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잊지 못할 나의 첫사랑
그리고
첫사랑은 에로스 사랑의 연장선에 있으며
사람들이 가장 마음 설레고, 기쁘고, 슬프고, 긴장되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전부 표현해도 모자랍니다.
첫사랑!
남자들은 첫사랑과 첫 짝사랑은 잊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잊기 어렵겠지요.
여자들은 사랑 할 때 모든 것 다 내주고,
떠날 때 모든 걸 다 가지고 떠납니다.
그러나!
남자는 50%만 주다가 떠난 후,
50%의 사랑을 가지고 마음 아파합니다.
남과 여의 사랑의 차이점입니다.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면 남자든 여자든
첫사랑의 감정을 잊지 못하는 것이지,
그 대상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나
남자든 여자든 첫사랑을 맞이할 시기의 우리는 성적인 욕망이나
주체 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을 처리하기에는 미숙한 상태고
경험 부족으로 좌절의 경험을 많이 하는 시기입니다.
사실!
첫사랑은 자신의 감정처리도 미숙하고
할 일을 원하지만 그 것을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를 모르기에
혼란스럽게 시기를 지나는 겁니다.
나는 군대서 졸병생활 할 적에 정말 찌든 내 몸과 마음이
전부였습니다. 그야말로 힘든 나날들 입니다.
그러던 중
파월의 기회가 왔고 오음리에서 교육을 이수 후
기차를 타고 춘천에서 출발 부산 도착 후,
커다란 미 해군 수송선(barett호)에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부산 부두에서 바라본 우리나라 산하는 정말 고왔습니다.
파월한다는 절박함 때문인지는 나중에 느꼈습니다.
군 졸병생활에서의 많은 회한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내 자신의 어지러움에 나도 모르게 두 눈동자에 이슬이 맺히더군요.
마음을 추스르고 그 배 안에서 주어진 일,
커피 따르는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었습니다. (식사 후 커피를 일일이 장병들에게 따라주는 일)
그때 얻은 별명이 소마담 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순권아”
너 맞지 하는데 초등학교 동기 혁진이였다.
순권아! 충현이도 있어,
세상 참 좁네! 어떻게 여기서 혁진이를 만나나!
거기다, 충현이까지, 우린 운명인가?
혁진이가 식사를 막 끝낸 충현이를 불러 왔다.
그런데!
혁진이와 충현이는 맹호사단에 배속되었고
난 운 좋게 십자성 부대에 배속 되었다.
군대생활에서 노닥거릴 시간은 없습니다.
더구나 졸병 때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허나!
부산에서 월남 나트랑까지 꼬박 일주일 승선하게 되었는데
전투에 참전하러 가니 불상타 생각 했는지,
자유 시간을 많이 주었습니다.
그런 참에 옛 친구들을 만났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남녀 간 이야기이고
특히 첫사랑 이야기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눈망울을 굴리며 들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게 들었으면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겠어요.
혁진이 얼굴에는 곱던 상은 사라지고
전지로 간다는 절박함이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내용도 거짓 없이 진솔하게 이야기하는데
저도 같이 공감하며 먼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어요.
남지나해역을 지나면서는 푸른 바다만 보이던 그 곳에
지오 그래픽에서나 보던 돌고래 때가 우리가 타고 있는 배를
힘차게 따라 오는 모습에서 첫사랑 얘기를 들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묘한 감정이 스치네요.
첫사랑이란 돌고래가 자기가 좋아하는 배를 푸른 바다에서
역동적으로 쫒는 그 모습의 실상처럼
혁진이 첫사랑을 나는 백번 이해합니다.
그 당시 남학생 3명 여학생 3명이 담임선생님 댁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이 과외 공부를 하였는데 6명 중 내가 제일 열심 히 공부를 했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로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함도 있었지요. 명석함이 부족하여
열심히만 했지 효과는 미미한 상태라 등수는 제일 꼴지
일찍 온 남학생이건 여학생이건 어울려 술래잡기를 열심히
했는데 여학생 세 명의 이름은
영옥, 미옥, 혜순입니다.
남학생은 혁진이 나 그리고 1명입니다.
문제는 일찍 온 학생들끼리 술래잡기를 하면서
가볍게 손을 잡았는데 여학생들보다 남학생들이 수줍음이 많았음을
지금에서야 생각이 납니다.
나도 그 여학생들을 알고 혁진이는 더더욱 확실히 기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억으로 영옥이는 부자 집 딸, 미옥이는 얼굴은 예쁘나
선천성 소아마비라 몸이 불편했고, 혜순이는 나중에 서울여상을
졸업하고 은행입사를 했습니다.
혁진이가 좋아한 여학생은 영옥이였는데 그 당시
영옥이 어머님이 학교를 자주 찾아오므로 학생들 사이에서
와이로 쟁이라고 놀림을 받았고 그 일로 학교를 옮겼습니다.
혁진이 설명이 아니더라도 영옥이는 그 당시 정말 귀하디귀한 오랜지와 바나나를 가끔이지만,
학교에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나며, 그 것으로 인하여
여러 학생들로부터 질시를 받았습니다.
영옥이의 아버지는 경찰 고위 간부였던 것은 추후에 알게 되었고
더군다나 4 19민주화 운동으로 경찰에 대한 편견이 심할 때였어요.
그래서 학교를 옮기게 되었고 그 당시는 큰 규제는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신당동 소재 흥인 초등학교고
영옥이는 장충초등학교로 전학 후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여자 중학교를 거쳐
여자고등학교를 졸업 했다고 혁진이는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혁진이 얘기를 들으니 첫사랑이라기보다는 짝사랑에 가깝습니다.
서로 의사소통을 했다기보다는 초등학교에서 서로 간부가 되어 주어진 일에 서로 상의 하면서 나름 연정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혁진이는 영옥이를 못 잊겠다는 말을 하며 하늘을 향해 긴 담배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 충현이는 어떤 사귐이 있었냐고” 물으니
충현이는 좀처럼 얘기를 하려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더 듣고 싶은 것이 우리 남정네 마음이 아닙니까.
얘기인즉 여학생들에 관심 없었는데 첫 미팅에서 사고를 쳤다는데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재수생활 없이 자기가 바라던 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보면,
충현이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 틀림없다.
혁진이는 서울사대부속고를 졸업 후 일류대를 자기가 원하는 과에
다니다 군 입대를 했으며, 짝사랑을 잊고자 파월에 지원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
혁진아! 그래 한번 만나보았나?
수소문 끝에 안 내용은 영옥이는 유학을 갔데요.
그리고 한참 침묵이 흐른 후 충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충현이는 경동고를 나와서 일류는 아니나 제법 좋은 대학에 입학을
하고, 마음에 썩 내키질 않아 재수도 생각했으나,
꽃피는 춘삼월에 미팅이란 것을 처음 하던 날
충현이에게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충현이는 입술을 바르르 떨더군요.
눈망울은 촉촉이 젖어 있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