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한 친구가 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로 1989년도에 입사하여 2022년까지 33년 간 한 직장에서 열정적으로 일했다.
대표이사를 제외하곤 그가 제일 고참이었다.
나이, 직급, 직책, 역할 등 여러 면에서 친구는 명실상부한 그 회사의 2인자였다.
10월 초순에 소주 한 잔 하자는 연락이 왔다.
퇴근 후에 그를 만났다.
"나는 지쳤다. 이젠 그만 쉬고 싶다"고 했다.
법적인 퇴직일은 금년 말일인데 근무는 10월 중순까지만 하고 '정년휴가'를 쓰기로 했단다.
"아직 에너지는 남아 있지만 일은 그만하고, 새로운 인생 여정에 남은 열정을 모두 쏟아붓고 싶다"고 했다.
나도 맞장구를 쳤다.
"돈도 벌 만큼 벌었고 명예와 지위도 경험할 만큼 했으니 더 늦기 전에 네 꿈과 열망을 쫓아가라. 네 가슴이 가리키는 곳으로, 그곳이 낯설고 때론 힘들지라도 과감하게 가라"고 했다.
그의 친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솔한 답변이었다.
나도 훗날에 그럴 것이고.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아직 가슴에 뜨거움이 남아 있을 때 네가 작성한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면서 후회 없는 인생 2막을 엮어가라" 고 했다.
친구도 화답했다.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지, 네 논리는 늘 그랬으니까"
우리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 웃었다.
그리곤 수많은 세월 동안 성실하게 걸어온 친구의 인생궤적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며칠 전, 아침에 뜬금없이 그로부터 톡이 왔다.
트레킹 복장을 한 채 셀카사진을 첨부하여.
"23년도에 '산티아고 순례길' 도전에 나설 예정인데 훈련 삼아 '금강 100K' 트레킹에 나섰다"고 했다.
"1-2인용 작은 배낭과 먹거리를 챙겨서 메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훈련을 해보겠다" 면서.
이번 훈련의 주안점은 '무거운 배낭 적응하기'와 '야외취침'이라고 했다.
나는 친구를 격려했고 그의 적극적인 시도에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그는 금강을 따라 만 3일 간 꼬박 혼자서 행군했다.
20여 킬로 정도 나가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홀로 걷고 먹고 잤다.
목표했던 100K를 채우지 못하고 70K에서 중단했지만.
어깨의 무너짐.
이게 문제였단다.
그랬을 것이다.
다리도 아프고, 차디찬 둑방길 텐트안에서 혼자 잠을 청하는 것도 힘겨웠을 테고, 먹거리도 시원찮고 삼일 간 내내 외롭고 곤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갑자기 무거운 짐을 지고 장거리를 가면, 그동안 무게감에 대한 훈련이 없던 사람들은 거의 백 프로 어깨가 짓눌려 상체가 무너져 내리는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다.
20대 초반, 군대에서 매년 혹한기 때 30 킬로도 넘는 완전군장으로 천리행군(400K)을 했는데 살을 에는 추위나 발바닥의 물집 그리고 욱신거리는 무릎 보다도 제일 힘겨웠던 게 바로 무게의 짓눌림으로 인한 '어깨통'과 첫추뼈에 가해지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친구가 3일 간 겪었던 그 지경을 어찌 모르겠는가.
익히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격려의 박수를 보냈던 거였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고 했다.
그래도 과감하게 시도했던 것에 대해 진심어린 박수를 건네주었다.
"2023년도에 꼭 'SANTIAGO de COMPOSTELA' 800K를 완주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친구도 '파이팅'으로 화답했다.
그는 "가능한 한 부부가 함께 해보고 싶다"고 했다.
더 바람직한 생각이라고 말해주었다.
뭔가를 시도해 보고 어려운 목표에 도전하는 건 각자의 삶에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이 꼭 육체적인 도전일 필요는 없다.
음악이든, 미술이나 문학이든, 학문이나 봉사든, 어떤 자격증이든 인생 2막에 즈음하여 배우고 두드려 볼 분야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많다.
정체와 안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지만 때론 진부와 퇴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인생은 각자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현격하게 달라지지만 끊임 없이 배우며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이 인생의 기본자세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내 생각은 그렇다.
지난 2-3년 전부터 그리고 앞으로 2-3년 내로 내 주변의 친구나 선,후배들이 대부분 퇴직기를 맞았거나 맞는다.
그들의 인생 2막에 늘 웃음꽃이 반발하기를 기도한다.
이제는 '성과'나 '축적'이 아니라 '감사'와 '누림' 그리고 '나눔'으로 채우며 살 때다.
내 마음 속 경구 하나를 적으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Adventure May Hurt You, But Monotony Will Kill You>
오늘도 멋진 하루가 되길 빈다.
모두 불금 보내시길.
파이팅.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