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역
빠르고 바쁜 것들은 못 본 체 지나가고
맘 약한 몇몇만 멈춰 서는 오산역
개찰구 문을 열면
고단을 이고 계단을 오르던 사람들
기다렸다는 듯이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묻고 또 묻고
가장 잘 보이는데 큼지막하게 붙여 놓은 것들을
믿지 못하고
20년 전동차 차장을 하다가 쫓겨온 내게
조치원 가는 차가 맞는지 다시 묻는다
손에 쥔 기차표보다
초짜 역무원 한마디에
안심하고 계단을 내려서는 사람들
그들의 불안을 오산역 기둥에 단단히 묶어 두고
안녕히 잘 가시라 배웅 인사 하는데
한 달 전 아내을 여의었다는 초로의 사내가
다시 돌아갈 길을 찾아 서성이는 내게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묻는다
아내의 손
오늘도 아내는 한 획을 그었다
거북등에 문자 새기듯
상품을 진열하는 아내의 손에
또 하나의 상형문자가 쓰여졌다
박스 뜯다가
노끈을 끊다가
커터칼로 아로새겨지는 자국들
상처가 덧나지 않는 마데카솔로는
감춰지지 않는 갑골문 유적지
아내의 손
몸
그동안 잘 썼다
내 것 같아서 내 마음대로 썼다
하나씩 고장이 나고
이제는 떼어 내고 도려내야 산다
낯선 것을 이어 놓아야
허리가 펴지고 호흡이 돌아오고
내것 아닌 것이 내 것처럼 보인다
내 詩인들 내 것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