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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강변의 추억>--2) 노량진 시절
1970 년대식으로는 남자 서른에 결혼은 늦된 일이였다.
신혼이라고 학교 뒷편 삭글세 단칸 7천 원짜리로 시작한 후
첫아기가 생기고 골방이 너무 더워서 견딜 수 없었고
또 막내 동생이 시골서 고등학교에 왔지.
당시로선 계 契란 것이 유행, 목돈 만드는 수단이 그것뿐.
이것도 사정 아는 어느 고참의 조언으로 난생처음 어색한 계를 조직.
배려로 내가 일번. 그 목돈에다가. 시골 부모님 약간 도움.
장모님 도움으로 드디어 내 집. 내 왕국에 입성했다.
말은 왕국이지만 겨우 11평, 그 당시 김현옥 불도저 서울시장이
밀어붙이던 5층짜리 연립의 맨 위 층.
그 위치가 바로 노량진 사육신묘 바로 옆, 한강. 인도교
노량진역사가 한눈에 보이는 꼭대기. 참 또 있다.
인도교 중앙 타원형의 중지도에 공수부대 낙하훈련 하다 부하구하고 희생된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원등 상사의 오른손 엄지 처든 동상도 보이는 곳.
이 넓은 서울 천지에 최초로 내 집을 가진 기쁨 겪은 이 만 알지 다른 사람 말 못한다.
겨울이면 머리맡에 물그릇이 얼고 벽에 성애가 아니라 얼음판이 붙고
밤새 인천 부산가는 기차가 철다리 건너는 굉음이 울려도 좋았다.
거기서 둘째아기 딸을 낳았지.
육신묘 비탈길을 내려가면 당시로서는 노량진 수원지 즉 수돗물 정수하는 곳.
상도동 쪽 언덕위에 나중 알았지만. 정조가 수원 현륭원 거둥할 때
배다리 건넌 잠시 쉬어 가셨던 이름도 요상한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도 있고
한강인도교 남단 끝에는 “노들강변의 봄버들”이 아니라. 봄마다 아카시 꽃이
달콤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곳.
옛날 이쯤이 노들강 이고. 배가 정박하니 사람들이 모이고 궁중 산대놀이가
국책에 의해 해산되니 살길 찾아 광대들은 송파로 삼개마포 등등으로
흩어지고 모여서 재주를 팔아
입에 풀칠하는 떠돌이 단체가 생겼다는 글을 전에 탈춤 공부할 때 들은 적이 있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람들 ,
노량진 육신묘, 거기 살 때는 쉬는 날 놀이터가 육신묫등 사이였지.
가끔 시골에서 어머님이 오시면 답답하다 1박이 고작 바로 내려가시고
아버지는 그래도 손자 보고 땅 구경 가자시면 육신묘 언저리를 즐겁게 조손이 거닐던 장소.
그러다 제 3차 오일 쇼크를 당하고 거기서 2년 살다가. 알뜰한 아내 덕이
우리는 화곡동 하고도 변두리에 작은 마당 있는 단독집으로 이사 갔다.
노량진 그 집에 살 때 옆집에 우리 아이와 또래가 있어 둘이 동무해서 노는 친구 있었지
어느 날 주말. 우리 큰놈이 그 친구 보러 가자고 졸아서
내가 데리고 옛 동네 노량진 그 집으로 손잡고 갔다.
내 살던 바로 앞집 대문 앞에 서서 노크하고 00야 이름을 불었다.
대답이 없길레 더 크게 문을 두드렸더니 그제사 안에서 그 애 엄마가 문 열고 나왔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우리 애가 00 보고 싶다고 해서 잠시 데리고 왔다고 반갑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일단 들어오란다. 그리고 <말없음>이 한참 길어지다가.
00는 지금 없다. 먼데 갔다. 돌아서며 교통사고 이었다— 고 말을 잇질 못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우리 부자는 불 맞은 짐승처럼 그냥 뛰쳐나왔다.
당시에는 전화가 없었다.
그리고 나중 반포로 우리는 이사 왔고 거의 20년을
주중 매일 아침저녁 하루 두 번 이 노들길을 버스로 밥벌이 하려 오갔다.
봄이면 버들의 연초록 눈은 안보이지만 개나리가 금물을 쏟듯 피는 곳.
오월 말. 아까시 하얀 꽃이 뻥 튀긴 찰옥수수같이 터지고. 그 냄새.
가을에 아카시 노란 당풍을 보신 분들은 알거다 얼마나 고운 색인지.
게다가 타원형의 고 작은 잎이 바람에 떨어질 때 그 하늘거림.
올림픽 메달 따고 개선하는 선수, 군사정권 때 국가수반 외국 갔다 올 때
세종로 고층건물에서 뿌리던 색색의 꽃종이 날리듯 한 그 환상의 그림이
거기서 매년 가을 벌어진다.
아들 친구 거시기는 노량진 시대에 갔었다. 그 후 30여년 지나 내 아들도 갔다.
추억이 뭐관데!?
에라! 덩- 덩따 쿵따, 덩- 덩따 쿵따.
노들강변이나 뽑아보자!
“노들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밟은 자죽
만고풍상 비바람에 몇 번이나 지여갔나
에헤이요 백사장도 못 믿으리로다
흐르는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가노라“ |
첫댓글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가식없는 글 속에서 따뜻함이 물씬 하구요...3편도 나오나요?. 기대해 봅니다
금당실 장미자님. 감사합니다.어설픈 글 읽으시고 댓글까지 주셔서-, 3편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한강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옛생각 나서 노들강변 이야기 몇줄 글적거려본 것입니다. 혹시 읽으셨는지도 모르지만 이 "좋은글란"에서 글쓴이 이름 "노거수"를 검색해보시면 전에 올린 저의 허튼 글줄을 여렷 보실수가 있읍니다. 저는 지보면 사람이고. 용문에는 여러 옛친구들이 있고. 더구나 "금당실 솔무뎀이"는 조사차 여러번 가본적이 있습니다.더위 잘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