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간 칼럼
강 문 석
정초부터 다소 황당한 일을 겪었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인터넷카페 <산지기나라>에 올린 K교수의 칼럼을 3백여 지인들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내면서 벌어진 일이다. 칼럼 출처는 중앙일보지만 난 그 신문을 구독하지 않고 있어서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칼럼은 서울 C선배께서 메일로 보내온 것이었고 카카오톡으로 보내면 읽게 될 사람들이 대부분 노년층임을 감안하여 글자 크기를 키우면서 단락을 만들고 필자가 괄호 속에다 내용을 설명한 게 자주 등장하여 풀어서 이해하기 쉽게 재편집하였다. 글을 보내온 선배는 이미 아흔 턱밑에 이르렀고 현직 때 중앙전자계산소장을 지낸 분이다.
선배는 얼마 전 백내장 수술을 받았기에 칼럼을 전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테지만 나라 돌아가는 꼴이 하도 불안하여 나에게까지 보내온 것 같았다. 그 칼럼을 전송하자 2시간도 안 되어 조회 수 100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곤 다음날 카페를 열었더니 칼럼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글쓴이가 권리침해 신고로 삭제를 요청한 때문이었다. 현직 때인 80년대 중반부터 전자우편을 시작했으니 사이버공간에서 글을 주고받은 것도 40년 가까운데 타의에 의해서 카페에 올린 글이 사라진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칼럼은 우리가 애태우며 매달리는 통일이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독일 통일과 비교하여 밝혔고 그냥 한국과 북조선은 지금처럼 남남으로 살면 된다는 것을 알기 쉽게 풀어 썼다. 하나의 나라였다가 갈라진 유럽의 나라들을 예로 들면서 지구상에서 잘사는 나라인 한국과 최빈국 북조선이 합치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벌어질 거라고 내다봤다. 추측컨대 내가 카카오톡으로 전달한 칼럼의 확산을 필자가 우려한 것은 임의적으로 그 글 앞에다 국민들로부터 내로남불 본부로 통하는 청와대 쇼의 달인과 북조선 살인마가 붙어 서서 미소 짓는 사진을 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청와대가 민간인까지 거침없이 사찰하는 마당이니 국립대 교수로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칼럼을 쓴 사람이 이처럼 허약한 자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그 글을 퍼서 나를 이유가 없었는데 후회가 되었다. 어지러운 시국을 소 닭 쳐다보듯 하지 않고 용기 있게 나라를 걱정하면서 할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와 경희대 이경전 교수 그리고 한양대 맹주성 명예교수와 고려대 서지문 명예교수가 떠올랐다. 나라의 운이 여기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믿기에 학계에서도 더 많은 지성들이 목소리를 내주리라 기대하게 된다.
사라진 칼럼 대신 엊그제 신문에 실린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견해를 잠시 만나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현 정권은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계기로 반일민족주의를 대대적으로 부각시키려 한다. 한국 현대사 전체를 민중사관으로 뒤집으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이 정권의 '이승만-박정희 죽이기'는 북한과 연방제로 가기 위한 거대한 역사공정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정권이 지난해 초 '자유'를 삭제한 헌법 개정안을 낸 데서 이미 그 의도가 드러났다. 1월 15일 발간된 국방백서에서는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문구까지 삭제하고 말았다."
한때는 8백여 명까지 카카오톡을 주고받았다. 노년에 여행지를 돌면서 내 손으로 직접 카메라에 담은 사진들을 지인들과 나누며 부족한 글이나마 세상 얘길 곁들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자기기 매장을 찾았다가 옆에 붙은 휴대폰 코너에서 스마트폰을 바꾸라고 권하기에 쉽게 응했고 담당 직원은 묻지도 않고 노인네라고 해서 사용해야할 데이터 용량을 대폭 줄여놓는 바람에 카카오톡으로 보내는 ‘친구’ 숫자도 크게 축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줄인 이들 중에서 가끔씩 “요즘은 왜 여행사진을 보내주지 않느냐”는 연락을 해올 때마다 한 사람씩 늘이긴 하지만 3백 명 선에 머물고 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인 에스엔에스는 온라인상에서 타인과 소통하거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서비스로 관심사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구축해준다. 그 중에서 난 주로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것이다. 노년에 카카오톡을 통해 지인들과 소통하는 것도 하루를 보내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되어버렸다. 카카오는 2010년 3월에 출시하였으니 현직을 그만두고 12년이 지났을 때였다. 카카오톡은 무료통화 문자메시지 서비스뿐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 음성 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대일 및 그룹채팅 기능까지 지원하니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안에 몽땅 들어있는 것이다.
얼마 전엔 은퇴자들이 만든 합창단에서 단체카톡방을 만들어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합창연습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단톡방이 20여명 연락을 주고받는 매개역할을 충분히 소화해준 덕분이었다. 카카오톡이 웹상에서 친구와 선후배 동료 등 지인과의 인맥관계를 강화시키고 새로운 인맥을 쌓으며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주지만 더러는 서비스의 과다한 이용으로 에스엔에스 피로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난 가급적 이용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각별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카카오톡으로 맺어진 친구로부터 해마다 키위를 선물 받고 있다. 한라산 남녘 기후가 따뜻한 지대에서 손수 재배하여 수확하자마자 바로 보내오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직접 제주를 찾아 보은하는 시간을 갖기로 해놓고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영어가 짧기 때문에 바깥 여행에서 만난 카카오톡 친구들은 대부분 여행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나누고는 바로 관계가 끝나지만 한인 가이드 중엔 10여 년 넘게 꾸준히 소식을 주고받는 친구도 있어 지구촌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권리침해 신고로 사라진 칼럼 때문에 카카오톡 친구들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