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5일(목), 0시부로 한,미 FTA가 공식 발효되었다.
이로써 우리는 세계 3위의 경제영토를 갖게 됐다.
또한 세계 경제의 양대축인 미국과 EU.
이 두 경제권과 FTA를 체결하고 발효한 아시아 첫번째 국가가 되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 흐름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의 길 뿐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도도한 흐름을 바로 읽어야 한다.
거부하지 말고 순응하는 자만이 끝까지 생존할 수 있다.
지금 정치인, 농민, 학생 등이 한,미 FTA 발효를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들의 반대 논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늘 큰 산과 넓은 대지를 바라보며 달려야 한다.
지엽적인 문제에 천착하거나 일부 의견을 침소봉대하여 본말을 전도해선 안 된다.
도도하게 흐르는 세상의 조류를 거스를 순 없다.
개방과 소통, 교역과 통상이 정답이다.
이것이 시대정신이다.
다만 우리 산업의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제도적으로 감싸줄 수 있는 방책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일부 피해 영역이 존재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역과 개방을 억제할 순 없다.
해서도 안 된다.
한국과 칠레가 FTA를 맨 먼저 체결하고 발효할 당시(2004년 4월 1일),
우리의 과수 농가와 농촌 경제가 피폐해질 거라며(특히 포도, 감귤, 파인애플 등등) 엄청난 반대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8년이 흐른 지금, 오히려 포도 경작지는 더 늘었고 우리 농촌의 경쟁력은 되레 더 강해졌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우리 농업분야(특히 쇠고기 등 육류와 사료, 과일 등등 )와 제약업계가 전멸할 거라며 지금도 난리다.
그러나 장담컨대,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의 무서운 응집력과 저력을 믿는다.
우리는 다시 한번 치열하게 살 길을 찾을 것이고 예전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우리의 경쟁력은 한 단계 더 상승할 것으로 확신한다.
반만 년 한국의 역사는 언제나 그랬다.
위기 앞에 강했고, 어떤 압제나 핍박 그리고 불리한 여건과 판세에서도 결코 주늑들거나 꺾이지 않았다.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자.
일본 문화를 전면 개방한다고 발표했던 날은 1998년 10월 20일이었다.
섬나라의 저질문화가 한국을 휩쓸 것이며 그 여파로 한국의 문화산업은 다 죽을 것이라고 했다.
청소년들은 그 포연 속에서 다 질식할 것이라며 한 때 엄청난 반대가 전국을 강타했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고 중차대한 국정을 논하는 국회의원이란 자들이 앞장서서 그랬다.
한심했다.
지금은 어떤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어느 누가 일본 문화에 그리 천착하는가.
별로 관심도 없고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한국 문화가 일본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강타하며 쓰나미처럼 스며들고 있지 않은가.
과감하게 과보호의 비닐하우스를 걷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동토의 대지 위에 향기로운 장미꽃을 심고 키워야 한다.
우리의 마음 상태와 각오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지금 뼈를 깍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최후의 일각까지 문을 열고 세상과 적극 소통해야 한다.
담 쌓지 말라.
외부와 지속적으로 내왕하며 군웅이 할거하는 드넓은 세상 속으로 나가 당당하게 자웅을 겨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에게 혁신의 DNA가 생기며, 이런 유전자가 한민족 모두에게 대를 이어 계승되리라 확신한다.
자주 언급하는 말이지만, 잔잔한 파도는 절대로 훌륭한 선장을 키워내지 못한다.
다만, 초창기 엄청난 파고에 시달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제도적으로 격려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치인들은 이런 일에 머리를 맞대라.
빈 머리와 눈치 빠른 인기 영합주의로 광장에서 머리띠 두른 채 외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웅변이나 선동 대신 차분하게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파도든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KOREA니까.
셀 수 없는 외세침략, 악날한 일제치하, 민족상잔의 비극 그리고 격랑이 몰아쳤던 현대사의 엄청난 질곡 속에서도 땀과 눈물로 희망의 씨앗을 키워왔던 불멸의 민족이 아니던가?
힘내자.
한,미 FTA로 한 단계 퀀텀점프를 하게 될 것이다.
판단은 미래의 몫이다.
대한민국.
파이팅.
2012년 3월 15일.
심야에.
한미 FTA를 생각하며 한 줄 적다.
첫댓글 돌아가신 장인은 애주가셨다.
사위 세 사람 중 유달리 둘째 사위인 나와의 대작을 좋아하셨다.
첫째와 셋째 사위는 술자리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본문의 일기를 다시 읽다 보니 과거에 아버지께서 술자리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젊었을 때, 이리역 광장에서 김대중 씨가 연설을 했었는데 그야말로 구름 같은 청중이 모였더라고. 근데 그 당시에 그 양반이 이런 얘기를 했었지. 한국 같이 작은 나라에서 경부 고속도로가 왜 필요한가.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독일로 가서 엄청난 고생을 하며 번 돈과 차관으로 그리고 가난한 백성들의 혈세로 차도 몇 대 없는 나라에서 고속도로 건설이 왠 말이냐. 박정희는 몇몇 건설업자들과 짜고 국민의 고혈을 쓸데없는 데 낭비하는 개발 독재시대의 앞잡이일 뿐이다. 그렇게 열변을 토하는데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엄청난 공감과 환호를 보냈지. 68년 2월 1일 착공하여 70년 7월 7일에 준공할 당시만 해도 국민들은 고속도로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으니까. 민족 최고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김대중 조차도 미래를 잘 몰랐던 게지.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 늘 공부하며 살아야 하네"
오늘 따라 아버님이 더욱 그립고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