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집안에서 내 담당은 닭알찾기와 시계에 밥주기였다.
나는 시계에게 밥 주던 시절에 살았다.
우리 집 대청마루에는 벽시계가 하나가 1년 365일 걸려 있었다.
커다란 부랄추를 가진 시계였다.
그때는 추시계라고 하지 않고 부랄시계라 하였다.
그 추시계는 하루 종일 쇠부랄 같은 추를 느릿느릿 좌우로 흔들었다.
마치 일 나가는 황소의 거시기처럼…….
그 벽시계는 우리 집 식구에게 때를 알려주는 장닭과 같은 존재였다.
만약에 태엽이 많이 풀리거나 시계가 멈추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담당 임무 소홀에 대한 야단과 함께…….
농촌에서 때를 놓치면 일 년 농사를 망치기 십상이었다.
특히 농부나 어부는 때를 아주 중요시하였다.
어머니의 밥때, 어부의 물때, 농부의 심을 때와 거둘 때!
누구나 다 그렇다. 살에 있어서 때를 놓치면 기회를 잃는 것이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때를 중요시하여 정한 것이 24절기다.
‘망종(芒種)’은 까끄라기가 달린 보리를 베고, 까끄라기가 있는 벼를
심은 절기, 즉 농사 때이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삼시 세 때를 다 찾아먹는 남편은 부인들에겐 공분의 대상이다.
새끼 축에 드니 말이다.
그래서 남편이 정년 때가 되면 부인들은 우울증 증상이 온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밥때를 알려주는 것은 그 부랄시계였다.
아버지가 물꼬를 보러가는 때를 알려주는 시계도 그 시계였다.
그 주요한 시계가 서 버리면 우리 집은 때를 잃기 십상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맡겨진 내 임무 두 가지, 닭알찾기와 시계 밥주기는
막중한 임무였다.
밥때 쓰이는 닭알찾기와 밥 지을 때를 알려는 시계 밥주기가 말이다.
그 기둥시계의 얼굴엔 두 개의 구멍이 빠꼼이 뚫려 있었다.
왼쪽은 종 태엽을 감는 것이고 오른쪽은 시계바늘을 돌리는 태엽을 감는
곳이었다.
만약에 왼쪽의 종 태엽이 많이 풀리면 종소리는 칠팔월 쇠부랄 늘어진
것처럼 소리도 늘어졌다. “데에뎅, 데에뎅!” 하고.
나는 시계 종소리만 듣고도 지금 시계가 배가 고픈지를 단박에 알아챘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넷째야, 시계 밥 주거라! 너는 배 고프면 밥 안 먹니?”
시계 안에는 나비 같이 생긴 시계 밥을 주는 것이 달려 있었다.
시계바늘 태엽은 오른쪽으로 감고, 종 태엽은 왼쪽으로 감았다.
그러면 죽은 놈은 다시 살아났고, 기운 없는 놈은 생기를 찾아 움직였다.
그저 먹이는 것이 최고인가 보다.
이 부랄시계가 5~6분 정도 늦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처럼 초를 다투지 않는 여유가 있었다.
일부러 5분 정도 빠르게 가게 할 때도 있었다.
그 추시계는 아날로그시계였다.
우리 집의 보물 같은 추시계는 시나브로 디지털시계로 바뀌었다.
어느 날 집에 가 보니 부랄시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시각 숫자만 반짝이는
디지털시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공짜로 신형시계로 바꿔주었다고 어머니는 대견해 하셨다.
그 시계의 가치를 알아본 수집상의 농간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임무인 시계 밥주기는 끝이 났다.
새 시계는 건전지로 밥을 먹고 있었다.
디지털시계 시대가 됐으니 아날로그 시계의 가치는 하락세로 접어 들었다.
우리 집에도 수은전지가 다 돼서 버려진 손목시계가 예닐곱 개는 서랍
속에서 뒹굴고 있다.
더구나 이젠 디지털손목시계도 핸드폰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으니 명품시계
아니면 쪽을 못 쓰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지금도 제일 비싼 시계는 아날로그 손목시계라 한다.
뇌물로 둔갑할 정도로…….
아날로그시계는 시간(時間)을 가늠하기 충실했다면,
디지털시계는 시각(時刻) 알리기에 충실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즘 세대는 시각만 충실하고,
철모르는 젊은이가 많아지는가 보다.
사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의 몸에 시계를 널어주었다.
생태시계다. 혹은 일명 배꼽시계라고도 한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졸리면 눈이 감기고 하품을 한다.
동식물도 다 생태시계를 가지고 있다.
새벽이 되면 수탉이 울고, 햇빛에 따라 꽃이 피고 지기도 한다.
이제는 밤낮의 구분이 희미해진 24시 편의점 시대라 아날로그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다시 아날로그 시대로 되찾아가는 것도 있다.
태엽시계, LP판, 손글씨 등.
우리 조상들의 무생물인 시계에게도 생명이 있다는 지혜로운 생각을 가졌다.
“시계, 밥 주거라!” 처럼……. 사실 우리 조상들은 배고픈 민족이었다.
배고픔에 서러운 민족이었다. 소의 피까지 먹어야만 했다.
그래서 때를 넘기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시도 때도 없는 시절이 되었으니…….
“넷째야, 시계 밥 주거리!”
하시면 재봉틀 의자에 올라서서 부랄시계에 밥 주던 때가 엊그제 같다.
어린 마음에도 죽었거나 힘이 없는 시계가 밥을 먹으면 살아나고 생기를 찾는
것을 보면 신기하고 흐뭇했다. 그러니 사람이야 오죽하랴!
어제, 먼지가 지가 풀풀 쌓인 아날로그 LP판을 자그만 턴테이블에 걸어 본다.
또 디지털 CD도 들어본다.
판이 바늘에 긁히는 소리, 잡음 한 점 없는 CD. 과연 삶은 아날로그인가,
디지털인가?
대청마루의 부랄시계가 새벽 넉 점을 알리는 종을 치면 어머니는
고양이 세수를 하시고 머릿수건을 쓰셨다.
아침밥 하기 전에 날마다 하시는 일이 있었다.
정한수 한 그릇 장독 위에 떠놓고, 여명의 동쪽 하늘을 향해 남편과
자식들의 무운장구(武運長久)를 비셨다.
그리나 당신의 장구는 빌지 않으셨는지 서둘러 세상을 떠나셨다.
“넷째야, 마루 시계 밥 주거라!”
나는 시계에 밥 먹여주던 시대에도 살았다.
이젠 나는 밥 주는 나이가 아니라 내가 밥을 얻어먹는 나이가 됐다.
첫댓글 서울 지역 오늘(화)은 아침 9시까지 흐리다가 이후에
종일 구름 많은 날씨가 계속되며 낮최고는 32도 정도,
내일(수)도 구름 많은 날씨에 낮최고 33도로 전망됩니다.
옛날 우리들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시절 순수함이 차츰 사라지는 그느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