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번개는 가게가 20시 30분에 문을 여는 관계로 20시 10분에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모이기로 예정이 되어있었습니다.
사실 예약시간에 절대 늦지 말아달라는 가게 사장님의 부탁이 있어서 시간이 더욱 중요했는데, 다행히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불참 혹은 늦참 하신 분들을 제외하고) 전원 적당한 시간 내에 집합해 "사운드카페 소리"로 이동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지만, 가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무래도 곡 신청을 위한 용지였습니다. 특히 "트로트, 락, 클래식, 8분 초과 노래 신청불가" 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네요. 물론 다행히도 문장 속의 '락'이 의미하는 바가 락 장르의 음악 전반이 아니라 그런지 락이나 하드 락 내지 메탈처럼 잔잔한 가게의 분위기를 깰 수도 있는 락, 즉, 미디어에서 종종 묘사하는 스테레오 타입으로서의 락이었고, 따라서 실제로 락 장르이지만 잔잔한 다수의 곡을 허용해주시더군요. 제가 나름 열정을 가지고 찾아본 정보 중에서는 그런 단서가 없었기 때문에 번개가 망가질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런 맥락에서 대화의 첫 주제는 어떤 곡을 신청 할 것인지, 좋아하는 밴드나 장르는 무엇인지 등이었습니다. 신청곡으론 이규형님의 Queen - Bohemian Rhapsody, 이지호님의 Adam Levine - Lost Stars, 저의 The Beatles - Here Comes The Sun 등이 있었습니다. 나머지 세 분은 원래 알고 있던 곡이 아니라 그런지 감상하며 즐기고 감탄했던 기억만 있고 곡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네요. 곡 자체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건 확실하니, 다음에 제목과 멜로디를 결합하는 과정이 있길 바라겠습니다. 비틀즈, 쏜애플, 검정치마, 오아시스 등 밴드나 인디 락, 팝, J-POP이나 일렉트로 스윙 등의 장르가 오고 갔던 것도 기억에 남네요. 특히 일렉트로 스윙의 플레이리스트를 휴대폰으로 틀어 귀에 대고 들어본 경험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 대화 주제를 바탕으로 해서, 처음엔 하이볼 네 잔, 캐모마일 티 한 잔, 콜라 한 병과 감자튀김을 주문해 먹었습니다. 사실 음악 이야기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건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오직 다른 더 흥미로운 대화 주제가 계속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번개를 준비할 때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서 음악 이야기 위주로 대화의 얼개를 짜두긴 했는데, 다행히 영원히 메모장 속에만 남아있게 됐습니다. 만약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서 제가 주섬주섬 이전에 적어둔 몇몇 문장을 기억에서 꺼내 읽고 의무감을 토대로 한 대화가 이어졌다면 역사상 최악의 번개가 됐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물론 오만해지려는 건 아닙니다. 지금도 최악의 번개라 생각하실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면 최악 중의 최악은 아니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도록 합시다.
저는 보통 듣는 입장이긴 했지만, 인생, 연애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거기서 가장 싼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습니다. 이런 곳에 다같이 왔으면 기회를 잡아서 값싼 와인이라도 먹어보자는 의견이 힘을 얻은 결과였습니다. 와인 전문가는 아니고, 그래서 부박한 표현일 수 있겠지만 단순하게 맛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께 비슷한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와인을 주문하길 강력히 추천하고 싶네요. 와인과 함께 다른 손님이 선곡한 비틀즈의 Michelle이나 Girl을 비롯한 다양한 아티스트의 명곡을 음미하는 귀한 경험도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꽤 괜찮은 한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이후 성수현님께서 매우 늦은 시간임에도 참석해주시기도 헀지만, 이미 막차의 문제 때문에 김유리님, 임수현님이 떠나신 후라 제대로 못 즐기셨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시기 상으론 이전이지만 단체 사진을 마지막에 올리는 게 적절할 것 같아 여기 올립니다. 조금 엉성하기도 했던 것 같고, 제가 보기엔 부족함이 많은 번개였으나 그래도 참여해 번개를 빛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 길지 않았지만 좋은 시간이었고, 적절한 때에 다른 LP바를 위한 번개를 열고 싶도록 만드는 몇 시간이었습니다.
+) 사진 촬영 해주신 임수현님, 이규형님, 김유리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첫댓글 경기도에 있는 바로 좀 잡아주세요~~
@23_1 정기준
나 빼고 가니까 좋냐?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