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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가 대답하기를,
"제가 과연 바라는 바가 있사오나 감히 여쭙지 못하였습니다."
황제가 대답하기를,
"바라는 바가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씀해 보시구료."하시니,
황후 다시금 꿇어앉아 여쭙기를,
"제가 사실은 용궁 사람이 아니오라 황주 도화동에 사는 맹인 심학규의 딸로서,
아비의 눈뜨기를 위하여 몸이 뱃사람에게 팔려 인당수 물에 제물로 빠졌었습니다."하고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여쭈니 황제께서 들으시고,
"그러하시면 어찌 진작에 말씀을 못하시었소?
어렵지 않은 일이니 너무 근심치 마시오."하시고
그 다음날 조회를 마친 뒤에 온 조정 신하들과 의논하시고,
"황주로 관리를 보내어 심학규를 부원군으로 대우하여 모셔오라."하였더니,
황주자사가 장계를 올렸는데 떼어 보니,
"분명히 본주의 도화동에 맹인 심학규가 있었으나
1년 전에 떠난 뒤로 사는 곳을 알 수 없습니다."라고 되어 있었다.
황후께서 들으시고
망극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며 길이 탄식하시니
천자께서 간곡히 위로하시기를,
"죽었으면 할 수 없겠지만 살아 있으면 만날 날이 있지, 설마 찾지 못하겠습니까?"
황후께서 크게 깨달으셔서 황제께 여쭈었다.
"저에게 한 계책이 있사오니 그대로 하옵소서,
이 땅의 모든 백성이 다 임금의 신하이온데
백성 중에 불쌍한 사람은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
네 부류의 사람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이 병든 사람이며,
병신 중에도 특히 맹인이오니 천하 맹인을 모두 모아 잔치를 하옵소서.
그들이 하늘과 땅과 해와 달과 별이며,
희고 검고 길고 짧은 것과,
부모 처자를 보아도 보지 못하여 품은 한을 풀어 주옵소써.
그러하면 그 가운데 혹시 저의 아버님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니,
이는 저의 소원일 뿐 아니오라 또한 나라에 화평한 일도 될 듯하오니
이 일이 어떠하온지요?"
천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크게 칭찬하시기를,
"과연 여자 중의 요순이로소이다. 그렇게 하십시다."하시고
천하에 반포하시기를,
"높은 관리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맹인이면 성명과 거주지를 기록하여 각 읍으로부터 기록해 올리도록 하라.
그들을 잔치에 참례하게 하되,
만일 맹인 하나라도 명을 몰라 참례치 못한 자가 있으면
해당 도의 감사와 수령은 마땅히 중한 벌을 받을 것이다." 명령을 내리시니
나라의 각도와 각읍이 놀라고 두려워 성화같이 시행하였다.
이때 심봉사는 뺑덕어미를 데리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던 차에
하루는 서울에서 맹인잔치를 베푼다는 소문을 듣고 뺑덕어미더러,
"사람이 세상에 났다가 서울 구경 한번 해보세.
낙양 천리 멀고 먼 길을 나 혼자는 갈 수 없으니 나와 함께 가는 것이 어떠한가?
길에 다니다가 밤이야 우리 할 일 못하겠는가?"
"예, 갑시다."
"그리하오."
그날로 길을 떠나 뺑덕어미 앞세우고 며칠을 가서
한 역촌에 이르러 잠을 자게 되었다.
마침 그 근처에 황봉사라 하는 소경이 있었는데
이는 반소경이었고 집안 형편도 넉넉한 편이었다.
뺑덕어미가 음탕하여 서방질 일쑤 잘 한다는 소문이
이웃 마을에 자자하여 한번 보기를 평소에 마음속으로 원하고 있던 터에,
심봉사와 함께 온단 말을 듣고 주인과 짜고
뺑덕어미를 빼어 내려고 주인을 시켜 갖가지로 꼬였다.
뺑덕어미도 생각하기를,
'막상 내가 따라 가더라도 잔치에 참례할 길이 전혀 없고,
돌아온들 형편도 전만 못하고 살 길이 전혀 없을테니,
차라리 황봉사를 따라가면 말년 신세는 편안하겠구나,'하고
약속을 단단히 정하고,
'심봉사 잠들기를 기다려 내빼리라.'하고 일부러 자는 체하고 누웠더니
심봉사가 잠을 깊이 들었기에 두말없이 도망하여 달아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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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사는 잠을 깨어 음흉한 생각이 있어 옆을 만져보니
뺑덕어미가 없으니 손길을 내밀어 보며,
"여보소 뺑덕이네, 어디 갔는가?"
끝내 기척이 없고 웃묵 구석에 고추 섬이 있어 쥐란 놈이 '바시락 바시락' 하니
뺑덕어미가 장난하는 줄만 알고 심봉사가 두 손을 떡 벌리고 일어서며,
"날더러 기어 오란가."하며
더듬더듬 더듬으니 쥐란 놈이 놀라 달아났다.
심봉사가 '허허'웃으면서
"이것, 요리 간다."하고
이 구석 저 구석 두루 좇아 다니다가 쥐가 영영 달아나고 없으니,
심봉사가 가만히 앉아 생각하니 허튼 마음 가엾게도 속은 줄을 알았다.
벌써 털 속 좋은 황봉사에게 가서 궁둥이 세움을 하는 데,
있을 리가 있겠는가.
"여보 주인네, 우리 집 마누라 안에 들어갔소?"
"그런 일없소."
심봉사 그제야 달아난 줄 알고 혼자 탄식하며 하는 말이,
"여봐라, 뺑덕어미 날 버리고 어디 갔는가.
이 무상하고 고약한 계집아, 서울 천리 먼 먼 길에 뉘와 함께 벗을 삼아 가리오."
울다가 어찌 생각했는지 혼자 꾸짖어 손을 훨훨 뿌리치며,
"아서라 아서라, 이년!
내가 너를 생각하는 것이 세상물정 모르는 코맹맹이 아들놈이다."하고,
"공연히 그런 잡년을 정들였다가 살림만 날리고
도중에 낭패하니 이 모든 것이 나의 신수소관이라,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우리 어질고 음전하던 곽씨부인 죽는 양도 보고 살아 있고,
출천 효녀 심청이도 생이별하여 물에 빠져 죽는 양도 보고 살았거든
하물며 저만 년을 생각하면 개아들놈이다."
사람 데리고 수작하듯 혼자 궁시렁거리다가 날이 밝으니 다시 떠나갔다.
이때는 마침 오뉴월이라, 더위는 심하고 땀은 흘러 등을 적시니,
시냇가에 의관과 봇짐을 벗어놓고 목욕을 하고 나와 보니 의관과 봇짐이 간 데 없었다.
강변을 두루 다니며 사면을 더듬더듬 더듬는 거동은
사냥개가 메추리 냄새 맡은 듯 싶게 이리저리 더듬은들 어디 있을소냐.
심봉사가 오도가도 못하여 소리내어 울기를,
"애고 애고, 서울 천리 멀고먼 길을 어찌 가리,
네 이놈 좀 도적놈의 새끼야,
내 것을 가져가서 날 못할 일 시키느냐?
허다한 부자집의 먹고 쓰고 남는 재물이나 가져다가 쓸 것이지,
눈먼 놈의 것을 갖다 먹고 온전할까.
빨래하던 아낙네가 없으니 뉘게 가서 밥을 빌며,
의복이 없으니 뉘라서 내게 옷을 주리.
귀먹장이 절름발이 다 각기 병신이 섧다 하더라도 천지 일월성신 흑백장단이며
천하만물을 분별커늘 어느 놈의 팔자로서 소경이 되었는고."
한창 이리 울며 탄식할 제,
이때 무릉태수가 서울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었다.
"이놈 물렀거라,
오험! 에이 냅더바라 흐트러진 박석 수문 돌돌 바라도리야."
한창 이리 왁자지끈 떨떨거리며 내려오니,
심봉사 길을 비키라는 소리를 반겨 듣고,
"옳다, 어디 관장 오나보다. 억지나 좀 써보리라,"하고
마침 독을 내고 앉았다가 가까이 오니
두 손으로 부자지를 거머쥐고 엉금엉금 기어 들어갔다.
좌우의 나졸들이 달려들어 밀쳐내니 심봉사가 무슨 유세나 하는 줄로 여기며,
"네 이놈들아! 나한테 이렇게 했겠다, 내가 지금 황성에 가는 소경이다.
너의 성명은 무엇이며 이 행차는 어느 고을 행차신지 썩 일러라."
한창 이렇게 서로 다투고 있는데 무릉태수가 하는 말이,
"너 내 말 들어라, 어디 있는 소경이며 어찌 옷을 벗었으며,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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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사가 여쭙기를,
"저는 황주 도화동에 사는 심학규이온데,
서울로 가는 길에 날이 너무 더워서 길을 갈 수가 없기로
목욕하고 가려고 잠깐 목욕을 하고 나와서 보니,
어느 못된 좀 도적놈이 의관과 봇짐을 모두 다 가져가서
낮에 나온 도깨비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 의관과 봇짐을 찾아 주시거나 별도로 마련해 주옵소서.
그리 아니 하시면 잔치에 가지 못할 밖에 하릴없으니,
나으리께서 특별히 살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태수가 이 말을 듣고 불쌍히 여겨,
"네 아뢰는 말을 들으니 왜 유식한 것 같구나.
그 사정을 호소문으로 써서 올리도록 하라.
그런 다음에야 의관과 노자를 주겠노라."
심봉사 아뢰기를,
"글은 좀 하오나 눈이 어두우니 형방 아전을 보내 주시면 불러서 쓰게 하겠습니다."
태수가 형방에게 분부하여,
"써주도록 하라."하시니
심봉사가 호소문을 부르기를 서슴지 아니하고 좍좍 지어 올리니
태수 받아보니 그 내용은 이러했다.
제가 하늘에 죄를 얻어 타고난 팔자가 기박하여
해와 달보다 더 밝은 것이 없지마는 두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고
즐거움은 부부만한 것이 없는데도 죽은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함이 한스럽네.
일찍이 청운의 꿈을 품었는데
늘그막에 생각하니 한 일 없이 머리만 세어졌으니
눈물이 흘러 옷깃 적시고 깊은 근심에 눈자위 찡그리도다.
아침 저녁 몰라보게 늙어감은 피부를 만져보니 알겠네.
입에 풀칠하려고 이리저리 밥을 빌고 옷은 몸을 못 가리니 어디 가서 얻어올까.
우리 천자 거룩하사 명을 내려 맹인잔치 열어 주시니
밝은 햇빛 골짝마다 미치어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서울에서 시골까지 갈 길은 멀고먼데
가진 것은 지팡이 하나이고
살림이 가난하여 가진 것은 바가지 하나라네.
날씨가 너무 더워 냇가에서 목욕을 하다가
의복과 봇짐을 백사장에서 잃었으니
봇짐과 전대를 많은 나그네들 틈에서 찾기 어렵도다.
내 신세 생각하니 울에 걸린 양과 같네.
옷을 벗은 맨몸은 낮에 나온 도깨비요, 혼자서 우는 모습 그림자 없는 귀신일세.
엎드려 생각하니 나으리는 어질고 밝은 관리이시니
화살 맞은 새를 살려 주시고
물 마른 고기를 구해주소서.
고금에 없는 이 어려움을 도와주시면
이 세상에 다시 살린 은혜가 되실 테니
밝히 살피시고 처리해 주옵소서.
태수께서 칭찬하시고 통인 불러 옷고리짝을 열고 의복 한 벌 내어주고,
급창 불러 가마 뒤에 달린 갓 떼어주고,
수행관리 불러 노자 돈을 주시니,
심봉사 또 말하기를,
"신이 없어 못 가겠소."
"신이야 할 수 있느냐. 하인의 신을 주자 하니 저희들이라고 발을 벗고 가랴."
그때 마침 그 중에 마부질 심하게 하는 놈이
말탄 손님의 돈을 일쑤 잘 발라내어, 말죽 값도 한 돈이면 열두 닙 훑어 내고,
신이 성하여도 떨어졌다 하고
신 값을 총총 훑어내어 신을 사서 말 궁둥이에다 달고 다니니,
원님이 그 놈의 하는 행동이 괘씸하다고 여겨 그 신을 떼어 주라 하시니,
급창이 달려들어 떼어 주었다.
심봉사 신을 얻어 신은 후에,
"그 흉한 도적놈이 오동수복 김해간죽
마치 맞게 맞추어 대 속도 아니 미었는데 가져갔으니 오늘 가면서 먹을 담뱃대 없소."
태수가 말하기를,
"그러하면 어찌 하잔 말인가?"
"글쎄 그렇단 말씀이오."
태수 웃으시고 담뱃대를 내어주시니
심봉사 받아 가지고,
"황송하오나 담배 한 대 맛보았으면 좋을 듯하오."
태수가 방자 불러 담배 내어주시니
심봉사 하직하고 황성으로 올라갈 제,
대성통곡 우는 말이,
"도중에 어진 수령 만나 의복은 얻어입었으나
길을 인도할 사람이 없으니 어찌하여 찾아갈까?"
이렇게 탄식하며 가다가 한 곳에 이르니,
나무 그늘 우거지고 풀들은 무성한데 앞내 버들은 푸른 휘장 두르고
뒷내 버들은 초록 휘장 둘러 한결같이 늘어지고 펑퍼져서 휘넘늘어진 곳에서,
심봉사가 그늘에 앉아 쉬는데 온갖 새들이 날아든다.
뭇새들이 날아들 제
농초화답에 짝을 지어 왔다갔다 날아들 제
말 잘하는 앵무새며 춤 잘 추는 학두루미
수오기 따오기며, 청강산 기러기,
갈무, 제비 모두 다 날아들 제 장끼는 낄낄,
까토리 푸두등, 방울새 덜렁, 호반새 수루룩, 온갖 잡새 다 날아든다.
만수문전 풍년새며
저 쑥국새 울음운다.
이산으로 가면서 쑥국쑥국
저산으로 가면서 쑥국쑥국
저 꾀꼬리 울음운다.
머리 곱게곱게 빗고 물 건너로 시집가자
저 까마귀 울고 간다.
이리로 가며 갈곡
저리로 가며 까옥
저 집비둘기 울음 운다.
콩 하나를 입에 물고 암놈 수놈이 어루려고
둘이 혀를 빼어 물고 구루우 구루우 어루는 소리할 제.
심봉사가 점점 들어가니 뜻밖에 나무꾼 아이들이 낫자루 손에 쥐고
지게목발 두드리면서 목동가를 노래하며 심맹인을 보고 희롱한다.
만첩 청산은 층층이 높아 있고
청산 녹수는 가득 차서 깊어 있다.
좁은 세상에 너른 바다가 여기로다.
지팡막대 비껴 들고 천리강산 들어가니
높은 하늘 너른 천지 이 산중이 놀기 좋다.
동산에 올라 휘파람 불고 시냇가에 앉아 시를 짓네
산천 기세 좋거니와 남해 풍경 그지없다.
좋은 경치 못 이기어 칼을 빼어 높이 들고
녹수청산 그늘 속에 오락가락 내다보며
동서남북 산천들을 오락가락 구경하니
원근 산촌 두세 집에 저녁노을 잠겼어라.
심산처사 어드매냐, 물을 곳이 어렵도다.
무심할 손 저 구름은 맑은 물에 어려 있다.
유유한 까마귀는 청산 속에 왕래한다.
황산곡이 어드매뇨 오류촌이 여기로다.
영척은 소를 타고 맹호연 나귀 탔네.
두목지 보려고 백낙천변 내려가니
장건은 배를 타고 여동빈 백로 타고
맹동야 너른 들에 와룡강변 내려가니
팔진도 축지법은 제갈공명뿐일소냐.
이 산중에 들어오신 심맹인이 분명하다.
이리저리 노닐면서 종일토록 내 즐기니
산수를 즐기면서 인의예지 하오리라.
솔바람 거문고에 폭포로 북을 삼아
자잘한 시비 말고 흥을 겨워 노닐 적에
아침날 깨온 술을 점심 지어 다 먹으며
피리를 손에 들고 자진곡 노래하니
상산사호 몇몇인고 날과 하면 다섯이요,
죽림칠현 몇몇인고 날과 하면 여덟이라.
고소성외 치산사에 야반종성이 여기로다.
시왕전에 경쇠 치는 저 노승아.
삼천세계 극낙전에 인도환생 하는구나.
아미타불 관음보살 정성으로 외우는데
극력 안심하여 옛사람을 생각하니
주시절 강태공은 위수에 고기 낚고
유현주 제갈량은 남양운중 밭을 갈고
이승기절 장익덕은 유리촌에 걸식하고
이 산중에 들어오신 심맹인도 또한 때를 기다리라.
나무꾼 아이들이 이렇듯이 심봉사를 빗대어 노래를 불렀다.
심봉사가 목동 아이들을 이별하고 한발 한발 안으로 더듬어 나아가서 여러 날이 지나니 서울이 가까웠다.
낙수교를 얼른 지나 서울 근교를 들어가니
한 곳에 방아집이 있어 여러 여자들이 방아를 찧고 있었다.
심봉사가 더위틀 식히려고 방앗집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여러 사람들이 심봉사를 보고,
"애고, 저 봉사도 잔치에 오는 봉사인가 보오?
요즈음에 봉사들 살판이 생겼네.
저리 앉았지 말고 방아나 좀 찧어 주지."
심봉사가 그제야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옳제, 양반네 집 종이 아니면 상놈의 아낙네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번 놀려먹기나 해보리라.'하고 대답하기를,
"천리 타향에서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더러
방아찧으라 하기를 자기네 집안어른더러 하듯 하니,
무엇이나 좀 줄라면 찧어주지."
"애고, 그 봉사 음흉하여라.
주기는 무엇을 주어, 점심이나 얻어먹지."
"점심 얻어먹으려고 찧어줄까."
"그러면 무엇을 주어, 고기나 줄까?"
심봉사가 '하하-' 웃으며,
"그것도 고기지. 고기지마는 주기가 쉬울라고?"
"줄지 아니 줄지 어찌 아나. 방아나 찧고 보지."
"옳지, 그 말이 반허락이렸다."
방아에 올라서서 '떨구덩 떨구덩' 찧으면서 심봉사가 지어내어 하는 말이,
"방아소리는 잘하지마는 누가 알아주겠소."
여러 여종들이 그 말 듣고 졸라대니,
심봉사가 견디지 못하여 방아소리를 한다.
어유아 어유아 방아요. 태고라 천황씨는 목덕으로 왕(王)하시니 이 나무로 왕하신가,
어유아 방아요. 유소씨 나무에다 집을 지으니 이 나무로 집을 얽은가,
어유아 방아요. 신농씨 나무를 가지고 따비를 만드니 이 나무로 따비를 한가,
어유아 방아요. 이 방아가 뉘 방안가, 각댁 한님 가죽방안가,
어유아 방아요. 떨구덩 떨구덩, 허첨허첨 찧은 방아 강태공의 고작 방아,
어유아 방아요. 적적공산 나무 베어 이 방아를 만들었네.
방아 만든 제도 보니 이상하고 이상하다.
사람을 비양턴가 두 다리를 벌려 내어 고운 얼굴에 비녀를 보니 한 허리에 비녀 찔렀네.
어유아 방아요. 길고 가는 허리를 보니 초패왕의 우미인 넋일런가, 그네 뛰고 놀던 발로 이 방아를 찧겠구나.
어유아 방아요. 머리 들고 있는 양은 바다에 늙은 용이 성을 낸 듯, 머리 숙여 좇는 양은 주란왕의 조아림인가
어유아 방아요. 용목팔여되어 분을 찧어 내니 옥입일다.
오고대부 죽은 뒤에 방아소리 끊겼더니 우리 성상 착하옵서 국태민안 하옵신데,
하물며 맹인 잔치 고금에 없었으니 우리도 태평성대에 방아소리나 하여보세.
어유아 방아요. 한 다리 높이 밟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양과 실룩벌룩 삣죽 삣죽 조개로다.
어유아 방아요. 얼씨고 좋을씨고 지화지자 좋을씨고.
흥에 겨워 이렇게 해 놓으니,
여러 여종들이 듣고 '깔깔-' 웃으며,
"애그, 봉사님 그게 무슨 소리오. 자세히도 아네.
아마도 그리로 나왔나 보오."
"그리로 나온 게 아니라 해보았지."
여러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그럭저럭 방아를 찧고 점심을 얻어먹고 봇짐에다 술을 넣어 지고 지팡막대를 쥐고 나서면서,
"자 마누라들 그리들 하오. 잘 얻어먹고 갑네,"
"어, 그 봉사 심심치 않아서 사람은 좋은데, 잘 가고 내려올 제 또 오시오."
심봉사가 거기서 하직하고, 성 안에 들어가니
억만 장안이 모두 다 소경들로 가득하여 서로 '딱딱' 부딪쳐 다니기 어려웠다.
한 곳 을 지나는데 어떤 여자가 문 밖에 섰다가,
"저기 가는 분이 심봉사시오?"
"게 누군고, 날 알 사람이 없는데 그 뉘가 나를 찾나?"
"여보, 댁이 심봉사 아니오?"
"그렇기는 하오마는 어쩐 일이시오?"
"그렇잖은 일이 있으니 게 잠깐 머물러 계시오."하고 들어가더니
다시 나와 인도하여 사랑에다 앉히고 저녁밥을 내 오니
심봉사가 생각하기를,
"고이한 일이다. 이게 어쩐 일인고?"
차려온 음식과 반찬이 예사 음식이 아니어서 밥을 달게 먹었다.
저물어 황혼이 되니, 그 여인이 다시 나와서,
"여보시오 봉사님, 날 따라서 안방으로 들어갑시다."
심봉사가 대답하기를,
"이 집에 바깥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남의 안방으로 들어 가겠소?"
"예, 그런 것은 캐묻지 마시고 나만 따라오시오."
"여보시오, 무슨 병환이 있어서 이러시오? 나는 동토경도 읽을 줄 모르오."
"여보, 헛말씀 그만 하고 들어가 보시오."
지팡막대를 끌어당기니 끌려가며 의심이 나서,
'아뿔사, 내가 아마도 보쌈에 들어가지. 어떡한다.......'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대청마루에 올라가서 자리에 앉으니
동편의 한 여인이 묻기를,
"댁이 심봉사신가요?"
"어찌 아시오?"
"아는 도리가 있지요. 먼 길에 평안히 오시오.
내 성은 안가이고 서울서 살아 오고 있는데,
불행히도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홀로 이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 나이가 스물다섯 살이나 되었는데도 아직 시집을 가지 못하고 있답니다.
일찍이 점치는 법을 배워서 배필 될 사람을 알아보았더니,
며칠 전에 우물에 해와 달이 떨어져 물에 잠기기에 제가 건져 품에 안는 꿈을 꾸었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늘의 해와 달은 사람의 눈인데 해와 달 이 떨어졌으니
나처럼 맹인인 줄 알고, 물에 잠겼으니 심씨인 줄 알았지오.
그날부터 아침 일찍 종을 시켜 문에 지나가는 맹인을 차례로 물어온 지
여러 날 만에 천우신조로 이제야 만나니 연분인가 합니다."
심봉사가 '픽-' 웃으며,
"말이야 좋소마는 그러하기가 쉬울런지요?"
안씨맹인이 종을 불러 차를 들여 권한 뒤에,
"사시는 곳은 어디며 어떻게 되시는 분이신지요?"
심봉사가 자기 신세 전후 사정을 낱낱이 말하며 눈물을 흘리니,
안씨 맹인이 위로하고 그날 밤에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한창 좋을 고비에 둘이 다 없는 눈이 벌덕벌덕할 듯하지만 서로 알 수 있나.
사람은 둘이어서 눈을 합하면 넷이지만 담배씨 만큼도 보이지 않으니 하릴없어 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 동안 주린 판이요 첫날밤이니 오죽 좋으랴마는,
심봉사는 근심스런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안씨맹인이 묻기를,
"무슨 일로 즐거운 빛이 없으니 제가 도리어 무안합니다."
"나는 본디 팔자가 기박하여 평생을 두고 살펴보니 막 좋을 일이 있으면 서러운 일이 생기곤 하였소.
이제 또 간밤에 꿈을 꾸니 평생 불길할 징조가 보입디다.
내 몸이 불에 들어가고, 내 가죽을 벗겨 북을 매고,
또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를 덮으니 아마도 나 죽을 꿈이 아긴가 하오."
☆☆☆
안씨맹인이 듣고 말하기를,
"그 꿈 참 좋습니다. 꿈이 흉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했으니,
내가 잠깐 해몽해드리리다."하고는
세수를 하고 향을 피워 놓고 단정히 꿇어 앉아
산통을 높이 들고 축문을 읽은 뒤에 점괘를 풀어 글을 지었다.
몸이 불 속에 들어가니 만날 기약 있겠고,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드니,
가죽은 궁성(宮聲)이라 궁귈에 들어갈 징조요,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니 자손을 만나리라.
"좋은 꿈이오니 대단히 반갑습니다."
심봉사가 웃으며 말하기를,
"속담에 '천부당 만부당', '가죽과 살의 관계', '지어낸 말'이란 말 이 있소.
내 본디 자손이 없는데 누구를 만나겠소.
잔치에 참례하면 궁궐에 들어가고 관청의 밥도 먹게 될 테지요."
안씨맹인이 마시 말하기를,
"지금은 내 말을 믿지 않지만 두고 보시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대궐 문 밖에 다다르니
벌써 맹인잔치에 들 라 하기에 궁귈 안으로 들어가니
그 안이 오죽 좋으랴마는 빛이 거무칙칙하고 소경 냄새가 진동한다.
이때 심황후는 여러 날 동안 맹인잔치를 하면서
맹인 명부를 아무리 들여놓고 보아도 심씨맹인이 없으니 혼자 탄식하기를,
'이 잔치를 연 까닭은 아버님을 뵈옵자는 것이었는데
아버님을 뵙지 못하니 내가 인당수에 죽은 줄로만 아시고 애통하여 죽으셨는가,
아니면 몽운사 부처님이 영험하여
그 동안에 눈을 떠서 천지만물을 보시어 맹인 축에서 빠지셨는가,
잔치가 오늘 마지막이니 내가 몸소 나가 보리라.'하시며
뒷동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셔서 맹인잔치를 구경하시는데 풍악도 낭자하며 음식도 풍성했다.
잔치를 다 끝낸 뒤에 맹인 명부를 올리라 하여 의복 한 벌씩을 내어주시니,
맹인들이 모두 사례하는데 명단에 들지 못한 맹인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황후께서 보시고,
"저 사람은 어떤 맹인이오."하고 상궁을 보내어 물으시니
심봉사가 겁을 내어,
"저는 집이 없어 천지로 집을 삼고 사해로 밥을 부치어 떠돌아다니오니,
어느 고을에 산다고 할 수가 없어서 명단에도 들지 못하여 제발로 들어왔습니다."
황후께서 반가워하시면서 가까이 들라 하시니
상궁이 명을 받아 심봉사의 손을 끌어 별전으로 들어갔다.
심봉사는 무슨 영문인 줄 모르고
겁을 내어 더듬거리는 걸음으로 별전에 들어가 계단 아래 섰는데,
그 얼굴은 몰라 볼 만큼 변해 있었고
머리에는 횐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했다.
황후가 3년 동안을 용궁에서 지내다 보니
아버지의 얼굴이 가물가물하여 물어 보았다.
"처자는 있으신가요?"
심봉사가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여쭈었다.
"여러 해 전에 아내를 잃고, 초칠일이 못 지나서 어미 잃은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눈이 어두운 몸으로 어린 자식을 품에 품고 동냥젖을 얻어 먹여 근근히 길러내어
점점 자라면서 효행이 뛰어나서 옛사람을 앞서더니,
요망한 중이 와서,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면 눈을 떠서 볼 것입니다.'하니
저의 딸이 듣고, '어찌 아비 눈뜨리란 말을 듣고 그저 있으리오.' 하고,
다른 길로는 공양미를 마련할 길이 전혀 없어
저도 모르게 남경 뱃사람들에게 3백 석에 몸을 팔아서 인당수에 제물로 빠져 죽었는데,
그 때 나이가 열다섯이었습니다.
눈도 뜨지 못하고 자식만 잃었사오니
자식 팔아먹은 놈이 세상에 살아 쓸데없으니 죽여주옵소서."
☆☆☆
황후께서 들으시고 눈물을 흘리며,
그 말씀을 자세히 들으니 분명히 아버지인 줄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천륜에 어찌 그 말씀이 끝나기를
기다렸겠는가마는 자연 이야기를 만들자 하니 그렇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말씀을 마치자 황후께서 버선발로 뛰어 내려와서 아버지를 안고,
"아버지, 제가 정녕 인당수에 빠져 죽었던 심청이어요."
심봉사가 깜짝 놀라,
"이게 웬말이냐?"하더니 어찌 반갑던지
뜻밖에 두 눈에서 딱지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두 눈이 활딱 밝았다.
그 자리에 가득 모여 있던 맹인들이 심봉사 눈뜨는 소리에 일시에 눈들이 뜨이는데,
'희번덕, 짝짝' 까치새끼 밥 먹이는 소리 같았다.
뭇 소경이 밝은 세상을 보게 되고,
집안에 있는 소경,
계집 소경도 눈이 다 밝고,
배 안의 소경 배 밖의 맹인,
반소경 청맹과니까지 모조리 다 눈이 밝았으니,
맹인에게는 천지개벽이나 다름없었다.
심봉사가 반갑기는 반가우나 눈을 뜨고 보니
도리어 처음 보는 얼굴이라,
딸이라 하니 딸인 줄 알지마는 한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 라 알 수가 있나.
하도 좋아서 죽을동 살동 춤추며 노래한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자 좋을씨구
홍문연 높은 잔치에 항우가 아무리 춤 잘 춘들 내 춤을 어찌 당하며,
한고조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제 칼춤 잘 춘다 할지라도, 어허 내 춤 당할소냐.
어화, 창생들아 아들 낳기 힘쓰지 말고 딸 낳기를 힘쓰시오.
죽은 딸 심청이를 다시 보니
양귀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가,
우미인이 도로 살아서 돌아온가,
아무리 보아도 내 딸 심청이지.
딸 덕으로 어두운 눈을 뜨니 해와 달이 다시 밝아 더욱 좋도다
별이 뜨고 구름이 이니 온갖 만물이 즐겨한다.
태평세월 다시 보니 얼씨고 좋을시고.
'아들 낳기 힘쓰지 말고 딸 낳기를 힘쓰라' 함은 나를 두고 이름이라.
☞ 이 때 무수한 소경들도 영문 모르고 춤을 춘다.
지화자 지화가 좋을씨고 어화 좋구나.
세월아 세월아 가지 마라.
돌아간 봄 다시 돌아오건마는,
우리 인생 한번 늙어지면 다시 젊기 어려워라.
옛글에 이르기를 '좋은 때는 만나기 어렵다.' 하는 것은
만고 명현 공자 맹자 말씀이요,
우리 인생 무슨 일 있으랴.
노래를 마치고 다시 '산호 산호 만세!'를 불렀다.
그날로 심봉사에게 예복을 입혀 임금과 신하의 예로 인사를 하고
다시 내전에 들어가서 여러 해 쌓였던 회포를 풀며 안씨 맹인의 일 까지 낱낱이 이야기했다.
황후께서 들으시고
비단 가마를 내어보내 어 안씨를 모셔들여 아버지과 함께 계시게 하였다.
천자가 심학규를 부원군으로 봉하시고
안씨는 정렬부인으로 봉하시고,
또 장승상 부인에게는 특별히 많은 재물을 상으로 내리셨다.
도화동 동민들에게는
부역을 면제해 주고 많은 재물을 상으로 내리시어 마을에 어려운 일을 도와주라 하시니,
도화동 사람들이 하늘 같고 바다 같은 은혜에 감사하는 소리가 온 천지에 진동했다.
무창태수를 불러 예주자사로 승진시키시고
자사에게 분부하여 황봉사와 뺑덕어미를 즉시 잡아들이라 엄하게 분부하시니,
예주자사가 삼백예순 관청에 사람을 풀어서 황봉사와 뺑덕어미를 잡아올렸다.
부원군이 천청루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황봉사와 뺑덕어미를 잡아들여 꾸짖기를,
"네 이 못된 년아, 산은 첩첩하고 밤은 깊은데 천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맹인을 두고
황봉사를 얻어 가는 게 무슨 심보냐?"하고 문초하니,
"역촌에서 주막을 차리고 있는
정연이라 하는 사람의 계집에게 유인(誘引)당하여 그러했습니다."하였다.
부원군이 더욱 화가 나서
뺑덕어미를 능지처참하신 뒤에 황봉사를 불러 꾸짖었다.
"네 이 못된 놈아, 너도 맹인이지?
남의 아내 꾀어내니 너는 좋겠지만 잃은 사람은 불쌍하지 않겠느냐?
속담에 '꽃을 탐하는 미친 벌'이란 말이 있지마는 그럴 수가 있느냐?
마땅히 죽일 일이지만 특별히 귀양을 보내니 원망치 말라.
뒷날 세월이 흐른 뒤에 세상 사람이 이런 불의한 일을 본받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니라."
이렇게 나무라시니 온 조정의 벼슬아치며 천하 백성들이 덕화를 기렸다.
자손이 번성하고 천하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으니 심황후의 덕화가 온 천하에 덮였으며,
"만세만세 억만세를 끝도 없고
한도 없이 누리기를 천번 만번 엎드려 비옵니다."하고 칭송했다.
☆☆☆
황후가 천자께 여쭙기를,
"이러한 즐거움이 없으니 축하하는 잔치를 베풀기를 바랍니다."
황제께서 옳게 여기셔서 천하에 반포하여
일등 명기 명창을 다 불러 황극전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고
온 조정의 모든 관리를 모아 즐기실 때,
천하의 제후들이 모여 와서 세상의 진귀한 보물을 바치고,
일등 명창 일등 명기들이 거의 다 참여했다.
태평성대를 만난 백성들은 곳곳에 춤추며 노래한다.
출천대효 우리 황후 높으신 덕
온 세상에 펴졌으니, 요순 같은 평화시에
노래 하며 즐겨하네.
바다물로 태평주를 빚어
그대들과 함께 취해 천만년을 즐겨 보세,
이러한 태평연에 뉘가 아니 즐길소냐.
이렇게 노래할 때 천자와 부원군이 황극전에 자리를 잡으시고
명무(名舞) 명창(名唱)을 불러 노래하고 춤을 추며 사흘 동안 크게 잔치를 벌여
모두 함께 즐긴 뒤에 천자와 황후와 부원군이 다 각기 거처로 돌아갔다.
그 뒤에 황후와 정렬부인 안씨가
같은 해 같은 달에 아기를 가져 같은 달에 해산하니 둘 다 아들이었다.
황후의 어진 마음에 자기 일은 접어두고 아버지가 아들 얻으신 소식을 들으시고 천자께 아뢰니,
천자도 반겨하시면서 음식물과 금은 비단을 많이 내리시고 예관을 보내어 위문하셨다.
부원군이 80을 바라보는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 놓고
기쁜 마음 측량할 길 없어 밤인지 낮인지 모르던 차에,
황제께서 금은 비단 이며 음식을 내리시고 예관을 보내어 위문하시니
황공감사하여 정중하게 사례하고 전하러 온 예관을 맞아들여 임금의 은혜에 사례했다.
이 소식을 듣고 황후가 더욱 기뻐하면서
금은 보화를 마련하고 예관을 보내어 위문하시니
부원군이 더욱 기꺼워하며,
한편으로 예복을 갖추어 입고 예관을 따라 별궁에 들어가 황후께 인사를 드리니,
황후도 아들을 낳았으니 즐거운 마음을 이루 다 측량할 길 없었다.
황후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옛 일을 생각하며
한편으로 기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슬퍼하니 부원군도 또한 슬퍼하였다.
그런 다음 부원군이
궁귈로 들어가 예관을 따라 옥난간 아래 다다르니 임금이 기뻐하며,
"들으니 경이 늘그막에 귀한 아들을 얻고,
게다가 짐의 태자와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근원에서 났으니 어찌 아니 반가우리오.
아이가 현명하면 훗날에 나라 일을 의논하도록 하겠습니다." 치하하니,
☆☆☆
부원군이 여쭙기를,
"예전에 공자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아들 낳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기르기가 어렵고,
기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가 어렵다.'고 하셨으니,
기다려 보십시다." 하고 물러 나와
아이 모습을 보니
활달한 기상이며 빼어난 골격이 넉넉히 옛사람을 본받을 만했다.
이름은 태동이라 하고, 점점 자라 열 살이 되니
총명과 지혜가 비할 데 없었고, 학문과 재능이 능통하매
부모의 사랑함이 손안에 든 보옥에다 비할 바 아니었다.
무정세월 물 흐르듯하여 태자의 나이 열세 살이 되니
황후께서 태자를 혼인시키려 할 때,
외삼촌과 같은 달 같은 날에 혼례 올리기를 청하시니,
황제께서 기꺼워하시며 널리 알아보라 하셨다.
이 때 마침 좌강로 권성운이 딸 하나를 두었는데
뛰어난 덕행과 빼어 난 재질을 가졌으며 인물은 우미인을 앞지를 만했다.
또 연왕이 공주를 두었는데 안양공주라 했으며,
덕행이 뛰어나고 일을 처리함이 민첩하다고 소문이 났다.
임금이 이 소문을 듣고 연왕과 권강로를 들라 하여 어전에서 청혼하시니,
공주와 소저가 다같이 열 여섯 살 동갑이었다.
그 두 사람이 모두 기꺼이 허락하니 임금께서 하교하시기를,
"권소저로 태자의 배필을 정하고,
연왕의 공주로 태동의 배필을 삼음이 어떠하실는지오?"하시니
주위의 신하들이 모두,
"좋은 일입니다."하고 허락하니,
황후와 부원군이며 온 조정이 즐겨했다.
즉시 태사관을 명하여 날을 잡게 하시니
삼월 보름날로 잡혀 온 나라의 큰 경사로 여겼다.
혼인날이 되어 큰 잔치를 차리니
각 지방의 제후와 만조백관이 차례로 둘러서 있는 가운데
두 부인을 삼천 궁녀가 앞뒤에서 모시고 나와 혼례장으로 인도했다.
훤칠하게 생긴 두 신랑은
만조백관이 모신 모양은 북두칠성을 좌우보필이 모신 듯했다.
두 신부는 달 같고 꽃 같은 고운 모습에 푸른 저고리 붉은 치마를 입고,
칠보로 단장하여 온갖 패물을 허리 위에 늘어뜨리고 머리에 는 화관을 썼다.
삼천 궁녀가 모인 가운데 일등 미녀를 뽑아서 두 낭자를 좌우로 모시니
월궁항아라도 이보다 더 휘황치 못할 터였다.
비단으로 수놓은 휘장을 공중에 둘러치고 혼인자리에 나아가니
그 화려한 모습을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두 신랑이 각기 혼례식을 올리고 폐백을 드린 뒤에 숙소로 돌아가니
동방화촉 첫날밤에 원앙이 녹수를 만난 듯 맑은 정으로 화락한 밤을 지냈다.
아침에 일어나 태자가 강로께 먼저 문안을 올리니
강로 부부 즐겨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고,
태동도 또한 연왕 부부께 인사를 드리니
연왕과 왕후도 못내 반기며 기꺼워했다.
즉시 태자에게 연락하여 조회에 인사를 올리게 하니
임금이 즐겨하시며 부원군을 들어오라 하여 같은 자리에 앉아 신행 인사를 받으시고,
만조백관의 문안인사를 받으신 뒤에,
"내가 진작 태동을 조정에 들이고자 했으나
장가를 들기 전이라 지금까지 벼슬을 주지 못했는데 경들의 소견은 어떠하시오?"하시니
☆☆☆
문무백관이 아뢰였다.
"인물이 출중하오니 곧바로 불러다 벼슬을 내리소서."
임금이 즉시 태동을 불러들여
한림학사 겸 간의태부 도훈관에 이 부시랑의 직품을 내리시고,
그 부인은 왕렬부인을 봉하시고
금은 비단을 많이 내리시면서 말씀하셨다.
"경이 전에는 공부하는 학생이라 국정을 돕지 아니 했지만
오늘부터는 나라의 봉급을 받는 신하이니 정성을 다해 국정을 도우라."
시랑이 공손히 절하고 물러 나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니
즐기고 반기는 마음이야 어찌 다 형언하겠는가.
또 별궁에 들어가 황후에게 절하고 사례하니
황후도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여 물으시기를,
"신부가 어떠하더냐?" 하시니
자리에서 물러서며 대답하기를, "정숙하더이다."
황후께서 또 묻기를,
"오늘 아침 임금님을 뵈을 때 무슨 벼슬을 내리셨느냐?"
대답하기를,
"이러이러하였습니다."하니,
황후 더욱 즐겨하며 태자와 시랑을 데리고
종일 즐긴 뒤에 날 이 늦어서 자리를 일어서며,
"속히 신부를 본가로 데려 가거라."하시니
신랑이 대답하기를,
"속히 데려다가 부모님께 영화를 뵈어드리겠습니다."하니
황후께서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내 말도 또한 그 뜻이로다."
며칠 뒤에 부원군이 날을 잡아서 왕렬부인을 신행하시니,
부인이 시부모 내외분께 예를 올리니 부원군과 정렬부인이 금옥같이 사랑하시며
별궁을 새로 지어 왕렬부인을 거처하게 했다.
한림이 낮이면 나라 일을 돌보고 밤이면 학문을 힘쓰니,
높고 낮은 관리들과 백성들이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럭저럭 한림의 나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임금이 한림의 명망과 도덕을 조정 신하에게 물어보신 뒤에
☆☆☆
하루는 심학사를 불러들여,
"내가 들으니 경의 명망과 도덕이 온 나라에 진동하니 어찌 벼슬을 아끼겠는가?"하시고
직위를 높이시어 이부상서 겸 태학관을 시키시고 태자와 함께 공부하라 하시며,
그 아버지의 직위를 높이시어 남평왕을 봉하시고
정렬부인 안씨는 인성왕후를 봉하시고,
또 상서부인은 왕렬부인겸 공렬부인을 봉하시니,
남평왕과 상서와 인성왕후 모두 임금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우리가 무슨 공이 있어 이런 벼슬을 하는가?"하며
밤낮으로 임금님의 은혜를 기리었다.
남평왕이 나이 팔순이 되었을 때,
우연히 병을 얻어 온갖 약이 효험이 없었다.
이에
심황후의 어지신 효성과 부인의 착한 마음에 오죽 잘 간호했으랴마는,
'죽는 사람은 다시 살릴 방도가 없는 법이라.' 세상을 버리시니,
온 집안이 망극하고 또한 심황후가 애통하여 황제께 이 사실을 아뢰니
임금이 말씀하시기를,
"'인간 팔십 고래희'니 너무 슬퍼하지 마소서."하시고,
명릉 후원에 왕의 예로 안장하게 하시니
황후는 삼년 상복을 입으셨다.
부원군이 젊어서 고생하던 일을 생각하면 무슨 여한이 있으리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예와 지금이 다를소냐.
부귀영화 한다 하고 부디 사람 무시 마소.
'기쁨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괴로움이 다하면 즐거움이 온다.'는 이치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심황후 의 어진 이름 길이길이 전해진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