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 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가야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 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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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을 만나면 잔향이 오래 남습니다. 그가 남긴 채취, 눈빛, 동작, 말투 등 하나하나가 다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주간 저는 두 차례나(농목 운영위, 지속가능한 농촌교회를 위한 젊은정책모임) 그런 분들을 만났습니다. 농목 식구들.. 저를 수식하는 여러 말 가운데 소중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농목(감리교농촌목회자회)입니다. 저의 목회적 지향과 꿈은 농목에서 무르익어 왔습니다. 농촌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작고 여린 것들을 사랑하고, 그 모든 것을 몸소 보여주신 참 자유인 예수를 사랑하게 된 건 바로 이곳에서였습니다. 사람들이 없는 텅 빈 농촌에 남아 어떻게든 희망을 일구어보려고 치열하게 몸부림치던 농목 선배들의 모습은 저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흉내도 내보고 나름 길도 찾아오면 농목의 일원으로 살아온지도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함께 한 세월을 헤아려보면 이젠 가족이라 할만 하지요? 농목 동지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각자 서 있는 곳에서 시대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농민들과 사회 도처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며 암울한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진중하면서도 유쾌하게 하나님 나라를 일구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동지(同志)라는 말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뜻이 서로 같은 이들을 일컫지요. 이는 지난날 어려운 과업을 이루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싸워 나가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살아보니 모든 친구가 동지(同志)는 아니더군요. 젊은 날 같은 뜻을 두고 선지동산에 와 공부하며 치열하게 고민하며 함께 해온 이들이 지금은 서로 다른 곳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신학의 길에서 배운 시대의 예언자로 자기정체성을 삼고 고통이 서린 곳으로, 남들이 꺼려하는 곳으로 지금도 일부러 찾아가는 이들도 있는 반면, 좀더 사람들의 인정을 한 몸에 받는 자리에 서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 때 동지였으나 지금은 너무나도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을 볼 때면 씁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그럼에도 우리 안에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마저 내팽개쳐버린다면 그땐 더 이상 사람의 길을 걷는다 할 수 없겠지요. 동지는 어려움의 순간에도 손을 놓지 않는 이들입니다. 농목 식구들은 숱한 고난의 순간에도 서로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고난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이들이 맞잡은 손은 더욱 견고해질 뿐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예수의 꿈을 붙잡고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일하는 농목 식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가열찬 응원과 기도를 보냅니다. 이들과 어깨동무하며 걷는 길이 참 좋습니다. 저는 지금 김남주 시인의 시에 국악작곡가 변계원 씨가 곡을 입혀 안치환이 부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흥얼거리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2024.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