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가지 비유와 새것과 옛것
마 13:44-58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마 13:44-58 / [보물, 진주, 그물 비유]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흥분하여 그 밭을 사기 위해 있는 것을 모두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래서 밭을 살뿐만 아니라 보물까지도 얻는다! 45) 또 하늘나라는 값진 진주를 구하기 위해 찾아 다니는 장사꾼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발견하면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 47)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친 그물에 비길 수 있다. 어부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 모든 종류의 물고기를 다 모은다. 48) 그물이 가득 차면 그는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먹을 수 있는 고기만 추려 그릇에 담고 다른 것은 던져 버린다. 49) 세상 끝 날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을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믿음이 깊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는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악한 자들은 불구덩이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서 통곡하며 몸부림 칠 것이다.' 5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 말을 알아 들었느냐?' 하고 묻자 제자들은 `예, 알아들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2) 예수께서 덧붙여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율법학자들은 자기 곳간에서 옛 것도 꺼내고 새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3) [고향 사람들의 배척;막6:1-6,눅4:16-30]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 54)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 `어디서 저런 지혜와 능력을 얻었을까? 55) 그는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며, 그의 형제들인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56) 그의 누이들도 다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어떻게 저런 큰사람이 되었을까?' 57) 하면서 반감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예언자도 자기 고향과 집안 사람들에게서만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고 말씀하시고 58)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별로 이적을 베푸시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추가적인 여러 비유들을 통해 천국을 설명하십니다.
감추인 보화, 값진 진주 비유(44-46) 예수님께 이 두 비유를 통해 천국 백성이 얼마나 귀한지 보여주십니다. 첫 번째 비유에서 밭을 산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밭은 세상인데 어떠한 인생도 세상을 살만큼 부요하지 않습니다. 보화는 믿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다는 말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믿는 자들은 주님에게 최고의 보화입니다. 두 번째 값진 진주 비유도 같은 의미입니다. 이 비유에서 진주를 산 상인은 예수님이며, 진주는 믿는 자들입니다. 고대에 진주는 귀한 보석이며, 예수님의 눈에는 믿는 자가 진주처럼 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진주를 영원히 자신의 소유로 삼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구매하셨습니다.
그물 비유(47-50) 이 비유에서 그물은 바다에서 밑바닥까지 긁어 올리는 저인망 그물을 의미합니다. 또한 큰 물고기만 잡는 간격이 큰 그물이 아니라 무엇이든 다 건져 올리는 촘촘한 그물입니다. 각종 물고기란 크고 작은 모든 물고기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심판 때까지 자신의 종들을 보내어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의 자리로 끌어 모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선별하십니다. 어부들이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를 선별하듯이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천국 백성과 지옥 백성을 선별하실 것입니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51-52) 비유의 말씀을 깨달았다는 제자들의 말을 인정하시고 예수님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서기관은 가르치는 자를 말합니다. 진리를 깨달은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자는 많이 그리고 바로 알아야 합니다. 새것과 옛것은 새로 배운 것과 전에 알던 것을 말합니다. 무식한 자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천국 복음을 가르치는 자는 성경에 능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배척당하시는 예수(53-58)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한 편견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불신합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천국 복음과 행하신 기적을 보고 놀랐던 마음이 편견으로 인해 싸늘하게 식고 말았습니다. 편견은 믿음의 큰 적입니다.
적용: 신앙생활하면서 주님께서 당신을 귀하게 여기신다고 느껴질 때가 언제인가요?
그 어떤 문제를 곱씹어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것이 바로 걱정입니다. 문제는 걱정을 한다고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때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그 해결책을 꼭 찾아야만 하는가 이렇게 한번 해보면 어떨까’하고 반문을 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해답이 떠오르게 됩니다. ‘걱정해도 소용없는 걱정에서 자기를 해방시켜라. 그것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카네기의 말입니다.
< 설 교 >
감추어진 보화를 찾으라
마 13:44 / 김윤기 목사
1876년 땅과 책(The land and the book)이라는 책을 썼던 톰슨이라는 사람의 기록에 의하면 시돈에 살던 어느 농부가 아카시아 나무 밭을 일구려고 땅을 파다가 깊은 땅속에서 구리로 만든 그릇을 발견했는데 그 속에는 알렉산더 대왕시대에 사용하던 순금으로 만든 금전이 가득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옛날에 중동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이 과학 문명이 발달한 것도 아니어서 보화를 가진 사람이 가장 안전하게 보관할만한 곳이라면 자기 밭 땅속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장래는 예측이 불가능하여 보화를 땅속에 묻어 둔 사람이 전쟁에서 죽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으면 그 감춰둔 보화도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 묻혀 있다가 농부들이 밭을 갈 때에 발견되는 경우들이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비교적 흔한 일이었습니다.
마 13:1-52절을 보면 예수의 7대 천국비유가 나옵니다. ① 1-9, 18-23절은 천국은 씨뿌리는자의 비유가 ② 24-30, 36-43절은 가라지의 비유가 ③ 31-32절은 겨자씨의 비유가 ④ 33절은 가루를 부풀게 하는 누룩의 비유가 ⑤ 44절은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본문)가 ⑥ 45-46절은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군의 비유가 ⑦ 47- 50절은 천국은 바다에 쳐진 그물의 비유입니다. 이 같은 교훈의 비유가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죄를 자복하고 참 진리 안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함에 그 교훈이 있습니다.
그 중 본문의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 13:44)이 비유 속에 보화는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인 천국입니다. 그것의 가치가 절대적이어서 다른 모든 것을 상대화시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알면서도 가끔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이나 명예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신 경우들이 많으신데, 본문에서도 천국을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차지해야만 하는 매우 소중한 곳입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봅시다.
1. 보화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천국은 크게 둘로 구분됩니다. 그 하나는 장차 이세상의 마지막날에 나타날 완전하고 실제적인 미래적 천국인데,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천국을 이런 미래적 천국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천국이 있습니다. 즉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초림) 시작된 현세적 천국입니다. 즉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 천국복음이 선포되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음으로 점점 하나님나라(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가 확장되고 있는 상태 바로 이것이 현세적 천국입니다. 그리하여 현세적 천국은 가시적이 아니라 영적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중심으로 이루고 있는 7가지 천국 비유는 바로 이 현세적 천국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실로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잡히지 않는 이 현세적 천국의 영적 운동력을 꿰뚫어보는 것도 실로 영적 진가에 둔감한 현세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깨닫는 계기를 삼아야 합니다.
실로 세상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자신의 세계관속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얻기 위해 일평생 바쁘게 살아갑니다. 혹자는 물질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엄청난 물질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혹자는 쌓아도 쌓아도 다함이 없는 세상의 지식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삽니다. 그리고 혹자는 잠시후면 아침 안개와 같이 사라질 무익하고 헛된 세상 명예와 영광을 얻기 위해 심혈을 기울입니다. 이는 마치 45- 46절의 상인이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 이리저리 두루 돌아다닌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세상의 물질, 지식, 명예, 학문 등은 결코 값비싼 진주가 아닙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도 같아 불신자들에게는 쉽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맙고 감사한 사실은 우리에게는 이 천국의 고귀하고 소중함이 이미 밝히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천국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함을 알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투자하기를 꺼려서는 안됩니다. 천국은 그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얻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온전히 기쁨으로 투자하는 자만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도 감추인 보화와 같이 불신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천국이 완전히 도래하기까지 천국은 영적인 것이며 사람의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자만이 알 수 있고 또 장차 실제로 천국이 도래할 때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됨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에 대해 성경 말씀을 배워서 알고 믿음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이러한 천국의 비밀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복음으로 그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그 비밀을 일깨워주실 때까지, 천국은 그들에게 비밀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감추어져 있는 이 보화인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을 발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보화를 발견한 자는 기쁨이 넘칩니다.
수세기 동안 땅속에 파묻혀 있던 보화를 어떤 사람이 밭을 갈다가 발견하였습니다. 이 농부는 자기만이 알고 있는 보화를 조용히 도로 파묻어 놓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가 속으로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와 같이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다음에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기쁨을 가지면서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사람들에게 꿈과 소망을 주는 참된 종교입니다. 참 보화가 되신 그리스도를 모신 성도들은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불안해도 항상 기뻐하고 세상을 밝게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요 14 : 6)의 큰 가치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기쁨은 인생의 제일 큰 가치되는 주님이 함께 계심으로 우리가 마음 깊숙히 느끼게 되는 만족이나 흐뭇함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가치인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 생활을 인도하시면,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나서, 얼마나 열심히 주님을 섬겼었는지 기억해 보십시오. 이런 열심과 순수함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되시는 주님을 만난 사람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에게 허락하신 진리를 만난 기쁨을 마음껏 누리길 원하십니다. 구원의 기쁨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현실에서 아무 문제도 겪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주님이 함께 하시는 동행의 삶을 경험하는 기쁨이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무신론 철학자 니체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배경인데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슈바이처 박사도 현대 크리스찬을 이렇게 비유하였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물 없는 강이 많다. 모래 언덕 사이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만큼 초라하고 비참하다. 오늘날 크리스찬들도 물 없는 강처럼 억지로 흘러가는 신앙생활, 메마른 정신, 형식과 전통만 겨우 유지하는 교회를 많이 본다." 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가 보화란 사실을 망각하고 믿으면 이런 기쁨이 없는 신자가 되어 지탄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시간에 인생의 참 진리와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을 분명히 찾고 만나서 기쁨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보화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 농부는 결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보화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보화가 묻혀 있는 그 밭을 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도 감추어진 보화와 같은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를 사용하여 천국을 차지해야 합니다. 이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엄청난 보화를 얻기 위해 지극히 작은 재물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천국은 자신이 일평생 벌어들인 모든 소유를 다 투자하더라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교훈합니다. 사실 보화의 가치를 아는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해서라도 그 보화를 가지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이 이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 소중하고 심지어 육신의 생명 보다 더 귀함을 절감하는 자들은 어떤 대가와 희생을 지불하고서라도 그 천국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예컨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천국의 가치를 깨닫는 사도 바울의 일생을 보면, 그는 이 천국의 영화로움이 세상의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며 고귀한 것임을 깨닫고 그 뛰어난 지식(그는 당시 유대의 최고학파가운데 하나인 힐렐학파의 기둥 가말리엘의 문하생), 세상의 명예(그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가문(그는 사울왕의 가문인 베냐민지파 출신으로 히브리인 중에서도 순수한 히브리인)을 배설물처럼 버려버렸습니다.(빌 3:3-9)
바울은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일에 비하면, 전에 소중하게 생각되던 것들이 배설물같이 여겨진다고 했습니다(빌 3:8). 예수의 가치를 참으로 안다면 예수 믿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의 진가를 안다면 그것을 목마른 사람처럼 전 소유를 다 팔고 나를 제로로 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그것을 소유할 겁니다. 돼지 앞에 진주처럼, 예수의 가치가 보이지 않는 것이 비극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차지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권력입니까? 하늘의 보화인 천국입니까? 그 무엇보다도 보람되고 가치있는 것은 천국을 소유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을 위해 재물을 희생하는 일이 아깝다면 그는 아직도 천국의 참가치를 깨닫지 못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할 일 많은 이 세상에서 주의 일꾼이 되어 헌신함으로, 감추어진 보화와 같은 천국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나의 가장 좋은 것을 드려 소유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마 13:44 / 박덕기 목사
오늘은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를 상고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감추인 보화를 찾아 낸 농부에 대한 비유의 초점은 ‘하나님 나라’ 곧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교훈하시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 땅의 일들에 관해서가 아니라 천국에 두셨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의 요점은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의 기쁨과, 그것을 소유하기까지의 노력과 희생에 대한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말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과 더불어, 값진 희생도 따라야 함을 일깨워 주는 비유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와 같은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1. 비유의 배경
이 비유는 우리들에게 좀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런 것이었고, 오늘날까지도 동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정경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의 은행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오늘날의 은행과 달라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귀중한 보물을 보관하는데 가장 안전한 곳으로 땅에 묻어 두는 것이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 보면 무익한 종은 자기의 달란트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유대 랍비의 가르침에 의하면 ‘돈을 숨기는데 안전한 유일한 장소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를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금과 은과 그외 가장 중요한 보화들은 뜻하지 않는 전쟁에 대비해서 모두 땅속에 감추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톰손’은 1876년에 처음 출판되어 나온 ‘그 땅과 그 책’이란 저서에서 그 자신이 시돈에서 발굴한 보물의 경우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도시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늘어선 유명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 거리에 있는 한 정원을 파헤치고 있던 노동자들이 몇 개의 동으로 된 항아리에 금돈이 가득 들어있는 것을 파냈다고 합니다. 그 금화는 모두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아버지 필립의 화폐였습니다. ‘톰손’은 그 금화에 대해서 말하기를, 알렉산더가 예기지 않게 바벨론에서 죽자 그 소식이 시돈에까지 알려져서 마케도니아 군인이나 혹은 정부 관리가 장차 일어날 혼란을 대비해 그 돈을 땅에 묻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따라서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오늘날도 밭에 감추어 놓은 보물을 찾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밭을 일구다가 그와 같은 보화를 발견한 소작 농부의 비유를 통하여 천국의 진리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나라는 로마와 그 법률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은 전통적인 유대의 율법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감추인 보물에 대해서 유대 랍비의 율법에는 ‘발견한 물건은 발견한 자에게 속한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시의 그러한 관습을 두시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2. 비유의 중심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여 결국 그것을 소유하게 되는 사람의 기쁨은 말로서는 형언키 어려운 감격적인 일일 것입니다. 천국! 그것은 바로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감추인 보화를 모르고 헛된 보화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까?
1)인생의 참된 보화
무엇인가 가진 자가 되어 최고의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물질적인 보화에 크나큰 애착을 갖습니다. 그래서 무덤에까지 가지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물질은 그의 허무한 인생의 운명을 바꿀 만큼 능력이 있거나 행복을 주는 소유물은 되지 못합니다. 인간은 결코 세상에서 얻는 보화로는 삶의 의미와 보람을 얻지 못합니다. 돈으로 인간의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이 돈을 가진 자의 고백입니다. 이 땅의 모든 보화를 다 가지고 있었던 솔로몬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고 탄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물질로 영혼의 안식과 평안을 얻으려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 하였습니다. 이 세상 보화로 죄지은 양심을 달랠 수 없고 영혼의 깊은 공허를 채우지 못합니다.
2)참된 보화는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가치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사들인 보화가 숨겨진 밭에 비유하셨습니다. 천국은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얻어야 할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외치신 최초의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말씀이었고, 팔복의 첫 번째에서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떠한 곳입니까? 계 21:3에 이하에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천국을 소유한 자 만이 참된 보화를 간직한 인생인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구름과 같은 증인들이 우리의 앞에 있음을 보며 그들이 목숨까지 바꾸어 버릴 정도로 귀하게 여긴 천국의 가치를 진지하게 감정하는 감정사가 되어 보아야 합니다. 바로 그 때만이 “기뻐하며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라는 표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천국을 감정하여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남아프리카 말라위 공화국의 블랑튀르(Blantyre)에 가면 리빙스톤 기념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 기념관에는 색 유리창이 있는데 거기엔 리빙스턴이 남긴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리빙스톤의 편지에서 따온 것으로 그의 사역 초기에 쓴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계된 것이 아닌 한, 무엇을 소유하든 거기에 가치를 두지 않으며 소유하겠다는 기대도 않으리라.’
3)참된 보화는 영생입니다.
천국을 소유한 자는 곧 영생을 얻은 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천국과 영생은 하나입니다. 영생은 한 번 얻게 되면 아무도 앗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기쁨 또한 이 세상에서 주는 평안과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인생이 소유해야 할 참된 보화인 것입니다.
김준곤 목사 칼럼-<동서고금을 통해 불노장수는 인간 소원의 첫째 꿈입니다. 뱀도 먹고 산삼 녹용이 무값으로 팔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진시황은 국력을 기울여 불로초를 구했습니다. 만일 100살까지 사는 비약이 개발됐다면 세상이 뒤집히는 소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는 문자 그대로 영생 부활의 비약입니다. 8. 15 해방 되던 날 우리 겨레는 태극기 물결 속에 목메어 만세를 불렀습니다. 묘소에 가서도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TV, 라디오, 신문의 정규 프로를 모두 중단하고 임시 긴급 뉴스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4)궁극적인 보화는 예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인생의 궁극적이고 참된 보화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에게 천국을 얻게 하셨고, 영생을 얻게 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며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충만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이 볼 때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까? 예수라면 코웃음 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 그리스도 안에 큰 보물이 있음을 알고 내 전 생애를 걸고 전부를 걸고 그 보물을 사고 기뻐하는 삶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예수님이 가장 귀한 보물이기에 사자 굴로 들어가면서도 찬양했고 교수대 위에 올라가면서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귀한 보화이기에 그 주님을 위해 고문당하면서도 놓임 받기를 원치 않았고, 조롱당하고, 채찍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돌에 맞기도 했고, 창과 칼에 찔리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양과 염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산과 들을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굶주림과 고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광야와 산과 땅굴 속에 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가장 귀중한 보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 보화를 발견한 자
1)농부의 삶
이 비유의 주인공은 지주가 아니라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 농부가 분명합니다. 그는 후에 이 땅을 샀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하여 타인의 밭을 빌려 농사를 지으려 했을 것입니다. 부도 명예도 영화도 소작 농부에게는 영원한 환상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우리들 자신의 삶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진정한 행복도 소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허무주의자들이었으며, 사탄과 죄악의 권세 아래 종노릇 하며,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도록 헛 그물질만 하던 절망과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었던 우리들이 아니었던가요?
2)의외의 발견
그런데 이 소작 농부가 밭을 갈던 중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그가 꿈에서나 생각해봄직한 일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소작 농부에서 일약 큰 부자로 바뀌는 한 인생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알고 믿는 사람의 삶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철학자인 ‘키엘케고르’는 기독교의 복음을 비유로 설명하기를, 마치 고아가 상상도 못했던 부자 아버지를 만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 인간의 노력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된다는 기독교의 구원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은사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엡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3)농부의 지혜와 노력
농부가 밭에서 뜻밖의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은 농부의 다음과 같은 반응으로 비유되었습니다.
첫째로 숨겨두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숨겨둔 행위는 당시로서 부도덕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임자 없는 보물은 먼저 발견한 자가 주인이라는 법이 있었기에, 그는 땅 주인에게 알릴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은 오직 개인적인 결단 행위입니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기만의 대 결단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야 합니다.
둘째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그가 소작 농부라면 그는 가난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상 그의 소유를 다 팔았다고 해도 별것 아닌 셈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몇 푼 되지 아니하는 소액으로 엄청난 보화를 사게 된 셈입니다. 그 사람은 가장 적은 것으로 가장 큰 것을 얻은 최대의 거래를 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무엇을 버렸거나 혹은 잃었거나 간에, 그는 가장 많은 이익을 거둔 상거래를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혹은 이 사람의 소유라는 것이 실상은 죄뿐인 인간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남은 소유란, 죄와 그 죄로 인하여 생긴 결과뿐입니다. 그가 소유한 것을 다 팔아 보화를 샀다는 것은, 죄를 회개하고 천국을 소유한 성도의 구원의 의미를 보여준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필히 두 가지 것을 해야 합니다. 우선 소극적으로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이는 나의 모든 죄악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또 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면서도, 가끔 현세의 물질이나 명예 때문에 순간적으로 그 나라를 포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양심과 현재의 이익이 서로 갈등을 일으킬 때에, 우리는 항상 신앙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은 당장 손해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손해를 반드시 복구시켜 주십니다.
C. C. C 창설자 빌 브라잍 박사는 너무너무 사랑했던 약혼녀였지만, 신앙이 맞지 않아 3년을 기다리다 약혼녀를 버리기로 기도한 날, 그 약혼녀가 그리스도께 재 헌신을 결심하여 결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비유 중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를 상고해 보았습니다.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밭을 샀던 것이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보화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그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보화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물보다 몇 천배나 몇 만 배나 비할 수도 없이 값진 것임을 아는 사람은 비난을 들으면서도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 밭을 사는 일을 감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의 도덕적 타락에 대하여 윈스턴 처칠 경은 ‘대영제국의 도덕이 이렇게까지 문란한 상태가 된 이유는 이 나라에서 천국과 지옥이 더 이상 선포되지 않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일 가야할 천국도 없고, 피해야 할 지옥도 없다면 왜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으며, 왜 먹고 마시고 즐기지 않겠는가?’
소원과 소망을 어디에 두고 사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소원과 소망을 하나님 나라에 두고 살면 세상을 팔아 천국을 삽니다. 그러나 소원과 소망을 세상에 두고 살면 천국을 팔아 세상을 삽니다. 세상에 소원과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언제나 천국을 팔아 세상을 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George W. Truett 목사가 한 번은 텍사스의 백만장자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습니다. 저녁 식사 후 주인은 한 장소로 그를 인도했습니다. 그 장소는 주위를 둘러보기에 매우 좋은 전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펌프질을 하고 있는 유정을 가리키면서 매우 자랑스럽게 ‘나는 24년 전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볼 수 있는 거리 안에 모든 것이 다 나의 것입니다.’ 그는 반대 방향의 널따란 평야를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저것이 모두 제 것입니다.’ 그는 동쪽의 엄청나게 많은 소 떼를 가리키며 ‘저것들이 다 내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서쪽의 아름다운 숲을 가리키면서 ‘저것도 모두 제 것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Truett 목사가 자신의 엄청난 성공을 칭찬해 줄 것을 잔뜩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Truett 목사는 한 손을 그 사람의 어깨에 얹고 다른 한 손을 하늘을 향한 방향으로 가리키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쪽 방향으로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 사람은 그의 머리를 떨구며 고백했습니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세상적인 부와 성공만으로 삶의 소원과 소망을 삼은 사람들은 그것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결국 저들은 천국을 팔아 세상을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그와 같이 천국을 팔아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은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때문에 세상을 팔아 천국을 사야지, 천국을 팔아 세상을 살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 건축 헌금하라 한다고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는 불쌍한 인생들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화로신 주 예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세상부귀 모든 영화 분토에도 못비기리♬라고 찬송을 하고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라고 찬송은 잘하는데...................글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팔아 천국을 사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모든 것을 하늘나라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도록 귀한 것이 천국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팔아 세상을 사는 불쌍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소원과 소망을 천국에 두고 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감추인 보화
마 13:44 / 손상률목사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태복음 13장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을 나타내는 천국 비유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 과 같으니”하고 예를 들어 비유로 말씀하시는 내용들은 모두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 운동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산상 보훈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추구하여야 될 최상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마 6:33).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감동하시는 밝은 지혜를 가지는 자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상으로 하는 최고의 가치를 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람의 학문적 지식이나 이성적 판단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감추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 일은 과학이나 상식의 눈에는 숨겨져 있어서 사람의 의지대로 만나질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3:11-12).
여기 감추인 보화를 찾은 사람은 크게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면서도 몰랐던 것을 그 사람은 발견할 수 있었으니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이것을 은혜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에베소서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강론하신 천국비유는 거기 해당되는 사람들이 거저 받은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그 가치를 알고 또한 그것이 은혜로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은 감추인 보화를 찾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처럼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주인공들입니다.
Ⅰ. 발견한 것이 은혜입니다.
여기 감추인 보화의 비유는 45-46절에 나오는 진주장사의 비유와 다릅니다. 좋은 것을 취득했다는 점에는 공통점이 있으나 그 경위와 방법은 차이가 있습니다. 진주장사의 경우 자기가 열심히 찾아다니다가 얻게 되었지만 감추인 보화의 경우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고대 중동 지방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전쟁이나 불안한 사회 환경 때문에 사람들은 떠돌이 유목 생활을 하면서 재산을 금이나 보화로 바꾼 다음 이것을 땅 속에 숨겨두고 약도만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욥 3:21). 훗날 그런 곳에서 경작을 하던지 또는 건축을 하기 위해 땅을 파다가 생각 밖에 횡재를 하는 경우를 예상 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보화」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황금덩어리와 같은 재물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천국」이라고 했으니 이는 하나님의 나라 또는 교회를 뜻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실제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며 다르게는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된 것이나,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4:7).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나, 천국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갖게 된 것이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은혜입니다. 요한1서 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2)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어떤 준비도 없이 감추어진 보배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우연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잠언 20:24에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고 하였습니다. 잠언 16:9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그의 자녀 되는 성도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자 준비하고 계십니다(마 7:11).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시간에 가장 적절한 것으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옛날 나오미와 룻이 모압에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베들레헴에 유력한 자 보아스를 준비해 두셨고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의 밭에 이르도록 인도하였습니다. 룻기 2:3에 보면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세상으로부터 엄청난 유혹의 손길이 뻗어오고 우리의 걸음을 방해하는 세력이 거세게 도전하지만,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도록 성령의 손길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시 73:28).
(3) 불가항력(不可抗力)적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은혜는 시간이나 장소나 방법이나 어느 것 하나도 인간의 의지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서 이루어집니다. 특히 천국 운동과 관련된 복음의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2에“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20에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하신 말씀은 은혜의 장소가 하나님의 의중에 있음을 뜻합니다. 그것이 감옥 안이건(행 12:5-9), 풍랑 이는 바다 위에 건(행 27:23), 어느 곳에나 하나님께서 찾아주시고 하나님이 작용하실 때는 시간도 장소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거부할 세력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Ⅱ. 가치를 알았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라고 하였습니다. 땅 속에 감추어 있는 보화를 만났다는 것도 은혜이지만 그것이 매우 값진 것이라는 점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는 것이 또한 은혜입니다.
(1) 깨닫게 하는 은혜입니다.
범죄한 인간의 불행은 올바른 가치판단의 기준이 흐려져 버린 것입니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판단을 바로 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하셨는데(마 7:6), 이는 귀한 것의 가치를 분별 못하는 우매함을 지적한 말씀입니다.
일찍이 솔로몬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하였습니다(왕상 3:9). 사람들은 복음의 귀한 것을 잘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는 로마의 황제를 향하여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갈파하였습니다(롬 1:16). 미국의 목사 부인이었던 밀러(R. F. Miller) 여사는 찬송가 102장을 작시하면서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부귀나 명예나 어떤 행복으로도 바꿀 수 없고 여기에 비교할 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2) 자기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혼자 발견하고 자기 혼자 알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얼떨결에 누가 알까봐 이를 다른 장소로 옮겨 흙 속에 묻어두고는 그것을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였을 것입니다. 그 동안은 아무도 모르게 자기 혼자 는 비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천국의 비밀은 누구나 알 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만 남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자기 혼자 알고 이것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은 특권입니다. 고린도전서 4:1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1:27에는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고후 4:7), 큰 영광과 소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3) 그것으로 즐기는 사람입니다.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라고 하였습니다. 땅 속에 감추어져 있는 보화를 놓고 그 사람은 큰 기쁨에 들떠 있습니다. 굳이 남이 몰라도 자기 혼자 아는 즐거움이 더 컸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를 발견하고 그 분을 자기 속에 모신 사람은 그 즐거움 속에 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삶을 최상의 행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8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속에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를 최상의 보화로 여기는 사람은 남이 알 수 없는 즐거움과 행복에 도취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자입니다(시 1:2).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어린 아이처럼 기뻐서 못 견디는 삭개오의 즐거움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행복입니다(눅 19:8-10).
Ⅲ. 결단하는 행동이 은혜입니다.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슬이 서말 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은 대로 즉시 행동에 옮기는 사람입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것은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행동에 옮긴 신속한 결단임을 보여줍니다.
(1) 믿음과 행함 관계
예수님의 천국 운동은 말에나 지식에 있지 아니합니다. 오직 믿고 실천하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됩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고 이것저것 계산만 하면서 시간을 지체해 버린다면 그것은 자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보화도 은혜로 발견하고 깨달았을 경우 즉각적인 실천과 행동으로 자기의 것을 만들어야 됩니다. 믿음을 가졌다는 사람들 중에 말로만 체면치레를 하고 자기 할 일을 게을리 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신약의 야고보는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알에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약 1:23-25).
(2) 대가를 지불 하였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보화의 가치를 알고 나면 그것을 위하여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깝지 않게 여기는 것입니다. 보화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또는 그 가치를 귀하게 느끼지 못했을 때는 자기의 가진 것에만 집착하게 되고 그것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막상 자기가 발견한 그 보화의 가치가 비길 데 없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에는 생각이 바뀌게 되고 맙니다. 그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태도를 가집니다. 곧 한 가지를 얻기 위해서 열 가지를 포기하는 자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였기 때문에 이전에 저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포기했다고 하였습니다(빌 3:8). 그는 주 예수를 위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자기의 생명까지 기꺼이 지불하겠다고 하였습니다(행 20:23). 예수가 귀한 줄 알면서 자기의 희생을 마다하는 사람은 천국의 보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눈으로 보기만 할 뿐 자기의 것으로 실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 완전한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매사에 맺고 끊는 일이 분명하여야 됩니다. 이것은 성도의 책임 있는 언행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을 강론하시면서 「예」와 「아니오」를 확실하게 구분 짓도록 분부하셨습니다(마 5:37). 특히 대인 관계에 있어서 주고받는 거래는 명확하게 이루어져야 됩니다.
옛날 야곱은 에서와 쌍둥이 형제였지만 형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사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였습니다. 그는 장자의 명분이 아비로부터 물려받는 세습적인 축복의 조건임을 알았기 때문에 기어이 그것을 취하려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한편 에서는 나면서부터 받게 된 장자의 가치를 경홀히 여긴 나머지 팥죽 한 그릇에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훗날 그 가치를 알고 나서 땅을 치며 후회했으나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히 12:16-17). 창세기 25:31-34에 보면 팥죽 한 그릇을 얻어먹으면서 장자의 명분을 내어 주는 에서의 말이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하고 쉽게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용의주도한 야곱은 형을 향하여 “내게 맹세하라”고 다그쳤고 에서는 그대로 맹세를 하여 돌이킬 수 없도록 못을 박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기업의 축복을 약속하실 때는 어떤 경우에도 변개할 수 없도록 견고하게 다져 놓습니다. 에베소서 1:13-14에는 성령이 보증으로 인을 쳤다고 하였습니다.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 발견된 것으로 최상의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빌 3:8). 오늘 죽어도 천국에서 눈을 뜨게 되는 확신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소유하였기 때문입니다.
보물을 차지하는 사람
마 13:44-46 / 문기태 목사
북미대륙의 서북쪽에 붙어 있는 넓은 알라스카 주는 원래 소련의 땅이었습니다. 소련은 이 알라스카를 별로 가치가 없는 땅으로 인정하여 지금부터 135년 전인 1867년에 미국에다 720만 달라를 받고 팔아 넘겼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720만 달라를 주고 알라스카를 산지 13년 만에 알라스카에서는 무려 3억달라 상당의 금이 발견되었습니다. 소련이 알라스카의 가치를 모르고 720만불에 팔아 넘기는 순간에도 그 땅 밑에는 곧 발견될 3억불 황금이 묻혀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금 못지 않게 귀중한 석유가 그 땅 밑에 아주 많이 저장되어 있
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 외에도 알라스카는 여러면에서 아주 귀한 가치가 있는 보배같은 땅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어떤 일을 저지를 것입니까? 참으로 미련한 짓을 했습니다. 땅 속에 묻혀 있는 엄청난 보화를 보지 못하고 눈에 덮혀 경작할 수 없는 겉 모습만 보고 푼돈에 미국에 팔아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보물이 무엇인지를!
예수님 안에 엄청난 보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영생, 천국의 기쁨, 하나님의 자녀됨, 평안과 만족, 그외에도 수 없이 귀한 보화가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보물입니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이 매우 귀한 가치가 있는 보화임을 알아야 합니다.
천금을 주고도 못살 예수님, 그 보화가 여러분의 것입니다. 우리는 횡재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천국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우리는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안의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보화를 잊어버리고 가짜 보물을 찾아 방황하고 있습니다. 거짓된 보화를 찾아 인생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누런 것이 다 황금이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겉으로 좋아 보이는 것이 다 보물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보물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하루는 밭을 갈고 잇었습니다. 삽끝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 조심스럽게 땅을 파 보았더니 큰 항아리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흙을 제치고 뚜껑을 여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 속에는 엄청난 보물이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옛날에 누군가 도둑이 두려워 몰래 깊이 파 묻어 두었다가 유언도 못하고 갑자기 죽어 주인 없는 보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꺼내었다가는 땅 임자가 자기 것이라고 소송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뚜껑을 덮고 흙을 덮어 놓고는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집에 돌아왔으나 도무지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잠도 오지 않습니다.
밤새 궁리를 하다가 뜬 눈으로 밤을 새고는 아침에 밭 주인을 찾아 갔습니다. "참봉 어른 계십니까?" "아니 자네가 아침 일찍 웬 일인가?" "어르신, 마을 뒤 언덕배기에 있는 자갈 밭 있잖습니까? 제가 오랫동안 경작하다보니 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저에게 파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 그 밭은 내가 조상님께 물려 받아 몹시 아끼는 땅인데.. 값이 좀 비싼데 그래도 사겠나? "하며 값을 부르는데 시세의 두 배가 넘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계약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집을 팔려고 내 놓습니다. 장에 나가 송아지도 팔고 알 잘 낳는 씨 암탉도 모조리 내다 팝니다. 가재도구도 내다 팝니다. 돈 될만한 것은 남김없이 팔아서 돈을 만듭니다. 부인이 "아니 당신 정신이 있어요? 집을 팔고 살림살이를 죄다 팔으면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요?" 바가지를 긁어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돈을 모조리 챙기더니 잔금을 다 치루고는 땅문서를 받아가지고 얼굴에 웃음을 함뿍 머금고 돌아옵니다.
울고 불고 하는 자식들과 원망을 쏟아 붓는 마누라를 이끌고 언덕배기 자갈 밭에 오르더니 밭 한 가운데를 파기 시작합니다. 부인은 "아니 이 영감탱이가 정신이 나가서 집 팔고 살림 죄다 팔아 알거지로 만들더니 이제는 땅을 파고 우리를 모조리 생매장시키려고 하네."하고 주저앉아 통곡을 합니다.
그런데 얼마를 그렇게 파자 큰 항아리가 나옵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온 가족의 눈에는 저녁 노을에 빛나는 온갖 종류의 보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그들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전에 살던 초가집보다 비교가 안되는 큰 기와집을 살 수 있습니다. 더이상 소작인으로 남의 땅을 붙여 먹느라 죽도록 고생하지 않아도 됩니다. 팔아버린 가재도구보다 훨씬 좋은 것들을 새로 살 수 있습니다. 그 지역에 가장 큰 부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보화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를 받아 들이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보화를 발견했다는 것은 예수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밭을 샀다는 것은 예수를 잘 믿기 위해 이 땅에서의 어떤 댓가도 지불하고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천국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땅의 것중에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을 팔아야 합니다. 늘 즐기던 것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관도 포기하고 세상에서 소중하게 여기던 줄도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예수를 위해 고생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하고 비싼 댓가도 불평하지 않고 기꺼이 지불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보물을 발견하여야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44, 46)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발견하면)...
이런 보물을 발견하게 된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큰 행운입니다. 진주 장사에게도 극히 값진 진주를 만난 것이 행운입니다. 많은 땅이 있고 수 많은 밭이 있지만 어쩌면 그가 경작하는 땅에 그 보물이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는 그가 부지런해서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그 밭을 잘 알고 선택해서도 아닙니다. 참으로 행운이 그에게 임하였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만나고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은 지극히 큰 행운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수 많은 교회에서 복음이 선포되지만 그 보배로운 진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또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보화중에 보화인 복음의 진리를 듣고 예수님이 보배중에 보배요 보물중에 보물임을 깨달으셨으니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다. 큰 행운을 잡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음을 들음이 은혜중에 은혜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예수님이 보배라는 사실이 깨달아지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의 그 어떤 보배보다도 더 소중한 분임을 깨달았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안에 무궁무진한 보배가 감추어져 있음을 발견하고 의심없이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혹시 여러분중에 아직도 여러분과 함께 계신 예수님이 보배중에 보배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분은 무엇보다도 오늘 하나님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간절히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이 보배라는 사실이 믿어지게 해 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주위에 그렇게 믿는 사람에게 쉽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보물 중에 보물을 예수님안에서 발견하고 행복해지시기 바랍니다.
2. 보물을 발견했으면 그 밭을 사야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44,46)
만약 그가 보물을 발견하고 그 밭을 사기 위해 값을 지불하기가 아까와 망설이고만 있으면 보물을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진주장사가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도 흥정만 하고 진주를 사지 않으면 진주를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 보물이 그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어설프게 소유로 삼으면 강제로 주인에게 다시 빼앗길 것입니다. 나중에 두고 두고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늦었고 보물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고 말 것입니다.
천국의 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은 보물을 발견했으면 값을 지불하기를 주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 조금 아끼려다가 보물을 송두리채 잃어 버릴 수 있습니다.
부동산에 대해 좀 아는 분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부동산 투자를 해서 돈을 많이 벌려면 좋은 물건이 나오면 값을 지나치게 흥정하다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로들은 좋은 물건을 만났을 때는 값을 깍지 않고 원하는대로 다 주고라도 재빨리 계약을 하고야 만답니다. 왜냐하면 깍아봐야 몇 푼 못 깍는데 얼마 안 있으면 두 배, 세 배, 그 이상으로 값이 오를 것이 확실한데 돈 몇 푼 아끼려다가 놓치면 훨씬 큰 손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답니다.
본문에 농부도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진주장사도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 하나를 샀습니다. 다른 것을 다 잃어버려도 보화가 묻힌 그 밭만큼은 놓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나가는 진주를 만났는데 결코 망설일 수 없습니다. 보배를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댓가를 지불하기 위해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정말 많은 이들이 예수를 얻기 위하여 기꺼이 자기 소유를 팔아가면서까지 값을 지불하고 있을까요? 예수를 얻기 위하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시간을 충분히 팔고 있습니까? 예수를 얻기 위하여 여러분의 재물도 기꺼이 지불하고 있습니까? 예수를 얻기 위하여 여러분이 세상에서 취할 수 있는 편안함과 쾌락도 포기하고 있습니까? 고생도 감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보배를 보여 주셨지만 값을 지불하기가 아까와서 주저하고 망설이고만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보배를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보배에 정당한 값을 지불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투자는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밭에 묻혀 있는 보배는 돈으로 환산할 때 너무나 값이 비싸 가난한 농부의 형편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밭을 사는 정도의 최소한의 댓가는 지불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투자하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보배를 얻기 위하여 지금껏 붙들고 살던 욕심은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보화를 얻기 위하여 세상 자랑 정도는 내려 놓아야 합니다. 은혜에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성경을 읽고 배우는 정도의 투자는 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소한의 헌신은 보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보화를 위해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는 투자를 하여 약속의 땅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되고자 배와 그물과 잡은 많은 고기를 버려두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여러분은 보화가 가득한 밭을 사기 위해 무엇을 팔았습니까? 그리고 무엇을 더 팔겠습니까?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같은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사랑의 빛 잃어가면 주님 만날 수 없어
헛된 영화 바라보면 사랑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도 귀하다.
손오공과 사오정이 입사시험을 치게 되었습니다. 사오정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손오공이 면접을 치루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사오정이 붙잡고 묻습니다. "오공아 면접관이 무엇을 물어보드나?" 응 제일 먼저 '자네 축구선수중에 누글 제일 좋아하나?'하고 묻기에 '옛날에는 차범근이었는데 지금은 안정환입니다.'라고 대답했네. '다음에 문화혁명이 언제 있었나?' 하기에 '18세기입니다.' 라고 했지. 세번째로 'UFO 비행접시가 있다고 생각하나?' 하기에 '과학적으로는 증명이 안됐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하고 대답했네. 그래서 사오정은 달달 외었습니다.
면접관이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하고 묻자 사오정은 "옛날에는 차범근이었는데 지금은 안정환입니다." 면접관이 기분이 나빠서 다시 묻습니다. "자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나?" "예, 18세기입니다." "아니 이 사람 바보아닌가?" "과학적으로는 증명이 안되었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신앙도 흉내만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 하는데로 눈치껏 흉내내고 따라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안에 있는 보물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보물이 묻혀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값을 지불하여 얼른 사야합니다. 예배에 성공하기 위해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기도에 응답받기 위해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전도의 열매를 맺기 위해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예수의 좋은 제자가 되기 위하여 여러분의 소유중에 무엇을 팔아 값을 지불하신 것이 있습니까?
주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보물입니다. 우리는 이 보배를 얻는 행복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세상의 가짜 보배에 속아서 가짜 보배를 얻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맙시다. 영원한 가치가 빛나는 진짜 보화를 발견하는 기쁨을 위하여 살고 시시한 것을 팔아 진정한 가치 있는 보화를 사는 행복을 맛보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창고는 보화로 가득하다
마 13:44 / 서정호 목사
우물 안 개구리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그마한 우물에서 태어난 작은 개구리가 대대로 우물 안에 살면서 마음껏 헤엄치고 놀았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습니다.“이보다 더 좋은 삶은 없을 거야. 내게 부족한 것은 하나도 없어.”그러던 어느 날 개구리가 고개를 들어보니 우물 위에서 한줄기 눈부신 빛이 들어왔습니다. 개구리는 문득 우물밖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저 위는 뭐가 있을까? 개구리는 벽을 타고 조심조심 기어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꼭대기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이럴 수가!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큰 연못이었습니다. 연못은 자신이 사는 우물 보다 수 백 배 더 컸습니다. 연못으로 달려가 멋지게 다이빙을 하여 가로 질러 헤엄을 쳐 보았습니다. 연못이 얼마나 크던지 여러 번을 쉬어서 간신이 건넜습니다. 연못 둑으로 기어 올라가 보고 개구리는 더 놀랐습니다. 아니 이건 뭐야! 연못 너머에는 엄청나게 큰 호수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살던 우물 보다 수 만 배 더 컸습니다. 개구리는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어린 개구리는 큰 호수로 멋지게 다이빙을 했습니다. 끝이 안보였습니다. 개구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그동안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얼마나 좁은 곳에서 살며 좁은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자신이 한심하기 까지 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개구리뿐이 아닙니다. 애굽의 노예로 살던 때가 좋았다고 하며 모세를 원망하는 이스라엘이 우물 안 개구리 입니다. 우리는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그리고 멀리 넓게 높이 보아야 합니다.
만나만 준다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 때는 공짜로 생선, 오이, 멜론, 부추, 양파, 마늘들을 먹었는데 광야에서는 만나만 먹어서 정력이 쇠약해 졌다고 하나님께 불평을 하고 이제는 고기 좀 먹게 해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만나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기적의 양식입니다. 시74:24 만나를 ‘하늘 양식’이라 했고 시105:40 에는 ‘하늘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밤에 이슬이 내릴 때에 만나도 내렸는데 만나는 생명의 양식이요 성도가 받을 영원한 축복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만 먹어서 힘이 없고 기운이 없다고 각기 자기의 장막 문에서 울며 원망하는 말을 모세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괘씸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셨고 모세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이스라엘은 걸핏하면 원망을 하였습니다. 원망 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자기의 신앙과 인격에 손상을 주고 듣는 이를 불쾌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시시한 일로 경망되게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대만큼 복을 주신다.
좋은 일을 기대하면 좋은 일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되리라[마 9:29]고 하셨습니다. 이는 네가 기대한 만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대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히 11:1] 믿음이란 높은 기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습관을 가지고 믿음과 큰 기대를 가지고 사업을 하시기 바랍니다.
종신형을 받은 죄수 같이 자신을 감옥에 가두고 절망하지 마시고 희망을 가지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하면 좋은 일이 일어랄 것입니다. 작은 믿음으로 적은 기대를 가진 사람은 작은 복밖에 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나의 작은 머리로 하나님의 능력을 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팔은 짧지 않습니다. 나의 짧은 가방 끈으로 하나님의 길고 튼튼한 가방 끈을 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 창고에 가득 선물을 쌓아놓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물 안의 작은 개구리가 되지 마시고 작은 머리로 하나님의 능력을 잰 모세 같이 하지 마시고 나의 낮은 수준과 비좁은 생각의 틀을 깨시고 조금 더 큰 꿈을 꾸시고 한 발짝만 앞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개구리 같이 우물 밖을 보고 연못을 보고 호수를 보고 강을 보고 바다를 믿음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복을 거절하지 말고 불신과 의심을 버리기 바랍니다. 우리가 더 큰 복을 받아 더 잘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영향력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현재에 만족하거나 현실에 머물지 마시고 나는 아버지 할아버지 보다 더 크게 잘 된다고 믿고 당당하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교만 아니라 믿음입니다.
필리스의 믿음과 꿈
그녀는 16세에 임신을 하여 고등학교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꿈은 산산 조각이 났습니다. 그녀는 사회복지 시설에 들어가 아이를 낳고 가난과 절망감에 쌓여 나날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류인생을 거부했습니다. 그녀는 복지 시설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온전히 누리고 살 거야.”그녀는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고 “나는 할 수 있다” 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녀는 어느 학교 식당에서 식권 받는 일을 하였습니다. 최소 임금이었지만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꿈을 꾸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야간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하여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더 큰 꿈을 꾸었습니다. 4년간 공부하여 영예로운 대학 졸업장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필리스의 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친 김에 그녀는 공부를 계속해 마침내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혜택을 받아야 하는 딱한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교사가 되고 교장 선생님이 되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꿈을 주었습니다.
감추어진 보화를 찾으라
1876년 땅과 책(The land and the book)이라는 책을 썼던 톰슨이라는 사람의 기록에 의하면 시돈에 살던 어느 농부가 아카시아 나무 밭을 일구려고 땅을 파다가 깊은 땅속에서 구리로 만든 그릇을 발견했는데 그 속에는 알렉산더 대왕시대에 사용하던 순금으로 만든 금전이 가득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옛날에 중동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이 과학 문명이 발달한 것도 아니어서 보화를 가진 사람이 가장 안전하게 보관할만한 곳이라면 자기 밭 땅속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장래는 예측이 불가능하여 보화를 땅속에 묻어 둔 사람이 전쟁에서 죽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으면 그 감춰둔 보화도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 묻혀 있다가 농부들이 밭을 갈 때에 발견되는 경우들이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비교적 흔한 일이었습니다.
마 13:1-52절을 보면 예수의 7대 천국비유가 나옵니다. ① 1-9,18-23절은 천국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② 24-30,36-43절은 가라지의 비유가 ③ 31-32절은 겨자씨의 비유가 ④ 33절은 가루를 부풀게 하는 누룩의 비유가 ⑤ 44절은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본문)가 ⑥ 45-46절은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군의 비유가 ⑦ 47- 50절은 천국은 바다에 쳐진 그물의 비유입니다. 이 같은 교훈의 비유가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죄를 자복하고 참 진리 안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함에 그 교훈이 있습니다.
그 중 본문의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 13:44) 이 비유 속에 보화는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인 천국입니다. 그것의 가치가 절대적이어서 다른 모든 것을 상대화시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알면서도 가끔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이나 명예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신 경우들이 많으신데, 본문에서도 천국을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차지해야만 하는 매우 소중한 곳입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봅니다.
보화는 감추어져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천국은 크게 둘로 구분됩니다. 그 하나는 장차 이세상의 마지막 날에 나타날 완전하고 실제적인 미래적 천국인데,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천국을 이런 미래적 천국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천국이 있습니다. 즉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초림) 시작된 현세적 천국입니다. 즉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 천국복음이 선포되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음으로 점점 하나님나라(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가 확장되고 있는 상태 바로 이것이 현세적 천국입니다. 그리하여 현세적 천국은 가시적이 아니라 영적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중심으로 이루고 있는 7가지 천국 비유는 바로 이 현세적 천국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실로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잡히지 않는 이 현세적 천국의 영적 운동력을 꿰뚫어보는 것도 실로 영적 진가에 둔감한 현세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깨닫는 계기를 삼아야 합니다.
실로 세상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자신의 세계관속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얻기 위해 일평생 바쁘게 살아갑니다. 혹자는 물질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엄청난 물질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혹자는 쌓아도 쌓아도 다함이 없는 세상의 지식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삽니다. 그리고 혹자는 잠시 후면 아침 안개와 같이 사라질 무익하고 헛된 세상 명예와 영광을 얻기 위해 심혈을 기울입니다. 이는 마치 45- 46절의 상인이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 이리저리 두루 돌아다닌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세상의 물질, 지식, 명예, 학문 등은 결코 값비싼 진주가 아닙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도 같아 불신자들에게는 쉽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맙고 감사한 사실은 우리에게는 이 천국의 고귀하고 소중함이 이미 밝히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천국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함을 알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투자하기를 꺼려서는 안 됩니다. 천국은 그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얻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온전히 기쁨으로 투자하는 자만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도 감추인 보화와 같이 불신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천국이 완전히 도래하기까지 천국은 영적인 것이며 사람의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자만이 알 수 있고 또 장차 실제로 천국이 도래할 때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됨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에 대해 성경 말씀을 배워서 알고 믿음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이러한 천국의 비밀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복음으로 그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그 비밀을 일깨워주실 때까지, 천국은 그들에게 비밀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감추어져 있는 이 보화인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을 발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화를 발견한 자는 기쁨이 넘친다.
수세기 동안 땅속에 파묻혀 있던 보화를 어떤 사람이 밭을 갈다가 발견하였습니다. 이 농부는 자기만이 알고 있는 보화를 조용히 도로 파묻어 놓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가 속으로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와 같이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다음에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기쁨을 가지면서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사람들에게 꿈과 소망을 주는 참된 종교입니다. 참 보화가 되신 그리스도를 모신 성도들은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불안해도 항상 기뻐하고 세상을 밝게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요 14 : 6)의 큰 가치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기쁨은 인생의 제일 큰 가치 되는 주님이 함께 계심으로 우리가 마음 깊숙이 느끼게 되는 만족이나 흐뭇함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가치인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 생활을 인도하시면,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나서, 얼마나 열심히 주님을 섬겼었는지 기억해 보십시오. 이런 열심과 순수함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 되시는 주님을 만난 사람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에게 허락하신 진리를 만난 기쁨을 마음껏 누리길 원하십니다. 구원의 기쁨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현실에서 아무 문제도 겪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주님이 함께 하시는 동행의 삶을 경험하는 기쁨이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무신론 철학자 니체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배경인데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슈바이처 박사도 현대 크리스찬을 이렇게 비유하였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물 없는 강이 많다. 모래 언덕 사이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만큼 초라하고 비참하다. 오늘날 크리스찬들도 물 없는 강처럼 억지로 흘러가는 신앙생활, 메마른 정신, 형식과 전통만 겨우 유지하는 교회를 많이 본다." 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가 보화란 사실을 망각하고 믿으면 이런 기쁨이 없는 신자가 되어 지탄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시간에 인생의 참 진리와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을 분명히 찾고 만나서 기쁨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보화를 차지해야 한다.
그 농부는 결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보화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보화가 묻혀 있는 그 밭을 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도 감추어진 보화와 같은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를 사용하여 천국을 차지해야 합니다. 이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엄청난 보화를 얻기 위해 지극히 작은 재물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천국은 자신이 일평생 벌어들인 모든 소유를 다 투자하더라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교훈합니다. 사실 보화의 가치를 아는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해서라도 그 보화를 가지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이 이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 소중하고 심지어 육신의 생명 보다 더 귀함을 절감하는 자들은 어떤 대가와 희생을 지불하고서라도 그 천국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천국의 가치를 깨닫는 사도 바울의 일생을 보면, 그는 이 천국의 영화로움이 세상의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며 고귀한 것임을 깨닫고 그 뛰어난 지식(그는 당시 유대의 최고학파가운데 하나인 힐렐 학파의 기둥 가말리엘의 문하생), 세상의 명예(그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가문(그는 사울왕의 가문인 베냐민지파 출신으로 히브리인 중에서도 순수한 히브리인)을 배설물처럼 버려버렸습니다.(빌 3:3-9)
바울은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일에 비하면, 전에 소중하게 생각되던 것들이 배설물같이 여겨진다고 했습니다.(빌 3:8) 예수의 가치를 참으로 안다면 예수 믿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의 진가를 안다면 그것을 목마른 사람처럼 전 소유를 다 팔고 나를 제로로 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그것을 소유할 것입니다. 돼지 앞에 진주처럼, 예수님의 가치가 보이지 않는 것이 비극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차지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권력입니까? 하늘의 보화인 천국입니까? 그 무엇보다도 보람되고 가치 있는 것은 천국을 소유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을 위해 재물을 희생하는 일이 아깝다면 그는 아직도 천국의 참가치를 깨닫지 못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할 일 많은 이 세상에서 주의 일꾼이 되어 헌신함으로, 감추어진 보화와 같은 천국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나의 가장 좋은 것을 드려 소유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 신자가 누구입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을 주를 위해서 포기할 수 있는 그 사람이 참 신자입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참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함으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고 충성, 헌신하면 반드시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개인과 가정과 생활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개인 개인이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함으로 인하여 그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고는 보화로 가득합니다. 천국 보화는 찾는 자에게만 발견되어집니다. 그리고 찾은 자만이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런데 천국 보화를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나 값진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 큰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나아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사람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도록, 놀라운 역사 창조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주인 보화 비유
마 13:44 / 박세갑 목사
본문의 비유에서 우리는 비유의 두 번째 부분을 대하게 됩니다. 처음 네 비유는 주님의 곁에서 사건의 추이를 주시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는지 확인하려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시하신 비유였고, 36절에서 부터는 집으로 들어가셔서 곁에 있는 제자들에게 가라지의 비유를 먼저 설명하시고 계속해서 더 이상의 교훈을 베푸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비유는 더 이상 불신자를 향한 가르침이 아니라 신앙의 사람, 곧 보이는 것들 속에서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신념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나라의 감춰진 부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의 특별한 가치를 하나님의 목적과 경영이라는 면에서 제시 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비유를 상고함에 있어서 우리는 늘 하던 방식대로 본문에 나오는 상황을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과 다음에 나오는 진주의 비유를 보면 흔히 보화와 진주가 구원 혹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설명하기 쉽습니다. 이런 일반적인 해석을 하면 보화를 발견하고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죄인이 됩니다. 죄인이 보화와 진주로 비유된 구원과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언제나 오직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무엇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비유가 자신의 것을 팔아 인간이 대가를 지불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본문의 비유를 다시 봅시다. 예수님은 본 비유에 앞서 가라지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시며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비유에서도 이 설명은 유효 합니다. 보화가 발견되었다가 다시 감춰진 밭은 세상이고, 보화를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그 밭에 감춘 사람은 앞서 가라지의 비유에서 좋은 씨를 뿌린 인자 곧 주님 자신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서 보화를 발견하시고 그 보화를 다시 세상 가운데 감추어 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이 보화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것을 추측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신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의 나라와 그분의 통치를 드러내기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위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자리에 앉혀 놓은 인간이란 존재가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세상이 황폐하여지고 하나님의 나라의 풍성함과 아름다움과 은혜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 밖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관찰한다면 과연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통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측면, 어떤 장소에는 문제가 있을 것이고,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물을 분명하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푸른 잔디와 계절에 맞추어 피어나는 꽃들이 하나님의 통치의 영광을 드러내며 질서 정연하게 변하는 계절의 순환과 때맞추어 오는 파종기와 수확기들은 하나님 통치의 완전함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삶의 보다 고차원적인 사실들은 어디서나 혼돈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류 전체를 거시적인 안목으로 볼 때, 과연 인류는 하나님의 왕권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세상에 불의와 악과 잔인성이 난무하고 있지는 않는가? 흑암이 지배하고 극악무도한 폭력 아래에 있는 곳은 없는지? 아니면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고 빛이 비취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곳에서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미개한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그런 것들을 발견하는 관찰자라면 과연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고 질문할 것입니다.
지구는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지구는 그의 것이며 풀 한 포기에도 하나님의 생명의 힘이 약동하고 있고, 모든 꽃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를 가장 잘 드러내야할 인간을 살펴볼 때, 우리는 거기서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세상은 그 영광을 경험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참으로 의도하는 것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본 비유 속의 사람은 그것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본래 그 보화가 밭에 들어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밭에 가서 그것을 확인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계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혼란을 뚫고 그 속에서 분명한 질서를 보셨습니다. 악한 이리에 의하여 이리저리 흩어지고 유린당하는 양떼를 주시하여 보시면서 그 너머에 있는 잔잔한 물가와 쉴 만한 휴식처와 그곳에서 모든 위험에서 보호되는 양떼를 내다 보셨습니다. 주님은 과거의 왕국과 그 왕국이 앞으로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 사람은 보화를 발견했고 또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보화뿐 아니라 밭 전체를 구입하셨습니다. 자기의 소유 전부를 팔았습니다. 그 보화는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본 비유에서 주님이 발견하신 보화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확실한 가능성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 큰 기쁨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주님은 자기의 소유 전부를 팔았습니다.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이런 무한한 희생을 치르시고 그는 밭을 사셨습니다. 그 결과 온 세상이 구속되었으며 구원이 선포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희생은 필요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가르치기만 하신 윤리적인 스승으로만 남으셨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다”라는 말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상업적인 “구입하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사다”라는 말은 거래상의 매매 교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생과 눈물과 고통에 의하여 원하던 물건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밭을 사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주님의 피 흘림은 하나님의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었으며 보화가 감추어진 세상은 그 피 흘림을 수단으로 구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수난의 가장 깊은 곳에는 기쁨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적인 표현은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은 모든 보이는 것으로만 사는 현대인이 보는 모든 것들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들이 신앙의 사람을 절망시킬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비유의 가르침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사심으로 그 분은 세상의 주인이 되셨고, 그러므로 그분이 마음속에서 작정하신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화를 잠시 동안 감추셨다는 점이 한 가지 신비의 요소가 되지만 저는 여전히 이 비유의 무한한 지혜를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의 드러남이 더욱 완전하고 영광스러울 것을 지금 알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보화를 숨기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믿는 다는 것은 주님의 마음속에 계획하셨던 그 나라의 영광을 지금 우리의 생활 속에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자신으로 하여금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셨던 그 기쁨의 불을 밝히실 것이며 그래서 그들이 그와 더불어 고통을 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실 것이며, 마침내 그와 더불어 승리에 이르도록 하실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마 13:44 / 김남수 목사
복음성가 가수시거나 또 찬양하시는 많은 분들을 보면 찬송가보다는 복음성가를 많이 부르십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왜 찬송가를 부르지 복음성가를 부르느냐 그렇게 말씀하는 분도 있습니다. 김희작 교수라는 장로님 교수님이 계신데 언젠가 뉴욕에 계신 적이 있습니다. 그 사모님은 김애리 교수님이시고 또 그 아드님은 김정수라는 분인데, 김정수 지휘자가 저희 교회 1980년대 여러 해 동안 성가대 지휘를 했었습니다. 김희작 교수님이 그 분의 아버지신데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런 유명한 합창곡을 작곡하시고, 또 그의 성품이 아주 부드럽고 따뜻하십니다. 굵직한 그리고 따뜻한 베이스를 가지고 재미있게 얘기를 하시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면 배를 잡고 웃기도 하고 그렇게 대화를 잘하십니다. 이 분이 아주 심하게 주장하는 게 하나 있는데 찬송가만 불러야 된다는 겁니다. 예배에는 복음성가는 부르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시지도 않고 예수님 찬양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분이 총신대 교수이시니까 총신대 음악과 출신들은 대부분 그 분의 영향을 받아서 복음성가는 안 되고 예배시간에는 찬송가만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시니, 그래서 가는 곳마다 복음성가를 부르면 마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얘기는 주선호 장로님한테 들은 얘기인데, 주선호 장로님이 그 당시 성가대 대장이셨고 김정수(아들)씨는 지휘자였어요.
그 장로님이 김희작 교수님을 형님형님 하면서 깊고 좋은 교제를 나누시는 사이였어요. 그래 제가 장로님에게 김희작 교수님 어떻게 되셨느냐고 물었더니 2,000년에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사모님도 브룩클린 음악대학 교수시고, 줄리아드에서 수학하시고, 저의 교회의 솔리스트로 계시다가 한국으로 가셨습니다. 이제 김희작 교수님 돌아가실 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분이 운명하시고 다 돌아가셨는데, 얼마 있다 다시 살아 나셨대요. 그래서 어떻게 살아나서 무슨 얘기를 하시더냐 그랬더니, 천국에 갔는데 예수님을 만났대요. 그 장로님은 우리가 잘 아는 분이니까. 예수님을 만났더니, 예수님께서 "나는 찬송가만 좋아하지 않고 복음성가도 좋아한다. 수고 많이 했는데 어떻게 복음성가를 부르지 못하게 가는 곳마다 그 얘기를 했으니 이제 다시 가서 복음성가도 내가 잘 받는다고 얘기하고 오라" 그렇게 말씀하셔서 자기가 다시 살아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분이 살아가지고 예수님께서 복음성가도 받으시니까 많이 불러라 그러시고는 다시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참 하나님께서는 복음성가도 들으시고 찬송가도 받으시고, 또 천국에서는 아래 땅에 있는 우리 생각과 하늘에 있는 생각이 다르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만 할 때가 많고 하나님의 생각을 잘 이해 못할 때가 많은데 사실 하나님이 무얼 원하시냐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고 그걸 잘 이해할 수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천국은 마치' 이런 예수님의 말씀 속에 주로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얘기를 하셨는데 우리는 땅에 있는 얘기를 주로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마태복음 3장에서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천국복음이 전파돼야 된다, 또 천국에서, 또 천국,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결국 우리는 땅의 얘기를 주로 하고 하늘 얘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별로 그렇게 많이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그랬습니다. 사실 우리가 조금 잘못하면 땅에 있는 복음을 전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전하셨는데 우리는 땅에 사는데 관심을 두고 땅의 복음을 전하기 쉽습니다. 땅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영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땅에 있는 것은 먹고 사는 것과 사업하는 것과 자녀를 기르는 것과 또 건강을 회복하는 것과, 이런 것들이 다 중요한데 결국 그것은 결론이 땅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 바실레이아(Bacileia), The Kingdom of Heaven, 하늘나라라고 하는 그 영원한 곳에 우리의 관심과, 복음의 핵심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요, 4장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5장에 가서는 계속해서 8복에서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그렇게 4장, 5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계속해서 예수님이 천국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모든 성에 다니면서 천국복음 전하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 지상의 복음이 아니라 천국의 복음을 전하라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천국은 가보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그리고 천국이 어떤 곳이냐? 성경에 있는 말씀을 우리가 좀 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천국은 우리가 알기 어려운 우리의 상상력이나 우리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제가 장례식 때마다 인생은 세 삶을 산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 번째 삶은 어머니 모태에서 삽니다. 한 1년 남짓 너무 오래 있지도 않고 너무 빨리 나와도 위험하지요. 적당한 시간에 나와서 꼭 10개월 정도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사는 것과 전혀 다른 삶을 삽니다. 그때는 숨도 안 쉬고 먹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그냥 캄캄한 데서 마치 고기처럼 수영하듯이 모태의 태반 안의 양수 속에서 헤엄치듯이 마치 우주인처럼 거꾸로 매달려서 왔다 갔다 하면서 숨도 안 쉬고 가만히 10개월이라는 세월을 살게 됩니다. 그 한 생애를 사는데 물론 생각도 하고 교육도 받아야 되고 다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그때 그 아이에게 밖에 세계가 있는데 거기가면 해도 있다, 달도 있다, 별도 있다, 사람들도 있고 다 이렇게 옷도 입고 다닌다, 밥도 먹는데 밥이 맛있다, 김치도 있다, 이런 얘기를 그 아이에게 해 준다면 도대체 이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한 세월을 그냥 깜깜하게 지내면서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두 번째 세상에 태어납니다. 첫 번째 세상보다는 훨씬 길고 첫 번째 세상보다는 훨씬 아름답고 밝고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음식을 나누고 사랑과 친절을 나누면서 아름다운 교재를 갖고 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두 번째 삶입니다. 그 1년도 안 되는 세월에 비해서 어떤 분은 50년, 60년, 70년, 80년, 100세까지 사시는 분, 100배내 되는 긴 세월을 삽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세 번째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성경이 말씀하시고 그 두 번째 세상에는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하고 아주 perfect, 완벽한 그런 영원한 세계와 그런 삶이 준비되어 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게 천국이다 그렇게 말씀하는데, 이 땅이 제일 아름답고 제일 화려하고 제일 좋다고 생각하지만 눈물이 있고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고 질병이 있고 피곤함과 고단한 가시밭길을 헤치면서 가는 곤고한 삶에 비해서 영원한 아버지의 집은 완전한 행복, 완전한 조화, 완전한 하모니를 이루는 하나님의 사랑의 나라가 준비되어 있다는데 그걸 무슨 재간으로 주님이 설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천국은 마치 이렇게 여러 차례 설명을 해 주십니다. 천국은 마치 누룩을 한 말 밀가루에 풀어서 반죽을 하는 것과 같다. 천국은 마치 겨자씨 하나를 갖다 심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천국은 마치 어느 왕이 잔치를 벌이면서 자녀의 결혼식에 사람을 초청한 것과 같다. 또, 천국은 마치 일꾼을 데려다가 포도원에서 일을 시키려고 아침에 나간 주인과 같아서 등 천국은 마치, 마치, 마치 그렇게 설명을 해 주시는 내용들을 보면서 참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세계, 오늘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그렇게 설명을 해 주셨는데, 도대체 이 의미는 무엇이고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참다운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을 한 두 가지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는 천국은 이 보화라고 하는 것이 무슨 얘기냐 하면 어떤 농부가 삯을 받고 소를 몰고 가서 남의 밭을 갈다가 쟁기에 뭐가 걸렸는데, 주로 밭을 갈다 보습에 돌이 걸리면 보습의 날이 무디어지거나 구부러지거나 깨지게 됩니다. 그래서 밭가는 사람이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돌이예요. 그래서 돌은 있는 대로 밭 밖으로 자꾸 내보내는데 그래서 쟁기를 갈 때에는 그 쟁기 보습에 무엇이 걸리는 것을 아주 신경을 씁니다. 농사해 본 분들은, 이것 해 본 분들은 다 알아요. 그런데 뭐가 걸리는데 돌이 걸리는 거 같았는데, 돌 같은 느낌은 아니고 이상한 그런 감촉이 와서 소를 세워놓고 흙을 제치고 보니까 이만한 박스가 하나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들춰 보니까 그 속에 어마 그냥 진주 목걸이에 반지에 보석에 금에 은에 가득 차 있는 거예요. 옛날에 도둑놈들이 그런 걸 가져다가 훔쳐다가 밭에 감추어 놓았는데 그리고 아마 도둑놈이 붙잡혀 갔든지 죽었든지 그랬던 것 같아요.그래서 몇 해가 지나고 났는데 여기서 이 사람에게 발견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집에 가가지고 뭐 잠을 못자고 밤에 이상하게 그 날은 뒤척거리면서 끙끙 앓고, 부인이 여보 도대체 당신은 뭘 하다 왔길래 잠을 못 자냐고, 아무 소리 안 해요. 말도 마라.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있다가 아침에 일어나더니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거예요. 집에 있는 거 가구라든지 뭐 이런 걸 전부 내다가 팔아 가지고 나중에 허름한 집까지 팔고 움막집 같은 데로 이사를 가는 거예요. 돌긴 돌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났는데 어느 날 그 돈을 가져다가 밭주인에게 주고 밭의 등기문서를 받아 가지고 와서 그 다음에 밭을 산 그 밭의 보화를 가지고 자기 집으로 가서 부자가 되었더라 그런 얘기였어요. 뭐 예수님은 그렇게 설명을 안 했지만 아마 그렇게 설교를 하셨을 거예요. 예수님은 항상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시고 하늘의 얘기를 꼭 땅의 얘기로 시작하셨으니까, 영적인 얘기를 실제적인 일부터 시작해서 늘 설교는 봐라 설교예요. 새를 봐라, 꽃을 봐라, 농사 짓은 사람을 봐라, 고기 잡는 사람을 봐라, 뭐 봐라 설교이니까 다 실물교육 이었어요. 그러니까 주님이 편안하게 그렇게 설명을 해 주셨을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귀가 열려서, 그럼 도대체 그 보화가 뭐냐, 그 때도 질문을 하면 그 때 보화는 이런 것이다 하고 주님이 설명을 해주시지 않았겠는가 생각을 해보면서.
첫째, 보화는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이 보화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땅에 있는 일에 너무 신경을 쓰고 너무 마음을 쓰고, 땅에 너무 시간을 많이 보내고, 이 땅에 있는 것에 너무너무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땅에 것 밖에는 모르고 하늘의 것을 모르는 거예요. 사실 거기를 알면 그걸 볼 수 있으면 우리 땅에 있는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value와 그 priority, 소중함, 우선순위를 발견하게 되면 그 다음 것들은 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고난이 포함된 것처럼 신앙에는 삶과 함께 죽음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신앙은 삶과 함께 죽음이 포함되어 있으며 죽음과 함께 영원한 천국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하나의 마지막 천국 갈 때의 스토리가 아니라 신앙의 핵심이고 복음의 핵심이고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래서 신앙의 핵심은 천국이고 신앙의 종착역 역시 천국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종착역이 땅에서 부자 되고, 잘되고, 근심이 없고 범사에 잘되는 것, 그게 궁극적인 신앙의 목표가 아니고, 영원한 천국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고 천국이 우리 마음속에 임하고, 그리고 천국생활을 하다가 천국에 가는 것이, 그리고 거기서 영원히 사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종착역, destination인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여러분 얼마나 우리에게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까? 요즈음 많은 분들이 천국 가십니다. 그 때마다 제가 느끼는 것은 좀 준비를 하고 있다가 가야 되는데, 아무 준비도 없이 그냥 비자가 나오니까 비자는 또 누가 주나요, 의사 선생님들이 3개월, 6개월 그렇게 비자가 나오더라구요. 병원에서 주로 나와요. 그러면 그 때에 당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땅에다 뿌리를 내리고 땅의 일만 생각하며 땅의 것을 중심으로 살다가 천국은 가야 되겠는데, 그래서 안 된다고 붙잡고 울고불고 야단법석을 하는데 사실은 특별한 사명이 우리에게 없으면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예, 갑시다' '가자' 그러면, '예, 갑시다' 하고 툭툭 털고 일어날 준비를 평소에 해야 될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여러분, 이것이 신앙에 포함되어 있어야 되고 신앙의 중심에 있어야 되고 주님께서 말씀한 천국이 보화로 느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주님이 부르시면 '예'하고 가고, '잘 있어라. 간다.' 그래 오시면 만나고, 부르시면 가고 둘 중에 하나지 뭘 울고불고 그럴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정말 귀한 분들을 앞서 보내는 게 아픔이고 슬픔입니다. 그러나 그 슬픔도 잠깐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영원한 아버지의 집이 우리에게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우리 집사님이 한 분 돌아가셨어요. 도대체 이 집사님이 구원을 받았을까 안 받았을까, 천국 갔는지 지옥 갔는지 자식들이 걱정을 해요. 이것을 알 수가 없어요. 집사님이 천국 가겠지 어딜 갔겠느냐고 내가 장례식에 설교를 했는데도 이 자녀들이 그걸 믿지 않고 의문을 갖고 있어요. 아버지가 가끔 화도 잘 내고 욕도 잘하고 그랬대요. 그래 가지고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한참 있다가 그 자식 중에 한 아드님이 기도를 한참 하는데 꿈에 아버지가 천국 가서 거기서도 바쁘게 돌아다니더래요. 그 다음부터 걱정을 안 한다고 그래요. 할렐루야! 그게 안 믿어지거든 기도해서 천국에 잘 있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냐고 그렇게 와서 얘기하도록 그렇게 해야 돼요. 아멘. 어떤 분은 골프를 하도 좋아해 가지고 둘이서 약속을 했대요. 천국에 가면 골프장이 있는지 네가 먼저 가면 가서 보고 나한테 와서 얘기하라고. 약속을 했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먼저 가게 됐어요. 갔는데 이 친구가 언젠가는 꿈에 나타나서 천국에 골프장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 주겠지 기대를 하고 잠을 자는데 며칠이 지나서 정말 그 친구가 꿈에 나왔대요. 아 그래서 반갑게 '야 골프장 있대?' 그랬더니 '있어' '잘됐다' '그런데 다음 주 월요일 날 너하고 나하고 부킹이 돼있더라'. 그랬다는 거예요. 뭐 재미있게 골퍼들은 그런 농담을 만들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 볼 때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예요. 성경에 그걸 발견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고 천국이 시민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이 소중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이 자체가 소중한 보화라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래서 이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좀 세상의 경제가 어떻고 사업이 어떻고 뭐 시어머니가 어떻고 며느리가 어떻고 뭐 이러 걸 좀 초월해서, 왜 아멘 안 하세요. 그걸 좀 툭툭 털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천국을 향해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오라 하시면 예 제가 준비 됐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게 말같이 쉽지는 않아요. 그러나 신앙의 본질이 천국이고 신앙의 본향이 천국이라면 그 보화를 찾은 사람답게 다른 거 다 털어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명예도 세상의 부귀도 세상의 어떤 것도 좀 툭툭 털고 하나님의 영원한 집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주님이 말씀하신 그 보화라는 의미는 우리 측에서 볼 때는 천국이 보화고, 구원이 보화고,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하나님의 집인 천국에 가는 것이 보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른 보화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의 영혼인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왜 소중하냐 하면 천하보다 귀하다 그랬습니다. 사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한 영혼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는데, 그 영혼이 영원하기 때문에 그렇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지어진 인간이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보화인데 그것을 발견하면 다른 것들을 다 털고 그 소중한 것을 살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이 땅에 소중한 게 많지만 영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다 두고 가야 될 것입니다. 집도 두고 가고, 교회도 두고 가야돼요. 아무리 아름답게 지어도 이 지구가 어느 날 이 지구의 자력이 Off, 전기 스위치가 꺼지듯이 주님께서 스위치를 끄시면 이 지구 속에 있던 인력이 꺼지고 자석처럼 다 끌어들이는 이런 인력이 끝나면 성경의 말씀대로 그 속에 있던 용암이 녹아져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그 다음에 이게 다 산산조각이 나서 다 흩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것은 그 인력 때문에 우리가 붙어있는 것이고 바다도 물도 다 붙어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서서 다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꾸로 다니는 거예요. 왜냐면 이게 하늘이예요. 우리가 이렇게 서면 어디가도 다 하늘이 보이고 똑바로 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물도 여기 붙어있고 사람도 여기 붙어있고 건물도 여기 붙어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루는 이게 어느 날 전기가 나가듯이 그치면 이 지구촌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풀어지고 교회도 날아가고 다 날아갑니다. 그런데 오직 영혼은 영원히 남아있기 때문에 이게 보화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지옥 갈 영혼을 구원하고 천국으로 보내는, 그 영혼이 영원한 존재를 볼 수 있는 보화를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뭐 갖고 갈 게 없어요. 저도 보면 쓰레기 같은 걸 늘 가지고 있어요. 시간 있으면 보고 버려야 될 텐데, 그걸 그냥 놔두니까 늘 사무실이 쓰레기통 같아요. 집도 그렇고. 어느 날 그걸 다 버리고 다 정리하고 갈 때 가지고 갈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제가 놀랍게도 돌아가시는 분 그 비싼 반지, 다이아몬드 반지 그런 거 끼고 다 사시다가 돌아가신 시신을 관에서 보면 한 분도 반지 낀 분 못 봤어요. 누가 빼갔는지 몰라요. 벌써 여기 오기 전에 다 빼갔어요. 이해가 되시면 아멘. 아예 노인들은 아프시면, 아프기 전에 이 거 빼서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 줘요. 더 놀라운 것은 이 관 속에 안경 쓴 사람은 30년 동안 한 번도 못 봤어요. 눈이 있어야 안경이 필요하지. 그렇게 평생 안경을 쓰고 다녔는데 돌아가실 때 안경 다 벗어놓고 가지요. 이게 정말 인생의 참 모습이지요. 그저 땅 한 평 있으면 그게 다인데 그것을 위해서 그것 때문에 그렇게 소중한 영혼 구원과 그렇게 소중한 천국의 영광을 버리고 땅에서 허덕이다가 간다면 이거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우리 양선교사님도 그러시지만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참 순진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빨리 받아들여요. Costless, 돈도 많이 안 들어요. 아이들은 그렇게 돈이 많이 안 들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렇게 빨리 믿어요. 그리고 한 번 믿으면 일생에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돌아올 가능성이 너무 많은 거예요. 할렐루야! 그런 아이들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천지 빛갈이예요. 그걸 줍느라고 정신이 없는 거예요. 만일 여러분이 길거리에 다이아몬드가 널려 있다고 생각하면 여러분 정신없을 거 아녜요. 그런데 다이아몬드 보다 더 소중한 보화가 준비되어 있는데 널려 있는데 이걸 그냥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그보다 더 다른 것 중요한 것들을, 그게 뭔데 중요하냐니까 우리 강아지, 그루밍하고 매니큐어하고 페디큐어하고 그래가지고 그걸 깎아주고 미용실 데리고 가고 주사 맞히고 보험 들고 그 다음에 유산까지 남겨주고 그리고 그게 죽으니까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그것은 보화가 아니라 강아지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그건 보화가 아니라 강아지입니다. 영혼은 보화인데 그 보화를 발견하세요. 그런 노래를 우리가 불렀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속에 묻힌... 그래서 땅속에 묻힌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기쁨으로 돌아가서 집 팔고 땅 팔고 냉장고 팔고, 할렐루야! 그리고 반드시 사고 말거야, 야 야 야. 할렐루야! 지금 여러분이 해야 될 일이 뭐냐. 그 보화를 찾았으니 그것도 그냥 네트워킹으로 그물로 그냥 한 나라씩 건지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어부처럼 추수할 농부처럼 달려들어서 전 세계 어린이들을 구원하고 그래서 주님 오시는 시간에 이 땅에 그리스도의 거대한 계절이 오고 요원의 불길처럼 부흥이 일어나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편만하고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 소중한 것을 소중한 대로 알라.
기도하겠습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참 저희들은 주님이 천국을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땅의 것을 늘 생각했습니다. 천국의 보화 정말 아름다운 보화를 발견하고도 돌덩이처럼 쳐다보고 소중한 것을 모르고 살아왔던 저희들입니다. 주님 오늘 주님 앞에 마음을 열고 이 수많은 영혼들을 건지는 거대한 하나님의 사역에 기둥처럼 역사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부탁하신 영혼 구원의 거대한 역사를 기둥처럼 받치게 해 주옵소서.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제 질문에 대답해 주식 바랍니다. 주님, 지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이 사역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서 제가 가진 나의 재능과 시간을 눈물과 사랑을 받으시옵소서. 가슴에 조용히 손을 얹어 주십시오. 주님 이 소중한 보화를 찾았습니다.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위해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결심하는 분은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어 주십시오. 사랑하는 주님, 이제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말씀하시고 이 보화를 발견한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우리의 삶을 다 바칠 수 있도록 마음과 눈물과 사랑과 기도를 바치겠습니다. 사명의 부르심을 받겠습니다. 주님, 사용해 주시옵소서. 나를 사용해 주시옵소서. 나를 써 주시옵소서.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 받으시옵소서. 나의 눈물을 받으시옵소서. 나의 기도를 받으시옵소서. 나의 삶을 받으시옵소서. 주님께 온전히 바쳐 드립니다.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가장 값진 일
마 13:44-46 / 이수영 목사
비교적 짧은 오늘 본문 속에는 예수님의 두 개의 천국비유말씀이 있습니다. 두 비유말씀의 요점은 같은 것입니다. 천국은 반드시 소유해야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반드시 소유해야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반드시 소유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까? 천국은 말 그대로 하늘나라입니다. 하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기보다 하나님이 계신 곳을 하늘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즉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왜 소유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막8:36-37) 천하를 다 내주고도 소유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거기에는 생명뿐 아니라 또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영원히 복된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얘기해도 “난 하나님도 필요 없고 영원히 살고 싶지도 않고 그저 적당한 세월 동안 내 맘대로 즐겁게 살다가 죽겠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말은 그렇게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삶을 거부한다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맘대로 즐겁게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하면 하나님 대신 마귀와 죄와 악과 더불어 살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맘대로 되는 것 하나 없이 불만과 고통과 근심걱정과 불안과 허무와 절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것이 지옥입니다. 천국이 영원하듯이 지옥도 영원합니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천국에 가지 않아도 좋다고 말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을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할 때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두 비유말씀은 천국을 소유함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가르치는 것이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지혜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즉 바른 선택의 삶에 관한 지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치 있는 일도 수없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치의 순위를 정해야 하고 꼭 해야 할 일을 선택해야 하게 됩니다. 그 많은 일 가운데 무엇이 가장 값진 일인지를 바르게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제한된 삶의 세월과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살지만 선택을 바르게 한 사람은 성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일의 가치순위를 잘못 매기고 일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채 살면 실패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투자입니다. 투자를 잘 해야 성공합니다. 시간도 물질도 바르게 투자해야 합니다. 시간도 물질도 가장 값진 일에 투자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 장로교는 기독교신앙의 한 자랑스러운 전통입니다. 장로교로 하여금 장로교 되게 하며 다른 기독교의 전통들과 구별되게 하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세 가지만 이 시간에 소개하면 하나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가장 가치 있는 일로 여기는 확신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여기는 자의식입니다. 또 하나는 교육과 학문의 중시입니다. 장로교회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며 동시에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교육과 학문을 힘썼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재능과 삶의 모든 에너지를 교육과 학문을 통해 최대한 개발해서 보다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재능, 건강, 시간, 물질 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삶의 자산은 최대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순간순간의 모든 선택의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다 쓰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는 일에는 조금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힘쓰는 것이 장로교인의 경건이고 경제적 삶의 원리입니다.
우리 새문안교회는 지금 새 성전 건축이라는 대사역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성전건축은 아무 때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함께하여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생 신앙생활하면서 한 번도 성전건축을 할 기회 없이 지나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성전을 건축한다 하면 그것을 부담스러운 짐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생에 성전건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아마도 지금 새문안의 교인들은 살아있는 동안 다시는 성전건축의 참여할 기회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일생에 한 번 찾아온 기회입니다. 우리에게 이 대사역의 역할을 맡기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다윗은 하나님께 성전을 건축하여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비록 자기가 건축할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하며 죽기까지 많이 준비했습니다(대상22:5). 그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 앞에서는 그 어떤 일도 그 중요성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겸손 가운데 자기 자신은 가난하여지기까지 힘을 다하여 금과 은과 놋과 철과 각종 보석 등 그의 개인적 소유의 모든 것을 성전건축에 바쳤습니다(대상29:3). 자신이 먼저 그렇게 바친 다윗은 백성을 향해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대상29:5)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다 즐겨 드렸고(대상29:6) 백성들은 성심으로 자원하여 드리며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온 백성이 성전건축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힘껏 바친 후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하나을 송축하며 한 말은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도 남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읽어봅니다. 대상29:12-16입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하며 다 하나님의 것으로 돌릴 줄 알았습니다. 부귀영화는 다 주께로 말미암으며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면 우리가 바치지 않아도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 거두어 가실 수 있으며 우리가 다 바쳐도 하나님께서 더 큰 부귀영화를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한 것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 힘껏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특권으로 여기는 마음의 발로입니다. 기쁨의 헌신입니다. 솔로몬 때의 하나님의 성전은 그렇게 세워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마음속에 얼마나 기쁨이 솟아오르고 감격으로 가득 찼는지 모릅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21세기에는 새문안교회의 새 성전은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제 뒤로 올 담임목사님들 중 적어도 다섯 분은 성전 건축의 기회를 얻지 못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다윗처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다윗처럼 가진 것은 없으나 아무리 적어도 있는 것 다 바치는 데는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현금을 모아둔 것도 전혀 없는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새문안교회 부임 전에 살던 집 한 채뿐입니다. 이 집 한 채라도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집을 바칩니다. 얼마짜리냐고요? 얼마 안 됩니다.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44.5평짜리 벽산빌라 한 채입니다. 최근 시세는 모르지만 한 때 공시가격으로 7억 4천만 원까지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작정헌금으로 써내기는 일단 5억 원으로 써낼까 합니다. 왜냐하면 집값이 떨어질지 어떨지 모르고 전세금을 물어야 하고 세금이 얼마나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려면 빚 다 갚고 온전한 상태로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작년 9월부터 적금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은퇴할 때까지 부지런히 모으면 세금 뺀 집값 전부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목표한 500억 원 중 백분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5만원 씩 일만 주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 아버님은 일생 교회음악가로 사신 분입니다. 옛날의 교회음악가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이올리니스트시면서 성가합창 지휘자이셨던 아버님은 일 년에 두 차례씩 정기연주회를 꼭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정기연주회는 돈을 버는 연주회가 아니라 집안 살림을 축내는 연주회였습니다. 연주회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연주회 한 번 하고나면 집을 옮겨야 했습니다. 일 년에 한 두 차례씩 이사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정기행사였습니다. 조금 더 싼 집으로, 점점 더 변두리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연주회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한 번은 아버님께 연주회 좀 안 하면 안 되겠느냐고 여쭈었다가 혼난 적도 있습니다. 음악가가 연주 안 하면 죽은 거라는 아버님의 말씀을 들은 이후로 다시는 연주회수 줄이자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습니다. 세상물정 모르시던 아버님은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 도와주겠다고 무슨 각서 하나도 받지 않으시고 집문서를 빌려주셨다가 기적처럼 장만했던 집 한 채를 그냥 날리고 마셨습니다. 그래서 길바닥에 나아 앉았다가 남의 집 마루방 한 칸에서 여섯 식구가 살아야 했습니다. 대학시절 3년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집 없는 설움을 얼마나 당했는지 그 후로 30년이 다 지나도록 저 산위에 토굴 같은 집 하나 얻고서도 우리 집이라고 좋아하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새문안교회에 부임한 이후로는 안 꾸다가 작년 봄에 성전건축에 집을 바치기로 우리 집 사람하고 약속을 하고나자 오래간 만에 그런 꿈을 또 꾸었습니다. 84년에 유학에서 돌아와 장신대 교수생활을 시작한지 십삼 년 만에 집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그것도 대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위로금 들어오고 보험외판사원 하는 친척들이 하도 조르는 바람에 마지못해 들었던 보험료를 타게 되는 바람에 집 산지 근 십 년이 다 되어서 겨우 빚을 갚고 완전한 우리 집이 된 것입니다. 옛날 아버님 생각 하면서 “나는 적어도 집 때문에는 어머니나 우리 아이들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며 끝까지 지키려했던 집입니다. 피와 눈물에 젖은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 집을 이렇게 기쁘게 바칠 수 있도록 마음을 주장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일생에 가장 값진 일을 하는 데 아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문안의 성도 여러분,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그 마음으로 우리의 새 성전건축에 다 같이 참여하시기를 빕니다. 다음 주일부터 시작하는 헌금작정에 성심으로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기쁨으로 즐겨 내는 것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새 성전을 건축합시다. 일생에 한 번 우리 각자의 능력을 총동원해서 가장 값진 일에 바치는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보화2
마 13:44 / 장경동 목사
같은 밭이지만 보화가 숨겨진 것을 몰랐을 때의 밭과 보화가 숨겨진 것을 알았을 때의 밭은 그 가치가 다릅니다. 몰랐을 때의 밭은 팔아서 내가 필요한 것을 사려고 하지만 알았을 때의 밭은 나를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사려고 합니다. 보화가 감 추인 밭이 귀하듯 예수그리스도를 모신 우리가 그렇게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귀한 존재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세상도 굉장히 변화가 빠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금을 많이 좋아하는데 그런 한국 사람도 점차 카드를 많이 사용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불안한 정세 가운데 금은보화를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묻어둔 사람이 죽으면 그냥 묻혀 있는 것입니다. 땅에 보화를 묻어놓을 정도면 어느 정도 생활의 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발견 못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나 름데로 성실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밭에 감 추인 보화는 천국
1)천국보화는 예수님이시고 그 보화를 찾은 사람은 곧 우리 성도들을 가르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발견하면 그 예수님이 좋아서 우리 소유를 다 팔아서 예수님을 산다는 것입니다.
2)천국보화가 우리 자신이고 그 보화를 찾은 사람이 예수님 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보화를 발견한 사람
1. 자기 삶에 대한 희생이 따릅니다.
구약에서는 모세를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신약에서는 사도바울을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 로서 난 의라”(빌3:8-9).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샀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이런 고백이 나 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지키 었 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여 가니라”(막10:20-22).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 오되 주여 보시 옵 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 겠 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8-9).
밭에 감추인 보화를 산 사람 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화를 발견하고 보화를 소유하기 위한 희생이 있어서 여러분의 이름을 하나님이 알고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남이 볼 때는 미친 것처럼 보입니다.
밭을 살 때까지는 보화가 내 것이 아니므로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내 것을 다 팔아서 밭을 사면서도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이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기쁨이 여러분 속에 있습니까? 지금 이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심리상태는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기쁨만 충만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3. 겉으로는 희생하는 것 같지만 참된 기쁨과 더 큰 축복이 그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쫓았 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8-30).
보화를 발견했으니까, 영생을 소유합니다. 세상죄악의 쾌락과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 어느 것이 더 귀하고 보람됩니까? 이 두 가지를 구분 할 줄 아는 것이 수준입니다. 모세는 세상의 쾌락보다 민족과 더불어 고난 받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4. 예수님이 보실 때는 우리가 보화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려서 나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은 예수님이 보화로 보시는 사람을 보화로 봅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 하는 줄 주께서 아시 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요21:15). 주님을 향한 사랑을 사람에게 쏟아 부으라고 하십니다. 보화를 찾으시는 삶 사시기를 바랍니다.
눅15장의 잃어버린 양 비유에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는 바로 보화입니다. 전도는 보화를 찾는 작업 인 것입니다.
보화를 찾아 주님께는 영광 자신에게는 기쁨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추인 보화의 비유
마 13:44 / 박상훈 목사
오늘 본문은 "천국"이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천국에 대하여 가장 잘 아시는 분이 누구이시겠습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바로 천국에서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에서 그 나라 백성된 우리들에게 천국을 알기 쉽게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천국에 대한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이 세상에는 천국의 건설을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도 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는 천국의 능력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울러 누룩의 비유를 통해서는 천국의 영향력이 대단한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여러 가지 비유들 가운데, 다섯번째 해당되는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지난 주일 누룩의 비유를 말씀드리면서 서두에 수박밭 주인과 도적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날 저녁에 장년2부 교사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 분이 제 설교에 대해서 화답을 하시겠다고 하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어느 마을에 칠푼이가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큰 금 덩어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땅 속에 깊이 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여기에는 절대로 금 덩어리가 묻혀 있지 않음. 칠푼이백."
그 마을에 사는 팔푼이가 지나가다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몰래 그것을 파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또 써 붙여 놓았습니다.
"나는 절대로 금 덩어리를 훔쳐가지 않았음. 팔푼이백."
나중에 칠푼이가 와 보니까 금 덩어리가 없어졌습니다. 그는 속이 상해서 마을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누구야! 누가 내 금 덩어리 훔쳐갔어? 팔푼이 한 사람만 빼놓고 모두 다 나와!"
옛날 유대인들도 보화를 땅 속에 감추어 두곤 했습니다. 유달리 전쟁이 많은 나라였습니다. 또 도적이나 강도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보화를 감추기 위해서는 땅 속이 제일 적합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장사했습니다. 그만큼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땅을 파고 그 속에 깊이 숨겨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의 땅은 요즘 말로 하면 금고의 역할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보화를 땅 속에 감추어두고서 그만 전쟁이 나버렸습니다. 전사해 버렸습니다. 또는 멀리 이방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군가에 의해서 감추인 보화가 발견되기까지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그대로 땅 속에 파묻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그것을 발견하면 완전히 횡재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발견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남의 밭을 가는 일군이 밭을 깊숙이 갈다가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큰 비가 내렸습니다. 흙이 많이 씻겨 내려갔습니다. 우연히 밭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이 보니까 항아리 끝 부분이 삐죽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파 보니 뜻밖에도 그 속에 보석이 잔뜩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감추인 보화를 이 사람이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어떻게 했습니까? 그냥 가지고 가 버렸습니까? 행여 그것이 밭주인의 것이면 그는 남의 것을 훔치는 셈이 되어버립니다. 또 설혹 밭 주인의 것이 아니라도 나중에 밭주인이 자기 것이라고 떼를 쓰면 난처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발견한 보화를 밭주인에게 갖다 주면서 밭주인이 주는 부스러기만 받으면 그는 미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일단은 발견한 보화를 아무도 모르게 다시금 깊숙이 숨겼습니다. 그리고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기쁘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그 밭을 샀습니다. 그리고 난 뒤 그는 합법적으로 그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침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감추인 보화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천국의 특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간단하게 오늘 말씀에 따라서 우리가 천국의 특성을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듯이 오늘 우리도 말씀 가운데서 천국의 보화를 발견하고, 천국을 우리 마음 속에 소유하는 큰 기쁨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입니다.
천국의 특성은 첫번째 아무에게나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13:11에 보면 천국의 비밀을 우리에게는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택함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컨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조차도 천국의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도대체 어느 때 임하나이까?"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니라."
물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 때는 우리 예수님이 공중에 구름을 타시고 영광 가운데 오실 것입니다. 천사들과 함께 왕권을 가지시고 영화로운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천사장의 호령이 울려 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 때는 모든 사람들이 영광 가운데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자기 눈으로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천국이 불신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천국의 비밀이 그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3세기에 이탈리아의 유명한 탐험가였던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라는 사람이 그 당시 미지의 세계였던 중국으로 왔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17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자기의 조국 이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유명한 동방견문록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가 임종할 때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친구들은 그에게 다그쳤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자네의 책에서 도무지 우리가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들만 잔뜩 기록해 놓지 않았나? 이제라도 자네가 우리에게 진실을 밝혀주면 좋겠네. 자네가 쓴 모든 내용이 자네의 상상에 의해서 꾸며졌다는 사실을 말일세."
그 때 마르코 폴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닐세. 내가 책에 쓴 것은 모두 진실일세. 사실 나는 내가 보고 겪었던 것의 절반도 채 기록하지 못했다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상으로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신실하십니다. 거짓말하실 분이 아닙니다. 천국은 반드시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단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발견되지 않을 뿐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택함 받은 우리들에게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둘째로, "보화와 같으니"입니다.
천국은 지극히 영화로운 곳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밭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보화입니다. 밭을 다 팔아도 보화의 값어치를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영화로운 천국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계21:10절 이하에서 천국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21:10∼11의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계속해서 계21:18의 말씀입니다.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 째는 청옥이요 열 두 째는 자정이라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이더라."
우리가 들어보지도 못한 진귀한 보석으로 꾸며진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니 그 영화로움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 당시에 가장 값비싼 보석이 진주였습니다. 다이아몬드가 그 때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열 두 문이 있습니다. 모두 진주로 된 문입니다. 천국의 문 하나가 하나의 진주로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진주의 크기가 얼마나 엄청나겠습니까? 아무튼 천국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인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영화로운 곳입니다. 최상의 곳입니다. 최고로 살기 적합한 장소입니다.
사도 요한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그 놀랍고 영화스러운 천국의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무엇이라고 외쳤습니까?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어서 빨리 저 영화로운 천국에 가서 주와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고 싶다는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사도 요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요한이 마음에 품었던 천국에 대한 소망을 우리도 늘 품고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입니다.
천국은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천국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택하심을 받은 우리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알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천국의 백성된 우리에게는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늘 천국이 발견되어지고, 천국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주일날 목사님이 교회에서 천국에 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다음 날인 월요일이었습니다. 어떤 교우의 가정을 심방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교회의 집사님 가운데 한 분을 만났습니다. 집사님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궁금한 것이 있다는 듯이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제 천국에 대한 설교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천국이 도대체 어디 있다는 말씀을 안해 주셨습니다. 천국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집사님, 저는 지금 어떤 교우의 가정을 심방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 교우는 지금 병들어 누워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집사님께서 그를 위해서 양식을 사 가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양식을 가지고 왔다고 말씀하십시오. 그 뒤 그 가정에 있는 성경을 받아서 시편 23편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그 병든 교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천국이 보이지 않는다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 돈도 제가 다 지불하겠습니다."
그 다음 날 그 분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분명히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15분간을 지내다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우리의 삶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날마다 천국을 발견하시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숨겨두고"입니다.
왜 숨겨두었겠습니까? 자기가 발견한 보화를 남에게 빼앗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빼앗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 양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교회에 안 다녀도 우리 집사람은 열심히 잘 믿으니까 나도 천국의 근처는 가겠지!"
여러분, 천국 근처가 어디입니까? 천국이면 천국, 지옥이면 지옥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들 딸 삼 남매를 낳고서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아가는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그만 병들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보았더니 간암 말기였습니다. 온 가족이 정성을 다해서 극진히 보살폈지만,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아내는 혼자의 몸으로 삼 남매를 키우고 살아야 되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는 자기 친구를 만날 때마다 늘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 잘 모셔! 남편 건강하도록 잘 보살피고."
왜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자기가 혼자 되어보니까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서러움을 깊이 느꼈기 때문입니다. 남편 없이 혼자서 아들 딸 기르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왜 예수님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천국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까? 천국은 너무나도 영화로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옥 가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지옥의 비참함과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5:29의 말씀입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지옥은 그만큼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천국에 가기를 원하십니다. 너무나도 영화로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듭거듭 천국에 대해서 알기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천국은 남에게 빼앗길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다섯째로, "기뻐하여 돌아가서"입니다.
천국은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우리에게 지극한 기쁨을 주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천국이 임하면 우리의 마음에는 남이 빼앗을 수 없는 절대적인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앗시시의 성자였던 프랜시스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임종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빙 둘러서 그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막 숨을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성 프랜시스가 어린 아이와 같이 고함을 지르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모습을 보다못해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성 프랜시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지금도 창밖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엄숙한 순간에 좀 더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시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 소리를 듣고서 성 프랜시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주책을 떨었지. 미안하네. 그러나 내가 이제 곧 천국에 가서 꿈에도 그리던 예수님을 만나 뵌다는 사실을 생각하니까 너무나도 기뻐서 그 감격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천국의 기쁨을 소유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람은 너무나도 기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팔아치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의 기쁨을 마음 속에 소유한 사람은 세상적인 것, 시시한 것 때문에 연연해 하지 않습니다.
두 소녀가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눈앞에 예쁜 조개가 나타났습니다. 두 소녀의 손이 동시에 그 조개를 집었습니다. 서로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결국 고집이 세고 힘이 쌘 아이가 그것을 차지했습니다. 그것을 빼앗긴 아이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언짢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말도 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조개를 주웠습니다.
그런데 조개를 빼앗긴 아이의 눈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뜻밖에도 진주를 발견한 것입니다. 얼른 자기의 품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기뻤겠습니까? 그는 친구에게로 다시금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친구에게 다정스럽게 말을 걸면서 다시금 같이 조개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또 예쁜 조개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두 소녀는 다투지 않았습니다. 진주를 발견한 소녀가 기꺼이 예쁜 조개를 자기 친구에게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의 기쁨을 마음 속에 소유한 사람은 그까짓 세상적인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섯째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입니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대가라도 지불해야 할 결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람은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그 보화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엄청난 값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우리도 어떠한 희생이라도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자기들의 모든 소유를 팔았습니다. 자기들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배와 그물을 다 버려 두고 예수님의 뒤를 좇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소유했던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들이었습니다. 빌3:5∼6에서 일곱 가지로 그가 과거에 소유했던 엄청난 것들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보화를 발견하고 나서 자기 과거의 모든 소유를 팔아치웠습니다. 7∼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바울은 그 보화를 소유하기 위해서 과거에 세상적으로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팔아치웠습니다. 해로 여겼습니다. 배설물처럼 여겨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결단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첫째로, 천국은 아무에게나 발견되지 않습니다. 믿지 아니하고, 택함을 받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이 감추어졌습니다. 둘째로, 천국은 보화와 같습니다. 지극히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셋째로, 천국은 우리들에게는 발견되어 집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허락되었습니다. 넷째로, 우리는 천국을 빼앗길 수가 없습니다. 남에게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11:12에서 천국을 빼앗아야 한다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다섯째로, 천국은 기쁨의 원천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품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섯째로,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라도 지불할 결단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람이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쁨으로 돌아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고 보화를 차지했듯이, 우리도 늘 삶 속에서 천국을 발견하고 천국의 기쁨 속에 살아가며 우리의 마음 속에 천국을 품고 살아가는 복된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보화를 캐는 사람
마 13:44 / 류영모목사
시계하면 지금도 스위스가 생각날 만큼 참으로 오랜 시간동안 스위스는 시계 제조의 성역을 누려왔습니다. 40, 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전세계 시계의 80%가 그 좁은 땅 스위스에서 제조된 시계였습니다. 1960년대말 한 발명가에 의하여 새로운 한 시계가 디자인 되었습니다. 이 발명가는 자기가 고안한 시계를 가지고 스위스의 한 시계회사를 방문했습니다. 깨끗이 거절당했습니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거지요. 스위스에 있는 모든 시계 회사들은 이 사람의 고안된 시계를 거절했습니다. 그것 아니더라도 우리는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발명가는 그 시계를 가지고 일본을 방문했고 세이코회사가 그 시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고안한 시계가 바로 디지털시계입니다. 지금 이 디지털시계는 세계 모든 시계시장에 80% 내지 90%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보물을 잃어버린 스위스는 이 때부터 시계산업의 사양길을 걷게 되었고 디지털시계는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그가 무엇을 보물이라고 생각하느냐 여하에 따라서 그 인생의 값어치가 달라집니다. 보물이 찾아왔을 때 그 보물을 얻을 수 있느냐? 그 보물을 잃느냐 여하에 따라서 성공하는 삶을 살 수도 있고 실패하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 보물을 얻기 위해 당당히 댓가를 지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댓가 지불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 실패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장 귀한 보물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참으로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거짓된 보화에 속아왔습니다. 이제 눈을 떠야 합니다. 참된 보화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사람이 보화를 발견했다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오늘 주어진 본문을 바로 해석하자면 당시 유대 풍속과 역사적인 배경을 좀 알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돈을 벌어 맡겨둘 만한 마땅한 은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땅속 깊은 곳에 보물 항아리를 묻어두고 새로운 보물이 생기면 넣기도 하고 또 필요에 따라서 끄집어내 쓰기도 했습니다. 전쟁과 사회적인 변혁이 심했던 당시 이스라엘은 주인없는 보물 항아리가 종종 발견되곤 했습니다. 그럼 당시 법률에 따라서 발견한 사람이 그 보물 항아리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보물항아리가 남의 밭, 남의 땅에 숨겨져 있을 때는 여간 문제가 복잡해 지는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일꾼은 밭주인이 아니라 아마 품꾼이었던 모양입니다. 남의 밭에서 일을 하다가 노다지 항아리를 발견하고 고민을 합니다. 그러다가 집에 돌아가서 자기의 모든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소중한 보물 항아리를 얻어서 자손대대로 잘먹고 잘살았다 하는 얘기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한절밖에 되지 않는 이 본문을 단막극으로 꾸며서 무대에 한번 올려보고 싶습니다.
무대의 막이 올려지면 한 농부가 땀을 흘리며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가운데쯤 왔을까요 곡갱이를 내리쳤는데 뭐가 퍽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뭔가 조심스럽게 땅을 파 보기 시작하는데 뚜껑이 보이기 시작했고 흙을 제치고 뚜껑을 여는 순간 하늘이 아찔할만큼 어마어마한 보물이 그 속에 묻혀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넋을 잃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다가 실성한 사람처럼 뚜껑을 덮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일을 하는데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천장에 보물 항아리가 왔다갔다 합니다. 그 밤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밭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어르신네 계십니까?" "건너 마을의 아무개입니다" "이 깊은 밤에 자네가 웬일인가?" "영감님 뵙고 부탁도하고 의논 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들어오게나" "영감님 저 건너 마을 비탈길에 있는 그 밭 말입니다." 그 자네가 소작하고 있는 땅 아닌가? 글쎄요. 제가 오랜시간동안 그 밭을 일구다보니 그 밭이 내 자식놈처럼 사랑이 들고 정이 들었습니다. 이제 제 나이도 들어가고 하니 밭 마지기 정도는 가져야 되겠다 싶어서요. 주인님이 허락하시면 그 밭을 제가 이제 샀으면 합니다. 그리고 값을 부르는데 터무니없이 값을 부릅니다. 그래도 어떡하겠습니까? 흥정이 되어 계약서가 작성되었습니다. 싱글벙글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집안식구들을 불러모아 놓고 건너마을 비탈길에 있는 밭을 샀다구. 내일이면 송아지도 팔고 집도 팔구 가재도구 다 팔아야 될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아내가 펄쩍 뜁니다. 이 양반이 퇴약볕에서 오랫동안 일하더니 머리가 돌았나보다고. 그리고 아이들은 길길이 뛰면서 우리는 어디서 살아? 칭얼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농부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더니 송아지를 몰고 밖으로 나갑니다. 복덕방에 집을 내놓습니다. 가재도구까지 다 내다 팝니다. 주섬주섬 돈을 챙기더니 영감님을 찾아가 마지막 남은 돈을 다 치루었고 계약문서를 받아 들었습니다. 모든 절차가 다 마쳤겠지요. 얘들아 날 따라 오너라. 이제 저녁 무렵이 되었습니다. 해는 서산에 질 무렵, 땅거미가 내려질 시간이었습니다. 곡괭이를 가지고 밭 가운데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곡괭이로 깊이 깊이 팝니다. 아니 이 영감님이 우리 식구들을 다 땅에 묻으려나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보입니다. 흙을 털어내고 뚜껑을 여는 순간 온 가족은 깜짝 놀랄 수 밖에요. 석양이 지는 햇살에 보석들이 빛나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모두다 넋을 잃었습니다. 모든 제왕이 부럽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보석이 그 속에 묻혀있었고 그것을 가지고 살았다 하는 얘기가 오늘 본문의 얘기죠. 그리고 막이 내릴 것입니다.
몇몇 주경가들에 의하면, 이 비유는 당신에 있었던 실제 사건을 예로 들어 말씀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열쇠 단어가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마치"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던 마태복음에는 한결같이 "하늘 나라" 천국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헬라 사람들과 이방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던 복음서인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란 단어가 나오면 그것을 묵음으로 읽고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란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을만큼 경건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헬라 사람들은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이 공중 하늘속에는 귀신들이 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늘 나라 그러면 귀신의 나라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가장 본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하늘 나라든 하나님의 나라든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기 시작하는 사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여정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정권교체 라고 얘기했습니다. 내가 나를 다스리던 삶의 자리에, 세상의 가치관이 나를 다스리던 그 자리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왕좌에 앉아 계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고 지배하여 주시고 통치하는 삶의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에 정권교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판단하는 모든 판단 가치기준에 하나님이 서 계십니까? 여러분이 길을 선택하는 모든 삶의 여정속에 하나님이 동행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가장 소중한 보화로, 소중한 가치로 인정하며 고백하며 살아가십니까?
본문이 말하고 있는 보화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앞을 봐도 예수입니다. 뒤를 봐도 예수입니다. 오른쪽에서 봐도 예수입니다. 왼쪽에서 봐도 예수입니다. 위에서 내려다 봐도 예수입니다. 밑에서 올려다 봐도 예수입니다. 속을 뒤집어 까놓고 봐도 예수입니다. 너 왜 예수 믿느냐? 예수님 때문에 예수 믿습니다. 너 어떻게 영광스러운 이 나라로 오게 되었느냐? 예수님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갈래?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을래? 예수님 손 붙들고 죽는 겁니다. 기독교의 시작과 마침은 알파와 오메가는 예수외에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복음을 듣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보화를 샀다는 얘기는 땅의 모든 일을 희생하고서라도 예수를 샀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을 샀다는 말입니다.
천국복음을 얻기 위해서는 , 천국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땅의 것들을 팔아야 합니다. 취미를 팝니다. 이전에 소중히 여기던 기쁨을 팝니다. 가치관을 팝니다. 세상줄이 짤려져야 천국의 줄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보화
그런데 사람들은 이 천국이라는 보화를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얻는 보화들은 모두다 한결같이 허무한 것들입니다. 오늘 피나는 경쟁에서 세상의 값진 보화를 소유한 사람이나 그것을 얻지 못한 사람이나 현대인들은 한결같이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세상 물질에서 온전한 만족을 얻은 사람은 없습니다. 부귀영화도 궁극적으로 우리가 찾아야 될 보화는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손에 움켜쥐어 모든 것을 누려 보았던 솔로몬은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 세상의 보화를 다 가져도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평안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보화가 이 땅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 자기 손등에 보화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가난하게 살던 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부자집 아들하고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세상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손에 끼게 되었습니다. 그걸 가지면 행복할 줄 알았지요. 세상을 모두 움켜쥔 것처럼 기쁨이 충만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쁨충만 대신 근심충만 해지더랍니다. 누가와서 나를 찌르고 이 다이아몬드를 빼앗아가지나 않을까? 그래서 이틀 손에 끼어 보고 다이아몬드를 은행에 가지고 가서 맡겨버렸습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도 아직 그 이후 한번도 다이아몬드를 끼어 보지 못했답니다. 누리지 못하는 행복! 이것이 이 세상의 것들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거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 이집 저집 한술 밥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어느날 할아버지는 "부자들은 너무 욕심이 많아 탈이란 말이야. 나는 따뜻한 옷 한 벌, 쌀 한 가마니만 있으면 불평하지 않을텐데" 그 소리를 마침 하늘에서 내려와 길을 걷고 있던 천사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깡통에다가 금돈 한 닢을 딸그랑 떨어뜨려 주었죠. 천사를 붙들고 애원합니다. 집 한 채는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또 붙듭니다. 논 마지기는 있어야 자식들하고 먹고 살 것 아닙니까? "할아버지 금돈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그 자루가 찢겨져 금돈이 땅에 떨어지면 순식간에 흙으로 변해 버리고 맙니다." 거지 할아버지는 그래도 한푼만 더! 한푼만 더! 자루가 찢어질 만큼 금돈을 받았습니다. 어깨에 걸머지고 콧노래를 부르려고 막 시작하는데 자루가 좍 찢어지며 와르르 땅에 쏟아졌습니다. 물론 금돈은 모두 흙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얻은 밥도 먹지 못하고 배만 쫄쫄 굶고 돌아왔다고 하는 얘기입니다.
너무 욕심만은 기업가들, 기업을 송두리째 땅에 쏟아 흙으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세상을 얻었으나 건강의 그물이 찢겨져서 누리지 못합니다. 가정의 행복의 그물이 찢겨진 사람들, 영원한 가치를 잃어버린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땅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로마 격언에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목마르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 있는 것들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될 보화가 되지 못합니다. 돈 돈 돈 하다가 돈에 돌아버리고 마는 겁니다. 가져도 만족이 없습니다. 만족해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감추인 보화
세상 것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에게 이 진정한 보화는 영원히 감추어진 보화가 되고 맙니다. 이제는 세상의 눈을 감고 영원을 향하여 눈을 좀 뜰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줄을 좀 자르고 영원한 줄을 붙들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보화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속에 수없는 보화가 묻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화를 보지 못하는 막혀진 눈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도 전국 방방곳곳 교회에서 수많은 보화들이 선포되어짐에도 불구하고 그 보화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수많은 책들을 통하여 보화가 세상에 가득히 넘침에도 불구하고 보화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는 얘기입니다.
그 보화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밭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보화를 발견한 사람만이 주님의 집을 사모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교회를 그리워한단 말입니다. 신앙생활의 값어치를 깨닫고 살아간단 말이죠. "주의 궁정에서 거한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농부는 보화가 숨겨진 밭을 샀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특징은 주님의 집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를 얼마나 열망하고 사모하고 살아가십니까? 한 주간동안 살아가며 이 주일날이 기다려지십니까? 예배가 그리워지십니까? 목장모임이 기다려지십니까? 직장에서 땀흘려 일하는 것 말고 사역이 그리워지시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분명히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다 팔아서 보화만 산 것이 아니라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은 좋고 예수님은 좋은데 예수믿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게 싫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신비를 알고 살아가십니까? 복음의 능력을 알고 살아가십니까? 성령충만의 맛을 알고 살아가시느냐는 얘기입니다.
구경하는 예수님 가지고는 안됩니다. 흉내내는 신앙가지고는 안됩니다. 내가 만난 예수가 있어야 됩니다. 내가 만난 성령충만이 있어야 됩니다. 무당들도 강신무당하고 학습무당하고는 폼부터 다르더라구요.
손오공과 사오정이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시험을 치기 위하여 회사에 갔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손오공 차례가 되었습니다. 15번 손오공입니다. 자네 축구를 좋아하는가? 축구선수 가운데 특별히 누구를 좋아 하는가? 옛날에는 차범근이었는데 지금은 안정환입니다. 문화혁명이 언제 있었는가? 18세기입니다. UFO 비행접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과학적으로는 증명이 안됐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곧잘 대답을 했어요. 나가보게나. 밖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사오정이 묻습니다. 무엇을 묻더냐. 뭐라고 대답했느냐. 꼬치꼬치 물어서 그대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달달달 외웠습니다. 27번입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옛날에는 차범근이었는데 지금은 안정환입니다. 당신 언제부터 그렇게 됐어? 18세기입니다. 아니 이사람 바보 아닌가? 과학적으로는 증명이 안됐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외워서 될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흉내내서 될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천국가족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목장모임이나 소그룹모임을 통하여 천국가족을 경험해야만이 천국에서 잘 살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의식이 아닙니다.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깨어진 관계가 깨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과 복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십니까?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여정속에서 하나님과의 말씀속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십니까?
그 밭을 사고 보면 때로는 불편을 감내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밭속에는 반드시 보화가 숨어있고 그 보화가 여러분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감추어진 보화! 그것은 참으로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요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은 감추어진 보화라고 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얻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자격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 얻을 수 있는게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의 전도내용은 "예수 천당" 이었습니다. 그 천당 때문에 가난해도 좋았고 배고파도 좋았습니다. 모진 핍박과 시련가운데서도 "예수 천당" 때문에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망국의 한을 품고서도 하나님 소망 때문에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순교의 현장속에서도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저 하늘에는 이별이 없네. 저 하늘에는 고통이 없네. 저 하늘에는 죽음이 없네." 승리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참된 보화를 알고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가치를 먹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참된 가치를 알고 살았던 주기철을 먹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의 피를 머금고 한국교회는 지금도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보화를 가치를 복음을 용서의 복음을 알았던 손양원을 우리는 먹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들은 고난의 길을 걸어가며 노래했습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신 자국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 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눈물없이 못가는 길, 피없이 못가는 길, 영문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십자가의 고개턱이 제아무리 어려워도 주님가신 길이오니 내가 어찌 못가오리.
저 언덕 넘어 보화가 있으면 가시밭길이라도 걸어갔습니다. 울며 걸어갔습니다. 피 흘리며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 전도의 메시지 - 예수믿고 복 받으시오. 보화가 희미해졌습니다. 보화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썩을 보화에 속으며 살아갑니다. 보화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게 무엇입니까?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듣지 못한 복음을 듣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그것 가졌다는 행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꿈도 꾸지 못하는 세계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보화를 간직한 행복! 이게 예수믿는 삶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오늘 교회나와서는 많은 사람들이 보화가 부족합니다. 그것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것들을 간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나누어 줄게 없습니다.
뇌성마비 천재소녀 송명희 양의 시가운데 이런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없으나
나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보지 못한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으며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으나 나 남이 없는 것 나 같게 하셨네
값을 알아야
내가 가진 보화의 값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부요한 사람인가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행복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값어치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보석 하나를 얻었습니다. 한 스승이 절대로 팔지말고 값을 알아보라고 했죠. 이 보화의 값이 얼마나 됩니까? 감자 두되를 주지요. 두 번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 보화의 값이 얼마나 됩니까? 소고기 10근을 드리지요. 이 보화의 값이 얼마나 됩니까? 내 가계를 송두리째 드리겠수다. 이 보화의 값이 얼마나 됩니까? 세상 모두를 주고도 얻을 수 없는 보화입니다.
이 보화를 여러분은 간직하고 살아가십니까? 이 보화의 값을 알 때에 이 보화에 눈이 열릴 때에 내가 그 보화를 가진 행복을 내가 깨닫고 살아갈 때에 나는 이 지구상에 있는 60억 인구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이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모든 허물이 깨끗이 덮여지고 용서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천하디 천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고귀한 신분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 인생이 끝난다 할지라도 영원히 아버지 나라에서 살 이 값진 인생을 내가 누리고 삶에도 불구하고 60억 인구 가운데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이 고백을 할 수 없다고 하면 우리는 잘못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의 가치, 내가 누리는 영원한 천국의 가치를 얼마나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1:11에 대한히 비극적인 구절이 한토막 나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이 얼마나 슬픈 기록입니까? 예수님께서 천국 삶을 가지고 이 땅에 찾아오셨으나 사람들이 그 가치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성서신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한 1947년 양치던 목동들에 의하여 사해 부근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입니다. 이것이 발견되어졌기 때문에 가장 원문에 근접된 오늘 우리의 성경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그것이 가죽 두루마리에 기록되어졌기 때문에 목동들은 그것을 잘라서 허리띠를 삼고 신발끈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었더라면 우리는 오늘처럼 값진 성경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철이 없는 아이들은 보화의 값을 모릅니다. 어머니의 금목걸이를 갖다주고 알사탕을 바꿔먹습니다. 미국인들이 아프리카에 갔더니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공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초콜렛 하나만 주면 한보따리씩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왔습니다.
제 아버님은 인천상륙작전에 출전하실 때에 해군 소대장으로 참전하셨다가 적탄에 맞아 피흘려 돌아가신 값으로 "충무 무궁 훈장"을 받으셨습니다. 병석에 계신 내 아버님은 그것을 늘 벽에 걸어놓고 "나는 나라를 위해서 피흘렸으니 너도 나라를 위해서 죽을 수 있어야 된다"고 늘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곤 했지요.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고난 다음 제가 어느날 학교에 갔다 왔더니 철없는 내 동생이 그 "충무 무궁 훈장"을 걷어다가 엿장사에게 갖다 주고 엿 한줄을 바꿔먹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그 무궁훈장을 제가 본 적이 없습니다.
보화가 무엇입니까?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네. 이 노래가 여러분의 진정한 삶의 고백의 노래가 되고 있습니까?
이 세상 명예보다 더 귀하다. 진정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 재물보다 귀하다. 고백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이 누리는 어떤 행복보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고백할 수 있으십니까?
보화를 캐내는 믿음
마 13:44-46 / 박한응 목사(♬ 283, 285, 384, 441, 538, 546)
다 같이 한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보화를 캐내는 믿음」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오늘 13장을 보면 씨 뿌리는 사람, 보화를 구하는 사람, 진주를 구하는 사람,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 사람, 등의 비유를 통하여 가르쳐 주시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어떤 사람이 밭을 갈다가 보화를 발견하고 그 보화를 얻기 위해 가진 소유를 다 팔아서 밭을 샀다는 말씀과, 값진 진주를 구하는 사람이 어느 날 지금까지 세상에서 구경도 해 보지 못한 매우 귀한 진주를 발견하고 재산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샀다는 말씀을 통하여 과연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나 값진 진주를 구하는 사람은 모두 같은 뜻을 띄고 있습니다.
한 가난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보화를 발견하였습니다. 나중에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말씀을 보아서 이 사람이 갈고 있던 밭은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쟁과 도둑들로 인하여 부자들이 보화를 항아리나 금궤에 넣어서 땅에 묻어 두었는데 전쟁에서 가족이 모두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서 주인이 없으면 후대의 농부들이 발견하여 그 보화를 소유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1956년에 베들레헴 근방의 밭에서 수백만 딸라 어치의 보화가 담긴 항아리가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기독교의 진리를 구하고 그 진리를 우리의 실제 생활에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좋은 실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에서 천국의 깊은 진리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보화를 발견한 것은 밭을 갈다가 발견하였습니다.
보화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발길에 채여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처럼 일확천금(一攫千金)을 꿈꾸는 도박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일할 때 그 대가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벌어서 쉽게 향락을 누리려고 합니다. 밭을 간다는 것은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충성스럽게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보화는 물론 천국에 대한 말씀입니다.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자기의 밭을 갈 때에 발견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여기에 기록된 밭이란 바로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대로 사명을 다할 때에, 열심히 일할 때에,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게으르거나 태만하면 절대로 천국의 보화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마11:12)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이와 같이 보화와도 같은 천국과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는 은혜를 받는 것은 자기의 맡은바 사명을 충성되게 지켜 행할 때에 얻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25:21)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2. 보화를 발견하였으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보화를 발견하고서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진리를 깨달은 자에게 오는 기쁨입니다. 그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난 뒤의 감격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기쁨의 신앙입니다. 감격의 신앙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용서받은 기쁨과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감격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말하기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고 이 기쁨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기쁨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복음18:18절에는 어떤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관원에게 먼저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니 관원은 대답하기를 계명은 어려서부터 지켰다고 대답을 하였고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고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이 관원은 영생의 문턱까지 왔다가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그 농부의 소박하고 단순한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사서 그 보화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절대로 남이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이 내 믿음이 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축복이 내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천국은 내가 힘쓰고 애써서 얻는 것입니다.
3. 소유를 다 팔았다는 것은 지금까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천국 가는 길에 지장이 되고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혈기와 욕심과 육성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막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의 사소한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것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은혜 받는 것을 보고 나도 기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은혜 받고 기뻐하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됩니까? 다른 사람이 받는 은혜와 기쁨은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 내가 받은 체험만이 나의 기쁨이 될 수 있고 나의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문제는 내가 은혜 받고 샘솟듯 넘치는 기쁨이 충만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 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가 어떻게 탄생되었고, 그가 누구이며, 어떻게 죽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족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요 나를 위해 피 흘리신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예수를 소유해야 합니다.
이 예수는 인생 최대의 보화입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몰라서 예수를 과소평가하고, 얻으려고 하지 않고, 세상 향락과 바꾸는 어리석은 인생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자신이 보화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예수를 구세주로 알아서 그 보화를 얻기 위해 노력하게 하셨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하게 하였습니다.
천국의 보화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감추인 보화를 발견해서 나의 것으로 소유하는 기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예> 영국 사람들이 처음 아프리카에 갔을 때에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다이아몬드가 보화 인줄을 몰랐습니다. 다이아몬드와 금덩이로 돌팔매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영국 사람들이 사탕이나 초콜릿을 주고 그 많은 다이아몬드와 금덩이를 모두 가져갔습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진리와 하나님의 보화인 예수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갈릴리의 어부들, 세관에 앉았던 마태,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본 백부장, 여리고 성의 삭개오, 빌립보 성 감옥의 간수, 등 이런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예수를 보화로 발견하고 그 예수를 영접하여 믿고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은 보화를 발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였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을 소유한 것입니다. 이 보화를 영원히 빼앗기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4. 얻은 보화를 잘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돈을 벌었으면 어떻게 벌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고 얼마나 벌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번 돈을 잘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렵게 은혜를 받고 그 은혜에 심취되어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 충만한 은혜와 성령이 며칠 못 가서 소멸되어 버린다면 오히려 공허함과 허탈함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받은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혜를 어떻게 오래도록 간직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의 삶은 기쁨과 평강 속에서 살수가 있고, 그 반대로 그 은혜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근심과 불안 속에서 살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받은 은혜를 잘 보존할 수가 있겠습니까?
(1) 계속해서 충전을 시켜야 합니다.
배터리는 사용만 하면 안 됩니다. 충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충전이 되지 않으면 수명이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또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오래 두면 방전이 되어서 전기가 모두 새나가고 맙니다.
충전 방법은 항상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생활을 통해서 얻을 수가 있습니다. 매일 새벽, 매일 밤, 매주 주일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은 능력과 권능으로 역사 해 주셔서 항상 은혜 충만, 성령 충만, 말씀 충만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2) 받은 은혜가 새나가지 않도록 단속을 잘 해야 합니다.
은혜를 잘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롬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
기도로써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며 믿음의 생활을 지속해 나갈 때 받은 은혜는 오래 오래 계속 될 수가 있습니다.
다 같이 찬송을 한 절 부르겠습니다.
<찬285장1절>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참 기쁘고 복 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3)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시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영감을 주셔서 깨닫게 하시고 새로운 생수와 같은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수1:8)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시119:147)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4) 방해하는 모든 사탄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사탄은 성도들이 은혜 생활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방해합니다. 어떤 때는 강하게 환난과 핍박을 주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부드럽게 유혹을 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사탄의 방해를 이기지 못하면 받은 은혜는 소멸되고 기쁨은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과 저주가 오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받은 은혜를 오래 오래 간직하여 기쁨과 소망과 평강이 넘치는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5. 얻은 보화는 잘 운용하고 활용을 해야 합니다.
얻은 보화는 잘 간직만 해서도 안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달란트의 비유가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는 받은 즉시 가서 장사를 해서 갑절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보관은 잘 하였으나 활용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주인으로부터 책망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가진 것도 빼앗기고 어두움에 쫓겨났습니다.
(마25:28-30)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그러나 잘 활용한 사람들은 칭찬과 상급을 받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받은 은혜 그리고 구원의 확신, 기쁨, 감격은 그냥 나만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활용하고 운용을 잘 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이익을 남겨야 합니다.
내가 받은 구원, 내가 받은 은혜를 활용한다는 것은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열매 맺히는 생활입니다. 주님은 결코 나만이 은혜 속에 감격해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지금 나만이 구원받았다고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 아니라 아직도 이 기쁨과 구원의 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활용하고 운용하는 것이요 많은 이익을 남기고 열매를 맺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받은 은혜와 축복과 하늘의 보화를 땅속에 묻어두지 마시고 이제부터는 많이 활용하여 금년에는 많은 이익을 남겨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익을 남길 때 주인 되시는 주님께서는 더욱 기뻐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 상급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그 보화를 내 것으로 만드는 데는 희생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얻어진 보화를 잘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활용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구원의 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믿고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나의 생활에 활용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이제부터는 받은 은혜를 교회 안에서 만의 은혜가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변하고, 일터가 변하고, 생활이 변하고, 가정이 변화 될 것입니다. 날마다 충만한 은혜와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믿음이 작은 겨자씨 같았으나 점점 자라서 온갖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큰 나무와 같이 성장 될 것입니다.
(마13:31-32)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늘을 주고, 또 깃들일 수 있는 처소를 제공해 주며, 열매를 제공하는 보람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심령의 배터리를 충전시키고, 충전된 에너지를 방전되지 않도록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새로운 영감을 받아 날마다 날마다 충만 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죄 많은 곳에 은혜가 있고, 은혜 있는 곳에 사탄의 역사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은혜의 생활을 하다보면 사탄의 시험이 옵니다. 이럴 때 가장 모범적인 욥의 승리를 바라보면서 여러분들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이기는 자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서 먹게 하리라”(계2:7) 고 하셨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계2:10) 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악합니다. 공중 권세 잡은 사탄들이(엡2:2), 자기들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계12;12),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넘어뜨리려고(마24:24), 우는 사자와 같이 울부짖고(벧전5:8)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근신하여 깨어서 기도할 때입니다(롬13:11,벧전5:8).
아무쪼록 이 시대에 깨어서 기도하는 기도의 파수꾼이 되어서, 날마다 기쁨이 넘치고,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 멘>
감추인 보화
마 13:44-46 / 이동휘 목사
1. 천국은 <감추인 보화>, <극히 값비싼 진주>를 찾듯이 구하고 찾는 자에게 천국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루드는 1905년 미국 조지아 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정 형편상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루드는 국민 학교만 간신히 졸업하고 도시로 나갔습니다. 신문배달, 구두닦이, 공장 잔심부름 등등 닥치는 대로 일하기를 3년, 덕분에 집안 형편도 좀 나아지고 루드도 작은 병공장에서 정식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공장 옆에서 자취를 하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의 일은 끓는 유리액을 금형에 부어넣어 병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여자친구도 생겼습니다. 이름은 주디였습니다. 어느 날 주디가 신문광고를 오려다 주었습니다. “코카콜라 병 현상모집 최하 백만 달러에서 최고 천만 달러” 코카콜라는 그 무렵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새로운 음료였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내건 현상금은 루드가 평생 동안 공장에서 일한다 해도 손에 쥐기 어려운 거액이었습니다. 루드는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주디, 이건 하늘이 준 기회야. 공장을 그만두고서라도 내 손으로 꼭 이 병을 만들고 말테야!” “루드, 그럼 안돼. 제발 부탁이야.” “6개월 후에 다시 찾아와. 어서 돌아가!” 한번 마음먹으면 끝내 이루고야마는 루드의 강한 집념을 잘 아는 주디는 말없이 돌아갔습니다. 코카콜라 회사가 제시한 조건은 퍽 까다로웠습니다. 우선 모양이 예쁠 것, 둘째 물에 젖어도 미끄러지지 않을 것, 셋째 보기보다 양이 적게 들어 갈 것. 루드는 회사측이 제시한 조건에 꼭 맞는 병을 만들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드디어 6개월째 되는 날, 주디가 찾아왔습니다. “루드! 나야, 주디.” 하지만 루드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병은 완성되기는커녕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못 들은 체하다가 어쩔 수 없이 용기를 내어 주디를 바라본 루드는 소리쳤습니다. “잠간! 주디, 그대로 서 있어!” “왜 그래, 루드?” 루드는 재빨리 주디의 모습을 스케치했습니다. 그때 주디는 최신 유행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엉덩이의 곡선이 아름답게 드러나는 통이 좁고 긴 주름치마가 그것이었습니다. 루드는 그 아름다운 곡선과 치마 주름에서 번개같이 스치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주디! 어때? 정말 예쁘지? 이제 됐어!” 이튿날 루드는 견본을 만들어 코카콜라 회사 사장을 찾아갔습니다. “사장님! 이 병은 모양도 예쁘고 물에 젖어도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이 병의 권리를 채택해 주십시오” 그러나 사장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예, 참 좋은 병입니다. 그러나 가운데 볼록한 부분이 있어 양이 많이 들어갈 것이 틀림없소 유감스럽지만 이 병은 안되겠습니다.” 루드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사장님! 제발 한 가지만 더 보아주십시오” “그럼 빨리 용건만 설명하시오” “제 병과 사장님의 물컵 중 어느 것에 더 많은 물이 들어갈까요?” 루드는 사장 앞에 놓인 물컵을 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당연히 당신의 병에 많이 들어가지 않겠소?” 루드는 침착하게 병에 물을 가득 채운 다음 다시 컵에 따랐습니다. 그러자 겨우 컵의 80%밖에 채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사장은 얼굴빛을 달리하며 무릎을 쳤습니다. “루드, 내가 너무 경솔했구려. 당장 당신의 권리를 채택하겠소”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루드가 받은 돈은 6백만 달러. 그때 루드의 나이 불과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콜라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코카콜라의 트레이드 마크인 주름잡힌 여체 모양의 병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습니다. 하루아침에 백 만장자가 된 루드는 주디와 결혼하여 고향에서 유리제품 공장을 운영하며 여생을 그야말로 윤택하게 보냈다고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7:7-8)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감추인 보화>, <지극히 값비싼 진주>가 되는 천국의 보화를 얻으려고 구하고 찾으며 두드리는 사람마다 그것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전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천국은 어떠한 희생을 치루고서라도 손에 넣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와 삶의 행복이 천국을 소유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천하를 얻는다 해도 예수를 믿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하를 잃는다 해도 예수만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감추어진 보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삶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천국의 보화가 충만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같다고 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 지역은 약탈(plunder)이 빈번하고 오늘날의 은행과 같이 재물을 맡길만한 공식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그곳 주민들은 자기의 소유를 땅에 감춰두는 예가 흔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화, 보물을 발견한다는 것은 일생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화로 비유한 것은 하나님 나라가 최상의 가치를 지녔다는 뜻입니다. 한편 랍비 율법에 따르면 만일 일꾼이 밭에서 일하다가 보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파내었으면, 그 보물은 당연히 그 밭주인의 소유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밭주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기가 그 밭을 살 때까지 보화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그 보화를 파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그 밭 값이 얼마이든, 그 어떤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반드시 그 밭을 완전히 사들일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사람은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그 밭을 삼으로써 결국 치른 대가보다 훨씬 더 크고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보화는 왜 감춰져야만 했는가? 하나님께서 그 보화를 사람들이 찾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 감추신 것이 아닙니다. 그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그 보화가 인류에게 최고, 최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실제 금은보화, 그 어떠한 보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리고 사람들이 그 어떠한 값을 치루고서도 얻을 수 없는 그러한 보화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롭고 의롭다고 생각하여 보물을 찾아 나서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물이 결코 발견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자신이 소유한 사상이나 철학, 종교만이, 최고의 진리라고 믿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실제 소유만이 최상의, 최고의 가치라고 믿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떠한 것보다 최고의, 최상의 가치있는 보화, 보물이라고 말하면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할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그러한 것에 대해 감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 감추인 보화인 것입니다. 이들은 영원한 삶과 부활에 대해 완전히 무감각하기 때문에,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아무리 열심히 권고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골2:2-3)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보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생명을 찾으려는 자에게는 너무나도 쉽게 발견될 수 있는 일상의 삶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인간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최고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말하면 꺼려하거나 미련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1:18-24)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참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감추인 지혜, 감추인 보화입니다. 사람의 지혜는 일시적이며 궁극적인 결실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고상해 보일지라도 인생을 속이기도 하며 결국 멸망을 자초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는 불신자들에게는 비록 미련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생명을 구원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 수학자 피타고라스, 로마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세네카, 여류시인 사포,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설국>의 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 프랑스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음악가 로버트 슈만 등은 당대의 존경받는 지성인들이었지만 모두가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지식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마저 악마에게 팔아 넘긴 <파우스트>는 “나는 세상의 모든 학문을 통달했으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독백합니다. 주님은 인생의 행복과 인간의 문제가 지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고전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인간은 다 죄인인 만큼 모두 다 자신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고 죄 사함을 얻은 후에야 인간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구세주이심을 알게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어야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알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은 사람도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러나 글을 아주 모르는 사람도 예수 믿고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지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성령으로라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2:10-11)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신령한 감동이란 오직 받는 자만이 아는 것입니다. 인류의 구원자라면 큰 권력이나 세력이나 영광의 소유자라야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그가 어떻게 구주가 되느냐?’ 고 세상 사람은 의문을 가집니다. 십자가는 사형도구로서도 가장 천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못박아 죽이는 형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구원의 도라고 말할 때에 이 세상 사람은 어리석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는 이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감추인 보화입니다. “십자가의 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 “십자가의 도”를 통해 장차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장차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그들을 그 나라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가진 자와 지혜 있는 자, 권력자들을 부끄럽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되는 십자가만을 자랑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므로 “(고후6:8)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만 하는 최고의 가치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사죄(赦罪)의 은총과 죄에서의 해방된 삶, 곧 천국의 삶인 것입니다. 이러한 값진 진리를 발견한 사람의 기쁨은 족히 비교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한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어째서 선한 일을 나에게 묻느냐? 선한 분은 한 분밖에 없다. 네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켜라.’ ‘어느 계명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저는 이 모든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아직 저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네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나 그 청년은 재산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그 자리를 떠나가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가는 것이 영생,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최고의 삶인데, 그 청년은 자신의 소유가 최고의 가치로 여겨져 값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그 청년에게 있어 하나님 나라는 감추인 보화였습니다.
(마19:21-22)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어떻게 보면, 그 청년은 보물이 무엇임을(온전하여지는 것) 알고 그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한다는 것을 배웠으면서도 이미 획득한 가치들, 즉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 믿고 사는 사람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무엇을 소유하고 사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나뉘어 집니다. 마치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릇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부자 청년은 이 세상에서는 온갖 보화를 가득 소유했을지 몰라도 천국의 보화는 소유하지 못한 불행한 인생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같은 사례를 두고 제자들에게 비유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쉬우니라.”
그러나 여러분이 천국에 들어가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감추인 보화처럼, 극히 값진 진주처럼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영국 국회의원 중에 윌리엄 글래드스턴이라는 농담을 잘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한번은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을 넘을 때 손에 들고 있던 포도송이 하나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세관원은 그에게 “과일은 못 가지고 들어간다.”라고 호령했습니다. 한참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글래드스턴은 포도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다 먹은 후에 “지금도 안 되겠소?” 하고 따지니까 세관원은 웃으며 “이젠 포도와 당신이 일체가 되었으니 입국을 허가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하늘 나라 입국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마음의 빈 항아리에 기쁨의 포도주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득히 채우시면 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눅17:20-21)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마음의 천국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 원하신다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그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사들일 만큼 값비싼 것입니다. 천국은 <감추인 보화>, <극히 값진 진주>와 같아서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귀중한 것입니다. .
천국은 <감추인 보화>입니다. 자기 소유를 몽땅 팔아서라도 살만한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그 가치의 귀중함을 아는 사람만이 아는 그야말로 <감추인 보화>입니다. 여러분은 금세와 내세에 아울러 천국을 소유한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전 재산을 다 털어 넣고도 살 수 없을 만큼, 무궁하며 영원한 가치가 있는 <감추인 보화> 천국을 간단히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예수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성경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천국은 <감추인 보화>, <극히 값비싼 진주>를 찾듯이 구하고 찾는 자에게 천국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 감추인 보화>, <지극히 값비싼 진주>가 되는 천국의 보화를 얻으려고 구하고 찾으며 두드리는 사람마다 그것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전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천국은 어떠한 희생을 치루고서라도 손에 넣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와 삶의 행복이 천국을 소유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천하를 얻는다해도 예수를 믿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하를 잃는다해도 예수만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감추어진 보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삶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천국의 보화가 충만하여 행복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면
마 13:44-46 / 유재영 목사(대공원교회)
요즘 낮은 층은 엘리베이터 대신에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매일 계단을 오르는 운동이 유산소운동과 근육강화운동을 동시에 해줘서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 때문입니다. 건강에 관심이 많습니다. 몸에 이상 신호가 생기면 의사를 찾아가죠. 그 때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병원을 다녀보니까 의사도 유능한 의사와 무능한 의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차이점을 생각해 봤습니다.
수술을 잘 하고 못 하는 것도 기준이 되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오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의사는 환자의 증상을 듣고 이런 병으로 의심이 되니까 대형병원에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줍니다. 소견서를 받는 순간 입맛도 사라지고 혹시나 하는 염려가 시작되죠. 반면에 어떤 의사는 환자의 증상을 듣고 이런 병으로 보이니까 검사를 해 보죠 하고 그 자리에서 치료해 주는 의사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의사들의 오진이 많습니다. 2008년에 나온 미국 의학협회 논문에서는 의료진의 오진이 10~15%라고 보고했습니다. 10건 중 한 건 이상이 잘못된 진단이라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 비율을 적용하면 연간 수백만 건의 오진이 이루어진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난 해 메르스 때 모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를 폐렴으로 오진해서 사태가 커졌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목사도 유능한 목사와 무능한 목사가 있습니다.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소견도 기준의 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같은 성경 말씀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다릅니다. 특별히 비유에 관한 말씀은 알레고리적 해석과 문맥적 해석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해서 성경을 오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포리즘’과 ‘비유’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아포리즘은 인생의 깊은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기록한 짤막한 경구로서, 예컨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같은 형식의 가르침입니다. 비유는 어떤 진리나 도덕적인 교훈을 전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짤막한 이야기 형식을 갖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아포리즘과 비유를 적절히 사용해서 사람들에게 교훈을 줬습니다.
예수님의 교훈 중 가장 중요한 주제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개념적으로 설명하면 모든 생명이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더불어 사는 평화의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이 서로 소통하며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한 자가 공의와 정직과 겸손으로 다스리는 때가 되면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이끌리고, 암소와 곰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땐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고 묘사했습니다(사 11:3-9).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하나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묘사했습니다(엡 2:14-19).
오늘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일곱 가지 비유도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통일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비유를 해석하는 사람이 본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물질 등에 일일이 영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분석하고 해석하면 본래의 뜻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결론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의 첫 비유인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를 예로 들겠습니다. 예수님은 길 가, 흙이 얇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네 종류의 마음 상태를 말씀하셨습니다. 씨가 뿌려진 네 종류에 대한 비유를 풀어주시면서 말씀을 듣고 깨닫는 좋은 땅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천지는 예수님이 항상 비유로만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면서 씨는 말씀, 밭은 사람의 마음 혹은 교회, 나무는 사람, 가지는 제자, 열매는 말씀과 성도, 새는 영으로 비유를 풀어 가르치고, 이러한 비유풀이를 기억시키기 위하여 노래로 만들어 암송하게 하거나 시험을 보기도 합니다. 자기들이 해석하는 이 비유를 모르면 구원이 없다고 하면서 비유를 풀어 이만희가 구세주라는 결론으로 마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신천지가 친절하게 해석을 하지 않아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후에 비유의 뜻을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나 좋은 진주를 구하러 다니다가 가장 좋은 진주를 발견한 상인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 자체에 비유의 뜻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좋은 진주를 발견한 상인이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사듯이,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그 나라를 사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요즘에는 보물을 금고나 은행에 보관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장 안전한 금고는 땅에 숨기는 것이었습니다. 보물을 땅에 파묻음으로써 도적들에게 도난당하거나 적군의 침략으로 강제로 탈취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과 약탈이 빈번하던 시절 이스라엘 사람들도 보물을 땅에 감춰두고 피난을 떠났다가 돌아와 되찾는 예가 흔했습니다. 그러다가 주인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죽는 경우에는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다가 밭에서 일하던 사람이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34kg짜리 진주가 필리핀 어부의 침대 밑에서 잠자다 10년 만에 세상으로 나왔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10년 전 닻에 걸린 큰 조개에서 꺼낸 진주를 침대 밑에 두고 행운의 부적으로 사용하다가 이사를 가게 돼서 관광청에서 일하는 친척에게 맡겼다가 알려졌는데 진품이면 가치가 천억을 호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은 일생에 한 번 있을까 할 정도로 희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이 그 집을 사러갔는데 주인이 이거 행운의 부적이니까 놔두고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채를 써서라도 집을 사겠죠. 이처럼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예수님의 설명 방식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가진 것을 다 팔라는 말씀이 비현실적인 요구처럼 들립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우리 중에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암도 없습니다. 이 비유는 밭에 감추인 보물을 발견한 사람,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이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밭과 진주를 사듯이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불신자들에게는 감추어진 비밀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조롱하지만, 들을 귀가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입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며 율법에 비추어 볼 때에도 흠이 없는 사람으로 자부했던 바울은 그동안 자신에게 유익했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다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나에게 자랑이었고 유익하던 그 모든 것들보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를 아는 지식이 훨씬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에 대해 질문했던 부자 청년은 달랐습니다. 그는 바울 못지않게 율법의 모든 계명들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았습니다. 영생에 대한 궁금증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청년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가진 재물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영생이라는 보물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 있는 것들을 포기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를 용기가 없어서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고 마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평생 배우고 실천한 율법과 학문적 소양이 그의 인생에 쓸모없는 쓰레기였을까요? 아닙니다. 그의 뛰어난 학문과 지식 그리고 몸에 밴 경건한 삶의 습관은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 효과적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에게는 누구보다 율법을 잘 이해하는 유대인으로서,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그들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사상이나 철학보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비교할 수 없이 고상함을 변론하고 증명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폭동으로부터 신변을 보호받고 황제 앞에서 나의 죄에 대한 정당한 심판을 받겠다고 호소하는 근거로 로마 시민권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힘써 수고하여 얻은 소중한 재물이나 학문과 재주를 나의 삶을 만족시키고 데에만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이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실천하라입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연습을 더해야 합니다. 첫째, 교회 구성원 모두가 말씀 앞에 굴복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만을 앞세운다든지, 타고난 기질대로 행동한다든지, 자기 경험만을 고집해서는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낼 수 없습니다. 말씀이 우리 생활의 기준이 되고, 말씀이 우리 판단의 권위가 되고, 그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낼 수 있습니다.
둘째, 각 사람이 자기 책임을 다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평화는 깨집니다. 부모가 부모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자식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가정의 평화는 깨집니다. 목사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성도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교회의 평화가 깨집니다. 공직자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나라의 평화가 깨집니다. 우리가 자기 책임을 다하는 연습을 해야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낼 수 있습니다.
셋째, 용서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신앙 공동체로 기억되는 초대교회도 역시 사람들이 모인 곳인지라 갈등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생겼을 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입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수를 할 때가 많고,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가 아니면 깨어진 평화를 회복할 수 없고, 용서가 아니면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하고, 용서받는 연습을 해야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그 나라를 일구어내기 위해서 사랑과 신뢰라는 토대 위에 말씀에 순종하는 연습, 자기 책임을 다하는 연습, 서로 용서하는 연습을 더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 말씀에 순종하는 것, 책임을 다하는 것, 서로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얼마나 우리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입니까? 하지만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증언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다른 길을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사랑하고, 순종하고, 책임을 다하고, 용서하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삶을 맛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는 이런 것이라고 세상에 증언할 수 있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마 13:44-46 / 이동휘 목사(평강교회)
1. 오늘 본문 마태복음 13:44에는 “밭에 감추인 보화”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란 어떤 보화입니까? 원래 유대 민족은 소수 민족이기 때문에 역사를 흘러 내려오면서 강대한 나라로부터 수없이 침략받아 약탈당했습니다. 약탈당할 때마다 부자들은 피난을 가면서 재산 중에 일부 값진 물건이나 보화들을 자기 땅 속에 파묻어 두고 갔습니다. 다행히 침략이 그치고 적들이 물러나게 되면서 피난갔던 부자들은 자기 집으로 되돌아와 보화들을 캐내어 그것들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되돌아오지 못하게 되면 그 보화는 땅 속에 감추인 보화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 미국 복권 ‘파워볼’ 당첨금이 무려 15억달러(2조원)로 불었다가 드디어 3사람이 당첨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20회 연속 무당첨으로 지난해 11월 7일 이후 20회 연속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지난 13일 당첨금은 미 복권 역사상 최대 금액이 된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복권을 사기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하루 복권 매출액이 2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저마다 자신이 당첨될 것을 소망하며 2불짜리 복권을 구입하는데 당첨확률은 2억 9220만분의 1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벼락맞을 확률인 96만분의 1보다 훨씬 낮은 확률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상 최고액의 복권 당첨자가 나온다 하더라도 진정한 승자는 복권 당첨자가 아니라, 미국 정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전체 복권 판매 금액의 약 3분의 2가 정부(중앙정부와 주정부를 합쳐) 수입으로 귀속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총 판매금액의 25%를 세금으로 거둬들이게 됩니다. 당첨자 받게 될 실제 받는 액수는 당첨금의 32%에 불과합니다. 막대한 당첨금에 대한 높은 세율의 세금을 중앙정부에 납부해야 하며, 주정부에도 별도의 세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첨자들은 대부분 일시금 지급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목돈을 손에 쥐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당첨자들이 돈을 흥청망청 낭비하거나 잘못된 투자 등으로 거금을 날려버려 대박이 아닌 쪽박신세로 전락하기도 해 ‘대박’이 아니라 ‘저주’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대박을 꿈꾸며 로또 열풍에 휩싸이는 것은, 엄청난 당첨금의 유혹으로 잘하면 한 번에 인생역전을 할 수도 있다는 환상과, 한 두개만 더맞거나 한 끝차만 맞았어도 1등이 됐을거라는 착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복권제도가 먼저 생긴 미국에서 당첨자들의 나중 행복도를 조사해본 결과 더 불행해진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우리 돈으로 무려 287억원에 달하는 복권에 당첨된 남성이 12년 후 땡전 한 푼 없는 거지가 돼 쓸쓸히 고독사한 사연이 알려졌습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천국과 지옥을 오간 이 남성의 이름은, 미국 켄터키주 애슐랜드 출신의 데이비드 리 에드워즈(58·작고)입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사연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강도짓으로 수차례 교도소를 들락거린 에드워즈는 미국 로또 ‘파워볼’에 당첨돼 무려 2700만 달러(약 300억원)를 거머쥐며 순식간에 ‘팔자’를 고쳤습니다. 화려하고 알찬 인생설계를 위해 재정설계사와 변호사까지 고용한 것도 잠시. 그의 흥청망청 돈쓰기는 당첨 직후 부터 시작됐습니다. 에드워즈와 부인 쇼나는 당첨 얼마 후 플로리다에 160만 달러(약 17억원)에 달하는 저택과 190만 달러(약 20억원)짜리 자가용 비행기를 구매했습니다. 또한 슈퍼카 람보르기니를 포함 12대가 넘는 고급차를 사들여 이웃들이 자동차 딜러로 착각했을 정도였습니다. 이외에도 그는 다이아 반지, 명품 시계 등으로 몸을 치장했으며 취미생활로 골동품 칼, 갑옷 등을 소위 ‘폭풍 구매’ 했습니다. 이렇게 쓴 돈이 1년 만에 무려 1200만 달러(약 130억원)였습니다. 돈쓰는 재미에 푹빠진 에드워즈는 이후 마약에까지 손을 대 수차례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신세가 됐습니다. 결국 마르지 않는 샘 같았던 그의 재산도 5년여 만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지난 2007년에는 부인까지 작별을 고하고 떠나갔습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애드워즈의 유일한 혈육인 딸 티파니는 페이스북에 “아빠가 보험은 커녕 단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고 썼습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당첨 5년여 만에 무일푼이 된 에드워즈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몇 천 달러의 빚만 남긴 채, 최근 지역 보호시설에서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복권이 마치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것처럼 구매를 거듭하는 사람들의 종말은 실로 불행과 비참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복권 당첨은 ‘대박’이 아니라 ‘날벼락’같은 ‘저주’에 가깝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B.C. 587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기 1년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각종 우상숭배와 죄악이 가득한 유다에 대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시고 유다 왕 시드기야와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패망가운데 사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의 침략을 하나님의 채찍으로 알고 달게 받아들여 매를 순히 맞으라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벨론에 순순히 포로로 끌려가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동안 바벨론을 섬기며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이를 거역해서 바벨론에 저항운동을 하거나 다른 강대국인 애굽으로 도망치게 되면 반드시 칼과 염병이 뒤쫓아가 죽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같은 하나님 말씀을 전해야만 하는 예레미야는 아픈 가슴과 흐르는 비통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그 길만이 나라 백성이 사는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기까지 바벨론에 대해 항전하라며 애국심을 고취해도 모자라는 처지에, 소위 하나님을 섬긴다는 선지자가 고작 하는 말이, 바벨론에 항복하는 길만이 사는 길이라고 외치고 있으니, 전하는 자도 괴로웠고 듣는 자들도 하나님 말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예레미야의 이같은 행위는 역적 매국노로 인식되기에 충분했습니다. 망할 때는 망할지라도 결사항전을 외치며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는커녕, 바벨론에 항복하는 길만이 사는 길이라며, 굴욕적이고 자존심 상하는 예언에 대부분이 심한 분통을 터트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다 당하고 투옥되었습니다. 그때에 사촌 하나멜이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를 찾아왔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땅을 살 권리를 주는 법에 따라, 아나돗에 있는 그의 밭을 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 와중에 땅을 사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나라가 다 없어지고 모두들 포로로 사로잡혀 갈 판인데 땅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루살렘 근교에 있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땅, 투자 가치도 없는 땅에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매국노로 몰려 감옥에 갇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밭을 사라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설사 돈이 남아 있어 그 밭을 사둔다 해도 나라가 바벨론에 넘어가면 그 땅 증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밭을 샀습니다. 그것도 망하는 판국에 헐값으로 매입한 것이 아니라, 은 십칠 세겔 정가를 다 치르고, 계약서를 쓰고, 증인들을 세우고 인봉하는 절차를 어김없이 행하여 그 밭을 샀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밭을 산 것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렘32:8) (8)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나에게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예레미야가 패망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밭은 사둔 것은,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렘32:15)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레미야는 아내도 자식도 없습니다. 때문에 땅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죄수의 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대 전 지역이 폐허가 되고 바벨론 사람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는 상황에서 땅을 산다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땅을 사들였습니다. 이는 유다가 비록 지은 죄에 대한 징계로 멸망당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유다가 회복되고 다시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상징적인 계시입니다. 곧 예루살렘이 장차 회복이 될 것이라는 상징입니다. 나라가 망하면 매매증서는 필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매증서를 쓴 이유는, 언젠가는 유대 땅을 확실히 되찾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백성으로 하여금 회복된다는 소망을 주기 위하여 증서 2통을 만들어 열람하도록 한 것입니다. 더불어 그는 이 증서를 만방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는 땅을 산 자신의 어리석음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나라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예레미야가 사들인 밭은 예레미야와 유대 민족에게 꿈과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나라의 패망직전에 밭을 산다는 것은 고도의 투기도, 땅에 대한 미련도 집착도 아닙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밭을 산다는 것은 소망하는 믿음, 기다리는 믿음의 표현이고 고백인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엄청난 절망의 파국이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는 행위였습니다. 비록 예레미야 자신은 애탄과 한숨과 고통 속에 쓰러져 버린다 할지라도, 마침내 이루고야 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를 예레미야는 이렇게 믿음의 고백을 드렸습니다. 예레미야33:2-11입니다.
(렘33:2-11)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2,3절).....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로 돌아와서 처음과 같이 되게 할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9-11절)
비록 유다가 죄악때문에 망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멸망한 이후에 되어질 모든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유다의 멸망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유다의 회복과 축복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다 망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잠시 70년동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고통을 받게 되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70년 복역의 기간에 지나면 다시 돌아와서 그 옛날처럼 농사를 짓고 정상적인 토지 매매가 성행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를 아시고 은혜 가운데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망할 때 망하는 것밖에 보지 않습니다. 사업이 기울어질 때, 가정이 기울어질 때, 나라가 기울어질 때, 사람들은 망하는 환경만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는 실패나 망하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성도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망할 때, 망하는 것만 보지만, 하나님은 망한 뒤의 회복과 축복을 약속하시고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회복을 믿었습니다. 내일의 희망을 바라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때로는 실패하고 환난을 당하여 어렵고 힘들 때는 마치 망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인간적으로 패가망신한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회복과 축복에 대한 꿈과 소망을 더욱 깊이 간직하시고 사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는 아무도 결단할 수 없는 일, 밭을 사라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는 민족의 멸망을 예언하면서도 멸망 저 건너편에 있는 하나님의 회복의 손길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민족의 회복과 소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일의 회복과 축복을 믿으며 값진 투자를 하면서 오늘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예레미야와 같이 오늘의 현실이 어렵고 힘들어서 아무리 불안하고 불확실해도, 내일의 하나님의 회복과 축복을 믿고, 믿음으로 내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투자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의 회복과 축복을 성취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인생을 어디에다 투자하고 사십니까? 투자할 만한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여러분의 형편 처지가 어떠하든 있는 모습 그대로 여러분의 회복과 축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당시, 땅 속에 감추인 보화는, 오랜 후에 밭을 가는 농부에게나 집을 짓는 건축자에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건축업자는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그것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알려지지도 아니하고, 눈에 띄지도 아니하였던 보화였는데, 그것이 여러분의 눈에 띄어서 여러분의 소유로 만들어 버린 경험들을 혹 가져본 일이 있습니까? 오늘날 이 세상에는 숨겨진 보화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숨겨진 보화들을 보화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을 만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모든 인생 가운데 약 10%만이 완전 실패자로 살아가고, 80%의 인생은 대중 속에 파묻혀서 꿈과 비전이 거의 없는 범인으로 살다가 죽어가며, 나머지 10%의 인간들만이 인생의 위대한 성공자로, 또는 발명가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상에서 말한 10%의 완전 실패자와 80%의 평범한 대중과 나머지 10%의 성공 인생 중 어느 부류의 인간으로 오늘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십니까? 시몬과 안드레는 고기 낚는 어부로 살다간 사람 낚는 어부로 인생이 역전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허영, 교만, 위선, 아부, 교활 ,불평, 추악 등의 일곱 마귀에게 사로잡혀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고귀한 봉사자로 그의 삶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삭개오는 세금 약탈자로 죄인취급받아 유대 사회에서 버림받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부정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멸시하던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영광된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가장 값진 보화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천국은 그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사들일 만큼 값비싼 것입니다. 천국은 <감추인 보화>, <극히 값진 진주>와 같아서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귀중한 것입니다. 1947년 봄, 약 2000년 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성경사본이 사해근처 쿰란 동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타임즈지(1949.8.9)에 실린 기사 내용입니다.
“염소 한 마리가 와디 쿰란의 가파른 바위 언덕에서 풀을 찾다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베두인 족 목동이 길 잃은 염소를 찾다가 호기심이 가는 크고 캄캄한 동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목동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동굴 속에 던져보았습니다. 뭔가 부딪쳐서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쩌면 기대치않은 물건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싶어 돌아가 친구 하나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용감하게 조그마한 동굴 구멍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희미한 햇빛에 꽤 큰 항아리들을 발견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조금 전 던진 돌멩이에 깨져있었습니다. 깨진 항아리 조각들을 치우고 항아리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들을 조사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금덩어리대신에 그들이 알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었던 글씨로 덮힌 두루마리 몇 개를 끄집어 냈습니다. 그러나 그 두루마리는 어떤 금덩어리보다 훨씬 값지고 위대한 보물이었습니다.” 그 베두인 목동은 베들레헴의 어느 한 골동품 상인에게 몇 천 원을 받고 몰래 팔아넘겼습니다. 저명한 성서 고고학자에 따르면 그 두루마리야말로 현존하는 히브리 사본 중 최고본(最古本)으로, 구약 사본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사본을 값으로 치자면 대략 3억 5천만원 정도입니다. 사해사본 두루마리가 그렇게 엄청난 가치를 지닌 줄을 몰랐던 목동은 돈 몇 푼에 그것도 몰래 팔아 넘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목동이 자신이 발견한 두루마리의 가치를 알았더라면, 그야말로 <감추인 보화>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시쳇말로 유목민 팔자 고쳤을 것입니다. 천국은 <감추인 보화>입니다. 자기 소유를 몽땅 팔아서라도 살만한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그 가치의 귀중함을 아는 사람만이 아는 그야말로 <감추인 보화>입니다. 여러분은 금세와 내세에 아울러 천국을 소유한 행복한 성도들입니다. 여러분의 전 재산을 다 털어 넣고도 살 수 없을 만큼, 무궁하며 영원한 가치가 있는 <감추인 보화> 천국을 간단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소유했습니다. 감추인 보화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2. 감추인 보화를 통해 삶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까지는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했습니다. 첫째 단계는 기쁨이 충만한 생활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3:44을 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라고 하였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처음 모습은 굉장히 기뻐했던 것입니다. 왜 기뻐하였겠습니까? 첫째는, 값진 보화가 밭에 감추어져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이런 보화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고 자기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이 보화가 값으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고가의 진귀한 보화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이러한 기쁨,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기쁨이 있었습니까?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금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된 것은, 은이나 금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기 때문에, 값으로 계산할 수 있는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1:7, 18-19을 보겠습니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1:18-19)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얻게 되는 생명이나 구원의 약속, 신령한 지혜와 지식, 은혜와 은사, 영생과 천국, 그리스도의 말씀과 복음 등은, 이 세상 그 어떠한 값을 치룰지라도 얻을 수 없는, 실로 이만저만한 보화들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보화, 곧 세상 사람들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 진귀한 보화들을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줄을 알아야 하고, 또 기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4-5절을 보면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에는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정말 잘 믿는 사람의 얼굴에는 근심과 탄식이 사라지고 기쁨과 환희가 충만하게 깃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리고에 가셨을 때입니다. 그곳에는 백성들로부터 지탄을 받아 죄인 취급받으며 왕따 당하는 세리 삭개오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빼곡하게 둘러섰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을 보고자 했으나 키가 매우 작아 할 수 없이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뜻밖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삭개오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급히 내려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눅19:8)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에 예수께서 삭개오에게 “(눅19:9-10)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니 자기 재산을 포기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보화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여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처럼 샘솟듯 하는 기쁨과 환희 가운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을 약속을 받은 성도 여러분도, 이처럼 감격적인 기쁨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천국,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된 것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화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말씀에 따르는 삶의 축복을 경험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19:7-10)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실로 다윗은 아무리 많은 순금보다 하나님 말씀을 더 귀하게 여기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감추인 보화로 여겨 마음에 담고 기쁨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신 성도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순금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기쁨이 충만한 신앙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다음으로, 감추인 보화를 얻으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야만 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13:44을 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기 소유를 판다는 말은 그릇을 깨끗이 빈다는 뜻이 있고, 또 하나는 보화를 위해 거추장스러운 것을 다 버려야 한다는 포기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맑고 깨끗한 생수를 항아리에 담으려면, 그간 항아리에 담긴 모든 내용물을 다 버리고 그릇을 깨끗이 해야만 합니다. 또 우리가 진정 고가의 물건을 사들이거나 진귀한 보물을 내 손에 넣으려면, 그만한 밑천을 만들기 위하여 이것저것들을 내다 팔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손가락에 끼었던 다이아반지나 금패물, 등 등을 다 팔아야 하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일종의 포기이며, 또 희생입니다. 아까워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최고의 보화인 줄로 여기고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려면 때때로 내가 지금까지 지니고 살아왔던 나의 주의 주장이나 혈기, 고집, 자아중심주의, 명예, 자존심, 등 등을 다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일에 방해가 되는 모든 허영이나 교만, 죄와 악을 다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시다가 시몬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 요한에게, “(막1:17)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배와 그물, 그리고 부친 세베대와 그 삯꾼들까지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다고 했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게 될 때에 지금까지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우월감과 명예, 지위, 세상을 향한 모든 욕망까지 다 배설물로 여겨 내버렸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3:4-9입니다.
(빌3:4-9)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구약성경의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얻기 위해, 애굽의 영화와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모두 다 내버렸다고 했습니다. 요즈음 말로, ‘금수저’를 미련없이 버리고 ‘흙수저’를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11:24-26입니다.
(히11:24-26)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세상 그 무엇이라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믿음, 신앙생활을 위해 끊어 버려야 할 것은 당장 끊을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더 큰 보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에 최고의 보화인 줄로 믿고,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마음 속에 항상 모시고 살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데 방해나 장애가 되는 요소들이나, 모든 허영이나 교만, 죄와 습관, 그리고 버려야 할 성격 등을 깨끗이 버리고 끊을 수 있는 결단으로 더 큰 보화가 충만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4. 마지막으로, 본문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고 했습니다.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 는 결행이 있어야만 합니다. 결단만하고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 밭을 살 것이라는 말이 아니며, 앞으로 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아닙니다. 이미 값을 지불하고 매입하는 일을 끝마친 구매완료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결말을 지었으며 완결한 것입니다. 정금보다 더 귀한 신앙생활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미련하고 겨자씨보다 하찮은 것으로 멸시하고 천대할지라도, 모세처럼 “(히11:25-26)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하나님께서 상 주심을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는” 용기와 결단, 그리고 행동,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고 행동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주께서 쓰시겠다 하시면 얼마든지 자신의 생명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믿음이, 정금보다 더 귀한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마태복음 13:45-46을 보면,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났을 때에는 그것을 얻기 위하여 기존에 소유하고 있던 보통 진주들을 다 팔고 처분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이며,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의 생활인 것입니다.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께 찾아와서 “선생님,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줘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그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여 안타깝게도 예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마19:16-22) 그 부자 청년은 이 세상에서는 온갖 보화를 가득 소유했을지 몰라도, 감추인 보화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므로 천국의 보화는 소유하지 못한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온 천하를 잃는다 해도 예수만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삶에 어떠한 형편에서도 예수 믿는 믿음을 감추인 보화를 믿어 거룩하게 지키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감추어진 보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삶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임을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며 살았던”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2:3)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의 보화가 금세와 내세에 충만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천국 삶을 얻는 길
마 13:44-46 / 이한규 목사
천국을 얻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죽은 후 가는 곳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땅에서 천국 삶을 얻어 누리는 것도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천국 삶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내면의 기쁨을 가지라
본문 44절에 나오는 사람은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했다. 기쁨과 천국은 동반자와 같다. 기뻐하면 천국을 얻을 수 있고 천국을 얻으면 기뻐할 수 있다. 왜 현실이 어려워도 성도는 기뻐할 수 있는가? 진짜 보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보화를 구하면 죽을 때까지 참된 보화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참된 보화는 내 안에 있다.
내 안에 보화가 있으면 외모에 연연하지 않는다. 물론 외모를 잘 가꾸는 것이 삶의 의욕을 주고 자기 관리와 타인 배려와 고객 존중의 의미도 있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외모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관리, 자기 격려, 자기 배려를 외면한 표식이 될 수도 있다.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면 자기 가치가 아무래도 떨어진다. 외모도 단정하게 잘 관리하라. 더 중요한 것은 외모에 연역하지 않고 외모로 남을 비하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다 내면에 보화가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사람들이 기적을 좋아하지만 사실상 나 자신이 기적적인 존재다. 더 나아가 내 안에 보화가 있는 사람은 매일의 삶이 기적이다. 예수님은 성도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성도는 다 기적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이기적인 존재가 세상의 소금과 빛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어디에 가든지 활기를 주고 누구를 만나든지 기쁨을 주고 항상 내 이웃을 복되게 하려고 하라. 가는 곳마다 자기 존재를 스며들게 해서 많은 생명을 살려 주는 물처럼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힘을 얻도록 해 주라. 그런 의미에서 선교에 힘쓰고 사역자를 위해 기도해주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라. 그렇게 살면 삶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내가 있는 곳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지가 될 것이다.
요새 살기가 어렵다고 한다. 솔직히 목회도 어려운 시대다. 작은 교회 목사들은 더 신음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웬만한 일로는 작은 교회 목사를 떠나지 말라. 하나님이 그 마음을 반드시 기억해 줄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불모지를 거룩한 땅으로 만들고 절망 중에 소망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그 사명을 따라 은밀하게 생명의 기적과 사랑의 기적을 일으키려고 힘쓰며 기뻐하면 자신이 감춰진 보화를 가진 기적적인 존재임이 더 분명해지고 천국 소속감도 더 분명해질 것이다.
2. 천국을 힘써 추구하라
천국을 힘써 추구하라고 해서 기도원에 가서 기도만 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기도한 후에는 열심히 살라. 천국 삶은 매일을 중시하고 성실하게 살 때 얻는다. 본문의 농부가 어떻게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는가? 그는 남의 밭에서 일하는 품팔이 농부로 추정되지만 어영부영 시간만 때우거나 주인이 볼 때만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그는 주인이 보지 않아도 밭을 겉만 대충 갈지 않고 깊이 갈았기에 그 보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의 책임적인 자세는 천국을 얻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성실하게 맡겨진 일을 하라. 베드로는 일상에서 고기를 잡을 때 예수님을 만났다. 일상생활에서의 나의 삶과 열매가 나의 인격과 신앙이다. 가지런한 삶은 가지런한 마음의 증거다. 남의 눈길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고 나의 일상적인 책임 이행에 신경을 쓰라. 그런 사람이 사람답게 되고 성도답게 되고 천국도 얻는다.
고대에 종족 간 약탈 전쟁이 성행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보화를 지키려고 땅에 숨기곤 했는데 그 숨긴 사람이 전쟁 중에 죽으면 그 보화는 아무도 모르게 된다. 그러다가 나중에 소작농이 우연히 발견하면 그 보화는 밭주인의 것이기에 소작농은 밭주인에게 보화를 주어야 했다. 그러나 본문의 농부는 보화를 발견한 사실을 숨기고 기뻐하며 돌아간 후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서 그 보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언뜻 보면 계산적이고 불법적인 행동 같다. 그러나 이 비유는 어떤 특별한 메시지가 내포된 천국 비유로서 다른 것은 몰라도 천국만은 양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쟁취하라는 뜻이 내포된 비유다. 천국을 얻기 원하면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만 바라며 시간을 보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천국 문을 두드리면서 힘써 천국을 쟁취하라. 예수님은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믿음과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천국을 쟁취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본문 45절을 보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이 구절에 나오는 ‘장사’란 원어에 의하면 ‘사업(business)’보다는 ‘장사꾼(merchant)’의 의미에 가깝기에 이 구절은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으니”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 경우에 상인은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소매상보다는 좋은 물건을 찾아다니는 도매상이나 무역상을 뜻한다. 결국 그 ‘장사’라는 표현도 천국은 열심히 찾아야 얻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천국은 힘써 추구하는 자가 얻는 것이다.
3. 현실에 만족하지 말라
본문에 나오는 상인은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다(46절). 그것은 그가 이전에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것을 가지려고 했다는 암시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은 좋다. 다만 그 만족이 나태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좋은 만족이 아닌 좋지 않은 안주다. 누구에게나 더 나은 미래가 준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고 감사하면서도 안주하지 말고 더 나은 것을 추구하라.
현재의 불행한 현실도 더 나은 삶을 위한 초석으로 삼으라. 소유가 적은 것과 현실이 어려운 것과 상황이 힘든 것에 불만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지 말라. 그 불만을 창조적인 에너지로 삼아 반전의 역사와 발전의 역사를 만들어내라. 수많은 발전과 성취는 어렵고 힘든 현실에 대한 불만을 승화시키면서 생겼다. 그런 의미에서 파괴를 낳는 파괴적인 불만은 버려야 하지만 발전을 낳는 창조적인 불만은 필요하다. 그런 창조적인 불만이 없었다면 사람은 여전히 동굴에 살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하고 날고기를 먹었을 것이다.
더 좋은 삶을 추구하라. 지금보다 더 단단해지고 더 굳건해지라. 단단한 말씀도 먹고 소화할 수 있는 경지까지 성장하라. 영적인 삶은 물론 외적인 삶에서도 성장하라. 찬란한 꿈을 가지라. 성실한 땀을 흘리면 그 꿈이 실체로 변하는 날이 온다. 땀이 수반된 찬란한 꿈은 반드시 좋은 열매를 낳는다.
모세는 가나안의 꿈을 가졌기에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어도 많은 사람에게 가나안을 안겨줄 수 있었다. 다윗은 성전에 대한 꿈을 가졌기에 자신은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어도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이 건축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의 꿈을 가졌기에 그 꿈을 이루면서 신약 성경 14권을 기록하는 위대한 일을 해냈다. <월간새벽기도 영어판>의 꿈도 때가 되면 반드시 실체화될 것이다.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라. 꿈이 죽으면 인생도 죽지만 꿈이 살면 인생도 산다.
4. 드리고 나누고 베풀라
본문에 언급된 두 가지 비유가 똑같이 강조하는 것은 44절과 46절에 나오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라는 말씀이다. 그 말씀은 천국은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소유해야 한다는 뜻이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사도 남는 장사라는 뜻이다. 진짜 가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공짜로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국을 얻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라. 천국을 위해 드릴 줄 알아야 천국을 누릴 줄도 알게 된다.
어느 날 계명을 잘 지킨 한 부자 청년 관리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예수님께 물었다. 그때 예수님이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시자 그는 부자였기에 근심하며 갔다(막 10:21-22).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비유적으로 도전하신 것이지 진짜 자기 것을 다 팔아 무일푼으로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이 자기 소유를 포기했을 때 오히려 더 많이 얻었고 때로는 더 부자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은 사실상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예수님을 따른 것 같은 결단이었다. 그 결단으로 아브라함은 타향에서 헐벗게 되기보다 오히려 당대의 재벌이 되고 나중에는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졌다. 아브라함의 삶을 보면 믿음의 삶이란 점차 발전하는 삶임을 알 수 있다. 완성된 믿음이나 완성된 복은 없다. 성경의 믿음의 선진들은 수많은 부족한 점을 극복하고 결국 인물이 되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셨을 때 그의 믿음은 완성된 믿음이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시험을 통과하면서 점차 믿음이 커졌다. 그에게도 수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를 사랑하시고 지키시고 돌보아 주셨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있다면 나 자신도 아브라함처럼 못될 이유가 없다. 그런 은혜의 때를 준비하며 기다리라. 늘 하나님을 꼭 붙잡으면서 나를 잘 내려놓음으로 내일의 승리를 예비하며 살라.
소유를 팔아 천국을 사는 사람
마 13:44-50 / 문기태 목사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온갖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내버린다.
세상 끝 날에도 이렇게 할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사이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서,
그들을 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이니,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복음13장 44-50절)
어느 날 예수님께서 밭에 감춰진 보화의 이야기와 좋은 진주를 만난 상인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같은 진리가 담긴 이야기인데 진리를 깨우치려고 비슷한 비유를 겹쳐서 들려 주셨습니다. 제가 쉽게 각색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루는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삽 끝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 조심스럽게 땅을 파 보았더니 큰 상자가 묻혀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파내어 뚜껑을 여는 순간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그 속에는 금덩이와 금화 은화 골동품 등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누군가 깊이 파 묻어 두었던 주인 없는 보물이었습니다. 농부는 주위를 돌아보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뚜껑을 덮어서 그대로 그 자리에 묻어 두고는 집에 돌아왔습니다.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고는 아침에 밭 주인을 찾아 갔습니다. "어르신, 계십니까?" "아침 일찍 웬 일인가?" "언덕배기에 제가 경작하는 자갈 밭을 저에게 파시지요." "흐음, 그 밭은 몹시 아끼는 땅인데.. 값이 좀 비싸도 사겠나? " 값을 부르는데 시세의 두 배가 넘습니다.
그래도 계약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장에 송아지도 끌고가 팔고, 알 잘 낳는 씨 암탉도 모조리 내다 팝니다. 가재도구도 내다 팝니다. 돈 될만한 것은 남김없이 팔아서 돈을 만듭니다. 돈을 모조리 챙겨서 잔금을 치르고 땅문서를 받아가지고 얼굴에 함박 웃음을 머금고 돌아옵니다.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가족들을 이끌고 언덕배기 자갈 밭에 오르더니 밭 한 가운데를 파기 시작합니다. 얼마를 그렇게 파자 큰 상자가 나옵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온 가족의 눈에 온갖 보물이 나타났습니다. 그제서야 가족들은 모든 소유를 내다 판 남편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밭에 감춰진 보화의 비유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고 싶어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천국을 알고, 소유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의 비밀을 깨닫고 누리는 것이 가장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은 하늘 나라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포함합니다.
거기에는 하늘의 기쁨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 즉 평안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참 사랑이 언제나 넘칩니다. 거기에는 영생이 있고 참 소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하늘의 능력을 맛보며 신나게 사는 축복이 넘칩니다.
감춰진 보화를 발견했다는 것은 예수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밭을 샀다는 것은 예수를 잘 믿기 위해 이 땅에서의 어떤 대가도 지불하고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천국보화를 얻기 위해서 땅의 것 중에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도 희생해야 합니다. 늘 즐기던 것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관도 포기하고 세상에서 절대적인 줄 알고 붙잡고 살던 줄도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예수를 위해 고생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하고 비싼 대가도 불평하지 않고 기꺼이 지불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값진 보물을 발견한 것은 큰 은혜입니다.(44, 46)
44절-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46절-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이런 보물을 발견하게 된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큰 행운입니다. 진주 장사에게도 극히 값진 진주를 만난 것이 큰 행운입니다.
많은 땅이 있고 수 많은 밭이 있지만 어쩌면 그가 경작하는 땅에 그 보물이 묻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이 그 밭을 경작했지만 그에게 보물이 발견된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그가 부지런해서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그 밭에 보물이 있음을 알고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큰 행운이 그에게 찾아왔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만나고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은 지극히 큰 행운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수 많은 교회에서 복음이 선포되지만 그 보배로운 진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또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보화 중에 보화인 복음의 진리를 듣고 예수님이 보배 중에 보배요 보물 중에 보물임을 깨달으셨으니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달음이 큰 행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음을 들음이 은혜 중에 은혜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예수님이 보배라는 사실이 깨달아지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의 그 어떤 보배보다도 더 소중한 분임을 깨달았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 안에 무궁무진한 보배가 감추어져 있음을 발견하고 의심 없이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아직도 여러분과 함께 계신 예수님이 보배 중에 보배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분은 무엇보다도 오늘 하나님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도 보물을 발견하게 해주세요.' '나도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보배라는 사실이 믿어지게 해 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 영접모임에 꼭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보물 중에 보물인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행복해지시기 바랍니다.
2. 보물을 발견했으면 소유를 팔아 천국을 사야 합니다. (44,46)
만약 그가 보물을 발견하고 그 밭을 사기 위해 값을 지불하기가 아까워서 망설이고만 있으면 보물을 소유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진주장사가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도 흥정만 하고 진주를 사지 않으면 진주를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 보물이 그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소유를 파는 것이 아까워 몰래 보물을 캐냈다면 나중에 주인에게 다시 빼앗길 것입니다. 그러면 두고두고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확실하게 보물을 내 것으로 삼으려면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천국의 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은 보물을 발견했으면 값을 지불하기를 주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조금 아끼려다가 보물을 송두리 채 잃어 버릴 수 있습니다.
교회당 부지를 시로부터 매입할 때 더 좋은 위치에 받으려고 담당자와 줄다리기를 하였습니다. 계약을 안하고 머뭇거리기만 하니까 담당 공무원이 그렇게 질질 끌면 다른 데로 넘긴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다가 놓칠 것 같아 곧바로 계약을 하고 지금 이 자리에 건축을 하였습니다. 그때 망설이다가 계약을 못했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 했습니다. 지금은 땅값도 몇 배로 올랐고 돈이 있어도 이런 위치에 살 수도 없습니다.
가치가 있으면 어려워도 용기를 내서 값을 지불하고 사야 내 것이 됩니다.
본문에 농부도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진주장사도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다른 것을 다 잃더라도 보화가 묻힌 그 밭 만큼은 놓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 나가는 진주를 만났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빼앗길 수 있기에 모든 것을 다 주고 샀습니다.
지극히 값진 보물을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하여야 합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라도 값을 지불하고 내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정말 많은 이들이 예수를 얻기 위하여 기꺼이 자기 소유를 팔아가면서까지 값을 지불하고 있을까요? 예수를 얻기 위하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시간을 충분히 팔고 있습니까? 예수를 잘 믿기 위하여 여러분의 재물도 기꺼이 지불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온전한 연합을 위하여 여러분이 세상에서 취할 수 있는 편안함과 쾌락도 포기하고 있습니까? 고생도 감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보배를 보여 주셨지만 값을 지불하기가 아까워서 주저하고 망설이고만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보배를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보배를 내 것으로 삼기 위해 최소한의 투자는 해야 합니다.
밭에 묻혀 있는 보배는 돈으로 환산할 때 너무나 값이 비싸 가난한 농부의 형편으로 절대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밭을 사는 정도의 최소한의 대가는 누구나 지불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투자하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보배를 얻기 위하여 지금껏 붙들고 살던 욕심은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보화를 얻기 위하여 세상 자랑 정도는 내려 놓아야 합니다. 은혜에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성경을 읽고 배우는 정도의 투자는 해야 합니다. 하늘 보화를 얻기 위하여 기도하는 수고 정도는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고자 시간을 투자하며 최소한의 헌신은 보여야 합니다. 하늘의 풍성한 보화를 차지하기 위해 목장에 소속하고 목장모임에 참석하는 최소한의 헌신은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보화를 위해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는 투자를 하여 약속의 땅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요한과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되고자 배와 그물과 잡은 많은 고기를 버려두고 즉시 예수님을 따르는 투자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늘의 보화를 발견하고 그가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여기던 가문의 영광, 세상 교육, 종교적인 열심 등을 모두 배설물처럼 여기고 던져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보화가 가득한 밭을 사기 위해 어떤 보물을 팔았습니까? 그리고 무엇을 더 팔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안에 있는 보물을 하나님은 선물로 주십니다. 어마어마한 보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로 주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는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보물이 묻혀있는 것을 발견했으면 내가 최소한의 값을 지불하여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기도에 응답 받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예수의 좋은 제자가 되기 위하여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고 주님을 본 받는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보물입니다. 우리는 이 보배를 얻는 행복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세상의 가짜 보배에 속아서 가짜 보배를 얻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맙시다. 영원한 가치가 빛나는 진짜 보화를 깨닫고 시시한 것을 팔아 영원한 가치 있는 보화를 사는 행복을 맛보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최고 가치인 하늘나라
마 13:44-53 / 계강현 목사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천국, 하늘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맞긴 맞지만, 그러나 하늘나라의 시작은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신구약 성경에서 사용되는 ‘천국(天國)’이나, 하늘 天, 나라 國, 한자어를 풀어서 쓴 ‘하늘나라’나 또 ‘하나님 나라’는 다 똑같은 나라를 지칭한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서를 쓴 저자 마태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직접 쓰는 것을 신성모독쯤으로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대신 ‘하늘나라’라고 거의 사용하고 있다. 반면에 마가복음을 쓴 마가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누가와 바울서신을 쓴 바울사도는 대게 ‘하나님 나라’라고 쓰고 있다. 결론은 하나님 나라, 천국, 하늘나라 다 똑같은 나라다. 마태복음을 설교하는 거니까, 오늘은 하늘나라로 사용하겠다.
하늘나라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에는 사랑과 자비와 정의와 평화와 능력이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게 되면 성령이 우리 속에 오셔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살게 된다. 그러면 마음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고 그 통치가 확장되면서 점점 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정의와 평화와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마음속에서부터 하늘나라를 맛보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식구들에게 전달되어 가족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가정이 하늘나라를 맛보게 된다. 그렇게 목장과 교회가 하늘나라를 맛보게 된다. 물론 100% 완성은 주님이 오실 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땅에서 우리는 하늘나라를 맛보며 산다. 이렇게 현세에서 하늘나라의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은 내세의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도 없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관해서 여러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오늘 읽은 본문에서 세 개를 다룬다. 그 비유를 통해 하늘나라에 관해 들어보자.
1. 하늘나라는 무엇보다도 가장 귀하다.
처음 비유에서는 하늘나라는 땅에 숨겨놓은 보물과 같다고 하신다. v44,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옛날에는 은행, 아니면 귀중품 금고 같은 게 없었기 때문에 귀중한 것을 땅에 묻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보물을 땅에 묻어놓고는 친척이나 자식들에게 그 장소를 말해주기 전에 죽어버리면 그게 땅에 묻힌 보물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우연히 땅을 파다가 보물을 발견했다. 그 당시의 법에 의하면 그렇게 발견한 사람이 임자다. 그렇지만, 밭의 소유주가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이 비유에서는 발견한 사람이 자기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땅을 샀다. 어떤 분들은 이걸 갖고 윤리적으로 괜찮은 거냐고 따지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비유라는 것은 한 가지 교훈을 주기 위해서 일상의 이야기를 이용하는 거다.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핵심은 하늘나라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살 정도로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란 얘기다.
또 다른 비유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의 비유다. vv45-46,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46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 밭에 감추인 보화는 땅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지만, 진주를 구하는 상인은 좋은 진주를 찾다가 발견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시는 얘기는 하늘나라는 그렇게 최고로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팔아 살만하다는 얘기다.
이 두 비유에서 말씀하듯이, 어떤 사람은 우연히 하늘나라를 접하는 사람이 있다. 사업에 실패해서 뭔가 위로를 얻기 위해 교회에 나왔다가 하늘나라를 접한다. 어떤 사람은 질병에 걸려서 의지하기 위해 왔다가 하늘나라를 접한다. 또 어떤 사람은 친구 따라 강남 왔다가 하늘나라를 접한다. 우연히 접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진주를 찾은 사람처럼 하늘나라를 찾다가 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열심히 찾고 철학책도 찾다가 진리를 추구하다가 하늘나라를 접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분은 어떤 케이스로 예수님을 만났는가? 이렇게 하늘나라를 접하는 것이 우연히 발견하든 진리를 찾다가 접하든, 하늘나라는 내가 가진 것을 다 바꿔도 아깝지 않은 가장 귀한 가치라고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거다.
어떤 분은 하늘나라가 뭐가 그리 귀하냐? 하는데, 우리가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늘나라는 이 세상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하늘나라, 하나님의 통치 밑에 있는 것이 왜 그렇게 귀한가?
1) 생활의 염려가 해결된다. 여러분, 왜 그리 피땀을 흘려 돈을 버나? 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그런데 피땀 흘려 돈을 벌어도 먹고 살기가 힘들 수도 있다. 처음에 직장을 잘못 잡아서 평생을 힘들게 살 수 있다. 또 처음에는 직장을 잘 잡고 돈을 잘 벌었는 데, 중간에 일이 잘못되어서 직장이 문을 닫았다거나, 직장을 관두고 사업을 벌였다가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마음에 염려와 긴장 가운데 산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 가하면 마 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하늘나라를 구하면 먹고 사는 문제를 다 해결해주신다고 약속하시는 거다. 하늘나라를 소유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살면 하나님이 생활은 책임져주신다. 이것이 헛 약속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간증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면 생활은 책임져주신다.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 복된 삶을 살기 원하면, 항상 먹고 사는 게 가장 두려운 것이 되어서 그것 때문에 늘 염려하고 긴장 가운데 사는 인생이 아니라, 확실히 하나님 나라, 영혼 구원, 제자 만들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서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능력을 체험하며 살기를 바란다.
2) 자녀들이 잘 되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왜 피땀 흘려 돈을 버나? 다 자녀들 교육시키려고 그런다. 그런데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지만, 교육시키고 과외 시키고 일류대학을 보낸다고 자녀들이 다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너무 푸시해서 과외까지 시켜서 일류대학에 입학시켜 놓았더니 자녀들이 그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질환이 생기고 자살을 기도하는 그런 얘기를 듣지 않나? 또 돈이 있다고 해서 자녀들이 잘 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어서 자녀들에게 물려주면 이놈들은 자기가 노력해서 생긴 게 아니기 때문에 탕진하고 인생까지 낭비할 이런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다.
성경은 뭐라고 하시는가? 다윗이 늙어서 고백하는 말씀이다. 시 37:25, “나는 젊어서나 늙어서나, 의인이 버림받는 것과 그의 자손이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그의 통치 밑에서 사는 삶은 절대로 늙어서 추하게 되거나 자녀들이 거지가 되는 일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가! 자녀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돌보고 교육시켜 줘야 하겠지만, 돈 있다고 자녀의 장래가 보장되는 게 아닌 줄 알고,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통치 밑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서, 자녀들에게 본이 되어서 그 삶을 물려줘라. 자녀들은 보고 배우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그걸 보고 배워서 그들도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들이 하나님 섬기며 사니까 하나님의 복이 임하고, 이웃을 섬기면서 사니까 이웃에게 칭찬받고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 자녀를 복되게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도 하늘나라와 돈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3) 참된 보람이 있다. 또 여러분, 왜 돈을 버나? 어느 정도까지는 돈을 버는 데 목적이 있지만, 돈을 좀 벌고 나면 그 다음에는 성취감이라고 한다. 그런데 돈이 주는 성취감은 오래 가지 않는다. 가게 하나 하다가 잘 돼서 또 하나 열면 성취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얼마 가나? 그 다음에 또 하나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회사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승진하게 된다. 그러면 성취감이 있다. 그러면 그게 얼마 가는가? 조금 지나면 그 다음에 올라갈 고지가 눈에 보인다. 성취감을 돈이나 세상 성공에서 찾으면 끝없는 성취감에 대한 욕구로 갈증이 생기게 되고 결국 성취감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참된 성취감과 행복은 하늘나라에서 온다. 하나님의 통치 밑에 나를 둘 때 온다. 거기에 참된 보람이 있다!
우리가 올해 단기선교를 8월에 가려고 하는데, 단기선교 다녀와서 간증하는 사람들 간증을 들어보면 공통분모가 행복이다. “난 행복합니다. 행복하려면 선교지를 가십시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면 사실은 가서 고생을 했다. 피곤하고 잠도 잘 못자고 수세식 변소가 없으니까 자연에 가서 처리했다. 그런데도 행복하다고 한다. 왜 행복할까? 섬기러 갔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인간의 참된 행복은 어디 있는가? 섬김 가운데 있다. 세상에서 행복은 높아지려고 하는 것인데, 높아질수록 많은 사람이 나를 섬기는 걸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섬김을 받는 게 내 삶의 목표가 되면 성취감이나 만족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남을 섬기는 가운데 성취감이나 만족이 있다. 이런 말이 있다. ‘맛있는 밥을 먹으면 하루가 행복하고, 핸드폰을 사면 일 주일이 행복하고, 새 차를 사면 한 달이 행복하고, 새 집을 사면 일 년이 행복하다. 그런데 남을 섬기는 삶을 살면 평생이 행복해진다.’ 정말 그렇다. 남을 섬길 때 진정한 행복이 있다. 그게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행복이다.
항상 섬겨주길 바라는 사람이 더 행복한가? 섬기려고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가? 누가 더 행복한가? 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고 섬기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낼 때 세우신 인간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예수영접모임을 하는데, 참석한 형제에게 내가 죽 복음을 설명하면서 “인간이 죄인이기에 자격이나 조건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구원의 선물을 공짜로 받은 우리가 감사해서 봉사도 사랑도 용서도 전도도 섬김도 하는 것이다.”라고 했더니, 이분이 대뜸 하는 말이, “아! 그래서 우리 목자 목녀님이 저에게 그렇게 잘 해준 거네요! 나는 자기가 구원받기 위해서 열심히 날 섬기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그랬다. 자기를 한없이 섬기는 목자 목녀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복음을 듣고 나니까 다 이해가 된 것이다. 왜 그렇게 자기를 섬기면서도 행복해하는지 복음을 모를 때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과 십자가 사랑을 깨달으면 깨달아질수록 섬길 수밖에 없고 섬김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요즘 세상에서도 ‘섬기는 리더십’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좀 알아도 섬기고 싶은 마음도 없고 능력도 없다. 그런데 우리가 하늘나라 시민이 되면 우리 안에 오신 성령 하나님이 욕구를 주신다. 그 욕구 중에 하나가 섬기는 욕구다. 또 능력을 주시는데, 그 능력 중 하나가 섬기는 능력이다. 빌 2:13,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섬기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고 섬김을 실천할 수 있게도 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실 때 섬김을 받으러가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다. 세상의 왕들은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 왕이신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가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 그래서 섬길 때 거기에 진정한 기쁨과 행복과 성취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믿고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어 누리는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복이 뭔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인자하심 가운데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고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사는 것이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성령의 교통 가운데 사는 것이다. 이런 초보적인 것만 해도 이렇게 좋으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소유하는 것이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늘나라가 내가 가진 무엇보다도 귀하다 생각하시는 분은 “아멘”하기 바란다.
여기서 자신 있게 아멘하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뭔가 결핍이 있는 것이다. 복음이 뭔지 잘 모르든지, 하나님을 잘 모르든지 그런 거다. “내가 무엇보다도 하늘나라가 좋다.” 이런 고백을 자신 있게 하지 못한다면 예수님 영접하시고 삶 공부를 더 들으시고, 듣기만 하지 말고 실천하셔야 한다. 왜냐하면 하늘나라는 지식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며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나라가 무엇 보다가 귀하고 가치 있다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다 되자.
2. 지옥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더욱 가치 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를 설명하기 위해서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다. 그 이유가 하늘나라는 총체적이기 때문에 말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저런 비유를 많이 하신 것이다. 그런데 하늘나라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마 13:1ff.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비유를 해석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하늘나라 비유를 v24에서부터 말씀하셨는데, 처음에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셨다. 하늘나라 밭에 지금은 알곡과 가리지가 공존하지만, 언젠가 천국과 지옥으로 갈려서 알곡은 천국에 가라지는 지옥에 던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어서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를 말씀하시고 천국의 마지막 비유로 ‘그물에 걸린 고기 비유’를 말씀하셨다. vv47-50,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온갖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내버린다. 49 세상 끝 날에도 이렇게 할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사이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서, 50 그들을 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이니,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이 비유도 마찬가지로 바다에 그물을 던져 잡은 좋은 고기들은 그릇에 감고, 나쁜 고기들은 내버리듯이, 세상 끝 날에도 의인들 사이에어 악한 자들을 가려내서 지옥 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이며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하신다. 천국과 지옥으로 갈릴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왜 이렇게 예수님이 천국과 지옥에 관한 비유를 많이 말씀하실까? 한 사람도 지옥가기 원치 않기 때문에 똑같은 얘기를 또 하시는 거다. 왜냐하면 지옥이 분명이 있기 때문이다. 지옥이 있다! 어떤 사람은 지옥을 안 믿는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가 안 믿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런 분들은 지옥이 없다고 결론에 도달한 게 아니라, 지옥이 없으면 좋겠다는 주관적인 소원을 객관적인 진실로 혼동하는 거다.
지옥은 있다. 왜 지옥이 있다고 내가 믿느냐 하면, 천국이 있으면 지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천국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지옥도 있다고 믿는다. 천국은 죽음 저편에서 완성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보지 않는가? 그리고 죽음 저편에서 천국이 완성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옥을 맛보지 않나? 고통스러울 때 “아! 지옥 같다!” 그러지 않나? 그러면 죽음 저편에서 지옥이 완성될 것이 분명하다.
v50, “그들(악한 자들)을 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이니,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지옥이 정말 불이 펄펄 타고 꼭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죽음 저편의 세상은 우리가 사는 4차원의 세상을 뛰어 넘는 세상이다. 불이 붙는다는 것은 산화작용이 아닌가? 산소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꼭 그대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옥에서 경험하게 될 것들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다는 것은 안다. 왜냐하면 천국이 우리가 지금 맛보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찬란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지옥도 마찬가지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적극 지옥 얘기를 하는 거다.
내가 지옥이 있다고 정말 믿는 더 분명한 이유는 예수님이 그렇다고 하시니까 믿는 거다. 믿을 만한 분이 얘기할 때 믿는 게 좋다. 예수님이 없는 얘기를 지어내서 했겠나? 어린애도 아니고, 한두 번도 아니고…. 예수님이 영적인 실체를 보시기 때문에 얘기하시고, 한 사람도 지옥에 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자꾸 말씀하시는 거다. 예수님이 자신의 부활을 얘기할 때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못했지 않았나? 그런데 결국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나? 그래서 지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이 지옥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지옥은 있다. 지옥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천국은 더욱더 정말 최고의 가치를 갖는다.
나는 지옥이 무서워서 사람들이 예수 믿는 걸 원치 않는다. 예수님 믿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능력을 보고 믿기를 원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능력을 찾는 데 통로가 되길 원한다. 그리고 이미 구원받은 분들에게는 지옥의 두려움이 영혼구원의 긴박감을 심어주길 바란다. 지옥이 있다면 여러분이 먼저 구원받은 자로서 가족과 친지를 구원해내야 하지 않겠나? 불구덩이 들어가고 그런 것은 지옥의 고통의 작은 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영혼구원의 절박감을 가져야 한다.
3. 그 가장 가치 있는 하늘나라를 위해 무엇을 포기하려는가?
그런데 밭에 감췬 보물을 발견한 농부는 v44b에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고 했다. 또한 값진 진주를 발견한 진주장사는 v46,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 이 말씀은 예수 믿고 천국 보물을 찾은 자는 그 소중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이 값어치가 없어진단 얘기다. 빌 3:8,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바울사도의 이 고백이 비슷한 맥락의 고백이라고 생각된다.
한 부자가 죽기 전에 자기 재산을 천국에 갖고 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꿈에 천사가 나타나 “네 기도가 응답받았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트렁크 하나에 가득 채운 재산만 인정해주겠다.” 고민 고민하던 부자는 황금덩어리로 트렁크를 가득 채우기로 했다. 황금은 변하지도 않고 크기에 비해 가치가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부자는 죽었고 천국 문 앞에 이르렀다. 트렁크가 너무 무거워 들고 오느라 낑낑 대며 고생을 많이 했다. 문을 지키던 베드로가 “무얼 그렇게 힘들게 가지고 오십니까?” 물었다. 부자는 “예, 제 재산인데, 특별히 허락받고 가지고 온 겁니다.” “아 그래요? 그런 게 허락이 되지 않는데…” 하면서 열어보니 트렁크 안에 황금이 잔뜩 들어있다. 그때 베드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니! 천국의 모든 길이 황금으로 포장되어 있는데, 겨우 도로포장용 재료를 갖고 오느라 그렇게 힘들게 고생했단 말입니까?” 그러더란다.ㅋ 땅의 가치와 하늘의 가치의 차이를 아는가!
하늘나라는 우리의 모든 것, 물질과 시간과 에너지를 다 투자할 만한 최고의 가치이다. 여러분의 기껏해야 90~100년밖에 못사는 인생을 투자하여 끝없는 영원을 사라. 여러분의 물질을 투자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라. 영혼구원, 제자 만들어 신약교회를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여러분의 생을 투자해서 살라. 하늘나라 상급과 면류관을 받는 일에 투자하며 살라. 하늘나라는 우리에게 ‘가치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마 16:26)
나는 하늘나라를 위해서, 복음전도를 위해서 뭘 포기하고 내려놓을 건가? 내 알량한 자존심인가? 안정과 평안인가? 다른 사람의 인정과 평가인가? 최종평가는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그분이 하실 것이다. 아직도 내가 붙들고 미련을 떠는 것은 무엇일까? 농부와 진주장사는 그 하늘나라의 보물과 진주를 얻는 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파는 것보다 훨씬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진정 하늘나라는 그런 가치가 있다. 그 가장 가치 있는 하늘나라와 복음전도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포기하면 좋을까?
밭에 감추인 보화
마 13:44 / 이강웅 목사
2021년 9월 17일 넷플릭스에 데뷔한 한국산 드라마가 지금 전세계를 강타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즐기던 놀이에서 착안한 서바이벌 게임 이야기 ‘오징어 게임(Squid Game)’이 넷풀릭스 세계 82개국에서 계속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상금 456억원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모두 갖가지 사연이 안고 있는 참가자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절망적 상황에서 이 게임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게임에 참가한 참가자들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처절하게 게임을 하고, 관람하는 VIPS은 마치 로마시대에 생사를 걸고 피비린내 나는 검투를 즐기던 귀족들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참가자들 중에 유일하게 게임을 즐기는 참가자가 있었는데 1번 오일남입니다. 그는 뇌종양으로 인한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런데 영화 마무리에서 그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그는 소위 돈을 굴리는 일, 즉 투자 운용이나 금융 투자 일로 막대한 부를 축척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자가 되었지만 삶의 흥미와 재미를 잃어 버렸고, 그래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모아서 오징어 게임을 기획하고 실행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극 중에 주인공 성기훈과 나눈 대화에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재미 없는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서, 그만큼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기에 인생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면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라고 해서 모두 재미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도 결국 모든 게 시시해지고 지루하게 됩니다. 오일남이 ‘오징어 게임’을 만든 이유가 ‘심심해서’이며, 성기훈을 살려준 이유 또한 자기를 재밌게 해줘서라고 밝힙니다. 그는 어릴 때 순수한 동심에서 느꼈던 재미를 다시 맛보고자 이 잔인한 게임을 만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오징어 게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코로나팬데믹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 영화에 크게 공감을 하면서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돈이 없어서 힘들고 고통스러워 몸부림 치고, 부자는 매사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더 많은 자극적인 쾌락을 얻고자 몸부림을 칩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이고, 미래도 그럴 것입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싸르트르의 소설 중에 『벽』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한 마디로 “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이고, 빈틈없고, 똑똑하고, 야무지게 세상을 살아간다고 해도 현대인들은 돌파구를 찾지 못해 고통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어디에 우리가 소망을 두고, 삶의 의미를 얻을 수 있을까요?
수천년에 걸쳐서 성경의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영감을 얻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절박한 삶의 현장이 담겨 있고, 이 비참한 현실에서 건짐을 받는 구원과 천국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현실에서도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야말로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갈망하며 헌신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 만큼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1. 천국의 가치
고대 팔레스타인에서는 잦은 전쟁으로 인해서 재산이 약탈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금은보석으로 바꾸어 항아리에 담아 밭에 묻었습니다. 밭에 묻어 두면 아무도 모르고, 숨긴 주인만 알기에 안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이 갑자기 죽어버리면 보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됩니다.
어느날 한 농부가 쟁기질하다가 뭔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파보니 보물 항아리였습니다. 얼마나 놀라고 기뻤겠습니까? 누가 볼세라 제빨리 제자리에 다시 묻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요? 염려가 되어 말리지 않았을까요? 어느날 남편이 상의도 없이 갑자기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업하겠다고 집도 팔려고 내놓으면 아내는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도대체 영문이라도 알자’하고 다구칠 것입니다. 그런데 보화를 발견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너무도 당연한 행동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코소보전쟁이 한창일 때 나토 비행기들이 세르비아를 공습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그만 미군기 한 대가 격추되었습다. 스캇 오그레디 대위의 F-16 전투기가 세르비아 상공을 날다가 격추당한 것입니다. 미국 전체가 조종사 안전을 염려하며 애태웠습니다. 그가 살해되었을까 아니면 포로가 되었을까? 심한 상처를 입었을까? 시간이 흘러 5일이 지났습니다. 6일째 되는 날 한 조종사가 단파송신기 라디오로부터 오는 희미한 오그레디의 메시지를 포착했습니다. 용케도 적군의 눈을 피해서 아직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즉각 구출작전에 필요한 모든 자원이 동원되었습니다. 결국 오그레디는 헬리콥터에 태워져 안전하게 구조되었고, 미국 국민은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뉴스 피플]지는 이 한 비행사를 구조하는데 동원된 무기와 기계장비는 모두 60억달러에 상당한다고 보도했습니다.
한 인간을 구출하기 위해서 미국은 60억달러라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건강을 잃어버리면 다른 모든 게 아무 쓸모없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영혼을 과연 돈으로 추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내 목숨 보다 더 소중하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이 계십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을 관심이 없습니다. 그분을 얻기 위해 희생하려 하지 않습니다. 한 푼을 벌기 위해서는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위해 시간을 쓰고, 물질에 손해 보는 것을 아깝게 생각합니다. 과연 예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손해일까요? 오늘 비유는 이에 대해 무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가?
성경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 자녀가 된 우리는 더 이상 어둠의 세력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빛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왕국으로 옮겨졌습니다. 자비로우신 왕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발적으로 그분의 말씀에 순복하게 되면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실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바리세인들이 천국이 언제 임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눅 17:21)“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으로 이미 천국이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천국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과 직결됩니다. 그분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며 그분을 소유할 때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발견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견을 말합니다. 천국의 가치에 대한 인식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치의 인식을 또한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은 중요합니다. 나의 인생을 바꾸고 영원한 운명까지 바꿉니다. 그리고 후손에게까지 복이 미치는 미래를 약속합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실망하고, 무엇 때문에 낙담합니까? 돈, 성공, 명예, 인기, 안락한 삶을 얻지 못해서, 인생이 고달파서...그런데 진정으로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할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보화 중에 보화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분을 만나야 합니다. 더 깊이 교제를 통해서 그분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야 합니다. 부요하신 그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습니다.(골 2:3) 예수님을 소유한 사람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요 더 바랄 수 없는 최상의 복락을 이미 누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보화를 발견하셨습니까? 혹시 아직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이 보화이며 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지금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마음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열어 드리십시오. 문을 부수고 들어오실 수도 있지만,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2. 천국에 대한 헌신
문제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가치, 즉 예수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천국보다도 현세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망이 없고, 의미 없고, 재미 없고, 지루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잘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시아의 도움 없이도 우리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종교와 철학을 발견했고, 과학과 기술을 발명해서 문화와 문명을 일궜습니다. 지금까지 인간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애써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간섭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화로 보지 않고, 오히려 거침돌로 보았습니다. 결국 그를 미워하여 박해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모든 인생은 세상에서 크고 작은 보화를 캐려고 무한히 땀 흘리며 애 쓰고 있습니다. 그 작은 보화가 예술, 음악, 학문, 돈, 명예, 권력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최상의 보화는 단 하나뿐인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진실로 깨닫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천국의 비밀은 믿음으로만 깨달을 수 있고,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인식해도 그들의 눈에 하찮게 여깁니다.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이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적으로 화려하고, 세상을 호령할 수 있는, 힘 있는 세상 왕국을 찾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욕망만을 충족시켜 줄 메시아를 찾습니다. 그래서 온유하고 겸손하게 오신 메시아가 그들의 눈에 아주 하찮게 여겨졌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최고의 민족으로 일으켜줄 강력한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직 상한 심령, 가난한 마음으로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만이 그분을 인식하며 따랐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부르심을 받고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마태복음 4장 22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그들은 천국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때문에 과감하게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기 때문에 그들이 망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인생을 놀랍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하루에 3,000명, 5,000명을 회개시키는 권세 있는 말씀의 종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 하는 세계적인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처럼 그들은 실제로 사람 낚는 어부의 인생, 천국의 전파자의 인생, 어두움의 역사를 빛의 역사로 바꾸는 위대한 사람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축복해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27절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잘나고 똑똑한 제사장 가문에서 사람 낚는 어부들을 취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갈릴리의 촌 어부들을 부르시고 택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배경이나 인간조건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충성스럽게 계속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변함없이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천국의 일군들로 귀하게 쓰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3. 천국을 소유한 기쁨
천국을 내 삶의 최우선 가치로 삼을 때 다른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 되어 버립니다. 천국을 소유하면 무엇보다도 마음이 든든합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조급하지 않습니다. 염려하지 않습니다. 평안과 기쁨이 충만합니다.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가난이 그를 낙심하게 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무시와 모함도 그를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그 마음에 천국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못되게 굴어도, 사업이 잘 안되고, 문제가 꼬여가도, 마음에 평정을 잃지 않습니다. 관대하고 여유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여기에 등장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바로 천국을 소유한 기쁨의 모습이 아닙니까? 사도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채찍질 당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떠나면서 억울해 하지 않고 기뻐했습니다. (행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우리같이 비천한 자들이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능욕 받는 일에 적합한 자로 여김을 받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하고 오히려 황송해 하고 기뻐하면서 떠났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처음 복음을 듣고 예수 믿기로 작정했을 때 많은 핍박과 환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같은 시련 가운데서도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베드로전서에서도 동일한 말씀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실망합니까? 무엇 때문에 낙담합니까? 돈, 성공, 명예, 체면, 안락한 삶을 얻지 못해서, 인생이 고달파서....그런데 우리가 전심으로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보화 중에 가장 귀한 보화, 진주중에 가장 값진 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 분을 아는 지식으로 더 풍성해야 합니다.
(고후 4:7-10)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을 소유한 사람은 이미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요, 더 바랄 수 없는 최상의 복락을 이미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천국을 소유하는 기쁨이 있기에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결론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선택을 내리고, 그 대가를 치루고 승리한 사람들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그 중에 모세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히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 당시 최강국 이집트의 절대 권력자 바로 공주의 아들의 신분을 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즉 왕자라는 지위와 신분은 권력과 특권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쾌락이 취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찾는 모든 보화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버렸습니다. 그 대신 고난과 능욕을 택했습니다.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듣는 사람들마다 놀랄 것이고 어리석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과연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그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4,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존경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진정한 보화와 진주가 무엇인지를 발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가치를 알았기에 가장 위대한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천국의 메시지는 항상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합니다. 첫째는 천국의 가치를 발견하는 자가 복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가치를 발견한 자는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전인적으로 그분을 의지하고 삶을 맡겨 드리십시오. 따르십시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죄악을 깨끗이 씻어 주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 주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담대히 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생명이요, 기쁨이요, 소망입니다. 우리의 거룩과 지혜와 부가 되십니다. 그분을 소유하면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분을 믿고 순종하면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이 그리스도의 가치를 발견하였습니까? 그 가치를 인식하십니까?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 각오가 있습니까?
이미 그분을 내 마음에 영접하였고 그분의 다스림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함으로 찬송을 드리십시오. 그리고 더욱 그분이 여러분의 인생을 다스리도록 순종하십시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어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천국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천국의 가치가 아니라 다른 것을 좇아가게 되면 그러한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나아가면 모든 것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100이라고 할 때, 예수님 한 분만 붙들면 100가지가 다 주어집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붙들고 따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