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있었던 일 최 건 차
한겨울이면 외갓집과 야지에서 있었던 끔찍한 것이 불쑥 떠올려지곤 한다. 일본에서 살던 유아 시절 교토의 작은외할아버지 댁에 자주 다니던 한겨울이었다. 어머니가 응가를 하려는 나를 안방과 광 사이에 있는 뒷간으로 데려가 판자 뚜껑을 열어 주고선 휴지를 가지려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쪼그려 앉아 변을 보면서 깊숙한 아래를 살펴보려다가 발이 미끄러져 균형을 잃고 변소에 거꾸로 처박혀 버렸다.
아-악하는 소리에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달려와 신속하게 건져내었기에 죽지 않고 살았다. 나는 그때 갓 나오기 시작한 이빨이 몽땅 빠지게 되어 새로 나기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다시 윗앞니가 나면서 크게 자리를 잡고 송곳니가 나고 앞니와 송곳니 사이의 이빨은 자리를 잃고 안쪽으로 겹쳐 나면서 잇몸이 튀어나와 얼굴 모양이 이상해졌다. 웃을 때면 윗입술이 치켜 올라갔다가 원위치로 내려오지 않아 손으로 잡아 당겨내려야 했다. 어머니는 안으로 겹쳐 난 이빨이 제자리를 잡도록 혀끝으로 밀쳐내라고 하는 통에 밥을 먹고 잠을 잘 때만 쉬고 늘 이빨을 밀어내어야 했다.
해방을 맞아 장흥군 부산면의 큰외갓집을 찾아갔을 때도 한겨울이었다. 캄캄한 밤이었는데 내가 변소에 가겠다고 하니 이모가 호롱불을 켜들고 뒷간으로 데려가 두 어 계단 높이에 있는 곳에서 변을 보게 했다. 으스스해서 겁이 나는데 컴컴한 아래의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바스락거리고 꿀꿀대는 통에 기겁하고 뛰쳐나왔다. 어머니가 나와서 안정시켜주며 담장 쪽에 있는 짚단 옆으로 데려가 겨우 해결되었다. 다음 날 어머니는 간밤 내가 놀랬던 곳으로 데려가 뒷간 안을 보여주었다. 아래쪽 짚 검불 속에서 있는 짐승들은 인분을 먹고 사는 토종 흑돼지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뒷간에 산다는 돼지들이 꿀꿀대는 걸 보려고 낮에 자주 가보았다. 그렇게 지내던 얼마 후에 어머니를 따라 이웃 유치면에서 외갓집 선산을 관리하는 작은외삼촌 집에 가게 되었다. 겨울 사냥을 즐기는 외삼촌은 포수와 사냥개를 데리고 더 깊은 산중으로 며칠간 나들이 중이었고, 외숙모가 반갑게 맞아주며 각별하게 돌봐주려고 애를 쓰셨다. 내가 사탕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다음 날 산으로 나무하러 가는 머슴을 불러 나를 데리고 가 ‘딸매기’(여름에는 푸른색이지만 가을 되면서 붉어지고 겨울에는 눈 서리를 맞아 껍질이 달콤해진 땅콩 모양의 작은 열매)라는 것을 따먹게 해주라고 했다.
나는 머슴이 가지 채로 주는 붉은 빛 열매를 먹었다. 달착지근한 맛에 구미가 당겨 겉껍질 속의 딱딱한 것은 뱉어내야 하는 것을 잊고 그냥 깨물어 실컷 먹었다. 저녁 때 변을 보려는데 나오지 않아 살펴보니 열매의 각질이 뒤엉켜 꽉 막혀 있었다. 어머니와 외숙모가 뒷간으로 데려가 내 아랫도리를 벗기고 엉켜있는 것들을 대나무 꼬챙이로 파내느라 한참 동안 애를 쓰셨다. 이게 모두 한겨울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또 잊지 못할 흉측한 일을 겪었다. 20대 초반의 한겨울, 광주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하여 간부후보생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고되고 허기가 져 PX에서 빵을 사가지고 뒷간에 들어가 벌벌 떨며 먹곤 했다. 어느덧 소위 임관을 목전에 두고 유격훈련을 받는 중에 최종 3일간은 도피 및 탈출이라는 코스에 임했다. 밥을 굶고 잠도 못 잔 채로 밤중에 깊은 산에서 적에게 포위된 상태라며 어떻게든 탈출하여 아군기지를 찾아 복귀하라는 극한 훈련에 돌입했다.
나는 5명의 조장이었다. 쉬운 길로 가다가는 적에게 붙잡히게 되면 물에 처박히며 두들겨 맞고 자칫 소위로 임관하지 못하고 사병으로 복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조원들을 통솔하여 일단 길이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 사방을 살폈다. 아군기지가 있다고 하는 곳은 화순의 동복강이라서 그곳으로 갈 수 있겠다는 방향의 계곡을 찾아 내려가다가 나와 조원들이 큰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는데 깨지거나 부러지지는 않았다. 그때 멀리 산기슭에 불빛이 보여 가까이 가 살펴보니 외딴 농가였다.
조심스럽게 찾아 들어가 허리춤에 숨겨온 돈을 꺼내 주고 고구마를 쪄 먹게 되었다. 뜨끈한 온돌방에서 찐고구마를 시원한 동치미를 겻들어 목에 차도록 먹고 발을 쭉 뻗고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이러다간 아주 망하겠다 싶어 조원들을 깨워 밖으로 나왔다. 매섭도록 추운 밤, 사방을 살펴보니 우리가 가려는 쪽으로 밭이 보였다. 저기 있는 밭을 통과하면 될 것 같은데 선 채로 이동하기가 위험해 낮은 포복으로 전신을 올챙이처럼 뭉기며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어가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찐득찐득한 것이 옷에 스쳐 묻으면서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밭에는 거름으로 쓰려고 뿌려둔 인분이 겉면만 살짝 얼어 있었다. 그걸 모르고 온 전신에 처발라 엉망진창이었지만, 적진 탈출의 마지막 고비였기에 계속 포복으로 벗어났다. 개울을 찾아 얼음을 깨고서 인분을 닦아낸 후, 아군기지의 불빛이 보이는 곳을 향해 졸려 비틀거리며 기를 쓰고 걷고 달려 새벽녘에 무사히 도착했다. 202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