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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금 왜 사회사목인가?
사도직 교회 시기를 향한 도정의 출발점에 선 한국교회를 이끄는 표지는 보편교회의 가르침이다. 가톨릭교회는 서기 2천년을 앞두고 20세기 중반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계기로 성령께서 이끄시는 복음화 제3천년기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바 있다. 그러니까 한국교회의 복음화 제3세기는 보편교회의 복음화 제3천년기의 안내를 받을 수 있는 행운을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 가톨릭교회를 복음적으로 쇄신시킬 수 있는 주요한 문헌을 대량으로 반포하였다. 국가의 헌법과도 같은 비중을 차지하는 헌장은 전례헌장, 교회헌장, 계시헌장, 사목헌장 등이고, 법률과도 같은 비중을 차지하는 교령은 사회 매체에 관한 교령을 필두로 동방 가톨릭교회, 일치운동, 주교들의 사목 임무, 수도생활의 쇄신, 사제양성, 평신도 사도직, 선교 활동, 사제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이며, 시행령에 비견될 만한 선언문은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과 함께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문 등이다. 이 밖에도 공의회는 개막과 폐막에 즈음한 특별 메시지를 반포하였다. 이 가운데에서 가톨릭교회의 복음화 제3천년기에 있어서는 물론, 한국교회의 복음화 제3세기에 있어서도 가장 의미있는 대목을 두 군데 꼽으라면 아래에 소개하는 교회헌장 8항과 사목헌장 1항을 들어야 한다. 이 두 대목이 모두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와 관련된 내용으로서, 공의회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슬로건 아래에서 회복한 복음적 면모의 상징과도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리스도께서 가난과 박해를 당하시며 구세사업(救世事業)을 완수하셨듯이, 구원의 은혜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하여 교회도 같은 길을 걷도록 불린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을 낫게 하시며’(루카 4,18), ‘잃어버렸던 사람을 찾아 구해 주시기 위하여’(루카 19,10) 성부께로부터 파견되셨다. 이와 같이 교회도 인간의 약함으로 고민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또한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서 교회 창립자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의 결핍을 덜어 주기로 노력하며,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께 봉사하기로 마음을 쓴다”(교회헌장, 8항). 그리하여 공의회의 교부들은,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인 것”(사목헌장, 1항)이라고 교회의 사명을 천명하였다.
이 사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복음화의 요소는 “더 더욱 넓은 지역에서 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며,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주는 일”(현대의 복음선교, 17항)이며, 이에 못지않게 각별히 유의해야 할 복음화의 국면은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일”(현대의 복음선교, 19항)이다.
복음화의 요소와 국면에 대한 이 같은 정의는 교회를 쇄신하기 위한 공의회의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하여 ‘복음선교’를 주제로 열린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1974)의 건의를 바오로 6세 교황이 수용하여 교황권고로 반포된 문헌 「현대의 복음선교」에서 내려진 것이다. 통상 복음화의 요소를 본당사목 또는 일반사목이라 하고, 복음화의 국면을 특수사목 또는 사회사목이라고 한다.
복음화의 국면인 사회사목을 설명함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공동선이고, 또 이 공동선에 대해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은 역대 교황들이 사회사목에 대해 가르친 바를 집대성해 놓은 가톨릭 사회교리이다. 그런데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신자들은 사회교리가 일반교리와는 별개의 부록 같은 교리라고 인식하거나 적어도 복음과 연계시키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사회교리를 설명함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의 연계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네 복음서를 기준으로, 사회사목과 공동선을 주제로 하여 사회교리를 전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먼저 사회사목의 근거가 되는 복음서에 나타난 하느님 나라와 가난한 이들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공의회 이후 ‘사회사목’적 요청이 등장하게 된 과정을 훑어본 다음 본 주제에 들어가고자 한다.
가. 하느님 나라의 섭리와 가난한 이들의 특권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신 메시지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대주제이다. 그리고 다가온 하느님 나라의 은총과 특권을 가장 먼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주시겠다고 천명하셨는데, 이는 당신께서 받으신 메시아의 사명과 권한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섭리에 의한 특권이 예수님께서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의 기본 질서였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 안에서 가난한 이들은 우선적인 배려를 받았다. 따라서 그리스도 신앙에 있어서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 안에서 차지하는 특권을 인식하고 계승하는 일이야말로 부활 신앙의 관건이다. “가까이 다가온 하느님 나라” 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영과 진리 안에서 진실하게 드리는 예배”가 이로써 가능해진다.
그러고 나서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시려 기적을 많이 일으키셨다. 또한 마귀 들려 사람 구실을 못하는 이들에게서도 마귀를 쫓아내주어서 해방시켜 주심으로써 온전한 인간으로 살게 해 주셨다.
이 치유와 구마 기적이 그분 공생활에서 가장 뚜렷한 활동이었는데, 그 결과로 가난하고 고통받던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예수님의 공생활 활동은 막바지에 사도들에게 성찬의 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치유와 구마 기적에 담긴 당신의 사랑을 기억하여 행하라고 당부하시는 한편(루카 22,19 참조), 최후의 심판 때에 이 사랑을 계승했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상과 벌을 내리시리라고 단언하셨다(마태 25,31-46 참조). 그러니까 치유와 구마의 기적 활동으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께서는 성찬의 성사와 최후의 심판 가르침으로 교회를 통해 이 복음선포 활동이 계승되기를 기대하신 것이다. 우리 교회의 사목과 선교 활동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치유와 구마 기적 활동에서 활동의 근거를 끌어 오려는 신학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나. 천동설과 낙수효과 이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오랫동안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天動說)을 진리로 믿어 오다가 천문 관측 기술이 발달하고 수학 계산으로 이 관측 결과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되면서 마침내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이 과학적 진리로 밝혀진 것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선포하신 기억을 잊어버리고 그 섭리와 특권도 무시한 채,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이등 인간으로 취급하며 불쌍한 이들이니까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으며, 이 자선의 공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어 왔다.
천동설이 자연관을 지배하는 동안 사회관과 교회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신자들이 늘어나면 가난한 이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가서 빈곤이 사라지리라고 낙관하는 이른바 ‘낙수효과(洛水效果) 이론’(trickle down theory. 부유층과 사업가들이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 보다 활발히 활동함으로써 경제 전반이 보다 개선될 수 있고, 그로 인한 혜택은 저소득층 및 하층민에게도 돌아가게 된다는 주장)이 자리를 잡았다. 자유시장이 도모한 경제성장은 반드시 세상에 더 큰 정의와 포용을 가져오리라는 낙관론은 교회에도 영향을 미쳐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져서 교회가 세워지고 신자들이 늘어나면 빈곤 상태가 개선되고 세상이 선해지리라는 낙관론이 퍼졌던 것이다(복음의 기쁨, 54항 참조).
그러나 천동설이 오류로 판명되고 지동설이 과학적 진리로 검증되었듯이, 낙수효과 이론 역시 그 자체로는 입증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빈곤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만 가능하다는 깨달음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현대의 성령강림사건으로 불리우는 이 공의회의 마지막 회기에서 마침내 사목과 선교의 균형을 바로잡고 예수님의 복음선포를 원래대로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첫 머리에서 인용한 공의회의 가르침 중에서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의 선언이 근거하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명제 역시 신학적 진리로서 영적인 지동설이라고 볼 수 있다.
사목적 천동설이나 낙수효과 이론 대신에 이 명제가 사목적으로 실효적인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가난한 이들을 자선 활동의 대상으로 보던 입장이나 활동에서 벗어나서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범으로 보여주셨던 치유와 구마의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초대교회 시절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기지은(四奇之恩)으로 사도들에게도 기적을 일으시킨 사례를 보면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때의 상황과 조건을 정확히 따져보아야 한다.
다. 치유와 구마 기적의 조건
치유와 구마의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 중요한 조건은 예수님께서 질병이나 마귀들린 이들에 대해 지니셨던 연민의 시선이다. 이 점이 초대교회 이래의 사목적 천동설이나 근세 이래의 낙수이론적 관점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기만 했던 전통적 태도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예수님께는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이었다. 그분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서슴없이 선포하셨던 대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섬기듯이 가난한 이들을 대하셨다. 이러한 시선과 태도는 비단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간음한 현장에서 끌려온 여인 같이 사회적으로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힌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통털어 말하자면 가난이든 질병이든 마귀들림이든 사회적 낙인이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민, 그들의 억울하고 한 맺힌 심정을 이해하는 마음이 치유와 구마로 인해 일어난 기적의 첫째 조건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민의 시선이 현재 가톨릭교회의 중산층 신자들에게는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러한 시선은 당신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몸소 체험해야 했던 생활 조건에서 체득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톨릭 중산층 신자가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을 본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조건을 채우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적 활동을 하는 이들을 도와 연대하면 되기 때문이다.
치유와 구마 기적의 두 번째 조건은 치유나 구마가 필요한 이들과 마주쳤을 때 행하는 인격적 태도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과 마주치거나 이들이 찾아왔을 때 항상 인격적으로 대하셨는데, 그 뚜렷한 증거가 당사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들이 직접 말하게 하는 태도였다. 필요한 경우에는 묻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는 경우에도 굳이 물어보시기도 하셨고, 때로는 중풍병자의 경우처럼 그의 증상보다 더 깊은 원인이라고 여겨지는 죄의 용서부터 행하시기도 하셨다. 영혼이 육신을 다스린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다.
현대 가톨릭교회에서도 널리 행해지는 사회복지 활동의 사례에 있어서도 이는 당연히 강조되기는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행해지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이 인격적 대우는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의지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려니와 그들이 한을 풀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다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경험이 풍부한 사례를 충분히 고려하는 현대 사회복지학에서도 이론상으로만 가르칠 뿐, 실제 사회복지 현장에서 반영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현대에서는 양적인 실적이 질적인 성과보다 더 앞서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정책의 현장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숫자보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예산에 맞추어 그 숫자를 맞추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니 기적이 일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한 이들이 더 상처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가난한 이들은 세상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독(毒)을 참아 받아야 했던 이들이다. 그 독이 자신들의 말과 행위로 내뿜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을 비인격적이고 교양 없게 만드는 것이 이 독이다. 그 누구라도 이 독을 쏘이면 비교양적이 된다. 본성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흔히 억눌리며 사는 민중의 언어가 거칠고 종종 비교양적인 욕설이 섞이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정서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치유와 구마의 기적이 일어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믿음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 하느님의 권능을 끌어오신다. 그러므로 이 믿음은 결국 부활하신 분의 현존에 대한 믿음이 관건이다. 이 믿음은 수혜자(受惠者)와 시혜(施惠者) 모두의 절박한 심정을 전제로 한다. 절박한 심정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 없는 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 가톨릭교회의 그 모든 자선 행위에서도 가장 부족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치유나 구마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믿음을 기적처럼 여기시고 혹시 그들에게 이런 믿음이 발견될 경우에 크게 기뻐하시며 기적을 행하셨다. 그리고 기적을 행하시는 순간에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기도하시기도 하고, 슬픔에 겨워 울기도 하셨으며,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먼저 올리기도 하셨다. 절박한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임하셨던 것이다. 보편교회의 초대교회 시절에는 물론 한국의 초대교회에서도 이런 기적들은 종종 일어났다. 믿는 이들에게는, 예수님 사후에도 이런 기적들이 일어난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어나는 것도 불가능하거니와 일어난 기적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적은 믿음의 힘이다.
소홀하기 쉬운 네 번째 점이 있다. 그것은 기적을 일으켜주신 분은 하느님이시므로 하느님께 대해 감사드려야 한다는 점과 이를 계기로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되었으니 지속적인 믿음과 선행으로 보속을 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전보다 더 못한 처지로 떨어질 수도 있다. 결국 치유와 구마의 기적은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받아들여 퍼뜨리기 위한 하느님의 일이다. 그런데 현대 가톨릭교회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행하는 자선 사업은 이 점이 빠져있다. 그러니 도와주고도 도움받은 이들의 처지나 믿음이 나아지지 못하는 결과가 생겨나는 것이다.
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은 거의 2천 년 동안 마치 강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버리듯이 자취를 감추었다가 간헐적으로 샘처럼 분출되기도 했다. 교회 역사에서는 특히 3세기의 로마의 라우렌시오, 12세기의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16세기의 바오로의 빈첸시오 그리고 20세기의 캘커타의 데레사 등 성인들의 삶이 돋보였다. 예수님의 모범을 각 시대에 재현한 이 성인들의 모범으로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에 관한 하느님의 섭리를 상기시킬 수 있었다.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지하수가 분수처럼 분출하듯이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던 예수님의 모범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에 호응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주교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메데인 총회, 1968)이라는 명제를 도출해 내더니 급기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푸에블라 총회, 1979)이라는 명제를 공식화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를 수용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7년에 반포한 회칙 「사회적 관심」에서 이 명제는 교회의 전통 전체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명제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사랑’으로 바꾸었는데, “이 사랑은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의 실천에서 그 편을 먼저 선택하는 특별한 형태의 우선을 말하는 것으로 교회의 전통 전체가 이에 관한 증거를 갖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각자가 그리스도의 삶을 모방하고자 하는 이상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치며 아울러 우리의 사회적 책임에 따라서 우리의 생활방식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재화의 소유와 사용에 관해서 내려야 할 논리적인 결단에도 적용되어야 한다”(사회적 관심, 43항)고 천명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섭리와 가난한 이들의 특권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니까 교회 역사에서 간헐적으로 출현한 성인들이 상기시켜준 바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의 모범과 가르침이었고, 공의회에서 이를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을 통하여 전면적으로 부각시켰으며, 이를 다시 라틴 아메리카의 주교들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온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하도록 보편화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다시 말하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란 이제까지 소홀히 여겨오던 공동선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으로 들어가는 입구라 할 수 있다.
마. 공동선에 대한 공의회의 가르침
그러니까 공의회의 가르침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되찾아주는 일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행해야 할 치유의 기적이며 고통받는 이들이 슬픔과 번뇌에서 벗어나 해방되도록 돕는 일이 또한 구마의 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의회의 교부들은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을 소외시키는 사회악에 맞서 공동선을 증진시킴으로써 사회적인 빈곤과 고통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음을 천명하였다: “날로 더욱 긴밀해지고 점차 전 세계로 확산되는 상호 의존성에서, 공동선은 ─ 곧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자기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는 ─ 오늘날 더욱더 전 세계적인 것이 되고 거기에 온 인류와 관련되는 권리와 의무를 내포하게 되었다. 어떠한 집단이든 다른 집단의 요구와 정당한 열망, 더욱이 온 인류 가족의 공동선을 고려하여야 한다”(사목헌장, 26항). 공동선이란 사회악으로 말미암은 희생자들, 즉 병들고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을 치유하고 해방시키는 하느님 사랑의 사회적 표현이다.
여기서 자기완성으로서의 공동선이란 하느님을 닮아야 할 인간이 행해야 할 애덕의 실천을 의미하고, 이는 구체적으로 정의를 구현해야 할 의덕과 거룩함에로 나아가야 할 성덕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러한 공동선의 증진 노력이야말로 하느님 사랑을 인간 사랑으로 실천하는 애덕임을 강조하였다: “실천적이고 더욱 긴급한 결론을 내려서, 공의회는 인간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이웃을 어떠한 예외도 없이 또 하나의 자신으로 여겨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웃의 생활을 고려하여 그 생활을 품위 있게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수단들을 보살펴야 한다. 가난한 라자로를 조금도 돌보지 않았던 저 부자를 닮아서는 안 된다”(사목헌장, 27항). 결국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명제는 빈곤의 사회악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한 대책으로서 공동선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바. 역사적 성찰과 교회의 가르침
공의회의 교부들이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와 공동선에 대해 가르친 후에 이 가르침은 교회의 역사에 어떻게 또 얼마나 반영되었던가? 또 이를 통해 현대 가톨릭교회가 세상의 복음화에 대해 펴 보인 계획과 성과는 어떤 것인가? 아울러, 이와 관련하여 더욱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볼 수도 있다. 즉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 믿음이란 무엇이며, 믿음은 과연 어떠한 경로로 전파되는 것인지도 살펴보자.
- 회칙 「민족들의 발전」: 공의회에서 분출된 복음의 진리는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서 확고한 교회의 가르침으로 전 세계에 반포되었다. 그것이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통하여 교회를 쇄신하고자 했던 공의회의 가르침을 담은 「민족들의 발전」 회칙인데, 이 회칙에서 그 유명한 서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민족들의 발전은 교회의 중대한 관심사이다. 특히 기아와 빈곤, 질병과 무지로부터 해방되려고 노력하는 민족들, 인간의 자질을 더욱 적극적으로 향상시키고 좀더 문명의 혜택을 입기 바라는 민족들, 굳은 결의로써 완전한 발전을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민족들의 발전에 관하여 교회는 깊은 관심을 가진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치고 교회는 여기에 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요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욱 명백히, 더욱 깊이 자각하였으므로 이 문제의 심각함을 각 방면으로 연구 파악하고 이 같은 위기에 처하여 모든 이의 공동 노력이 긴급히 요청된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사람들을 힘껏 도와줄 의무감을 느끼는 바이다”(회칙 「민족들의 발전」, 1항).
여기서 ‘발전’이란,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오던 ‘전교’나 혹은 ‘선교’라는 용어 대신에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선포를 현대적으로 설명하려는 바오로 6세의 용어이다.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에 대하여 이렇게 관념적인 용어에서 실제적인 용어로 바꾸어 교회의 가르침을 설명하려는 노력 자체가 공의회 이후 진정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변화라 할 수 있는데, 이는 3단계로 설명되고 있다.
첫째 단계는 ‘기아와 빈곤, 질병과 무지’ 등 절대적 빈곤 상황으로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이른바 4대 사회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절대적 빈곤으로 해방된 다음에는 상대적 빈곤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의 단계인데, 인간의 자질을 더욱 적극적으로 향상시키고 좀 더 문명의 혜택을 입기 바라는 단계이다. 이른바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생존 차원의 욕구만 해결되어서는 부족하다. 건강과 보건, 교육과 문화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이러한 인간적 여건과 문명적 여건이 상대적 차별 없이 고르게 주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제1단계의 과제가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라면, 제2단계의 과제는 상대적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는 것과 빈부격차를 줄이고자 정의와 평등을 구현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굳은 결의로써 완전한 발전을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민족들의 발전”이라고 했는데, 이는 국제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상대적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제1, 2단계를 벗어난 선진국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제1, 2단계에 머물러 있는 후진국가의 국민들과 교회를 위하여 투신하고 연대하며 나누는 단계를 말한다. 이것이 ‘굳은 결의’로써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많은 선진국들이 그러했듯이 부당한 제국주의 침략과 불의한 수탈 및 착취로 이룩한 부를 나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모두 식민지 경영으로 지금의 부를 쌓았다. 그리고 과거의 식민지들은 모조리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선점 효과를 기득권으로 누리는 유럽과 미국은 이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가지 않고 있으나, 뒤늦게 식민지와 분단과 전쟁과 독재 시대의 제1, 2단계를 거쳐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퍼뜨리고 있는 한류와 그리고 백년 박해를 이겨내고 선진국 교회들을 앞서는 복음화 역량을 갖춘 한국교회가 세계 각 지역에 파견된 선교사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복음적 한류는 기존 선진국들의 문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폭넓은 공감을 자아내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식민지였던 처지에서 선진국 대열로 도약하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대한민국처럼, 한국교회 역시 선교사를 파견받던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견하는 교회로 변모한지 오래이며 이러한 선교 역량을 복음화 차원에서 가일층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이처럼 다른 이들의 저발전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발전이고 완전한 발전이다.
- 교황권고 「현대의 복음선교」: 이 회칙이 반포된 후에 전 세계적인 반향이 컸다. 그러자 이 발전의 개념을 기반으로 공의회가 가르치고자 했던 ‘선교’라는 중요한 개념을 이 참에 아예 재정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그리하여 1974년 로마에서 ‘선교’를 주제로 한 주교 대의원 회의에서 치열한 토론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로 결의된 건의문을 수용하여 교황 바오로 6세는 1975년에 교황권고 「현대의 복음선교」를 반포하였다.
이 문헌으로써 교황은 공의회 이전의 선교 관행과 이후의 선교 전망을 종합하여, 본당 일반사목의 활동을 복음화 활동의 기본 요소로 그리고 사회 특수사목의 활동을 복음화 활동의 필수 국면사목으로 정리해 주었다. 복음화의 기본 요소인 본당사목에서 사회사목은 교회적 정체성을 얻고, 복음화의 필수국면인 사회사목에서 본당사목은 복음적 활기를 얻는다. 이것이 성령께서 이끄시는 복음화의 균형과 조화이다. 복음화와 선교 활동의 두 기둥인 본당사목과 사회사목에 신자들을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교회의 공식 가르침만으로는 동기유발 면에서 모자람이 있다. 신자들 입장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동기가 유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움이 되는 이론이 자아실현의 욕구와 사회사목을 결부시키는 머슬로우의 인간 욕구 발달 이론이다.
- 자아실현 욕구와 사회사목: 인본주의 심리학자 머슬로우(A. Maslow)의 인간 욕구(생존-안전-소속-명예-자아실현) 5단계 발전 이론을 신학적으로 다듬어 설명하자면 첫째로 육신의 욕구 차원과 둘째로 영혼의 욕구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육신의 욕구 차원에서 보면,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에 해당된다. 그리고 상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생존을 넘어 그 이상의 수준에서 생활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에 해당된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요구 충족의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추구하는 인본적인 관점에서는 이러한 기본 욕구를 넘어 자아를 실현하려는 동기가 중요하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생존과 생활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고통받는 이들에게 그 기본 욕구를 충족시켜 주려고 관심과 도움을 주려는 한 차원 높은 욕구이다. 말하자면 삶의 질을 물질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향상시키고자 하는 이 자아실현의 욕구가 바로 사회사목적 요청이 자리잡는 지점이다.
또한 영혼의 욕구 차원에서 보면, 본당에서 행해지는 교리 교육과 성사 생활은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기본적인 절차이다. 교리를 배우지 않고 세례를 받을 수 없으며 세례를 받지 않고 성체를 영할 수는 없다. 이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셨고 교회가 계승해 온 영혼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활동에 해당한다. 일반 사목활동에서 행해지는 이 교리 교육과 성사 활동에 바탕하여 배운 교리를 활동으로 증거하고 성체를 영한 신앙인의 품위를 나타낼 애덕의 실천 활동이 요청될 뿐만 아니라 세상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명 또한 필수적으로 요청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 공동선을 존중하고 증진시키고자 하는, 영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요청되는 자아실현의 필수적 욕구이며, 사회사목적 요청이 자리잡는 지점이다.
따라서 사회사목 활동으로 공동선 증진을 위한 애덕 실천으로 하느님 사랑을 증거함으로써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으며, 이들 가운데에서 하느님에 대해 더욱 알고자 하는 원의가 생긴 이들이 본당사목 활동을 통해 교리를 배우고 세례성사를 받아 신앙인이 되어 성체성사와 견진성사로 신앙을 성숙시켜서 사회사목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애덕 실천 과정에 참여하거나 증거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목격한 기성 신자들 가운데에서는 이전까지 주일미사 참례로만 자족하던 인습적 신앙태도에서 벗어나서, 더욱 적극적으로 자아를 실현하고 더 나아가서는 능동적으로 자아를 초월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 발생하고 성숙하며 전파되는 경로이며 사회사목 활동에서 기대되는 바이기도 하다.
- 4복음서와 사회사목: 그리스도교의 기본 신앙정식이 확정된 것은 니케아 신경(信經, 325년)을 기초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381년)이 공표된 4세기 말 무렵이었다. 초대교회에서는 수난과 부활에 관한 전승을 주일미사에서 확인하다가 마르코 복음서(70년경), 마태오 복음서(80~90년 경), 루카 복음서(80~90년 경) 그리고 요한 복음서(90~100년 경, 학자에 따라서는 그 이후로 보기도 한다)이 출간되면서부터는 신앙 조문이 확정된 4세기 말까지 근 3백 년 동안, 이 네 복음서로 예비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신자들을 재교육시켰으며, 선교사들을 훈련시키고, 사제와 원로 신자들의 피정 교재로 활용하였다.
교리서가 없던 시절에 이렇게 단계별로 복음서를 활용한 까닭은 각 복음서들이 집필된 상황에 따라서 특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주고자 집필된 마르코 복음서는 예비자용이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교회 안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고자 집필된 마태오 복음서는 신자 재교육용이었고, 낯선 민족들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집필된 루카 복음서는 선교사 교육용이었으며, 치열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성숙시키고자 집필된 요한 복음서는 사제와 원로 신자들의 피정용이었다(Carol Maria Martini).
이 네 복음서가 모두 전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은 대동소이하지만, 제자들이 사도로 양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믿음과 반응은 복음서마다 차이가 있다. 이 차이점에서 각 복음서의 특징들도 부각되는데, 이 특징들로부터 종교적인 일반사목이 교회 활동의 기본이라면 사회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사회사목이 교회 활동의 필수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글에서는 사회사목을 위한 교회의 가르침인 사회교리의 주요 원리들을 복음서의 구체적인 메시지와 관련하여 해설하게 될 것이다. 마태오 복음의 다섯 설교들 안에 담긴 예수님이 주요 가르침을 통해서 최고선의 가치인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를 해설하겠고, 마르코 복음의 비밀사상인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메시지를 통해서는 인간 존엄성의 진리를 해설하겠다. 이는 공동선의 핵심 가치인 바, 공동선의 구체적인 가치들에 대해서는 루카 복음이 강조하는 복음화의 메시지와 관련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아시아 주교들의 건의를 받아 반포한 아시아의 10개 공동선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공동선을 증진하는 방식인 연대성과 보조성 원리는 공관 복음을 종합한 요한 복음 해설에서 다루겠으며, 이는 공동선을 증진하는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