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가을날 강아지와 할머니의 밀당
출처 중앙SUNDAY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2891
가을걷이, 경기 양주, 1980년 ⓒ김녕만
긴긴 여름 뜨거운 햇볕에 야물게 잘 여문 콩을 가을볕에 널어놓았다. 곡식 가운데 콩이 제일 더디 말라서 예전부터 농가에서는 콩을 갈무리하면 가을걷이를 다 끝마쳤다고 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콩대를 꺾어 단을 만들어 세우고 햇볕과 바람에 여러 날 말린 후 콩을 털었다. 그리고 키로 까불어 검부러기를 제거하고 멍석에 널어 햇볕을 골고루 받도록 되작거렸다. 콩은 손이 많이 가는 대신 콩깍지와 콩대, 콩잎까지 버릴 것이 없어 귀하게 여겼다. 농가의 마당은 일터이고 집안 대소사를 치르는 행사장이고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공간이었다. 어른들은 굳이 방을 두고도 마당에 평상이나 멍석을 깔고 술과 음식을 나누며 담소했고 아이들은 그곳 한구석에 엎드려 숙제를 했다. 때로는 마당에 천막을 치고 혼례식을 올리거나 초상을 치르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온 마을 사람이 마당에 빼곡하게 들어찼다. 둥글거나 네모지거나 어떤 모양이든 쌀 수 있는 보자기처럼 마당은 그때그때 쓰임에 따라 얼마든지 변신이 가능한 열린 공간이었다.
볕 좋은 가을날에는 집집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고추든 깨든 콩이든 곡식을 말리곤 했다. 마침 한 농가에 들어섰을 때, 강아지가 할머니의 벗어놓은 고무신을 물고 내빼는 순간을 목격했다. 무관심하게 일만 하는 할머니에게 심술이 났나 보다. 할머니는 그제야 ‘복슬아~’ 부르며 구슬려 보지만 쉽게 돌아서지 않을 태세다. 온갖 곡식을 다 잘 말리는 할머니도 복슬강아지의 장난기를 말리긴 쉽지 않은 듯,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다. 제풀에 지치면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물고 있는 흰 고무신이 그동안 고되고 바빴던 발걸음을 말해주는 듯 시커멓게 흙물이 들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논으로 밭으로 고무신이 닳도록 종종걸음을 쳤으리라. 곧 가을걷이가 끝나고 시꺼메진 고무신을 뽀얗게 닦아 댓돌 위에 사뿐히 올려놓으면 비로소 한 해 농사도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다.
김녕만 사진가
빛명상
꼬부랑 할머니
우리 동네
꼬부랑 할머니가 계신다
해가뜨면
밭에 나가 일을한다
별이 지면
들에 나가 나물을 캔다
허리가 ㄱ자로
꼬부라졌다
대기업 중소기업에 뒤지지 않는
저 꼬부랑해진 할머니 허리 덕분에
그나마 보릿고개 넘기고
이만큼 살 수 있었던 것
뒤따라가면서 할머니의 구부러진 허리에
고마움을 담아 한줄기 빛(VIIT)을 보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꼬부라진 할머니
빛(VIIT)의 나라가
그 허리에서 반짝인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걸어가고 있네"
요즘은 꼬부랑 할머니도
꼬부랑 고갯길도 없어진 지 오래다
이런 길도 한 곳쯤은 잘 남겨두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올텐데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P. 260
그리움은
참꽃 되고
꽃은 피고 지면
또다시 피어나는데
이젠 영영 볼 수 없는
아부지, 엄마, 큰형님, 박 신부님
그리고 바보 김수환 추기경님, 김 몬시뇰,
헤명스님, 수우 씨도
그리움은 참꽃이 되고
애절함은 소쩍새가 되어
있을 때 잘하라고
밤새도록 일깨운다.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258
빛VIIT터 참꽃이 피어나자 그리움이 몰려왔다
있을 때 잘해
꽂은 피고 지면
또다시 피어나는데
이젠 영영 볼 수 없는
아부지, 엄마, 박신부님
그리고 바보 김수환 추기경님,
혜명스님, 수우씨도
그리움은 참꽃 되고
애절함은 소쩍새가 되어
있을 때 잘하라고
밤새도록 일깨운다.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P. 45
시골집의 정겨운 모습 그리운 추억
"있을 때 잘해" 가슴이 져려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