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은 밤에까지도 무더운 공기가 가득하다. 사건처리반 내 사원들 대부분이 1층 중앙에 앉아 쉬는 중이었다. 사시는 낮부터 연신 부채질이다. 호수는 아예 제복은 벗어던지고 검정색의 반 티만을 입은채 앉아, 덥다,고 하고 있다. 한은 되도 않는 손으로 부채질이다. 비가 내려 다른 날 보다는 낫지만.
"나…원, 역시 반장님한테 여기에라도 선풍기 하나 중고라도 좋으니까 장만해 달라 할까?"
"어쭈, 다해, 신입이면서 감히 상관 앞에서 그런 소리냐? 곧 여름은 지나가니까 참아."
사실 속으로 가련치도 다해와는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작년 여름 유리에게 무참히 좌절되어 얻을 수 없는 환상의 선풍기가 되어버린채 가슴속에 남았다. 가련치가 그리 단호하게 말하니 한도 할 말이 없어졌다. 뭐, 흑누와 청설도 마찬가지로 다해를 옹호해 이득을 얻어내기는 어려웠다.
"에-? 피아노는 있는데 왜 선풍기를 못 사요?"
다해의 말에 모두들 쳐다보았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아, 그 피아노 말인가?,라고 흑누가 말하자 모두들 알고 있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 피아노는 산게 아니라 옛날의 어떤 반장님께서 받은거야. 쓰레기가 될 뻔한걸 말이지. 후후후후."
"그런데 다해 넌 사건처리반에 괴담이 있는지 모르지? 그 피아노도 여기 괴담 중 하나지."
한의 말에 다해는 귀가 쏠렸다. 사시도 그 괴담은 들은 적이 없는냥 한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자정에 본관 2층, 서쪽의 맨 구석의 창고방에서 피아노로 연주한 '비목'이 들린다는 거
야. 그 완성된 '비목'을 4번 다 들어버리게 되면 죽어."
다해는 옆에서 감탄하는 사시와 달리 야유를 부리며, 그건 어디에서나 흔히 듣는 학교괴담이잖아! 왜 뜬금없이 여기에 피아노를 세워서 학교괴담을 사건처리반괴담이라고 만드는건데!!, 라고 속으로 지껄였다. 사시는 눈을 반짝였다. 그런 사시와 달리 다해는, 어이 한이 형! 당신 분위기 잡으면서 일부러 겁주려는 거 다 보이거던?!! 그런 어린딸을 겁주려는 아빠같은 행위는 나한텐 안먹힌다고!!, 라고 다시 지껄였다.
"게다가 정말로 죽은 사람들도 있어. 2층 복도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해있었다더구만."
다해는 한과 사시를 보면서 상큼한 비웃음을 마음껏 날릴뻔하였다.
'비 내리는 날과 자정, 4번 이라는 괴담요소 3박자에 모자라 죽은 인간 제시법이냐! 그 인간이 그걸 듣고 죽었는지 다른 이유
로 죽었는지 어떻게 아는거야! 그리고 아까부터 당신한테 안 어울리는 그 '무서움을 자아내려는 진지함'은 또 뭐냐!'
"그래도 이 건물. 꽤 오래된 편이라 그런지 괴담도 좀 있는 모양이야. 여름엔 그런재미가 있는거지 뭐."
"사건처리반엔 어떤 괴담들이 있는데?"
사시는 그 괴담들을 더 듣고 싶은지-사시는 무서운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청설은 검지로 4반을 가리키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4반 사무실에도 괴담이 있지. 왜, 영현은 옛부터 제일먼저 전쟁의 피해를 보는 곳이잖아. 그래서, 그럴때 죽는 민간인과 청사
자의 원혼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 있어. 50년 전 쯤의 장마전쟁때에 한 장군이 영현이 습격당하자 적을 피하기 위해 여기로 숨
어왔나봐. 그런데 곧 적군들이 장군을 찾아 쳐들어오자 그 장군은 서둘러 책상 밑으로 숨었는데 갑옷 때문에 불편한 나머지
발을 저도 모르게 책상 밖으로 낸거야. 그에 적이 단번에 발견해서 발목이 잘리고는 나중에 잔인하게 그자리에서 즉시 죽임을
당했데. 물론 전쟁이 끝난후에 그 장군의 시신이 발견됬고."
청설의 말에 이어 호수가 말했다.
"그 후로 4반 사무실의 책상 밑에 발목없는 장군의 원혼이 앉아서 적이 오나 안 오나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린다더구만. 난 4반에서 근무한 적이 없어 본적이 없지만 말야."
그 말이 끝나자 4반 사무실의 3명은, 누구 책상이야?,라 생각하기 시작한다. 다해는, 이번 것은 아까전 것 보다는 강도가 더하군, 이라면서도 식은 땀을 흘린다. 그런 다해의 반응-겉과 속이 다르다는게 훤히 보임-을 재미있다는 식으로 흑누가 쳐다봤다.
"어이, 모르나 본데, 숙소에도 괴담이 있거든?"
"에-? 진짜? 요리욜로리! 어떤 괴담인데?!"
"나도 그 일은 겪어봐서 알아."
흑누가 그리 봤다하자 호수도 가련치도 동의한다. 야월마저 끄덕였다.
"무슨 일인데요?"
청설과 사시, 다해가 묻는다. 한도, 설마 그 괴담 말이야?, 라고 말했다. 가련치가 이야기를 해 준다.
"밤에 숙소에서 자려고 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매점으로 갔지. 간식거리를 사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윗계단에서 발소리가 나
는거야. 뭐, 처음에는 '나처럼 굶주려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가련한 녀석들 중 하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구만?
숙직이 손전등도 안 켜고 계단을 내려오는거야."
"그래서요?"
"숙직이 '늦은 시간인데 돌아다니지 말고 이제 그만 자라' 라고 말하고는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 버렸어."
"……?"
"그래서요?"
사시와 다해가 어리둥절하고 있을때 청설이 다소 놀란 듯 말했다.
"사건처리반에는 숙직이 없잖아."
그에 사시와 다해, 청설은 멍해졌다. 한의 웃음소리와 조용한 빗소리만 흘렀다.
그 날의 늦은 밤. 다해는 유리의 심부름으로 물건을 4반 사무실로 옮기러 들어간다. 물건을 내려놓고는 고요한 사무실-두 손으로 물건을 드느라 불도 켜지 않아 더 고요해보이는-을 둘러보다 한 곳에 시선이 멈춘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놀라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뭐, 뭐야. 아까 책상밑의 그 불쌍하게 쭈그려 앉아 있는 장군님은!"
그러다 갑자기 멈추고는 도로 돌아가 사무실의 문을 잠근다. 두려운 와중에도 일에는 충실한 것이었다. 담이 세다해야 할지 뭔가 멍청해보인다 해야 할지.하지만 , 그런것이 아닌 단지 귀신보다 유리를 더 무서워했었다는 것이었다.
'헤유, 그냥 갔다가 부장한테 죽을 뻔했네.'
다해는 즉시 숙소로 들어가 열쇠를 받고는-열쇠는 숙소건물에 딸린 매점 주인이 줌-터벅터벅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면서 마침 내려오던 숙직과 인사하고 복도로 들어섰다. 그 때, 복도에서 다해는 기절할 뻔했다. 새까만 머리 길이가 무릎보다도 밑까지 내려오는, 그런 머리칼을 풀어헤친 꼬맹이처녀귀신과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그로 다해는 괴성을 지르면서 줄행랑을 쳤다.
"저 녀석 잠 안 자고 뭐하는거야?"
자길 보더니 도망치는 다해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유리는 사원들이 잘 자나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유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젓더니 계단을 내려간다.
다음날 아침, 중앙에 앉아 다해가 전에 없던 새로운 괴담얘기를 꺼냈다. 숙소에는 수위아저씨만 있는게 아니라 꼬맹이처녀귀신도 돌아다닌다고 했다.
"에-? 다해 진짜 무서웠겠다."
그 때, 유리와 사화련이 와 모두들 놀라 일어난다. 그 이유인즉슨,
"어이, 늬들 일 안하고 뭐해? 잡담은 일을 빨리 끝낸 후에 실컷 하라 했잖아."
"저기, 반장님, 부장님. 우리 숙소에 귀신이 살던데요? 그것도 꼬맹이 처녀귀신이……. 혹시 아시는지?"
다해의 어이 없는 말에 유리는 칼을 뽑아 휘두른다.
"이게 잠을 덜 잤나, 어이! 목 없는게 편한가? 내가 날려줄까나?!"
그에 모두들 허겁지겁 사무실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그에 유리는 칼을 다시 내린 후, 도망친 녀석들에게 욕이라도 하는지 혼자서 뭐라뭐라 중얼거린다. 꼬맹이, 처녀, 귀신, 이 세 글자를 사화련은 얼마간 생각해보더니 유리를 쳐다보고는 알겠다는 듯이 손바닥 위에 주먹을 탁, 올렸다.
"저기, 그 귀신이란게 유리 아닌가요……?"
"나 참. 저 녀석들 어떻게 손을 봐줘야……, 예? 무슨 말 하셨습니까?"
사화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관들의 안전을 위해서!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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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너무 좋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