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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예, 주식회사 한국 기화기 업무과 차진웁니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반사적으로 나온 나의 첫마디에 수화기 저 편에서 여자가 잠시 키득거리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진우야, 내다. 누군 지 알긋나?”
나는 익숙한 아랫녘의 사투리를 쓰는 그녀가 누군지 단박에 알아차렸고, 뜻밖의 전화에 깜짝 놀라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너, 태순이로구나!”
그녀는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옴마야…, 아직도 날 기억하네. 고마워서 왈칵 눈물이 쏟아질라칸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날이었는데, 독특한 말씨와 억양이 너무나도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대학시절 내내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 후배의 목소리는 졸업 후 7년이나 지났는데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의 말씨가 나의 머릿속에 들어박혀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직 미혼인 그녀는 현재 울산시에서 석유화학 회사의 총무과에 다니며, 영양사이기도 하다는 거였다. 나는 그녀가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 자못 궁금했다.
“근데, 내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어?”
“어젯밤에 추자한테서 연락 왔더라.”
문득, 추석 이튿날 정오 무렵에 만났던 추자가 떠올랐다. 고향마을의 간이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났던 거였다. 그날, 간이 정류장 앞에서 선 채로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나는 저만치 골목길 초입에서 어떤 여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왠지 낯익은 얼굴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그녀가 잰 걸음으로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는 추자였다. 그녀와 얘기를 나눈 지 채 오 분도 되지 않아 마을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그녀는 급히 나에게 연락처를 물었고, 나는 허겁지겁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어 던지듯이 건네주곤 부리나케 버스에 올라탔다. 좌석에 앉고서야 태순이의 소식을 묻지 못했다는 게 생각났다. 무척이나 아쉬웠다.
추자는 나보다 한 살 아래였지만, 우리는 스무 가구 남짓한 산골마을 출신의 소꿉동무였다. 그녀는 고교 1년 때에 고향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인 대구로 이사했다. 내가 태순이를 알게 된 것은, 바로 추자가 사는 대구에서 자취를 하던 대학 시절, 추자의 소개 덕분이었다. 추자는 종종 태순이를 데리고 내게 놀러 왔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알게 모르게 친한 사이로 발전하게 된 거였다.
“참, 태순아, 다가오는 20일에 거기 울산에서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참석할 거야. 식이 끝나고 오후 4시경에 거기 H백화점 지하 커피숍에서 따로 만나 얼굴 좀 보자. 무척 보고 싶다."
“그렇게 해. 나도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보고 싶다.”
나는 통화 중에 언뜻 울산에 사는 친구의 결혼식이 떠올랐고, 해서 그날 꼭 만나자고 다짐을 두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7년 전, 나는 전문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군에 입대했고, 휴가 나올 때마다 그녀의 학교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가 수업을 받는 강의실 코앞까지 찾아갔다가도 은연중에 발동하는 열등감 때문에 매번 돌아서곤 했다. 4년제 대학의 강의실이었던 것이 걸림돌로 작용했던 거였다. 재학 중일 땐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졸업을 하고부터는 서서히 열등의식이 싹텄다. 제대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늘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었던지라, 차마 그녀의 연락처를 수소문하지 못하고 그녀로부터 먼저 연락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지난 해 12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가 문제였다. 대선에 출마한 후보자 중에는 그룹 총수도 있었는데, 그가 거느린 계열사 중의 하나가 내가 다니는 회사의 원청 업체였다. 원청 업체는 하청 업체들에게 암암리에 선거운동 지원을 요청했고, 하청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따랐다. 을의 입장인 하청 업체에서는 저마다 아무런 저항 없이 선거 지원금을 대 주었고, 또한 별도로 인원을 차출하여 지원했다. 하청 업체에서 차출된 직원들은 후보자나 찬조 연설자가 특정 장소나 거리에서 유세를 펼칠 때마다 박수 부대로 동원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을 상대로 일일이 선전 유인물을 배포했다. 그룹 총수인 후보는 불도저였다. 그는 칠순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운동이 끝날 때까지 반나절도 거르는 일 없이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빽빽하게 짜인 일정을 여봐란 듯 너끈히 소화해 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나도 차출되어 대기업 회장인 후보의 선거 운동원이 되었던 거였다.
선거운동이 끝나던 날, 아침결에 후보의 특보라는 자가 내려와 운동원들에게 저녁에 회식비로 쓰라면서 약간의 돈을 건네주었고, 우리는 그 즉시 대형 식당을 예약했다. 선거운동을 모두 끝낸 운동원들은 밤이 되자 숯불갈비 집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대형 식당 1층과 2층은 차출된 운동원들로 바글바글했다. 다들 이미 서로 통성명을 한 터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회식자리에서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후보자에 대해 못마땅했던 점과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왔고, 또한 저마다 자기 회사 사장의 비굴함과 용기 없음을 개탄했다. 운동원들은 저마다 소주병을 들고 테이블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술잔을 주고받았고, 그 통에 회식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자정이 가까워졌어야 다들 자리에서 뭉그적거리며 일어섰는데, 남자들은 다들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나는 식당 앞뜰에 서서 특정 다수를 향해 인연이 되면 또 만나자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한길가로 나와 택시를 잡아 뒷좌석에 올랐다. 그 사이 회식 자리에 함께했던 여자 하나가 방향이 같다면서 잽싸게 내 엉덩이를 밀치고 들어왔다. 순간, 나는 불쾌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취기 때문인지 낮에 잠깐씩 마주쳤을 때보다는 훨씬 예뻐 보였다. 나는 이내 미간에 잡았던 볼썽사나운 몇 가닥 주름을 지운 채 방긋 웃으며 말했다.
“강순애 씨, 저랑 한 잔 더 하실래요?”
맨정신이었으면 이런 말을 꺼내지도 못했으리라.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기라고 하듯 눈을 살짝 내리깔면서 반색하더니 이내 반문했다.
“어디서요?”
“강순애 씨가 편한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십여 분쯤 지나자, 그녀는 택시 기사에게 검지로 전방의 횡단보도를 가리키며 저기에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녀가 내린 후 내가 택시비를 셈하고 내렸다. 그녀는 검지로 길 건너편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을 가리켰다. 그 건물의 외벽에서는 색색의 네온 불빛이 점멸하고 있었다. 번쩍거리는 간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카페였다. 나는 그녀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이라 그런지 카페 내부의 홀은 휑뎅그렁했다. 내가 손짓으로 종업원을 불러 맥주와 마른안주를 주문하자, 그녀가 손을 휘휘 내두르며 배가 불러 맥주는 못 마시겠다며 다른 것을 주문하길 바랐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메뉴판을 펼쳐서 그녀 앞으로 내밀며 정중히 물었다.
“뭐 드실래요?”
그녀는 메뉴판을 훑어 내려가다가 어느 한 곳에서 시선을 고정시키더니, 칵테일 주류의 이름을 불렀다.
“불타는 오아시스.”
나는 재빨리 메뉴판을 받아 들고 가격을 확인했다. 세로로 늘어선 여타의 칵테일 주류와 가격을 비교해 보았다. 메뉴판에 나와 있는 칵테일 주류 중에서는 가장 저렴했다. 나는 내심 다행이라고 여기며 종업원에게 같은 것으로 두 잔을 주문했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 연하였다. 이 공업도시가 고향이었고,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의 집은 내 자취방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리는 이야기 도중에 서로의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술을 잘 마셨다. 잠깐 동안에 ‘불타는 오아시스’를 석 잔씩이나 비웠는데도 얼굴색은 물론, 말 한마디에도 흐트러짐이라곤 없었다. 넉 잔째 술잔이 잦아들어 바닥을 드리우자, 나는 내뱉는 말마다 발음의 정확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땐, 유리창 너머에서 희붐한 빛이 어른거렸다. 늘 그래왔듯, 나는 팔을 뻗쳐 머리맡을 더듬었다. 담배를 집어들 심산이었다. 누운 채 손으로 여기저기를 더듬던 나는 한순간 흠칫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 외에는 아무도 없어야 할 자취방에 살아있는 생명체로 느껴지는, 그것도 아주 보드라운 촉감이 손가락으로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눈을 비빈 후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그 보드라움의 정체는 강순애 씨의 볼살이었다. 나는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혹여 이곳이 내 자취방이 아닌가 싶어 구석구석을 훑어보았으나 자취방이 틀림없었다. 이불을 쳐다보니 자고 일어나 눈만 뜨면 보는 이불이었고, 어제 입었던 회색빛 코트가 눈에 익은 행거에 삐뚜름하게 걸려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방안을 훑어보다가 또다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앞부분에 살무사가 대가리를 쳐든 채 도사리고 있는 문양이 새겨진 붉은색 트렁크 팬티와 돌돌 말린 검정색 삼각팬티가 여자의 발치 아래에 널브러져 있었다. 녹슨 철제 책상다리 옆에는 검정색 브래지어가 넌들넌들 헝클어져 있었다. 고개를 쳐든 살무사 문양이 새겨진 트렁크 팬티는 어제 내가 입었던 팬티와 너무나도 흡사했다. 나는 퍼뜩 이불을 들추고 팬티를 확인했다. 팬티는 온 데 간 데 없고, 축 처진 남근이 거무스름한 곡선의 거웃 속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나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 볼그스레한 남근을 뿌리에서부터 밖으로 더듬더듬 더듬어 나오다가 끄트머리에서 힘줘 꼬집어보았다. 순간, 참기 어려우리만치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분명 꿈은 아니었다. 나는 얼른 대가리를 쳐든 살무사 문양이 새겨진 빨간색 트렁크 팬티를 낚아채어 바삐 껴입었다.
나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통음으로 필름이 끊긴 탓에 ‘불타는 오아시스’ 넉 잔을 비운 이후로는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만, 넉 잔째 들이켜는 도중에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 어슴푸레하게나마 떠올랐다. ‘제 일도 아닌데, 그렇게 열심히 하는 분은 처음 봤어요. 다른 분들은 다들 아침에 출근 체크 후, 오늘은 또 뭘 하며 시간을 때울까를 고민하면서 슬쩍슬쩍 몸을 숨기곤 했는데, 차진우 씨는 제 일처럼 열심히 하시더군요. 남의 일도 저렇게나 열심히 하시는데, 제 일엔 오죽하랴.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때부터 호감을 가졌죠.’ 그러나 그 이후로는 무슨 말을 주고받았고, 또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는 하도 작아 예닐곱 살짜리 아이한테나 꼭 맞을 법한, 그러나 왠지 그녀의 것으로 여겨지는 검정색 삼각팬티와 작게 잡아도 B컵은 됨직한 검정색 브래지어를 낚아채어 그녀의 머리맡에 놔두었다. 그리고는 속삭이듯 “강순애 씨!” 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이번에서 제법 큰소리로 “강순애 씨! 강순애 씨!” 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동시에 이불에 감겨 있는 그녀의 몸을 서너 차례 흔들었다. 그녀는 그제야 부스스 눈을 떴다. 그러나 눈동자에는 몽롱한 기운이 어려 있었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품 또한 아직 술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면서 잠시 야릇한 웃음을 흘리더니, 곧바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일어나 앉았다.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운 때문에 상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그녀는 구태여 몸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불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와 전라의 몸을 드러내놓은 채로 속옷을 주섬주섬 껴입었다. 외투까지 완전히 챙겨 입은 그녀는 벽에 걸린 타원형의 거울 앞에 서서 손빗으로 머리카락을 쓱쓱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자그마한 군청색 숄더백을 대각으로 두르더니 몇 발짝 나아가 문고리를 잡은 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급한 일 있으면 연락 드려도 되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그러나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종종걸음을 치며 사라졌다. 나는 방금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진 광경조차도 꿈인 듯싶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지나온 삶 중에 가장 고달팠던 시기를 말해 보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별 망설임 없이 고3이었다고 힘줘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아마도 태순이 또한 아닐 것이다, 그녀는 동급생들이 밤늦도록 학교에 남아서 책과 씨름하는 동안, 나의 자취방에서 화투 놀이에 여념이 없었고, 이마와 손목이 벌겋게 달구어진 채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물론, 벌겋게 달구어진 자국들은 화투 놀이에서 진 점수만큼 알밤을 먹거나 자로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따금 술도 마셨다. 배고플 땐, 때를 가리지 않고 손수 밥을 지어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었고, 또한 방이 너저분해지면 빗자루를 들거나 걸레를 빨아서 청소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랑이 싹튼 것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3학년 2학기에 접어들자, 늦게나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입시일까지 100여 일 동안 발걸음은커녕, 전화 한 통 없었다. 나는 그녀가 그리울 때마다 떠오르는 단상들, 말하자면 ‘보고 싶다 태순아.’ ‘자정이 훨씬 지났는데도 눈앞에 네 모습이 어른거려 도무지 눈이 감기질 않아.’ ‘아무래도 내가 널 죽도록 사랑하나 봐, 이런 느낌은 난생 처음이거든.’ 이러한 문장들을 갱지로 된 연습장에 가득 채워 나갔다.
입시 당일, 저물녘에 태순이는 제 친구 서넛을 데리고 내 자취방에 나타났다. 나는 반색하며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을 맞이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하마터면 그녀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꼭 껴안을 뻔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것을 알아채곤 누가 볼세라, 뿌리치듯 슬그머니 놓았다. 그날 나는 집 앞의 통닭 가게와 슈퍼와 튀김집을 바삐 뛰어다녔고, 그 통에 한 달치 용돈이 한참에 동나는 바람에 애를 먹기도 했다.
입시가 끝나자, 태순이와 그녀의 친구들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먼저 자취방에 와서 이리저리 뒹굴면서 TV를 보거나, 혹은 책장에 꽂혀 있는 소설책을 꺼내 읽곤 했다. 나는 태순이가 갱지로 된 연습장에 써놓은 글들을 한 번쯤은 봐주기를 은근히 바랐다. 언뜻 보면 멋대로 휘갈겨 놓은 낙서에 불과해 보이겠지만, 그 구절들 속에는 나의 진심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퇴근길마다 으레 그래왔듯, 오늘도 나는 퇴근길에 처갓집으로 향한다. 아내를 집으로 데려 가기 위해서다. 아내는 낮 동안은 대부분 처갓집에서 보낸다. 저녁엔 내가 퇴근 시간에 맞춰 처갓집에 들러 휠체어에 태워서 집으로 데려오지만, 낮에는 내가 출근한 후 장모가 와서 처갓집으로 데려 간다. 아내는 이따금 목발을 짚고 걷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휠체어에 의지한다. 지금 그런 생활이 석 달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일 전날 밤에 카페에서 함께 ‘불타는 오아시스’를 마시고 다음날 아침에 자취방을 빠져나간 강순애 씨는 두 달쯤 지난 후에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예, 차진웁니다”
“…저, …저, 강순앤데요, 저 기억하시죠?”
“…….”
나는 강순애 씨가 누군지 퍼뜩 떠오르지 않아, 한참동안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 때, 함께 대기업 총수 후보를 도왔던….”
나는 그제야 강순애가 누군지 떠올랐다.
“아! 강순애 씨,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사실, 나는 그녀가 안중에도 없었을 뿐더러,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름대로 회사 일도 바빴지만, 그 보다는 특별히 그녀가 기억에 오래 남아 있지 않았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상으로는 말씀드리기가 곤란하고…, 다가오는 토요일에 꼭 좀 만났으면…. 전에 갔던 카페 기억하시죠?”
전화를 끊고 난 후, 나는 무슨 일일까 싶어 턱을 괴고 앉아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토요일에 약속 시각에 맞춰 카페로 향했다. 카페 출입문을 밀고 들어서자, 구석진 자리 한 켠에서 그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녀와 마주앉은 뒤 ‘불타는 오아시스’를 드시겠냐고 물었다. 순간, 그녀의 인상이 차가운 조약돌처럼 시퍼렇게 굳어지더니 손사래를 쳤다. 그 바람에 갑자기 분위기가 착 가라앉으면서 냉랭해졌다. 그녀는 잠시 머뭇머뭇 망설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 …저, 임, 임신했어요. 8, 8주째래요. 어, 어떡해요?”
목소리가 너무 작아 겨우 알아들었지만, 나는 이 한 마디에 깊이 따져보지도 않고 결혼하자고 했다. 그러자 내내 굳어 있던 그녀의 표정이 구겨진 옷에 다림질이라도 한듯 매끈하게 펴졌다. 내 눈에는 그것이 내 말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로 비쳤다.
내가 그녀의 단 한마디에 다짜고짜 결혼을 하자고 했던 것은, 우리 집의 문갑 위에는 마치 행복의 상징이기라도 하듯이 결혼식 날 찍은 부모님의 사진이 오랫동안 놓여 있었는데, 신랑 신부 사이에는 세 살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의식이 싹틀 무렵에서야 나는 그 아이가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년에는 그것이 무진장 자랑스러웠고, 또한 행복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나는 부모님과 딴 방에서 잠을 청해야 했고, 언제부턴가 행복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 사진이 점점 보기가 싫어지더니, 좀 더 지나자 역겹기까지 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길래,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나를 낳았어?“ 그날 어머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그 사진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그날 나는 나 자신에게 굳게 맹세했다. ‘나는 절대로 저러지 않겠노라고.’ 어쨌거나, 그날 이후로 그 흑백사진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강순애 씨는 나와 결혼식을 올리기 보름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결혼과 함께 나는 그녀의 의사에 따라 처갓집 근처에 살림집을 장만했다. 결혼 후 한 달쯤 지나자, 아내는 아무 하는 일 없이 집에만 있기가 따분하다면서 출판사 영업직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고, 나는 특별히 반대하지 않았다. 아내가 자신이 5년 동안 몸담았던 전 직장의 선후배와 동료, 그리고 학창시절의 동창들을 상대로 동화책과 그림책 시리즈만 팔아도 수월찮이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기 때문이다. 아내 자신도 그네들로부터 구입한 아동용 시리즈물이 꽤 어지간할 정도로 많았다. 6단짜리 책장 두 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그러나 막상 출판사에 입사하여 보따리를 풀자, 실적이 애초의 생각만큼은 못되었다. 아내는 돈에 대한 애착이 남달리 강하긴 했지만, 살갑고 마음씀씀이가 오밀조밀한 장점이 많은 여자였다. 그러나 사고 이후부턴 그 많았던 장점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전에는 눈을 씻고 보려야 볼 수 없었던 단점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해 갔다..
지난 6월, 장마가 졌을 때 하루는 아침나절까지만 해도 맑던 하늘이 해거름에 건듯 찌뿌드드해지더니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자 그예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아내는 집에 갈 걱정이 태산 같아 사무실 앞 현관에 서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별안간 막내 이모뻘쯤 되는 선배 직원이 나타나서 자기 차로 태워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해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도로는 군데군데 빗물이 고여 있었고, 선배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차바퀴가 심하게 미끄러졌다. 운행 중에 선배의 머리가 수시로 앞으로 기울어지는 듯해 힐끗 쳐다보았더니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아닌가! 어머, 어머…, 하는 사이에 아내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는데, 눈을 떴을 땐 중환자실이었고, 오른쪽 다리가 제 의지대로 추슬러지지 않았다. 조수석에 앉았던 아내는 갈비뼈 두 개가 부러졌고, 그 때문에 6개월 된 태아가 유산되었다. 또한 한 쪽 다리가 골절되고 마비되는 통에 더는 두 다리로 걷지 못하게 되었다. 전적으로 선배의 잘못으로 빚어진 사고인지라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내는 그 때 입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어 내가 집에 없는 동안은 장모가 처가로 데려가서 보살폈다.
처갓집에서 아내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집에 도착한 나는 현관문 앞에서 아내를 부둥켜안고 안방으로 들어선다. 아내를 내던지듯 침대위에 거칠게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가서 커피 한 잔을 타 온다. 나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면서 아내에게 묻는다.
“장모님하고 있으면 주로 어떤 얘기를 해?”
“별 얘기 안 해. 참, 오늘 엄마가 차 서방이 잘 해주냐고 묻더라.”
“그래? 뭐라고 대답했어?”
“추석 이후로 말수가 부쩍 줄었고, 어쩌다가 한마디 하는 것도 신경질적이라고 했어. 뭐 사실이잖아. 추석 연휴가 끝나고부터 나한테 짜증부린 것 말고는 특별히 한 게 없잖아. 방금도 날 무슨 짐짝 부리듯 침대위에 던졌잖아. 안 그래요?”
“……”
“왜 대답을 못해?”
아닌 게 아니라, 대답하기가 난감했다. 태순이한테서 연락이 온 이후로는 아내를 보노라면, 괜스레 짜증이 일었다. 그리고 이제 겨우 29살인데, 이런 생활을 계속 이어갈 자신도 없었다. 사고가 나고부터는 숫제 마지못해 사는 꼴이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헤어지자고 할 수도 없고….
어머니는 사고 후 몸이 불편한 아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는 하루라도 빨리 갈라서라고 재우쳤다. 지난 추석 연휴 때 고향집에 갔을 때도 어머니가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헤어지라고 다짐을 놓는 바람에, 나는 추석 이튿날 정오 무렵에 도망치듯 돌아와 버렸다. 결혼식은 처갓집이 있는 도시의 예식장에서 가까운 친지 여남은 명과 직장 동료 예닐곱 명만 초청해서 치렀기 때문에 고향 사람들은 내가 결혼을 했는지조차도 모른다. 아마도 어머니는 동네에 소문이 퍼지기 전에 헤어지게 한 뒤, 맞선 자리를 주선해서 재혼을 시킬 심산인 것 같았다.
태순이한테 전화를 받고 난 이후, 나는 마음이 번잡해서 회사에 출근만 하면 머리를 싸매고 앉아 현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머리를 굴리곤 했다. 그러나 도무지 이렇다 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의 중심을 둘 곳 몰라 갈팡질팡하며 고민이 깊어져 가던 어느 날, 태순이한테서 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진우야, 어젯밤 꿈에 니하고 니 처가 흐릿하게 뵈던데, 니 벌써 결혼했나?”
순간, 나는 무르춤해졌다. 참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대충 얼버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아직 서른 전이야. 스물여덟 살 먹은 너도 미혼인데, 하물며 남자인 내가…. 요즘 남자들은 말야, 대개 서른이 넘어야 결혼을 하거든.”
“그건 그렇지만…. 글구, 지난 추석 때 말야. 시골에 갈 일이 없다고 벅벅 우기는 추자한테, 니 연락처 꼭 좀 알아보라고 차비에다가 수고비까지 얹혀주면서 보낸 거야. 니, 그거 몰랐제? 글구, 니 학교 졸업하고부턴 와 한 번도 연락 안 했노?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
나는 또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일이 묘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쯤에서 결혼을 했다고 밝혀야 하나. 여하간 당분간은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며칠 후 울산에 가서 그녀를 만나보는 게 급선무일 것 같았다. 졸업 후 연락을 못했던 것에 대해서도 열등감 때문이었다고 거리낌 없이 털어놓아야겠다고 작심했다.
“태순아, 지금 거래처에서 전화가 와 있거든. 그만 끊을 게. 못다 한 얘긴 며칠 후에 만나서 실컷 하자.”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 나는 잠시 그녀와 함께했던 지난날을 회상해 보았다.
대학 2학년 때의 가을이었다. 학과 친구 하나와 태순이와 그녀의 친구, 이렇게 넷이서 1박2일 일정으로 부산의 태종대에 다녀왔다. 대구에서 오후에 출발한 바람에 태종대 입구에 도착했을 땐 날이 어둑어둑했다. 태종대 들머리에 있는 분식집에서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다스린 후, 소주 몇 병과 화투를 사들고 근처 여관에서 방 하나를 잡았다. 화투 놀이로 밤을 지새운 뒤 다음날 오전에 태종대에 들렀다가, 오후에는 해운대 백사장으로 이동해 그 일대를 쭉 둘러본 후 다시 대구로 돌아올 심산이었다.
여관방에서 넷이 소주를 권커니 잣거니 하면서 고스톱을 쳤는데, 평소보다 빨리 취기가 돌았다. 술을 지나치리만치 급하게 마신 탓에 초저녁부터 정신이 혼미해져 화투 패를 돌릴 때마다 큰 점수 차이로 지곤 했다. 그 통에 이마에 알밤을 수도 없이 먹었다. 결국 나는 술에 못 이기고, 졸음에 겨워 가장 먼저 나가떨어졌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까 태순이가 나와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 것 같았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무려면, 내가 잠든 새에 무슨 일이 있었을 라고.’ 이렇게 여겼다.
오전에는 짭조름한 냄새를 풍기는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소나무가 우거진 태종대의 외곽도로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했다. 이쯤에서 태순이한테 사랑을 고백해야겠다 싶어 흘끔흘끔 곁눈질을 해 가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왠지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는 탓에 도무지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정오 무렵에 버스를 타고 해운대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해운대 바닷가의 식당에 들러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그러나 맛이 일품인 매운탕으로 주린 창자를 채운 후 백사장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운동화에 착 감겨드는 하얀 모래를 허공을 향해 강하게 걷어찼다. 저만치 푸른 물너울 위에서 서로의 부리를 쪼아 가며 정답게 노니는 이름 모를 새 한 쌍이 너무나 다정해 보였다. 눈의 초점을 멀리 밀어내자 아스라이 먼 바다는 공활한 가을 하늘과 맞닿아 있어 그 끝이 어디쯤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에 대한 내 사랑 또한 이처럼 끝없다는 걸 고백하기에 더없이 좋은 배경인 듯해 불타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얼어붙은 듯 차가워보였다. 나는 우선 이 고리타분한 분위기부터 바꿔 놓을 심산으로 평소 곧잘 해왔던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졌다.
“태순아, 지난여름에 왔더라면 더 좋았을 걸. 44사이즈의 미끈한 네 몸매를 넋 놓고 감상할 수 있었을 테니 말야!”
그녀는 그러나 여전히 시선을 바다에 둔 채, 툭 쏘듯 한마디 던질 뿐이었다.
“참 나! 내가 44사이즈인 건 맞지만, 누가 수영복을 입는다카더나.”
나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말에 직감적으로 필시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여행의 목적이었던 사랑 고백도, 또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남자 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부탁도 못한 채,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우리는 동대구역에서 내린 뒤 각자 뿔뿔이 헤어졌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나는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달래며 불 꺼진 아궁이에 연탄불을 피웠다. 그리고는 뭘 좀 채워달라고 아우성인 창자를 달랠 참으로 서둘러 쌀을 씻은 후 전기밥솥에 안쳤다. 바로 그때였다. 노크는커녕, 그 흔한 기척조차 없이 누군가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빨리 문을 응시했다. 태순이였다. 그녀는 평소와는 달리 쾅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문을 닫고 들어섰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문 쪽을 계속 응시했다. 입때껏 한 번도 그녀 혼자서 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에게 밖에 아무도 없으니 그만 눈길을 거두라고 하더니,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한 채, 그녀를 쏘아보자, 이윽고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어젯밤에, 아니 정확히는 오늘 새벽에 말야, 내한테 바싹 다가와서 몸을 더듬고…, 또 격렬하게 입을 포개고…. 도대체 왜 그랬어? 우리 둘 뿐이었으면 몰라도…. 그래도 부끄러운 줄은 아는지, 내 친구가 자꾸 헛기침을 하니까 그제야 이불 밑으로 막 도망가고….”
“…….”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나는 술에 못 이기고 졸음에 겨워 자정이 지나자마자 곧장 나가떨어졌다. 여관방은 네 평 남짓한 장방형이었다. 사전에 취침 시에는 서로 발바닥을 마주하고 눕기로 했다. 분명 나는 방 한쪽 끝에 머리를 두고 가장 먼저 뻗었고, 또한 맨 나중에 일어났다. 혹여 그녀가 나의 심중을 떠보려는 심산으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낮 동안에 그녀가 보인 행동거지나 태도로 보아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그럼, 도대체 이 사단의 발단은 어디란 말인가. 순간, 나의 머리를 벼락같이 스치고 지나는 게 있었다. ‘이 노무 새끼가 꼴에 예쁜 건 알아 갖고….’
사실, 어젯밤 나는 엉큼한 생각은 손거스러미만큼도 없었다. 흑심을 품었다면 애초에 방 두 개를 잡았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그만한 믿음이 없었다면 태순이와 그녀의 친구가 선뜻 따라나서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그녀 앞에서 굳이 내가 아니었노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자칫, 그녀가 받게 될 마음의 상처가 평생 씻을 수 없는 앙금으로 남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놈이 그녀의 몸을 마치 제 것인 양 마음대로 더듬고 입술을 포개는 모습을 상상하니, 놈에 대한 분노가 그녀에 대한 실망으로까지 변질되어 둘 다 싸잡아서 미웠다.
그녀가 돌아가고 난 후, 열이 뻗쳐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뜬눈으로 밤을 꼬박 지새웠다. 학교에서 놈을 만나면 댓바람에 패대기를 쳐야겠다고 단단히 다짐을 한 뒤, 서둘러 대문을 나섰다. 등교 후 수업도 빼먹은 채 놈을 운동장으로 불러내었다. 한바탕 싸움이 끝난 후 거울을 보니 벌겋게 달아오른 쇠붙이마냥 얼굴이 화끈거렸다. 놈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더니 멀쩡했다.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보니 신체의 이곳저곳이 온통 쑤시고 아팠다.
태종대에 다녀온 이후, 태순이는 한동안 내 자취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나자 다시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친구를 데려오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연습장 한 권 가득 휘갈겨져 있는 단상들을 이미 수도 없이 읽어봤노라고 고백했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지만, 차라리 단 한 장이더라도 엽서로 띄웠으면 좀 좋아.” 라는 말도 덧붙였다.
졸업식 날 저녁에 그녀는 마지막으로 내 자취방을 찾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한눈에 봐도 정성 들여 포장한 선물상자가 들려있었다. 그녀는 졸업선물이라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색색의 포장지와 상자를 풀어헤쳤다. 큼지막한 상자 안에는 빨간 넥타이를 두르고, 그 위에 검정색 턱시도를 걸친 신랑 인형과, 눈부시게 희디흰 웨딩드레스 차림의 각시 인형이 앙증맞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잘 간직하라고 거듭거듭 당부했다. 그날 밤늦도록 함께 술을 마신 그녀가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걸 타이르고 을러서 가까스로 돌려보냈다.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오래도록 순정을 간직하길 바랐다. 그 후, 나는 그녀가 그리울 때마다 책상위에 놓인 신랑 각시 인형을 바라보면서 씨익 웃곤 했다. 그러나 강순애 씨와 결혼 날짜를 잡던 날, 회사 내의 소각장에서 흔적조차 없이 불살라 버렸다.
얼마 전부터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나를 아내가 눈치를 챈 것일까. 요즘 아내는 전에 없던 히스테리성 우울 증세를 보였다. 제 다리나 다름없는 목발을 내팽개치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휠체어를 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또한 알아듣기조차 힘든 소리로 누군가를 애타게 찾기도 했다. 그런 증세를 보일 때는 정말이지 감당하기 버거웠다. 장인 장모 또한 힘겨워 하긴 나와 매한가지였다. 그럴수록 나는 하루라도 빨리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울산에 사는 친구의 결혼식 하루 전인 토요일, 나는 오후 3시에 회사에서 나와 처갓집에 들렀다. 아내는 장모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가고 집에 없었다. 거실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는데, 안방에 계시던 장인이 나를 찾았다.
“차 서방, 요새 힘들제? 그래, 어쩔 셈인가? 이대로 계속 살 수는 없지 않겠나. 저런 내 딸을 계속 데리고 살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차 서방 생각은 어떻고, 또 사돈 양반은 뭐라 하셔? 솔직하게 말해 보게.”
“……”
나는 나와 부모님의 속내를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내가 머뭇머뭇하며 미적거리자, 장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쯤에서 그만 끝내게. 앞날이 창창한 자네가 저런 내 딸을 계속 데리고 살 수는 없지. 나라도 그러고 싶진 않을 걸세. 언제라도 자네 생각을 내게 말해 주게. 자네 뜻대로 해줄 테니까.”
장인어른이 은근슬쩍 내비친 속내를 듣고 난 후, 나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날이 어슬어슬 저물녘에야 대중목욕탕에 갔던 아내와 장모가 돌아왔다. 나는 처가에서 저녁을 먹은 후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아내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 말 없이 앉아있기가 무료해 고개를 돌려 창문을 쳐다보았더니 어느새 어둠이 마당을 거진 삼키고 있었다. 아내에게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했더니, 피곤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내는 거실에서 턱을 괴고 누워 TV 드라마에 집중하는가 싶더니 좌우로 뒤쳐 눕기를 반복했다. 나는 번잡한 속내를 잠시나마 잊을 양으로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식탁에 앉아 홀짝홀짝 들이켰다. 문득 벽상에서 9시를 알리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연거푸 술잔을 입에 가져가느라 TV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던 주말 연속극이 끝난 줄도 몰랐다. 두 병째를 거진 비워 갈 무렵, 성가시게 아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내를 부둥켜안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 위로 던지듯 내려놓는다. 코고는 소리는 금세 잦아든다. 이제 한 이불을 덮고 잘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해 아내 곁에 누워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술기운 탓일까, 괜스레 까닭 모를 안타까움이 인다. 그렇지만 늘상 해왔던 대로 나는 등을 맞대고 돌아눕는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커피숍에서 만난 태순이의 표정에 분노와 증오와 허탈감이 뒤엉킨 채 진하게 서려있다. "니, 벌써 결혼했다면서…. 애도 하나 있다면서…. 내가 잘 간직하라고 신신당부했던 신랑 각시 인형도 찢어발겼다면서…. 내가 전화했을 때, 와 사실대로 말 안 했노. 내가 그래 시프 보이나. 이제 보니, 니 참 음흉한 인간이네. 추잡한 놈…."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태순이가 물이 가득 든 잔을 집어 들더니 사정없이 내 얼굴에 끼얹는다. 그러고는 핸드백을 그러쥐곤 도망치듯 사라진다.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려 보았지만 물기라곤 잡히지 않는다. 갑자기 등골을 타고 진땀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인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어둠속을 두리번거린다. 눈이 어둠에 적응되자, 어둠속에서 눈에 익은 가구와 침대와 이불이 동공에 사로잡힌다. 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래 맞아, 첫사랑은 추억으로 남을 때가 소중한 거야.‘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듯해 나는 숨죽인 채 귀 기울인다. 아내가 뜻 모를 울음을 울고 있다.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베개가 촉촉이 젖어 있다. 아내는 울면서도 계속 “아가, 우리 아가, 아가, 우리 아가…” 하고 나직이 되뇌인다. 그 소리가 애절하게 내 가슴에 와 닿아 아프게 짓누른다. 나는 두 팔로 아내를 꼬옥 끌어안는다. 그러고는 입은 다문 채 아내를 가만히 바라보며 애틋한 눈빛으로 속삭인다. 울지 마, 내가 평생 당신 다리가 되어 줄 테니까! <끝>
<심사평>
장려상
으로는 김주혜 씨의 <외출>을 올린다. 씨는 작년에 시로도 입선한 경력이 있는데, 글을 풀어내는 솜씨나 사물에 대한 판단이 정확하고 깔끔하다. 자신의 관찰력을 바탕으로 세상에 내뱉는 말들은 솔직하고 꾸밈이 없다. <외출>은 하모니카 모임을 같이 하는 동료의 병문안을 마친 뒤, 실버홈 공연장으로 가야 하는 세 명의 중증장애인 여성이 길에서 겪는 당혹스러움을 보여준다. 외출을 할 때면 항상 계획을 세우고, “간, 쓸개, 그리고 +α까지 집에 두고 나”와야 하는 심정, 공연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택시와 지하철, 고장난 엘리베이터 앞에서 느끼는 당황스러움, 실버홈 공연으로 어르신들에게 위안을 주고 돌아올 때의 뿌듯함, “세상에는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는 말을 전하면서도 그 “택시기사처럼 고약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면 다른 사람들의 따뜻함은 잊어버리고 그 한 사람의 고약함만 기억에 남”아 화자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준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감정의 기복을 겪으며 사는 필자의 하루와 다른 이들의 하루 역시 다를 바 없기에 독자들은 같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되, 투정보다는 역지사지의 심정을 소개해 주면 좋겠다.
대상으로 김홍곤 씨의 단편소설 <첫사랑>을 뽑는다. 소설을 소설답게 만드는 플롯이 탄탄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일관성이 있다. 결말 부분의 드라마틱한 반전과 주제의식은 기대이상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태순’의 등장이 소설 속에서는 큰 역할을 못 해낸다는 점이다. 첫사랑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현재의 결혼생활에 대한 후회로서 첫사랑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첫사랑은 풋사랑이었지만 이제는 사랑과 가족을 잃지 않겠다는 단호한 ‘나’의 각오가 ‘태순’을 외면하는 것으로 설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모처럼 소설 부문에서 대상을 뽑게 되어 뿌듯하다.
당선작을 고른 후 이력을 확인해보니 당선자 전원이 기성 작가 혹은 시인이었다. 시 부문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조우리 씨는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였고, 전체 대상을 거머쥔 김홍곤 씨는 문학신문사 신춘문예에 두 번 당선(소설과 수필)된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첫댓글 축하합니다. 드디어 문단에서 김 선생의 소설 혼을 알아보기 시작했군요. 앞으로 큰 문운이 함께하기를 충심으로 합장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첫사랑이 그런거로군요~~^^
대개 첫사랑은 마음에만 두는 줄 알았는데 행동이 개입되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마지막 선택이 해피엔딩이라해야 겠지요~~^^
좋은 성적 거두시기를 _()_빕니다^^ 그리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6
감사합니다, 어르신1
@한니발 아니 이제 보니 대상, 축하축하드립니다^^ㅎㅎㅎ
@박말이 감4 감사 또 감솨.... 어르신!
베스트셀러 1위 등극할 수 있는 흥미있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대상 수상 하심을 축하 합니다
감사합니다, 샛별 선생님!
문학 작품을 보시는 혜안이 남달리 뛰어나시군요.
사실, 저는 지저분하게시리 곡선의 거웃이니, 발목에 걸린 돌돌 말린 팬티니, B컵이니, 위로 쳐든 살무사의 대가리니 하는 묘사와 서술을 보시고 버럭 화를 내실 줄 알았어요. 역시나 혜안이 뛰어나십니다.
거까운 장래에 두 분에 대해 존경을 철회토록 하겠습니다. 마침 못본 지 억시기도 오래된 성싶은 분이 두 분 계시거든요. ㅎㅎㅎ...
@한니발 제가 너무 속 보이는 답글을 단 듯하지만, 그렇더라도 수정은 안 할랍니다. 어째西?
아, 두 분에 대한 '존경의 철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으니까요^^
이제와 하는 고백이지만 저는 두 달 이상 상면 혹은 서간문 형식의 글을 주고받지 못하게 되면 이후 2개월간 심사숙고 끝에 '존경의 철회'를 심도 있개 생각한 뒤 다시 2개월이 지나면 바로 행동으로.....
애틋한 첫사랑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좀 꼿꼿하게 기다리시지. 남자들은 그런가요. 저질러놓고 후회하고 그리워하고.. 또 못잊어하고 암튼 이게 뭡니까.... ㅎㅎ
앗, 여사님이셨군요. 입때껏 남성으로 알았어요.
여하간 죄송스럽고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