가 드물거라는 예고라, 계곡 산행 위주로 진행할 생각이나, 물이 남아 있는 계곡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