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오해 / 최미숙
이른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섰다. 초록이 아름다운 계절, 5월의 하늘은 청명하기만 하다. 손톱만 하던 연둣빛 잎이 어느새 풍성한 이파리가 되어 그늘을 만들고, 그 사이로 선선한 바람까지 더해 발길을 잡는다. 해룡천 따라 무성하게 자란 풀잎도 햇빛에 반짝이고, 두 뼘만큼 자란 키 작은 코스모스도 벌써 꽃을 피웠다. 오늘도 하늘, 물, 공기, 나무에 취했다.
돌아오면서, 식탁에 두고 싶어 풀 사이 여기저기 흩어져 핀 가녀린 보라 수레국화 한 송이를 꺾었다. 양해는 구했지만 그래도 미안했다. 꽃 살피느라 한눈판 사이 자동차 한 대가 내 옆에 선다. 70대로 처음 보는 남자다. 순천만 정원 쪽으로 데려다 줄 테니 자기 차에 타라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당황했다. 뒷걸음질치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노망난 늙은이도 아닐 테고,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나빴다. 동시에 30년도 지난 옛일이 떠올라 심장이 벌렁거렸다.
막내아들이 3개월쯤 되었을 때다. 어느 날 항문에서 노란 고름이 나면서 그 주변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병원에 갔더니 치루라고 했다. 처음 듣는 병이다. 계속 치료했는데도 좋아지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백일도 안 된 갓난아이인데, 당시에는 청천벽력이었다. 또 전신 마취까지 해야 한다니 덜컥 겁이 났다. 큰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막냇동생이 레지던트로 있던 연세 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다. 수술하고 사흘 만에 퇴원했다. 집에 가서 소독만 잘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날마다 소독하고 약도 바르며 치료에 온 힘을 다했다. 좋아지는가 싶더니 한 달 만에 재발한 모양이다. 이번에도 벌겋게 부어오르며 열까지 났다. 다시 병원을 찾았더니 항생제를 써야겠다며 입원하란다. 열흘쯤 치료하고 퇴원했다. 의사 선생님은 1주일에 한 번씩 외과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직장 생활하면서 갓난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오가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이용했다.
병원 예약 날이 다가왔다. 전날 미리 가 동생 집에서 자고 다음 날 병원에 들렀다 내려올 요량이었다. 하필 태풍 예보가 있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암흑색으로 변하며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장대비가 쏟아졌고, 오후에는 급기야 천둥 번개까지 쳤다. 예약을 미루면 되는데 당시에는 나이가 어린 탓도 있지만 그런 융통성도 없었다. 자주 재발한다는 의사의 말에 걱정이 앞섰고 속이 탔다. 아이를 띠에 매고 용품을 챙겨 비행장으로 향했다. 비바람이 거세 비행기 타기가 무섭고 불안했지만, 병원을 다녀와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잔뜩 긴장하며 떨고 있는데, 기체가 구름 위로 오르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주변이 환하다. 처음 보는 풍경이다. 마음이 놓였다. 아기 띠를 풀지 않아 많이 답답했을 텐데 아이도 칭얼거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
마지막 비행기라 도착하니 저녁 시간이 다 됐다. 공항을 빠져 택시 승강장으로 나오니 굵은 빗줄기에 바람까지 거세다. 아이는 앞으로 매고 한 손에는 짐, 다른 손에 우산까지 들다 보니 바람에 흔들리며 들이치는 비에 온몸이 젖었다. 우산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만 아이는 안 맞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으실으실 춥기까지 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들어도 무정하게도 그냥 지나친다. 비는 점점 더 매섭게 내리쳤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한참을 서 있는데, 차 한 대가 내 앞에 서더니 창문이 열린다. 젊어 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었다. 여자가 어디로 가냐고 묻기에, 구로구라고 대답했더니 자기 차에 타란다. 하필 인신매매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다. 잠깐 머리를 굴렸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 소란에도 곤히 자고 있는 막내아들을 믿기로 했다. 일부러 두 사람에게 아이 치료하러 병원에 다니러 왔다는 말을 했다.
자동차는 빗속을 뚫고 달렸다. 정신을 바짝 차렸지만 불안했다. 더구나 주변이 캄캄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다. 서울 지리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암담했다. 그때 하필 남녀가 소곤소곤 무언가를 상의했다. 빗소리 때문에 듣지는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머리털이 곤두서며 무서움증이 몰려왔다. 한시라도 빨리 위기에서 벗어나야겠다 싶어 “잠깐만요. 여기서 그냥 내려 주세요.”라고 소리쳤다. 남녀가 마주 보며 눈짓을 주고 받는 것 같더니 잠시 후 차를 멈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챙겨 내렸다. 심장이 방망이질을 했다. 도로 한가운데서 미아가 되었지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이를 꽉 껴안았다. 장대 같은 빗줄기도 내 마음을 아는지 몸부림치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겨우 3개월 된 막내아들이 보호자처럼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아이 때문에 위기에서 벗어났고, 또 나를 지켜줬다고 믿는다. 그 후 일은 모르겠다. 밤 열 시가 넘어 도착했고, 문을 열어 주며 놀란 동생 얼굴만 또렷이 기억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때 만난 두 남녀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괜한 의심을 한 건 아닌지 그것도 의문이다. 어쨌든, 불과 1-20분 만에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뛰면서 모골이 송연해진다.
갈수록 세상살이가 팍팍하다. 사람은 사람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빗장을 더 세게 잠그며 상대를 밀어내기 바쁘다. 자신들만의 세상에 안주하며, 양보는커녕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지금보다 더 여유롭게, 서로를 이해하는 그런 살맛 나는 세상을 꿈꾼다. 더불어 긴 세월 나를 떨게 했던 그 일이 유쾌한 오해였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