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958 건축학과 한서희
" 건축은 끊임없는 투쟁이다. "
"건축은 끊임없는 투쟁이다." ,이 문장은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공감되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은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상의 최초 여성 수상자 자하 하디드가 남긴 명언이다. 자하 하디드는 남성 중심적인 건축계에서 평탄치 않았던 자신의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인내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공부할 때였다. 크고 곡선적인 형태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보며 누가 지었을까 공부하다가 자하 하디드의 삶을 배우게 되었고, 여성 건축가로서 인정받는 삶을 살기까지 도전한 모습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자하 하디드는 1950년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태어났다. 수학을 전공했지만, 책상에 앉아있기보다 활동적이었던 그녀의 성격에 맞게 건축의 꿈을 위해 영국으로 떠났다. 런던 건축협회 학교에서 공부한 후 메트로폴리탄 건축사사무소(OMA)에 입사하여 유명 건축가 렘 콜하스의 밑에서 배우며 파트너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80년에 런던에 독립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그녀는 기존의 직선적이고 딱딱한 건축의 틀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도전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한 도전들은 그녀의 또 다른 직업인 소품 디자이너로 제작한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실리콘이란 공업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명품 가방을 재해석하고 곡선의 미를 살려 다양한 가구와 조형물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지나치게 관습을 뛰어넘는다는 까닭에 '건축물 없는 건축가'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자신의 개성이 뚜렷했던 탓에, 그리고 여러 차별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겐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녀는 “우선 저는 여자입니다. 이 점이 많은 사람에게 문제가 되기도 했어요. 또 제가 외국인이라는 것도 문제였어요. 그리고 제가 선보인 평범하지 않은 작업, 이것 역시 가끔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종류의 작품이 아니었죠.”라고도 말했다.
그녀의 건축이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92년에 지어진 '비트라 소방서(Vitra Fire Station)'부터였다. 독일 바일의 비트라 공장시설 안의 소방서 건물설계가 그녀에게 제안되면서 그간 대표작이 없던 그녀에게 기회로 주어진 작품이다. '돌로 된 번개'라는 별칭을 지닌 비트라 소방서는 자하 하디드의 개성이 잘 드러난 미래주의 건축가로 주목을 받게 된다.
그녀의 작품에는 공통된 특징들을 가진다. 경계를 없애고, 건축물이 직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유연하고 유기적인 디자인을 추구했으며 현대적인 시대 변화에 맞춰 해체주의적인 작품관을 추구했다. 대표작으로 유선형이고 비대칭적인 형태를 가진 헤이다르 알리예브 센터(Heydar Aliyev Center)와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등이 있다.
자하 하디드는 여자라는 이유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미래적이라는 이유로 그녀는 인정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자기만의 디자인 철학을 발전시켰으며 그 결과 건축의 대표적인 상인 프리츠커상과 스털링상을 여성 최초로 수상하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들을 선보였다.
건축을 공부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내가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가 였다. 그냥 남들과 비슷하게 따라갈 것인가, 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구축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것은 건축을 하면서 평생 해야할 고민이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며 두려워하지 않았던 자하 하디드처럼 비록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고 나만의 철학을 발전해 나가는 것이 내 삶을 위한 길이라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