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구주 예수님을 만난 자로서 실상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인 것임은 물론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을 정도로 뜨거운 믿음의 바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적지 않은 연약함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사실상 그 누구라도, 그 어떠한 인생이라도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한 그 자체로는 그렇지 않기기 힘들고, 따지고 보면 아예 불가능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대단한 바울이었고, 온갖 응답과 이적들이 넘쳤으며, 그를 통해 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영혼들, 가정들, 지역들, 나라들, 대륙들에 복음의 빛이 비치게 되었고,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을 정도로 장성한 믿음이었고 강한 군사와 같은 신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래 본문 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증거된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인간적인 측면에 있어서 자신을 곤고한 사람이라고 고백한 것을 볼 수 있고, 심지어는 사망의 몸이라고 까지 표현한 것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25절에서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는 고백과 증거라 할 수 있는 것인데..
실제로 바로 그러한 예수님께서는, 아니 오직 예수님만이 그와 같은 곤고와 그 어떤 사망의 모양들에서도 건지시고 이기게 하시며 역전되게 하시는 분인 것이고, 더 나아가 감사와 찬미까지 되게 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종의 그러한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구주 예수님 단독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진정 그와 같은 사실과 이치와 원리에 있어서는 좀 더 근본적인 부분부터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인데..
우선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모든 인생들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고 단절케 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임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인생들을 위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때에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것이며, 실제로 하나님 아버지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바로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실상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그 예수님으로 인해서만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바로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만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생생히 누리게 하시고 경험케 하시며 강렬하게 나타내시고 성취되게 하시어 실제로 더 이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거하는 한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으로 그렇게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말씀에 약속된 대로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서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실상인 것이기에 아래 본문의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언제라도 곤고해 질 수 있는 것이고 마치 사망과 같은 상황들도 될 수 있는 것이며, 실제로 다윗이나 솔론몬이나 베드로 등과 같은 믿음의 선배들까지도 한 때 심각한 죄악들을 범했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어쨌든 적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 옛 사람과 같이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에 우선을 둠과 함께 수시로 약해지고 지치며 유혹되고 시험에 들며 걸려 넘어지면서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미지근해지고 잠자며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되고, 그로 인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과 같은 징계들에 허덕이며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돌고 방황케 되기도 하는 현실인 것이며, 그에 있어서는 예수님 외에는 결코 다른 방법이 달리 있을 수 없는 것으로..
그렇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참으로 사도 바울과 같이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자라고 하더라도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날마다 순간마다 아래 본문에서의 바울과 같이 다름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언제나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여러 서신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로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서 죄악들, 악한 세력들, 온갖 유혹과 시험들, 연약과 곤고들, 시련과 위기들 등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그러면서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즉시로 자복하며 참회하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정말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 등을 누릴 수도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갈 수 있는 것이고 그와 함께 가면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생생하고 충만하게 될 수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역전과 이적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으로 차고 넘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게다가 그와 같은 강력한 하늘의 힘과 은혜들, 실제와 누림들이야 말로 계속해서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울 수 있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더더욱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7:21~2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28일(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