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리부동’이라는 표현의 직접적인 뿌리는 중국의 역사서인 후한서(後漢書)와 당나라 시대의 문헌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후한서 좌웅전에 의하면 관리들을 평가할 때 "겉과 속이 일치하는지"를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보았습니다.
유교에서는 '성(誠, 정성스러움)'을 강조합니다.
성은 "하나로 정해진 마음"을 뜻하는데, 이에 반하는 태도를 경계하며 '표리(表裏)'가 일치해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제목 : 대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
비가 지나간 뒤의 공기는 늘 한층 맑다.
그날 나는 우연히 대나무 숲을 걷게 되었다.
빗물을 머금은 잎들이 서로 스치며 내는 소리는 유난히 잔잔했고, 그 속에 서 있자니 마음속까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대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었을 텐데,
나는 그날에서야 비로소 그것을 제대로 바라본 것 같았다.
곧게 뻗은 줄기,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속이 비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겉은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비어 있는 존재, 이상하게도 그 모습은 사람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채우려 애쓰고 있는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 때로는 남보다 나아 보이고 싶은 욕심까지, 그렇게 하나둘 쌓아 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겉으로 보이는 나와 속에 있는 내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겉은 단단해 보이려 애쓰지만, 속은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무거워진다. 그리고 그 무게는 결국 스스로를 지치게 만든다.
그런데 대나무는 다르다. 속이 비어 있기에 오히려 더 당당하게 서 있다.
숨길 것이 없으니 꾸밀 필요도 없다.
바람이 불면 휘어지고, 비가 오면 그대로 젖는다. 억지로 버티지 않으면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윤선도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린다.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고.”
대나무의 곧음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고, 그 비어 있음 또한 꾸며낸 것이 아니다.
그저 본래 그러한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사람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말이다.
겉과 속이 완전히 같아지는 일은 어쩌면 평생 닿기 어려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만으로도 삶은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대나무 숲에 서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바람이 지나가고,
그 바람이 다시 흘러나가듯이, 내 안의 생각들도 조금씩 비워지는 느낌이다. 아마도 비어 있음이 주는 여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종종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솔직한가,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숨기고 있는 것은 없는가?
대나무처럼 산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조금 덜 꾸미고, 조금 덜 숨기며, 조금 더 비워내는 일, 그리고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나의 중심만은 잃지 않는 일,
오늘도 문득 그 숲을 떠올린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끝내 부러지지 않던 그 푸른 줄기들을...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서 있을 수 있기를,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조용하지만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