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吴氏源流】
韩国罗州、海州等地吴氏谱牒文化简况
以往,我们对韩国(朝鲜)谱牒文化一无所知。1995年,韩国罗州等地吴氏宗亲120余人,在清明、中秋分两批,前来鼻祖泰伯居地-无锡市梅村,拜谒祖庙,举行隆重祭祖典礼,并往鸿山泰伯陵墓祭扫。以吴连珠、吴东燮、吴世浩、吴升锋、吴承桓等为首,募集献诚金220万韩元,在祖庙内古井旁修建了泰伯古井亭,次年清明节,竖仿明式四方碑一座,碑文专纪其事,以表韩国泰伯后裔千秋不忘的崇祖敬宗之心。
为了进一步密切中韩两国吴氏宗亲的联系,加强两国谱牒文化交流,认祖归宗,从2000年至2005年,中华吴氏统谱办陆续收到来自韩国邮来《罗州吴氏族谱》、《罗州吴氏参判公派谱》、《海州吴氏判事公派谱》、《长兴吴氏大吕洞教授公派谱》、《军威吴氏族谱》、《吴氏大同谱》、《罗州吴氏世蹟》、《庄和玉后吴氏遗蹟实录》、《罗州吴氏由来》,《罗州吴氏由来追録》等家谱和专辑文献典籍计16种,26册。
现珍藏于无锡市图书馆,其中还有清乾隆十二年(1747)翻印8开古本。
上述虽是韩国吴氏家谱中的一部分,但从这一部分中却反映韩国同中国一样,具有悠久的历史文化。谱载韩国新罗智证王元年(中国南北朝南齐永元二年公元500年)有一位年轻人名叫吴瞻者,从事贸易经营,自淮伶海东渡达朝鲜半岛东南部海南登陆,得到国王安置,定居于咸阳天岭山下挂冠洞(后改名兴龙洞)娶金宗之女为妻,生肯、膺二男和一女。从始祖吴瞻开基迄今有1500余年,繁衍传50余世,人口约70余万,主要分布在罗州、海州、长兴、光州、全州、济州、大同、宝城等地,为韩国主要望族之一。韩国吴氏宗亲为促进中韩两国在政治、经济和文化等方方面面的密切交流,起到了重要作用,尤期是在全面接受和认真学习中国儒家文化和谱牒文化的基础上,结合韩国的国情,在编纂家谱的过程中,进行改革创新,广泛地开展民间修谱活动,从而形成了具有韩国特色的谱牒文化,不仅发展和丰富了谱牒发展史的内容,而且对于东方文化也是一大贡献。
[오씨원류]
한국 나주, 해주 등지 오씨보첩문화 간황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북한)의 스펙트럼첩 문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1995년 한국 나주 등지 오씨 종친 120여 명이 청명, 추석에 두 차례에 걸쳐 원조 태백거지인 무석시 매촌을 찾아 조상묘를 배례하고 성대한 제조식을 하고 홍산 태백릉묘로 제를 올렸다.오연주, 오동섭, 오세호, 오승봉, 오승환 등을 필두로 헌성금 220만원을 모금하고, 조상묘 내 옛 우물 옆에 테이버고정정을 조성했으며, 이듬해 청명절에 모조명식 사방비 하나를 세워 비문으로 기고하고, 한국 태백의 후예를 천추 잊지 않는 숭조경종의 마음을 표한다.
한중 양국 오씨 종친의 유대를 더욱 밀접히 하고 양국보첩문화교류를 강화하고 조상을 인종하기 위해 2000년부터 2005년까지중화오씨통보는 한국 우편으로 '나주오씨족보', '나주오씨참판공파보', '해주오씨판사공파보', '장흥오씨대여동교수공파보', '군위오씨족보', '오씨대동보', '나주오씨세완', '장화옥후오씨유환실록', '나주오씨 유래'를 잇달아 받고,'나주 오씨 유래 추대' 등 족보와 앨범 문헌 전적계 16종, 26권.
현재 무석시 도서관에 간직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청건륭 12년(1747)에 8개 고본을 뒤집어 인쇄한 것도 있다.
위와 같이 한국 오씨 족보 중 일부이지만 이 부분에서는 한국이 중국과 마찬가지로 유구한 역사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한국신라지증왕원년(중국 남북조 남제영원 2년 서기 500년)에 오첨자라는 젊은이가 있어 무역경영을 하다가 자위해 동도달 한반도 동남부 해남에 상륙해 국왕의 안치를 받고 함양 천령산 아래 걸관동(흥룡동으로 개명)에 정착해 김종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이남과 1녀를 낳았다.시조 오첨개기부터 지금까지 1500여 년, 번성전 50여세, 인구는 약 70여만 명으로 나주, 해주, 장흥, 광주, 전주, 제주, 대동, 보성 등에 주로 분포되어 있어 한국의 주요 망족 중 하나다.한국 오씨종친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중한 양국의 밀접한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기는 중국의 유교문화와 보첩문화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학습한 기초에서 한국의 국정을 접목하여 족보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개혁혁신을 하고 민간수보활동을 광범하게 전개함으로써 한국특색이 있는 스펙트럼 문화를 형성했고,계첩발전사의 내용을 발전시키고 풍성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동양문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