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클랩튼(80)의 명곡 '레일라'(Layla)는 클랩튼과 듀언 올먼의 화려한 기타 리프 2중주와 클랩튼의 애절한 보컬이 어우러진 다음, 가슴을 두드리는 듯한 피아노 선율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친구인 조지 해리슨을 택한 패티 보이드를 향해 마음에 간직해 온 애잔한 마음을 클랩튼이 12세기 페르시아 시인 니자미 간자비의 ‘레일라와 마즈눈’에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 밴드의 생명은 짧았지만 록 역사에 강렬한 족적을 남긴 밴드 '데릭 앤 더 도미노'의 데뷔 앨범이자 유일한 앨범이 된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1970)에 수록됐으니 세상 사람들의 귀에 들려진 지 55년이 됐다.
이 명곡의 건반 연주를 들려준 바비 휘틀록이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미국 음악잡지 롤링 스톤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매니저 캐롤 케이는 고인이 이날 새벽 1시 20분쯤 암과의 투병 끝에 텍사스주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미망인이 된 코코 카멜 휘틀록은 CBS 뉴스에 전한 성명을 통해 "남부의 비참한 가난에서 짧은 시간 안에 상상할 수 없는 높이에 도달한 남자의 위대함을 단 몇 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되묻고 "그가 항상 말했듯 '인생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므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만드십시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다"고 돌아봤다. 그녀는 이어 "안녕히 계세요, 내 사랑, 꿈에서 뵙겠다"고 작별을 고했다.
클랩튼은 앞의 앨범이 위에 놓여 있는 피아노 앞에 앉은 고인 사진을 띄우고 "우리의 친애하는 친구 바비 휘틀록이 세상을 떠난 슬픈 날에 바비의 아내 코코와 그의 가족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RIP(평안한 안식을) 바비 xxx"라고 적었다.
멤피스 태생인 휘틀록은 1960년대 중반 스택스 레코드(Stax Records)와 계약한 최초의 백인 아티스트였다. 그가 녹음을 도운 뮤지션으로는 Booker T & the MG's, 샘 앤 데이브가 있다.
60년대 후반 휘틀록은 'Delaney & Bonnie and Friends'에서 클랩튼과 기타리스트 듀언 올먼, 베이시스트 칼 래들, 드러머 짐 고든과 어울리며 서로의 재능을 발견했다. 이들 다섯이 뭉친 것이 '데릭 앤 더 도미노'였다.
앞서 클랩튼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에서 연주했던 휘틀록은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에 담긴 클래식 록 스탠더드 'Bell Bottom Blues', 'Anyday', 'Why Does Love Got to Be So Sad?', 오프닝 곡 'I Looked Away' 등 수록곡의 절반을 공동 작곡했다.
다만 '레일라'의 공동 작곡가로 이름을 올린 드러머 고든이 사실은 여자친구 리타 쿨리지가 끄적여 놓은 것을 훔쳐 쓴 것이라고 휘틀록이 공공연히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앨범은 나중에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선에 들었다. 하지만 발매 당시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1971년 듀언 올먼의 죽음, 클랩튼의 마약 중독 때문에 이 밴드는 이듬해 두 번째 앨범을 녹음하던 중 해체되고 말았다.
문제의 두 번째 앨범을 녹음하면서 휘틀록은 밴드 동료들은 물론 비틀스의 기타리스트 해리슨까지 가세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도 작업했다. 그는 해리슨의 걸작 'All Things Must Pass'의 오르간과 피아노 대목을 썼으며, 'My Sweet Lord', 'What Is Life', 타이틀 곡 및 'Apple Jam' 같은 노래에도 함께 했다.
휘틀록은 롤링스톤스의 'Exile on Main St.'에도 크레딧 없이 함께 했으며, 나중에 (믹 재거나 키스 리처즈가 아닌) 믹 테일러와 함께 해당 앨범의 'I Just Wanna See His Face'를 공동 작곡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휘틀록의 두 번째 솔로 앨범 'Raw Velvet'(1972)에도 클랩튼과 해리슨이 참여했다. 그는 두 장의 솔로 앨범 'One of a Kind'(1975)와 'Rock Your Sox Off'(1976)을 내놓은 뒤 미시시피주 농장으로 이사, 두 자녀를 돌보며 가끔 스튜디오 세션 작업을 했다. 휘틀록은 2006년 12월 오스틴 크로니클 인터뷰를 통해 "음악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멈추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면서 "내가 디스코(유행)에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걸 아나요? (클랩튼의 매니저였던) 로버트 스티그우드가 도미노의 돈을 가져와 RSO 레코드를 만들고 비지스를 녹음하는 데 사용했다. 음악계 전체에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1999년 앨범 'It's About Time'을 내며 음악계로 돌아왔다. 2005년 12월 그는 뮤지션 코코 카멜과 결혼했다. 둘은 'Lovers'(2008)를 시작으로 2010년대 초반까지 여러 장의 앨범에서 협업했다.
휘틀록과 클랩튼은 2000년 Later With Jools Holland 무대에서 함께 'Bell Bottom Blues'를 연주했다.
고인은 유족으로 미망인 말고 세 자녀 애슐리 페이 브라운과 보 엘리자 휘틀록, 팀 휘틀록 켈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