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사王臺寺는 충남 보령시 남곡동과 내항동에 걸쳐있으며 해발 124m로 먼바다를 향해 확 트여 있어 정상에서 서해를 감상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높지는 않지만 웅장하면서 나지막한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왕대사는 서해를 향해 우뚝 멈춰 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사찰 입구지나 대천왕대사마애불이 있다. 수천 년 동안 자연스럽게 깎여버린 모습과 부처님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이곳만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마애불 오른쪽에는 정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대웅전이 바위 절벽 아래에 위치. 최근 대웅전 오른쪽 높은 곳에 산신각이 불사되었는데, 산신각으로 오르는 길 또한 보령 절경을 볼수있는 산길이다.
대천 왕대사(王臺寺) 마애불(磨崖佛)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7호 은 근래(近來)에 지은듯한 왕대사(王臺寺) 서(西)쪽 암벽(岩壁)에 음각(陰刻)으로 새긴 벽화(壁畵)이다. 신라(新羅) 마지막 경순왕(敬順王)이 이곳으로 선유(先遊)하였다 하여 왕대산(王臺山) 이름이 되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이때를 즈음하여 마애불(磨崖佛)이 조성되었으리라 짐작하여본다. . 나발이며, 머리둘레에는 보주형의 광배가 있습니다. 얼굴은 마열이 심해 식별이 곤란하고, 귀가 지나치게 커서 얼굴 전체의 균형이 일그러져 보입니다. 목 부위는 축약되어 턱과 가슴 부위가 이어져 있고 턱밑에 삼도가 나란히 조각된 흔적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벽화(壁畵)는 불가(佛家)의 용화미륵(龍華彌勒) 석조입상(石造入像)이며, 마모(磨耗)가 심하며 어깨의 법의(法衣)와 좌측몸통부 뒤에서, 나오는 신광(神光)이 표현되고 있다.
왕대사하면 제일먼저 경순왕이 떠오르는데요. 신라마지막왕으로 왕건에게 신라를 넘기고 개성 만월대에서 경주사심관으로 벼슬을 하며 지냈다 한다. 통일신라가 얼마나 위태로웠던가를 경순왕을 통해서 알수가 있습니다. 견훤이 포석성에서 경애왕을 자결하게하고 근처에 있던 경순왕을 왕위에 세웠다. 그리고 헌강왕의 아들인 궁예도 신라에 대해 적개심이 팽배하였으니. 이런 상황속에 왕건이야말로 포용정책과 혼인정책으로 고려를 창업할수가 있었다.
그 이면에 경순왕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전해지는데요. 경순왕과 보령과의 인연은 지금의 성주사지에 하늘이 낸다는 무염대사가 있어 행차가 있었다고 추정. 그예로 옥마봉의 백마전설이 뒷받침하고 있으며 지명으로는 궁촌의 뜰과 내항동이 왕대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좌측으로 보이는바위에 희미하게 보이는 마애불을 볼수가 있는데요. 경순왕이 국운을 걱정하며 손수 새겨 만들었 전해진다. 경순왕의 행차에 절을 행궁으로 사용하였을거로 추측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