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인천제일고등학교 강당에서 인천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청소년 원탁토론회 (이하 사진=인천시 교육청)
지난 10월 25일 인천제일고등학교 강당에서 인천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청소년 원탁토론회에 330명의 인천 중•고등학생들이 참여해 ‘내가 가고 싶은 학교’라는 주제로 2시간 30분에 걸쳐 열띤 토론을 나누었다.
토론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인천 소재 150여개 모든 중•고등학교에서 1~2명씩 참여했으며 이청연 교육감도 청소년들과 함께 원탁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다.
이번 토론회는 소수의 전문가 토론과 다수의 방청객으로 구분하지 않고, 참여한 모든 학생들이 직접 토론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32개 원탁 테이블에 10명씩에 조별로 모여 또래진행자(퍼실리테이터)학생들의 진행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각 테이블에서 오고가는 의견들이 웹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집계, 분석되면서 모두가 토론과정을 공유하고 합의점을 모아갔다.
첫 번째 토론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불만족스러운 점을 진단했다. 첫 번째 토론 발제자로 나선 연송고 유현정 학생(고2)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는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우리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OECD국가 65개국 중 최하위권라고 지적하며, 소수가 아닌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학교 현실 진단을 청소년이 직접 해보자고 제안했다.
곧바로 이어진 테이블 토론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학교현실에 대해 점점 깊은 대화들이 오고갔다.
“성적 외에는 다른 활동이나 개인의 재능은 아예 취급을 못 받고 있습니다. 성적이 나빠도 대인관계가 좋거나 리더쉽 있는 친구들은 그런 활동을 하면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죠.”
“방과후 학교, 야자에 대해 학습선택권 조례가 있다는데 솔직히 형식적인 설문일 뿐입니다. 안한다고 하면 부모님께 전화하거나 생기부에 불이익을 주는 분위기가 돼서 그냥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많아요.”
“맞아요. 설문은 도대체 왜 하는지…. 어떤 학생은 수업 끝나고 재능을 살리기 위해 요리학원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싶을 텐데 답답합니다.”
“두발도 그렇고 복장규제도 그렇고 동아리 활동도 못하게 하고…. 학교가 학생들을 다 똑같은 복제인간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전 중학생인데 시험기간에 되면 예체능 과목 시간이 시험 뒤로 밀리기도 합니다.”
“선생님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시간이 1교시입니다. 왜냐면 아이들이 아직 잠에 덜 깨서 수업하기 힘드니까 선생님들도 힘드신 겁니다. 이렇게 8시 30분도 되기 전에 1교시를 시작하는 것은 모두를 힘들게 하는 비능률적인 일입니다.”
이 같은 토론 과정은 330명이 동시에 실시한 무선 투표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학교생활 중 가장 불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하여 토론 참가자 334명중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91명)이 <입시위주의 획일적인 학교문화와 과도한 학습량>을 꼽았다. 뒤를 이어 <권위적이고 비전문적인 수업지도>(66명), <수도권 유일의 두발규제>(61명) 순이었다.
두 번째 토론주제인 '내가 가고 싶은 학교'에 대한 토론에서 청소년들은 <개인의 특성이 보장되는 맞춤형 진로활동, 다양한 진로 및 동아리 활동>을 ‘가고 싶은 학교’의 첫 번째(334명중 113명)로 선택했다. 이어서 <학생자치활동의 보장>(68명), <선생님과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학교>(45명) 순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날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그동안 교육계의 쟁점이 돼왔던 의제들에 대해 청소년들이 무선투표로 나타낸 결과다.
‘희망등교시간’에 대해서는 중학생 참가자 절반이(57/115명) 8시 40분~9시 사이 등교를 희망했고, 고등학생 역시 절대 다수가 8시 20분 이후부터 9시 사이 등교를 가장 많이 원하는 것(141명/225명)으로 나타났다.
실질적인 방과후 학교, 야간자율학습의 학생 선택권에 대해서 중학생 127명중 72명, 고등학생 232명중 153명이 ‘형식적인 의견만 묻고 사실상 강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두발 규제에 대해서는 중고등학생 절대 다수(235명/320명)가 불만을 드러냈고 '매우 불만'이라는 목소리가 가장 많았다.(142명)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서로 듣는 과정을 경험한 것만으로 “너무 속 시원하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동인천고 2학년 임성현 학생은 “ 평소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항상 청소년이라서 무시되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그런 불만이 속 시원하게 다 내려갔어요.” 라며 토론 자체의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청연 교육감과 한 테이블에서 토론을 진행한 인제고 2학년 차재광 학생은 “ 교육감님과 같은 테이블에서 토론하고 싶다고 신청했는데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살짝 감동받았어요. 다른 학교 친구들 의견을 듣다보니 나도 청소년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토론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합니다.”고 소감을 말했다.
명신여고 2학년 이정현 학생은 “ 딱딱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말할 수 있어서 이게 웬 떡이냐하고 토론에 참여했어요. 내가 제일 말을 많이 한 것 같아요. ” 고 웃음을 지었다.
한편 논현고 2학년 김현정 학생은 “ 다음에는 여러 세대가 어울려 원탁토론을 해보는 것도 좋겠어요.”라고 제안했고 인주중학교 유현우 학생은 “토론이 아주 잘되고 있었는데 서둘러 끝난 느낌”이라며 1박 2일 토론 캠프를 교육청에서 열어달라며 적극성을 보였다.
멀리 옹진군에서 참가한 연평중학교 3학년 손보미 학생은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하면서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는 내 의견에 공감하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직접 원탁토론에 참여한 이청연 교육감은 총평에서 “교육청이 처음 이런 자리를 마련했는데 정말 놀랐다. 거침이 없지만 논리적이고, 당당하지만 차분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을 할 수는 없지만 경청하겠다는 약속은 꼭 하겠다. 오늘 원탁토론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정책으로 하나하나 다듬어 가겠다. 앞으로 교사 원탁토론회, 부모님 원탁토론회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