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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 춤과 소리의 만남
- "이젠 한 쪽에 비가 내릴까?"
암만해도 김지영 선생님이 좀 뿔이 났다. 김지영 선생님은 화를 내도 화를 내는 것 같지 않았다. 왜냐면 화를 내는 게 안 어울리고,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지금은 김지영 선생님의 배꼽시간이 거의 두 시간이 지난 시각이었다. 아하!... 그래서 내가 끼어들었다.
"김지영 선생님은 학교 선생님이라 퇴근을 4시 반이면 하기 때문에 5시면 밥을 꼭 먹어야는데, 그 밥때가 한참 지난데다 나름 길 가르쳐 주느라 에너지를 쏟고 와 화가 났나봐요."
게다가 저녁인데도 날은 덥고 우리가 앉은 큰 방은 직원들이 쉬며 자느라 보일러를 땐 뒤라 가만히 앉아 나온 음식 먹기 시작한 우리도 더웠다. 그러니 김지영 선생님은 오늘 수필 음독 무대를 위하여 검정양복을 드라이 해 멋지게 입고 나오고, 양복을 입으면 꼭 상의 단추를 앉아서도 채우는 분이라 더 땀 났을 것이다. 실내에선, 그리고 열날 땐 좀 벗지... 내가 대충 물 타려고 한 말에 김지영 선생님, 정색을 하며 아니라고 길도 모르는 사람한테 화를 내면 어떡하냐구 한동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조정은 선생님은 별 대꾸도 안 하고 별 상관 안하시고 옆의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시고.
이제 음식도 다 나오고 막걸리도 한 순배 돌아가고, 조정은 선생님이 또 노래 듣기 욕망을 보이셨다. 김선주 시인의 그 좋은 노래를 언제 또 들어보겄시유, 선수를 쳤다. 김선주 시인은 그새 가사를 준비해 에디뜨삐아프의 '사랑의 찬가 '를 또 열심히 불렀다. 역시 아까 본무대에서처럼 안 떨고 정석대로 2절까지 불렀다. 다시 환호가 시작됐다.
그러자 임동확 시인님의 오늘의 사회본능이 발동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그럼 이쪽 두 테이블이 A팀, 저쪽 두 테이블이 B팀 해서 이제부터 양 팀의 배틀을 시작하겄습니다. 이 배틀서 진 팀이 오늘의 술값을 내는 겁니다요."
하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흐흐 잼있겠네. 김선주 시인이 당신의 팀 A팀 소속인 게 큰 힘인 양 든든해하시는 듯 했다. B팀을 보니 그 팀엔 이규호 영창과 이강직 고수가 있었다. 일단 그 두 분은 쉬면서 식사를 좀 하셔야 할 것 같았고, 그때 김종완 선생님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난 거침없이 김종완 선생님의 '세노야'를 듣고 싶다고 외쳤다. 선생님은 0.1초도 안 걸려 자동으로 일어나 양희은의 '내님의 사랑은'을 부르셨다. "내님의 사랑은 철따라 흘러간다, 푸른물결 흰 파도 언덕 저편 아지랑이~~ " 점점 구성지고 노련해지시고 이제 이 노랜 녹았다. 어떻게 술 한 모금 입에 안 대고 저리 함빡 미소를 머금고 행복한 얼굴로 취해서 음미하며 노래를 부를까? 신의 경지에 오르지 않음 저리 할 수 있을까? '유행가 따라 잡기'라는 김종완 선생님의 수필을 보고도 선생님의 노래 즐기심은 알 수 있었지만. 실제로 서너 곡은 날로날로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의 경지로 올라가 계셨다. 김종완 선생님이 노래를 시작하자 감탄한 임경일 선생님은 갑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 김 선생님의 앞가슴 자락에 척 꼽아 주었다. 노란색이고 당연히 5천 원 짜린 줄 알았는데 5만 원이었다.
그 다음은 우리 A팀 차례. 배틀 전부터 임동확 시인님은 스마트폰으로 뭘 읽어주고 옆의 권현형 시인은 초등학생 받아쓰기 하듯 열심히 적더니(참, 권 시인이 초등학교 1학년 진이 엄마징!) 그 쪽지를 들고 대학가요제 때 조하문이 부른 '해야'를 부르겠단다. 세상에! 권 시인은 '개똥벌레' 정도 예쁘게 까딱까딱 부르던 안정주의자가 아니었던가. 가사도 있겠다, 가사만 쳐다보며 함 되겠다, 처음부터 진이처럼 야무지게 노래를 시작하더니 어라, 고음이 시작되었는데 고음도 이를 악물고 눈을 꾹 감고 다 해내고야 말았다.
배틀은 달아올랐고, 이때쯤 B팀에서 히든카드를 꺼내야겠다는 듯 드디어 이규호 영창이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키고 걸쭉하게 '사철가'를 뽑으셨다. 일순간 신명나는 판으로 바뀌며 역시 우리 소리는 좋은 것이여 하며 화기애해한 것도 잠시, 배틀은 배틀이었다. (참, 초반에 임 시인님이 '명태'를 부르셨는데 사회를 보시면서 부르셨고, 죙일 일어나 노래도 하며 사회를 보셔 언제 불렀는지 정확히 기억이 없다.)
A팀 차례가 되어 한때 가수가 되려 했었던 정고암 선생님이 '광야에서'를 바리톤 목소리로 마지막에 비브라토까지 구사하며 깔끔하게 마무리 하였다. 언제 A팀에 앉아 있다 B팀 자리로 가신 박지영 선생님이 그대로 그 자리에서 B팀이 되어 남궁옥분의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를 동요선생님처럼 율동을 하며 적극적으로 부르셨다. A팀 박 변호사님의 '보리밭'도 머리에 꾹꾹 힘을 주며 온몸으로 노래한 특색있는 열창이었다.
이제 B팀 차례다. A팀과 B팀 경계에 앉아 있던 나를 B팀으로 본 김종완 선생님과 몇 사람이 나를 본다. 이제 박옥경 불러라인 것 같다. 임 시인님도 박옥경씨 일어나라 하신다. 난 어차피 일어날 것 씩씩하게 일어났다. 막걸리도 기분좋게 마셨겠다, '봄날은 간다'를 뽑기 시작했다. 백설희 노래지만 한영애 버전으로. 근데 가사도 가물가물하고, 내가 노래에 너무 빠져서 안 되겠다. 난 1절만 하고는 너무 못 해서 안 되겠다며 나 어릴 때 18번이던 '바람이었나'를 2절까지 정확히 부르고서야 앉았다.
순간 머쓱해서 화장실을 다녀오니 다 끝난 듯 조용했고 술마시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나는 아니 배틀 끝났냐 하니 임 시인님이 막걸리 열심히 드시다가 다시금 일어나셨다. 자, 그럼 이제 또 누가 해보겄습니까? 내가 눈만 껌벅거리며 앞만 보고 앉아 있는 B팀의 김지영 선생님을 딱 쳐다보며 '기러기 울어예는'을 부르시라 하였다. 김지영 선생님 더는 모른 척 할 수 없다 판단 들었는지 냉큼 일어나 역시 상의 단추 딱 채우고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초등학생처럼 꼿꼿하게 서서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를 아주 서글프게 불쌍하게 불렀다. 이때부터 팀 구분도 모호해지고 사회자도 더 사회를 안 보고 서로 삼삼오오 이야기 하기에 바빴다. 배틀 결과가 어떻게 된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경도 안 썼고, 신경 쓸 수도 없이 막걸리에 다들 거나해지며 마음들이 자비로워졌기 때문이다.
막걸리집에서 너무 시끄럽다고 손님들한테 항의가 들어왔다고 주인장이 와서 조용히 해 달라고 두 번이나 하소연을 하였다.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더 나누고픈 우리는, 집에 갈 사람은 가고 2차를 정고암 선생님 아내가 하는 까치호랑이 갤러리 식당으로 가기로 하였다. 내가 끝으로 나가다가 한쪽 귀퉁이에서 조용히 소주를 먹고 있던 청년들 상 위의 소주병을 치맛자락으로 쳐서 그만 쓰러뜨렸다. 어머 죄송해요, 아니 괜찮습니다 아까부터 노시는 모습들을 잼있게 봤는데 무슨 모임인가요?, 아 네 시와 수필 음송회와 춤과 판소리 공연을 하고 뒤풀이 온 겁니다, 그럼 담에 또 하나요 담엔 언제 하나요?, 아 그럼 연락처를 주세요 하니 두 청년이 명함을 주었다. 받아 가방에 넣는데 임경일 선생님이 어느 틈에 옆에 앉더니 전화번호를 주고 받는 것 같다. 난 나왔고 사람들이랑 밖에서 기다리는데 임경일 선생님이 금세 안 나오신다. 조금있다 나오시길래 무슨 일 있었냐고 물으니, 연락처 주고 받고 엎지른 소주값 물어주고 한잔 하고 나왔다고. 귀여우신 선생님.
까치호랑이 갤러리 식당은 비어 있었다. 식당 사장님이신 사모님은 장보러 가시고 고암 선생님을 비롯한 객들이 쳐들어가 반찬 몇 개 꺼내 막걸리를 마시며 또 노래하고 이야기판이 새로 짜여 이어졌다. 근데 또 김종완 선생님 조정은 선생님 일행이 안 보인다. 왕십리에서 삼청동 오는 것이 또 오래 걸렸다. 아마 내릴 사람 내려주고 돌아오느라 그랬겠지. 김종완 선생님은 또 한 시간 정도를 운전해서 이제 자신의 지친 몸을 힘겨이 끌면서 들어오셨다. 이것이 이날 김종완 선생님이 운전하여 늦은 세번째 사건이다. 여기서 이규호 영창의 살아온 이야기와 그의 고수 이강직의 삶도 엿볼 수 있었다. 갑자기 윤대녕의 소설 '천지간'이 떠올랐다. 소리꾼들은 득음을 위하여 남도 섬과 계곡에서 피를 토하며 연습하다가 소리가 잘 안 나오면 바다 속에 몸도 던진다는 전설(?)의 소리꾼들의 삶... 사모님이 오셔 사모님의 깜찍발랄한 제스쳐와 함께 노래도 들어보고, 우린 모두 문닫은 삼청동 길을 흥얼흥얼 걸어 내려왔다. 이제 문 연 술집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먼저 어딘가에 당도한 임동확 시인님이 어서 오라 손짓을 한다. 3차는 노래방이다. 고암 선생님이 노래를 잘 하시지만 가사를 몰라 못 하시는 노래가 태반이라 하신 이유도 있지만, 우리는 김종완 선생님을 비롯하여 더 노래하고 춤추고 싶은 욕망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임동확 시인님이 제일 큰 방으로 잡고 한 시간 노래와 맥주를 주문한다. 자, 이제 우리만의 세상이다.
지쳐 바로 쓰러질 것만 같은 김종완 선생님은 송창식의 '사랑이야'와 '세노야'를 힘을 내어 아주 잘 부르셨다. 고암 선생님은 '사랑의 썰물'과 '떠나는 님아'를 아주 진지하게 멋드러지게 불러제끼셨다. 그 두 분의 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두 분이 가장 많이 서 있었고 노래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박지영 선생님은 두 분의 목과 어깨를 주물러 주고, 조정은 선생님은 한 쪽에서 함빡 웃으며 "깍~" "깍~" 비명을 지르는 놀이를 하셨다. 노래방사람들은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나와 춤을 추고 발라드가 나오면 불르스를 추었다. 임동확 시인님은 서서히 와이셔츠 뒷자락이 삐질삐질 나오기 시작했다. 임동확 패션이다. 그 휘청이게 큰 키에 기타 치는 시늉을 하면서 버드나무처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을 듯 춤을 추시며 이제 더 흥이 나니 양복 상의 목자락을 잡고 상의를 크게 크게 돌리시며 백댄서를 하신다. 양복이 불쌍타. 아니다. 양복도 주인에 길들여져 흥이 나겠지. 연어떼가 계곡 상류를 거슬러 오르는 그 힘, 에너지가 '신명'이라고 했다. 임동확 시인님이나 김종완 선생님이나 평소 기운 하나 없어 보이고 오히려 기운 비축하기에 여념이 없을 것 같은 비실비실한 분들이, 어디서 이런 힘이 나서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것일까. 그건 그들의 '신명'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것이 없다.
노래방에서 나오는데 임경일 선생님은 아까 내가 화장실 갈 때부터 카운터에 있더니 계속 카운터에 붙어서서 돈을 내려 한다. 내가 아까 임 시인님이 다 계산한 걸로 아는데 무슨 돈을 내는 거냐니까, 아 글쎄 우리가 계산할 게 있어요오 하며 주인한테 돈을 내시고. 아마 두번째 들어온 맥주값을 내시고는 또 내시려 한 것 같다.
아직도 우리에게 신명이 남았던 걸까. 임 시인님이 허허로운 우리를 맞은편 편의점으로 끌었다. 시원한 파라솔에서 딱! 맥주 한 캔씩만 하고 가자고 했다. 그래. 딱!이다. 딱 한 캔이다. 우리의 신명은 딱 한 캔이 부족한 거다. 노래방 사람들이 그대로 다 파라솔에 앉았으니, 그 이름하여 김종완, 정고암, 임동확, 박지영, 박용일, 임경일, 조정은, 박옥경이다. 확 트인 파라솔은 바닷가처럼 시원해 나중엔 추워서 머플러로 팔을 친친 감싸고 오들오들 떨기까지 했다. 박지영 선생님은 아까 막걸리집에서부터 흥분해서 '똥바다' 얘기를 하셨다. 왜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광화문 한 복판의 이순신 장군 동상 위에 올라가 똥을 싸냐구, 이런 판소리할 때는 사전에 똥바다 전체의 내용을 설명해주고, 전체 중에서 이 한 대목을 하필 하는 이유를 안내해주고 해야할 것 아니냐구... 조정은 선생님이 친절히 이리저리 설명을 하니 그제서야 알겠다고 넘어가시면서도 그 외 생명, 화엄, 우주로 열변들은 확장되며 이어졌다.
저 멀리서 경찰차가 온다. 어디 무슨 일이 발생했나보네 하는데, 차가 멈추더니 경찰 한 분이 우리 파라솔 앞으로 걸어오더니 경례를 한다.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여긴 주택가라 조금만 조용히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삼청동 한적한 행길가 점방 앞에서 현직 변호사에, 평생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신 분에, 이 동네에서 갤러리를 시작한 세계적인 아티스트에 다 알만한 분들이 경찰한테 훈계를 들었다. 하하하.
정고암 선생님이 괜히 뻘쭘한 척 하고, 실은 아내의 눈치가 보여 가장 먼저 석양의 무법자차럼 표표히 사라지셨다. 이제 파라솔 의자에 앉을 힘도 없어지신 김종완 선생님이 간다고 하시며 같이 갈 사람 있나 하는 표정이신 걸, 조정은 선생님이 냉정히 조심히 들어가시라 한다. 그러고도 반 시간을 수런수런, 이야기불씨는 사그러들 줄 몰랐다. 그리고는 누군가 제안을 했다. 알아서 한 사람씩 택시가 한 대 올 때마다 타고 사라지기로. 스타트가 박용일 변호사, 그 담이 박지영 선생님, 그 담이 조정은 선생님, 그 담엔 내가 탔다. 최종적으로 남은 신명 전사는 임동확, 임경일 양 임씨였다. 이 두 분의 그 후 행적에 대해서는 난 모르겠다. 다만 그 이후 그 두 분이 별 일 없이 무사히 계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다행일 뿐이다.
김종완 선생님이 말씀하신 '문학적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문학하는 사람들의 반전을 어떻게 기대하셨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반전은 확실히 꿈틀거렸다. 시인과 수필가의 만남은 주제마다 한통속이었고 아주 끈끈하며 신이 났다. 시인과 수필가와 최후 파라솔까지 함께 한 멀티 아티스트, 전 교직자, 현 인권변호사, 사업가들과의 세 차례 뒤풀이에서의 어우러짐, 그때의 신명나는 노래와 이야기가 반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가끔 오늘처럼 작은 공연판을 벌이고 신명나는 놀이마당을 열기로 하였다.(끝)
*선생님들, 재미없고 긴 후기 읽어주셔 고맙습니다!*
첫댓글 취중에두 시시때때루 일어나 발언권을 얻은 담, 진지성을 회복시키는 임동확 시인님! 하다못해 길바닥에서 점방 맥주 앞에 놓구두 시대를 논하시는 임동확 시인님! 끝없는 담론의 숲을 걸어나온다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아 월장하듯 도망친 조정은 용서허시유. 임결일 샘이랑 날 새도록 광화문 거리가 걱정되어 순찰까지 도셨다는 말은 전해들었구먼유.
임동확 시인님에게 진지와 낭만 뺌 뭐가 있을까유. 시배께 읎네. 하하하.
부덕의 소치로 제가 넘 마니 등장하군요. 암튼 결코 자주 올 수 없는 생의 한 순간들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 시간의 주인공들이었던 여러 선생님들과 앞으로도 의미있는 순간들을 갖고 싶습니다. 꾸벅. 임동확 합장.
어이쿠 임 시인님이 납시셨네요. ㅋㅋㅋ 납시어 댓글 단 것이 웃겨서 한참을 웃었져여. 댓글도 귀엽게 쓰시구ㅎㅎㅎ.
첫걸음이 어려운데 용감하게 첫도장을 찍으셨으니 인제 에세이스트까페 문지방이 닳아라 아니 천장이 뚫어져라
(키가 큰데다 천장에 부딪히면 부딪히는대로 대강 다니시니깐^^) 댕기시며, 댓글좀 달아주소서~~~
즐거운 시간들이 눈에 선 합니다. 함께하는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예쁜님들... 글 올려주신 박옥경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 합니다. ^^
감사합니다 선생님~
막걸리처럼 걸쭉하게 즐거운 자리였군요. 역시 수필가의 섬세한 후기는 그 풍경을 훤하게 그려줍니다.
고맙습니다!
근데 잃어버린 스마트폰은?..
근디 사진은 .....엄써요??
사진, 앨범방에 있지요. 조정은 선생님이 올려놨는데 단체사진이랑 더 올리셔야는데, 마감땜에 시간이 없으신가봐요. 조꼼만 더 지달려보자구여 병미샘^^*
후기 잘 읽었습니다. 애쓰셨어요.~~식사 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
어잉? 아리샘, 막걸리집서 식사하셨어요?^^ 우린 술 먹을 땐 밥 안먹자누?ㅎ 그날 내가 옆에 음써성?ㅋ
담버텀은 제 옆에 꼭 붙어계시어요. 신나고 신기하고 잼나는 일들이 무궁무진이구만요. ㅎㅎ
'후기도 문학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 반가워요~ 선생님 안 계신 문향이 잘 흘러가고는 있지만,, 선생님 계실 때의 든든함과 뒤풀이에서의 맘껏 웃고 떠들며 즐거운 모습들의 빈 자리를 매번 느끼며 지낸답니다.^^ 누가 떠난들 아니 그렇겠습니까? 어서 나오셔 그 자리를 채워 그때같이 즐거웠음 해요~.
과찬의 멋진 댓글도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