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인손
허은봉
조금은 때 이른 6월 초순의 더위.
원주 36사 연병장은 전국에서 모인 의경 381기 지원자들로 붐비기 시
작한다. 부산 경남 쪽에서는 대형 버스로 온 모양이다. 나무 그늘에는
삼삼오오 아들과 연인,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하느라 자못 심각하기도
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떨칠 수 없는 장면들이 이어 졌다.
아들 입대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마음이 어수선하고 일이 영 손에 잡
히질 않았는데 마침 남편이 하루 월차를 내어 동행하기로 했다. 옛날
오빠들 훈련소 면회 갈 때를 생각 하면서, 신새벽 부터 일어나 밤 대
추 팥 넣어 맛있게 찰밥하고, 불고기 조금 재우고 맛깔스런 김치 담궈
한쪽 옆에 담아 정성스런 도시락을 만들었다.
원주가는 내내 무뚝뚝한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긴장감을 풀어주려고 전
에 안하던 다정한 어투로 이것 저것 당부한다. 부디 상관 명령에 잘
따르고 집에서처럼 동작 느리게 하지말고 재빨리 눈치껏 잘하라고 ...
아무리 진지하게 이야기해도 아들은 별 실감이 나질 않는 눈치고 남편
과 나는 이런 아들을 군대 보낸다는 것이 못내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입소 30분전. 각양 각색의 차림들이 집결하는 시간.
훈련소 지휘관들이 집결을 알리고 여기 저기서 마지막 핸드폰 통화를
하던 장정들이 15열 종대로 모여 섰다."가족들은 대열에서 물러나 주십
시요”라는 멘트에 모두들 아쉬운 발걸음으로 뒤로 종종..
이제는 정말 헤어지나 보다. 멀대 같이 키만 멀쑥하게 컸지 속이 영
글지 못해 항상 걱정스런 칫아들. 이젠 그 아들이 집에서 떨어져 나가
는구나. 이제는 국가가 너를 사람답게 키워주는 시간이 되었구나. 아
들을 보내고 우리 부부는 서로 말없이 다른 곳을 보며, 속깊은 남편은
아내 몰래 손수건을 적시며 아들의 입대를 격려하고 아내는 남편의 그
런 모습을 보기가 안스러워 다른 곳으로 돌아가 훌쩍였다.
아들아! 넌 내게 첫사랑이었다.
첫 출산! 죽음의 순간을 넘나들며 산모의 호흡이 계속 빨라지고 아기
의 머리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8시간 이상을 산통에 지친 산모는
모든 신에게 제발 우리 모자를 살려 달라는 기도를 했었다. 옛날 어른
들은 출산하러 갈 때 신발을 거구로 놓고 들어갔다던가? 10여명의 의료
진의 도움으로 첫아들이 탄생하는 순간은 이 세상 모두가 은혜롭고 우
리가 살아 있음을 한없이 감사했다. 가족 대기실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친정 어머니께 이렇게 힘들게 나를 낳아 주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북
받쳐 올랐다. 그렇게 낳은 아들을 잘 키운다는 미명아래 어릴 때부터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나하나 잔소리 하다가 때로는 내 성질에
못 이겨 아들을 주눅 들게 했다. 사춘기가 되니 심성 여린 아들을 엄
마에게 반항도 못하고 속으로 참다가 참다가 가슴에 응어리가 졌단다.
아들아! 엄마의 속 좁은 욕심으로 너의 날개를 훨훨 펴지 못한 것이
너무 마음 아프구나. 너 또래의 학생들이 제 일을 자신있게 해나가는
걸 보면 내가 너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가슴 한편이 쓰리단다. 반듯한
것만이 정석인줄 알고 옆으로 삐져 나오는 것은 모두 잘라 내고, 학교
때는 모범생이 많이 대우받는 다는 엄마의 아집으로 너의 감성을 보살필
줄 몰랐구나.
그렇게 시작한 군 생활도 이제 1년이 지났구나. 훈련기간 동안 엄마
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너에게 수 차례 편지를 보냈었지. 시간이 흐를
수록 조금씩 열리는 네 마음을 엄마는 읽을 수 있었단다. 우리에게 네
복무 기간은 사랑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구나.
엄마가 자식에게 무엇을 남겨 줄 것인지 생각해 본다. 항상 사랑이
넘쳐야 자신감이 생기고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도전 할 수 있는
힘이 있을 텐데 엄마는 무조건적 사랑을 바탕에 깔아 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이 아프단다. 전폭적인 인정과 충분한 사랑, 위에 굳건한 인
생 목표가 세워짐을 이제야 깨달았단다.
아들아! 엄마의 뒤늦은 철들기로 네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것이 시간이
흘러도 가슴 한 켠에 아리는 자국으로 남아 있단다.
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한 손가락 같지만 속으로는 아리고 아린, 약간만
건드려도 열이 펄펄 끓는 생인손 같은 내 첫사랑.
2002 13집
첫댓글 아들아! 엄마의 뒤늦은 철들기로 네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것이 시간이
흘러도 가슴 한 켠에 아리는 자국으로 남아 있단다.
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한 손가락 같지만 속으로는 아리고 아린, 약간만
건드려도 열이 펄펄 끓는 생인손 같은 내 첫사랑.
사랑이 넘쳐야 자신감이 생기고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도전 할 수 있는 힘이 있을 텐데 엄마는 무조건적 사랑을 바탕에 깔아 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이 아프단다. 전폭적인 인정과 충분한 사랑, 위에 굳건한 인생 목표가 세워짐을 이제야 깨달았단다.
아들아! 엄마의 뒤늦은 철들기로 네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것이 시간이
흘러도 가슴 한 켠에 아리는 자국으로 남아 있단다.
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한 손가락 같지만 속으로는 아리고 아린, 약간만 건드려도 열이 펄펄 끓는 생인손 같은 내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