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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피해자사례(NPO이사장): 번역및 제공 국내모임 해외자문 "안"님<소송자료로 쓰겠습니다:원문+번역>
출처: http://www.geocities.jp/techhanzainetinfo/jittai/12chiba.html#no2
石橋輝勝 찌바현 재주(이시바시씨1953년생)
저에 대한 전파의 악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에서의 경험을 아시는 겻이 불가피 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동부에 있는 Essex대학과 중부에 있는 Nottingham대학에서의 경험입니다.
저는 양대학의 국제관계론학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습니다.
처음에 Essex대학에 입학할 예정으로 입학전에 있는 유학생을 위한
어학연수 코스에 참가했습니다
거기서 논문의 작성법도 가르쳐주었고,연습을 위해 하나 완성하기로 되어
Third World Aid and DevelopedCountries”라고
하는제목의 논문을 제출했습니다.(1990년 9월 25일)
이 논문을 필사적으로 완성시키고 있던 전날(24일)10시반경,
특수총에 의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등뒤로부터 슈왓하고 굉장한 음향으로 일순 몸이 경직되어 버렸습니다.
5분정도 지나서 겨우 제정신을 차리고 안정을 한뒤,
이층에 올라가서 조심조심하면서,밖을 보았습니다.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방에 되돌아와서 창문을 조사해 보니,1센치사각의 구명이 뚫려있었습니다.
그 주번에는 금이 가고,일부 깨져서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돌을 던졌다면 정방형의 구명이 뚫렸다는 것은 생각할수 없습니다.
총으로 쐈다면 동그란 구명이 뚤리고 저에게 명중했을 지도 모릅니다.
제가 맞지 않았다해도 벽에라도 맞아서 흔적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흔적은 전혀 찿아볼수 없었습니다.
그 슈왓하는 굉장한 음향에 잇따라 슈-라고 하는 소리,
그리고 딸랑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었습니다.
이상의 일로,쏘아진 알이 녹아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특수총이 사용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어디 다른 대학에서 받아주는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 보통마음입니다.
Nottingham대학에서도 입학 허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가기로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Nottingham대학에 입학해서 한달이 지났을 때,왠지 교수진이 저를 보는 눈이 다르고,
한눈에 알수 있을 정도로 태도가 변해갔습니다.
처음에는 이유를 알수가 없었습니다만,
제가 Essex대학에서 쓴 논문이 원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보면,전파에 의한 이미지의 삽입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만,
교수진의 태도도 이것을 납득하게 하는 것이였습니다.
이 이미지라는 것은,제가 미숙한 영어로 쓴 논문을,어떤 경위인지,
영국의 노벨상을 수상한 어떤 물리학자가 읽고,
그 일설에서 아인쉬타인의 논문의 일설을 이해하는 힌트를 얻었다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 부분은 지금까지 누구도 이해할수 없었던 것이였다는 것이였습니다.
이것에 의해 저는 천재로 되어,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됐다 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실제 작년부터 저의 신변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여러곳에서 확인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영국경찰이 저를 지켜주기 시작했다고 당시는 생각했습니다.
저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됨과 동시에,
저를 살해하려고 하는 움직임도 오싹오싹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에게 아인슈타인의 하나의 건을 생각하게 한 것과 같은
이미지의 삽입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불안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잊을수도 없는 2월1일,
전날에 철야를 하고 Nottingham대학에서 3번째의 논문을 완성,제출한 날,
아침 하늘을 보니,황색에 이상한 느낌이 있어,그것도 겨울인데 진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만,일단 논문을 제출하고
다음날부터 다시 새로운 논문제작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적어도 그날밤만은 편히 지낼 생각에 술를 사서 마셨습니다.
그때 그곳의 집주인의 누나사위가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들어온 것입니다.
빰에 파란빛이 생길정도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갈 때에는“All your best!”라고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이 말을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마 죽음의 선고로 사용되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여,
그것도 전날이였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남자의 부인도 같은 말을 강하게 말하고 돌아간 것을 합께 떠올렸고,
드디어 위험이 다가온다고 생각하여 그집을 그날 밤에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3주간정도 스코틀랜드,영국남부를 방랑하고 일시 돌아갔습니다만,
그래도 위험을 느꼈기 때문에 귀국을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1991년3월14일귀국)
아인쉬타인 건 이후,한편으로는 저를 지키려는 사람이 나타나고
한편으로는 저를 말살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저한테는 아인슈타인의 건에 관해서는일체 정식으로 말을 듣지 못했으며,
경찰이 지켜주고 있다는 것도 정식으로 들은 것도 아닙니다.
위험을 느껴도 경찰서에 가지 않았던 것은 어떤 의미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정식으로 말을 들은 것이 아니였기 때문에불안을 해소할 수는 없었습니다..
논문을 재촉하는 영국의 대학에서 집중 할수 없게 되고 학문에 열중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귀국이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 영국에서의 경험을 알고 있어야
귀국해서의 저의 체험을 이해하는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귀국후 저는 당초의 목적,정치가가 되기 위해,
그직을 관철하는데 필요한 시정방침을 확립하려고,
도서관을 다니면서 독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해의 중간부터 미행을 느끼지 시작했습니다만,
경찰이 아닌가 하는 감시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찰로 여겨지는 사람의 감시는 아인슈타인의 건이 아니면 절대로 이해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국에서와 같은 불안도 동시에 늘어났습니다.
1991년 후반부터 1992년에 걸처,귀국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의 똑같은 불안이 계속되었습니다.
영국판에서 일본판으로 바뀌어 진 것입니다.
경찰로 보이는 남자의 감시의 상황은,
1995년 봄부터는,전파에 의해 영상과 의사로서 보내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외출하면 끊임없이 지켜주고 있는 경찰로 보이는 남자의 영상과
의사가 보내져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명료한 영상과 의사는 그 해의 후반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의 영상과 의사가 전파로 보내오기 시작할 경에는,
경찰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1991년 말경부터 저는 퇴사후의 경험을 정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경험뿐만 아니라 어느정도 학숩이 진전되면 그것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것들이 전부 유출되고 있는 것 처럼 생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저를 감시하고 있는 경찰이 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이 좋은 용도로 하는 것이라면 어쩔수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저는 반대로 그것을 이용하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그것으로 알릴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제가 쓴 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저를 표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제가 쓴 것만이라도 세상에 알려지도록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을 확증하게된 영상이 1994년 여름경부터 보내져오게 되었습니다.
어떤 유명한 학자 두사람이 저를 끊임없이 엿보는 영상이 보내져오기 시작하고,
그것도 제가 쓴 것에 대해 세계로부터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두학자가 편지를 쓰고 있는 상황을 영상으로 보내왔습니다.
이 두사람은 그해의 봄 단식수행을 했을 때에도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후 몇번인가 단식수행을 했습니다만,저가 손을 합장하면 후광이 빛나는 것이 보이고,
그 후광이 단식수행을 할 때마다 점점 훌륭히 되고 있다는 의사도 삽입되어 왔습니다.
이 두사람의 영상은 1995년 말까지 빈번히 나타났습니다.
저를 주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움직임은 테레비각국의 모습에서도 알아챌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3년 경부터라고 생각합니다만,제가 테레비를 틀면,
보고있는 방송국의 사람이 알도록 장치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제가 채널을 돌리면,어떤 방송국에서는,
빛을 켜고 그것을 알리는 장치가 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화면을 통해서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저는 거의 뉴스나 스포츠밖에 안봅니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캐스터가 험악의 표정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스포츠를 시청하면,
제가 트는 것과 동시에 연극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듯 선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반대로 방속국으로부터 테레비를 통해서
저의 방을 엿볼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하여,
1996년부터는 식사할 때 이외에는 거의 테레비를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전제를 경험하고 1995년 5월경부터의 전파의 집중공격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저서[무기로서의 전파의 악용을 규탄한다!]에도
기술한 물이 끈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을 구하기 위해 우왕좌왕 돌아다니고,결국에 지친영상과 의사에 의해
수퍼에서 병원주의를 전국적 규모로 돌아다니게 하기위한 것이였습니다.
이와같이 저를 움직이게 한 것도,
저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게 하는 경찰의 영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아니였다면,음식물에 약물 주입이 행해지고 있다라는 의사가 삽입되어도,
병원에서 살인이 행해지고 있다는 의사가 삽입되어도,
제가 움직일 의미가 전혀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지금도 경찰로 보이는 영상을 완전히 의심하지 않고,
어떤 대책을 세우는 영상도 보내왔기 때문에,그것을 믿고 제가 움직인 것입니다.
확실히 저를 움직이게 한 충동전파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만,
조정에 따를 원인이기도 합니다
저를 전파로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게 된 것은
니이가다에 갔을 때입니다(1995년12월11일)
전부 알게되고,그 도중의 영상이 보내져,
한사람은 NHK아나운서M,한사람은 R씨 였습니다.M은 노리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R은 턱이 빠질 것같이 입을 열고 침을 츨리며 발광하고 있는 모습이였습니다.
1995년 5월부터의 일련의 전파의 집중공격은,
저를 발광시키게 하는 것이 목적이 였던 것 같습니다.
이상의 프로그램으로 발광하지 않은 저에 대해,그 해 말,
드디어 제2의 버젼이 시작한다는 의사가 보내져 왔습니다.
그해 말부터 다음해 봄에 걸쳐서,전파에 의한 저의 뇌에의 개입이 현저하게 되고,
그것도 지각할수 있도록 행해지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전부 알아채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거짓말을 일체 숨길수 없을 정도 완전히 알아채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번에 광기화 할수있는 전파도 수회 경험했습니다.
그 이후 시도 때도 없이 전파를 느끼며 생활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전파악용주최,및 전파지원부대의 실태를 아는 실마리로서,
저의 엉덩이의 이상을 아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저 中曽根近縁의 여자의 알고 싶은 것이기고 하고,
실제로 이 건은 이 여자뿐만 아니라,일본의 정치가,
혹은 크링톤대통령까지 알고있다는 영상이 보내져 왔습니다.
그것은 제가 의사에게 보낸 편지의 누설에 관한 것입니다.
그 편지를 일본의 정치가와 크린톤대통령이 읽는 영상을 보내온 것입니다.
그 편지를 저서에 게재하려고 생각했습니다만,복사를 하지 않은 관계로
의사에게 연락을 취했지만,이미 폐각해 버린 뒤였습니다.
그때와 같이 신선하게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게재하는 것을 포기 하였습니다.
그 영상이 정말로 사실이라면,아직도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파와 엉덩이의 이상을 연관시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가 그것을 확신한 체험을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엉덩이의 이상에 관해서,의사에게 상담한 것뿐만 아니라,저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했습니다만,
어떤 책에 좌우의 근육의 바란스가 깨지면 배설이상으로도 연결이 된다고 써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몸이 아주 단단하고,게다가 왼쪽이 특히 단단한 것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메리카 체재 때부터 유연체조를 시작하고 귀국해서도 계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아침,용변을 느껴서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앞으로 두번 굽혔습니다.
그러자 하복부의 근육의 존재를 느끼고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아주 좋게 배설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훔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깨끗한 배설이였습니다.
다음날도 같은 방법으로 한 결과 역시 깨끗한 배설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날 하루가 엉덩이의 상태가 아주 좋은 느낌이였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굽히기 운동이 효과가 있다라고 생각하여
3일째도 계속했더니 같은 효과는 없었습니다.
3일 째부터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까지 20년 이상 불편을 느꺼온 엉덩이가 갑자기 정상으로,
그것도 깨끗한 배설을 할 수 있는 것인지요.
저의 엉덩이가 정말로 비정상이라면 그때는 전파를 해제한 것인지요.
지금 생각해보면,그때의 상태는 아주 기계적이였다고 생각되어져
전파로 조작하여 깨끗한 배설을 할수 있게 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저의 엉덩이는 그정도로 이상하지도 않고,아주 정상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체조조작으로 부터 생각해 배설조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엉덩이의 이상은 초등학교5학년 때 시작되었다는 것에 주목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을 전파의 악용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정할수 있다면,
전파의 악용도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것을 행핼수 있는 사람도 어느정도 좁혀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점은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생략하겠습니다.사실만 기술하기로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전파지원부대의 움직임입니다.
귀국이후 경찰의 감시라고 하는 것은
별로 저를 미행감시하는 조직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전파의 악용을 눈치챈 이후부터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전파지원부대라고 칭하는 것은 부적절할지도 모릅니다.
전파의 악용이 있고 전파지원부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파의 악용은 그 패거리들의 수단일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어떤 쪽이라고 해도
일본전국에 둘러싸인 전파지원부대가 존재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부터 단언 할수 있습니다.
전파지원부대의 움직임으로써 우선 지연의 연출,(교통)신고조작을
1992년부터 경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차에 집중해서 모이기 위한 연락망,그정도의 인원을 움직이는 조직력,
그리고 그 기민성부터
저 한사람을 위해서 행하기에는 훈련 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지고,
저에 대해 이전부터 철저히 행해져왔기 때문에 충분히 훈련 되어져 있다는 결과로써
저에 대해서도 바로 대응할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붙고 제 차주의에 모이고,어떤 사람은 조수석에서 뒤돌아보고,어떤 사람은 백미러로
어떤 사람은 뒤로부너 혹은 마주오는 차에서 저를 째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앞 차의 운전수가 문을 열고 침을 뱉는 일도 종종있었습니다.
제 앞을 뭉클뭋믈 검은 배기가스를 뿜으면서 달리는 차도 여러번 경험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의 앞에는 정해진 것처럼 대형트럭,청소차 진공자동차,봉고차등 앞을 보기가 힘들게 하는 차를 달리게 하는 것이 항상 있었습니다.
앞에서 천천히 몰아 추월하게 하여 사고를 유발하게 하는 타입등의 모든 사고의 연출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때 다가오는 것이 저서에 쓴 고속도로상에서의 낙하물에 의한 공격이였습니다.
(저서 69-69페이지)
운전중에서와 같은 것을 걷고 있을 때도 빈번히 경험합니다.
역의 개찰구 부근이랑 물건살 때의 계산대의 앞등에서는
반드시 제 앞에 사람을 세우고,통로에서는 제 앞을 천천히 걷거나
갑자기 되돌아서 부딧칠 뻔하게 하거나 하는 일을 모른척하면서 행하고 있습니다
계산대에서는 <안녕하세요><감사합니다>를 제 앞의 사람에게는
큰소리로 말하고 저에게는 말하지 않거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하거나,
혹은 거스럼 돈을 뒷면으로 해서 건네주거나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페의 뒷면을 건네주는 것은 1996년 9월경부터 빈번히 행해져 온 것으로,
저의 부모가 문구점을 경영하고 있는 관계로 가게 일을 거들고 있으면
손님이 계속해서 지폐를 뒷면으로 해서 건네주는 것입니다
또한 백화점 매장에서는,점원 전원에게 지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했는지,
저에게는 절대로 인사를 하지 말도록 지시를 한 것 같습니다.
이 조직적인 움직임도 특필할 일입니다.
타겟 대상을 철저히 경멸하는 태세가 정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개를 이용하는 것도 전파지원부대의 상습수단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운동하러 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개를 산보로 데리고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 운동장은 개 산보가 금지되어 볼수 없게 되었습니다만,
작년말 개를 끌고 목거리까지 풀고 있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개에게 발을 물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오는 것을 몰랐다고 시침이떼고 말했습니다만
모른척 하고 있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전파에 의해 개를 짓게 하는 것도 ,광폭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되어져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대위에서 엉터리 연기,짜고치는 시합도
전파지원부대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해도 된다고 해도 괞찮습니다.
1993년말부터 能(일본 독자의 연극)에 관심을 갖고 다니게 되었습니다만,
갈때마다 믿을수 없는 부끄러운것을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입니다.
무대위에서 저를 째려보는 것 뿐만 아니라 能전체가 엉망진창입니다.
어차피 제대로된 能를 관람할수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기 대문에
반년정도 다니고 그만두었습니다.
이러한 일과 같은 것을 거의 같은 시기에 스포츠에서도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야구와 축구에 관심을 갔었습니다만,제가 보러가면,
혹은 테레비 채널을 돌리면,이것을 알고 짜고치는 고스톱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테레비에서 방영되고 있어도 행해지고 있는 이 이상정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지요.
공중의 면전에서 짐승과 같은 행위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게다가 질책하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상현상 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짐승과 같은 일에 자신을 갖고 있는지 이것으로 알수가 있습니다.
전자파지원부대의 실력을 알게 된 바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전파지원부대의 괴롭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만,
이것들의 움직임과 전파의 악용을 겸해서 행함으로 효과를 증가시키고
더욱 큰 상처를 타겟대상에게 가해 할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지폐를 뒷면으로 건네줄때에는 반드시 다른 손님을 대기시키고 그 모습을 엿보면서
그것에 경악전파,적면전파,손의 떨림 전파,쏘는전파등을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에 의해 그 배이상의 효과를 얻을수 있는 것입니다.
혹은 도서관등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항문이완전파,가스발생전파,
혹은 희미한 변의 의사를 재촉하고 그 전파를 계속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전파지원부대를 동원시켜 제 주위에 앉게하고
제가 자리를 일어설 때 냄새를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이 방법으로 정신적 고통을 증가시킬수 있는 것입니다.
또 마인드컨트롤의 위력을 저에게 알리기 위해서도
전파지원부대의 움직임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저의 생각을 읽고,혹은 충동전파를 쏴서 저를 움직이게 하고,
제가 가는 곳마다 미리 손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전부 알아채고,그것뿐만 아니라 전파악용주체의 의사로
제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전파악용주체는,자신이 전파로 움직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라고
의심을 갖게 하는 전파도 개발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생각조차 들 정도 입니다.
즉,전파악용주체로서는 아무것도 도모하고 있지 않더라도,그 종류의 전파를 쏘게되면,
자신이 콘트롤되는 것과 같이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전파를 개발하고 있는것처럼 생각되어집니다.
주체성의 상실처럼 싫은것은 없습니다.
전파의 악용도 전파지원부대의 움직임도 선량한 일본인에게는
방치해서는 안될 중대한 일입니다.
이 양자의 움직임에 의해 말살되고,혹은 광인화 된 사람이 상당히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자는 후자정도 장기간에 걸쳐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저의 경험으로부터 30년은 경과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귀국이후 7년간의 경험에 의해면,패전을 몰랐던 제가
패전을 절실히 실감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전파악용주체도 지원부대도 일본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는
절대로 있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7년간에 걸친 괴롭힘으로부터,일본은 이미 일본인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바입니다.
그러나 모든 선조의 유산은 지금도 저한테는 살아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그 유산이
효과를 발휘할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전파의 악용의 문제를 폭로하는 것으로,
모든 선조의 유산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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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1 브라운관으로부터의 공격>
작년12월 중순 포케몬 사건이 발생해서,저의 체험에서 비슷한 것을 덧붙이겟습니다.
테레비 화면을 이용해서 보고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방법입니다.
저서(66페이지)에 기술 한 것과 같이,알레지화를 하나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테레비朝日(1996년12월7일 오후 6시 방송)의 보도프로그램,
ザ・スクープ[병원균 열도/사무실에 잠복하고 있는 신형감염증/레지오네라의 공포]를
보고 있을 때의 경험입니다.알레지 문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만,그것을 보고 있을 때
화면에 보여주고 있는 증상이 저에게 옮겨지는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되는
이상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바로 꺼버렸습니다만,그것을 무리해서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저만 그와 같은 감정을 품었을까요.
아니면 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일까요
흥미로운 일입니다만,만약 비디오로 녹화하여 재시청 한다면 확실하게 밝혀지겠죠.
광기화도 화면을 통해 집요하게 행히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NHK입니다만,저녁7시의 뉴스 후에 드라마가 20분 방영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연기와 음악과 빛을 교묘하게 사용하여,사람을 발광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라고 생각되어지는 장면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특히 1997년1월29일 방송「木綿のハンカチ목련의 손수건」은 강렬했습니다.)
제가 식사할 때만 테레비를 본다는 것을 알고,
이시각에 드라마를 집어넣고,꾸미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경우는,디시 볼 필요등이 전혀 없고,
특수전파를 쏘지 않아도,정신이상을 발생하게 하는
불안에 들뜨게 하는 것이였습니다.
저의 경우는 더욱 특수전파에 의해 그 불안을 더욱 강하게 했을 지도 모릅니다.
화면을 통해서 그와 같은 짐승연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포케몬 사건에 의해서 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피해를 받은 것도 생각하면,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화면을 통해서 피해를 끼치는 방법이
개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저의 체험이 포케몬 사건의 해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추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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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2 할머니의 죽음>
1998년2월18일 할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사인은 폐색전증,향년86세 였습니다.
할머님도 전파에 의한 영항을 크게 받고 있다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할머님은 6년 3개월 간 누워만 있었습니다만,
병원에서는 절대로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로,계속 가족이 시중을 들었습니다.
할머님은 뒷별장에서 할아버지(15년 전에 사망)와 살고 있었습니다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누워만 있게 된 때에도,
이곳이 마음이 편하다는 것으로 이곳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시중드는 사람이 드나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뒷쪽이 있다고 해도 토지가 계속되어있지 않아서
빙 돌아서 할머님의 집에 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누나,저 세사람이 협력하여 시중을 들었습니다.
우선 제가 아침에 가서 아침시중을 들고,그후
어머님이 가서 식사 후의 정리,종이 귀저기를 치우는등,
점심에는 누나가 점심을 시중들고,
그 후 저녁에 어머님이 저녁식사의 시중을 들기 위해 가는등이
반복해서 6년 3개월 간 계속되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할머님이 아래의 처리를 자신이 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조금만 움직여도 아프다고 호소해
적어도 의자에 앉으면 편할 것이라고 일으키려고 하면 아파서 할수 없었습니다.
누워만 있어서 하루하루 근력이 쇠약해져갈 뿐,
마지막에는 뼈와 피부뿐인 상태였습니다만,그래도 신기 한 것은
이래의 처리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종이귀저기는 빤츠식이 아닌 직사각형의 종이귀저기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적은 양의 처리는 별로 신기하게 느끼지 않았습니다만,
대변도 자신이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냐하면,배설한 것을 종이로 싸서 용기에 넣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갔을 때에는 처리가 끝나
그것을 화장실에 버리면 되는 것이였습니다.
물로 씻어내는 화장실이 아니라,퍼내는 화장실이라서 가능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휴지를 많이 사용하여 감쌌기 때문에 물로 씻어내는 화장실은 막혀버립니다.
이러한 일을 할수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를 희망대로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아도 되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아래의 시중까지 들지 않으면 안되었다면 벌써 병원에 입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이 배변처리가 바로 전파조작이라고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제 자신 전파의 악용을 확신한 1995년까지 이것은 당연히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만,할머니는 매일 알과 같은 배변을 하고 있으면.
놀라고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배설한 것이 끊임없이 단단한 변이 아니면 둥글게 감싸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저의 기억으로는,할머니의 배설의 실패는 몇번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6년3개월 간을 누워있으면서 실패하지 않고 배설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절대로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전파에 의한 배설조작이 있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런데 틀림이 없다면,할머니에의 배설조작은
전파의 선용이라고도 생각할수 있습니다(저에 대해서는 아주 반대의 악용입니다)
아마 음식에도 전파에 의한 조작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까지 정정하게 식사를 했습니다.돌아가신 당일,아침에 제가 갔을 때
얼굴색이 나쁘고 가슴 언저리를 맛사지하고,식사를 드려도
평소처럼 바로 젓가락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돌아갈 즘에는 드시기 시작하셨기 때문에,
젓가락을 드실 정도면 그정도로 걱정을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2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가 갔을 때는 아주 나쁜상태였던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의 승락을 얻고,구급차로 운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5시경에 숨을 거두시게 된 갑작스런 죽음이였습니다.
할머니의 죽음에도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의문을 갖을수 밖에 없습니다.
전파의 악용을 알게 된 저에게는,
할머니의 생정에도 죽음에도 전파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어느쪽도 자연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전파에 의해 살아지고,그 조작을 멈춰,그것도 죽음을 부르는
전파를 맞고 돌아가신 것 처럼 생각되어 집니다.
죽음을 부르는 전파라는 것은,제가 처음 7일 경험한,
명치 근처까지 쭉 느끼는 강렬한 전파입니다.
같은 전파 공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날 아침
가슴을 어루만졌을 지도 모릅니다.
건강한 저도 그 전파를 계속해서 받았다면 오래살지 못할거라고 실감했기 때문에
허약해진 할머니는 견뎌낼수 있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할머니는 그때까지 전파에 의해 살게 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머니의 생존을 유지하고,
그리고 2월19일,죽음의 연출을 했다고 밖에 생각할수 없습니다.
이것은 전파에 의한 노인관리 및 죽음의 연출의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추기3 닮은 인간(전파악용주체와 전파지원부대의 관계를 알기위해)>
닮은인간은 어디 든 지 있다고 하지만, 제주위에 전개 되어 있는 것은 보통이 아니다.
여기서 닮은 인간 이라는 것은 내가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이다.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처음에는 계획적으로 나타났다고 생각 되는 것은 히로시마 근무 시절에 다니던 어떤클럽의 여성의 똑닮은 사람이였다.
정작 본인은 술장사라는 것도 있어서 진한 화장을 하고,화장을 지웠을 때 만났을 때는 본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데 힘들었을 정도였다.
동경전근 후에도 한 번 동경에서 만났지만 그 때도 바로 알아보지 못한 상태였다. 본인을 만나서도 이러니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경우 점점 혼란해진다.
장소는 喜多能楽堂, 무대를 향해 맨앞줄의 오른쪽이 나의 좌석이였다. 그 옆에 앉은 사람이 그녀를 닮은 여자였다. 이것저것 고민한 끝에
말을 걸어보았지만 역시 착각이였다.히로시마의 그녀가 동경에 올 수 있었다 해도 能을 보러 올 아이는 아니였다
이후 어린시절, 학창 시절, 직장인 시절, 또한 외국체류 시 만난 사람들에 닮은사람이 자주 내 앞에 나타나게 된 것 이다.
기억 하 고 있는 것을 열거 하면,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지인, 학창시절의 친구/교수, 직장인 시대 상사 · 선배 · 동료 · 여성,
히로시마 근무 시대 클럽 여자, 유학중의 반친구 등등 다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리고 이들은 계획된 것임은 틀림 없을 것 이다.
게다가 놀랍게도 본단체 참가자 중에도 닮은 사람들이 있다는 이다.
먼저 H. M.씨. M씨는 직장인시대 도쿄지점 상무와 닮았다는 것이다.
또한 K. N.씨는 같은 시대의 선재의 아내와 닮았다는 것 이다. 심지어는 S. I.씨. I씨는 학창시절의 학급친구를 닮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변호사와 이야기 속에서 いわお 라는 삼촌이 있다고 하는데 그 학급생의 이름이 巌이였다는 것 이다.
피해자회의 발족 전부터 엄청 비슷한 인간이 내 앞에 나타난 곳에 지금은 단체에서 같은 경험을 하게 됬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면 모두 이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단체 참가자를 의심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신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을 들여서 교묘하게 계획되어 왔다는 것은
다른 여러가지들의 경험에서 잘 알고 있는 것 이기 때문 입니다. M 씨의 경우 전파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인식 한 것은 1990년 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8년이 지나고. N씨는 3년이 경과하고 있습니다. I씨의 경우 전자파로 인식 하고 2년이 채 지나지 않고 있지만, 인식하고서느 7년은 거슬러 올라간 것과 같습니다.
과연 앞으로 내 앞에 등장시키기 위하여 거기까지 손을 써왔다는 것인지. 나는 어릴 적부터 누군가에게 타겟이 되어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을 것 이기 때문에
저의 움직임을 예상 하고 모든 대책이 세워졌을 것 이다.
이것이 사실 인지는 아직까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제 입장에서 보면 세사람이 표적이 된 이유를 거기서 인정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럼 비슷한 인간의 궁극은 어디에 도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나를 닮은 인간이 크롬인간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1학년전에 해안으로 운동하러 갔을 때 저의 젊었을 때의 똑같은 청년이 차를 운전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저도다 더 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보다 더 저스러문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표현이겠습니다만,지금의 제 얼굴은 전자파로 일글어진 얼굴인 것입니다.
전자파의 영향을 제거한 자연 스러운 얼굴이라고 표현 하는 것이 적절할 것 입니다만. 지금까지 경험에서 전파악용 주체라면
크롱 인간을 만들고 있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할 수 있을 정도의 짐승이라는 것을 진절이 칠만큼 알고 왔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인간을 등장 시키는 이유는 정신착란을 야기 시키는 것도 생각할수 있습니다만
제가 과거에 면식이 있던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잘 조사하고 그것도 비슷한 인간을 어렵게 찾아내고,
그것 뿐만 아니라 제 앞에 일부러 출현 시킨다고 하는 손이 가는 일응 하는 이유는 더욱이 깊게 추구 해야 할 일일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 하는 데는 확고 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 하는 것 입니다.. 『 アラン・ユー・リポート(아란/유 보고서) 』에 있던
시각연구 (나가 보았다는 것을 그대로 다른 사람이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인가
필자의 『 무기로서의 전파의 악용 규탄 한다! 』에서 설명한 영상(이미지)의 전송은 프랑스의 생체윤리위원회에서도
전문 학자에 의해 정식적으로 인정 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시각정보를 적확하게 쥐고 컴퓨터와 연결 해 또한 반송하는 시스템을 완성 시키면 그야말로 컴퓨터인간을 완성할수 있는 것입니다.
비슷한 인간을 접근 시켜 식별반응 검사를 한다는 것을 생각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과학 기술과 일체가 되어 비슷한 인간을 출현 시키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전파악용 주체와 지원부대의 모습이 더 명확하게 된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추기4 진찰보고>
진찰목적: 머리에 이식의 유무확인을 위해
머리에 어떤 이물질이 발견 되는 경우 전자파의 악용을 입증 하는 큰 단서가 된다는 것에 진찰을 결심햇다..
3병원, 4명의의사의 진찰을 받음.
진료 시간 및 장소
1 월 23 일: 八街 병원 뇌외과에서 머리 X 선 사진을 찍음. (사진 2 장)
즉시 이상없음 진단을 받음 받음
(X 선 사진의 대출을 부탁 하고 외국의 의사에게 검사를 의뢰함.)
5 월 18 일: 동경대 부속 병원 뇌 신경외과에서 머리를 CT 스캔하여 검사 함.
22 일: CT스캔 검사 결과 이상이 없는 것으로 진단을 받고 진단서를 받음.
26 일: 成田日赤병원 정신 신경과에서는 MRI 검진을 받음.
6 월 3 일: MRI 검진 결과 이상이 없는 것으로 진단을 받고 진단서를 받음.
MRI 검진 필름를 복사 해서 받음.
같은날: 동경대 부속병원에서 CT 스캔 필름을 복사 해서 받음
* 八街 병원에서 찍은 머리 방사선 사진에 대하여 비공개지만 외국으로부터 대답을 받음.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 이었다.
「 귀하의 머리에 여러 개의 임플란트와 전극이 이식 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전두엽에 심각한 탈수, 산소, 영양소, 혈액 순환의 부족이 발생 하 고 있습니다」
일본 의사가 신중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에게 매일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서
머리에 어떤 임플란트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이 같은 보고를 받아도 새삼 놀라지는 않지만, 현대기술에는 임플란트의 유무는 문제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하여,
과연 어느 견해가 정확한 것인지 제가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또한 CT 스캔검사, MRI의 사본을 봐달라고 해 달라고 해서
또한 몇몇 의사의 공식증언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전자파 악용 문제를 사회적으로 인지 시키기 위하여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이 있는,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인 것입니다..
피해자분들에게도 진료의 검토를 부탁 드립니다.
石橋輝勝 千葉県在住 (S.28年生ま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