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66년 전, 남극 대륙에서 조사 임무를 수행하다 크레바스에 빠져 목숨을 잃은 스물다섯 살 영국 청년 데니스 팅크 벨이 마침내 몇 점의 뼛조각들로 고국에 돌아왔다고 BBC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뼛조각들은 지난 1월 녹아내린 빙하에서 폴란드 탐사대에 의해 손목시계, 라디오, 파이프와 함께 발견됐는데 그의 것이 맞는 것으로 확인돼 가족들에게 넘겨졌다.
친동생 데이비드 벨(86)은 현재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살고 있는데 방송과 인터뷰를 갖고 "오랫동안 형 찾는 일을 포기했는데 정말 놀랍고도 놀랍다. (형을 비극적인 사고로 잃은 충격은) 지금도 극복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형은 항상 더플 코트를 입곤 했다. 그는 인생을 즐기는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돌아봤다.
PA 통신에 따르면 뼛조각들은 영국 남극 조사국(BAS) 왕립 연구선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 호를 타고 포클랜드 제도로 옮겨져 영국령 남극 영토의 검시관 말콤 시몬스에게 전달됐고, 그는 스탠리에서 런던으로 가져왔다.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실시된 유전자(DNA) 검사 결과, 뼛조각들의 주인이 남동생 데이비드와 여동생 발레리 켈리의 샘플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BAS 국장인 귀부인(Dame) 제인 프랜시스 교수는 데니스에 대해 "매우 가혹한 조건에서 남극 대륙의 초기 과학과 탐험에 기여한 많은 용감한 인원 중 한 명이었다"면서 "1959년 실종됐는데도 그에 대한 기억은 동료들과 극지 연구의 유산 속에 살아 있다"고 말했다.
"팅크"란 별명이 붙여진 데니스 벨은 1934년에 태어났다. 그는 영국 공군(RAF)에서 일했고 기상학자로 훈련 받은 뒤 남극에서 일하기 위해 포클랜드 제도 종속 조사(FIDS, BAS의 전신)에 합류했다. 데이비드는 1912년 남극을 발견하고 탐사 도중 사망한 로버트 스콧 선장을 언급하며 "형이 스콧의 일기에 집착했다"고 말했다.
데니스는 1958년 남극 대륙으로 갔다. 그는 남극 반도의 북쪽 해안에서 약 120km 떨어진 킹 조지 섬에 약 12명의 병력이 있는 작은 영국 기지인 애드미럴티 베이에 2년 동안 주둔했다.
BAS는 꼼꼼한 기록들을 보관하고 있는데, 기록 보관소의 이우안 홉킨스는 가혹하고 "터무니없이 고립된" 섬에서 데니스의 일과 장난에 대한 상세한 베이스캠프 보고서를 들춰냈다.
홉킨스는 큰 소리로 보고서를 읽으며 "그는 명랑하고 부지런하며 장난스러운 농담을 좋아했다"고 말한다.
데니스의 임무는 기상 기상 풍선을 보내고 3시간마다 영국에 무전으로 보고를 보내는 것이었는데, 여기에는 영하의 조건에서 발전기를 가동하는 것이 포함됐다. 오두막에서 최고의 요리사 평가를 받던 그는 물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겨울 동안의 식료품 조달을 책임졌다.
남극 대륙은 고국과의 접촉이 극히 제한돼 지금보다 훨씬 단절된 느낌이었다. 데이비드는 BBC 스튜디오에서 부모, 누이 발레리와 성탄 메시지를 녹음해 동생에게 보냈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섬 주변에서 썰매를 끌 때 사용되는 허스키 개를 사랑하는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두 마리를 키웠다.
그는 또 킹 조지 섬을 측량해 거의 탐사되지 않은 장소들의 첫 번째 지도 제작에 참여했다. 사고가 일어난 것은 그가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보내고 몇 주 뒤였다. 남극의 겨울이 깊어가던 1959년 7월 26일, 데니스와 제프 스토크스는 빙하에 올라 조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지를 떠났다. BAS의 기록은 그 뒤 일어난 일과 그를 구출하려는 필사적인 시도를 전한다. 눈이 엄청 쌓여 있었고 개들은 피로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데니스는 개들을 격려하려고 혼자 앞으로 나아갔지만 스키를 신고 있지 않았다. 갑자기 그가 크레바스 속으로 사라졌는데,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
스토크스는 구멍에 대고 데니스의 이름을 불렀고, 데니스도 소리를 질러 답할 수 있었다. 그는 아래로 드리운 밧줄을 붙잡았다. 개들이 밧줄을 끌어 당겼고 데니스는 구멍 입구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그는 아마도 누워 있던 각도 때문인지 밧줄을 벨트에 묶고 있었다. 벨트가 뚝 끊겨 그는 다시 추락했다. 친구가 다시 그의 이름을 외쳤지만 이번에는 답이 없었다.
데이비드는 "그 얘기는 내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고에 대한 베이스캠프 보고서들은 다분히 업무적이었다. "우리는 제프로부터 들었다. 어제 팅크가 크레바스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을, 우리는 해빙이 허락해 내일 돌아올 수 있길 희망한다."
홉킨스는 앨런 샤먼이란 다른 남성이 그 몇 주 전에 사망해 사기가 매우 낮은 상태였다고 설명한다. 사고 다음날 보고서에는 "썰매가 돌아왔다. 우리는 슬픈 세부 얘기를 들었다. 제프의 손들은 심한 동상에 걸려 있었다. 우리는 시신을 되찾기 위해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보고서를 다시 읽던 홉킨스는 샤먼의 관을 만든 사람이 바로 데니스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다.
"어머니는 결코 이겨내지 못하셨다. 그녀는 그의 사진을 감당할 수 없었고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고 데이비드는 말한다. 그는 데니스와 기지에서 함께 지내던 두 남성이 가족을 찾아왔는데 제스처의 일종으로 양피지를 가져왔더라고 회상한다. "하지만 종결되지 않았다. 예배 같은 것도, 아무 것도 없었다. 데니스가 사라졌을 뿐이다."
15년 전쯤, 데이비드는 로드 리스 존슨 영국 남극 기념물 신탁(BAMT) 회장의 연락을 받았다. 신탁에 따르면 1944년 이후 영국령 남극 영토에서 과학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이는 29명이었다. 로드는 이들 가운데 일부의 친척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다가 죽었던 장엄하고 외딴 곳을 볼 수 있도록 항해를 조직했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사우스 2015 탐험대에 합류했다. "선장은 그 장소에 멈춰 서 사이렌을 너다섯 번 울렸다."
해빙이 너무 두꺼워 데이비드는 킹 조지 섬에 있는 형의 오두막에 가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주 감동적이었다. 말하자면 내 머리에서 부담감과 무게를 덜어줬다." 그것은 그에게 종결된 느낌을 줬다. "그리고 나는 그게 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1월 29일, 헨리크 아크토프스키 폴란드 남극 기지에서 일하는 연구팀이 사실상 문 앞에서 뭔가를 우연히 찾아냈다. 데니스였다.
일부 뼈는 킹 조지 섬의 에콜로지(Ecology) 빙하 기슭에 퇴적된 얼음과 암석에 있었다. 다른 것들은 빙하 표면에서 찾아 냈다. 과학자들은 곧 눈이 내린다며 "동료 극지 동료"를 다시는 잃지 않도록 GPS 마커를 해뒀다.
우치 대학의 피오트르 키텔, 파울리나 보로프카, 아르투르 긴터, 폴란드과학아카데미의 다리우시 푸츠코, 동료 연구원 아르투르 아다멕으로 구성된 과학자 팀은 네 차례에 걸쳐 조심스럽게 유해를 수습했다. 폴란드 팀에 따르면 이곳은 위험하고 불안정한 곳으로, "크레바스가 십자형으로 교차"하고 경사가 최대 45도에 이른다.
기후 변화는 극심하게 녹고 있는 에콜로지 빙하를 포함한 많은 남극 빙하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팀은 "데니스가 발견된 장소는 실종된 장소와 같지 않다"면서 "빙하는 중력의 영향으로 얼음 덩어리를 움직이고, 데니스는 그것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밝혔다. 대나무 스키 폴의 파편, 오일 램프 잔해, 화장품 유리 용기, 군용 텐트 파편 등 200여 점의 개인 물품이 회수됐다. 로드 회장은 "데니스가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이 사람들이 이룬 공헌을 재평가하는 기회이자 과학과 수십 년 동안 우리가 남극에서 해온 일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털어놓았다.
데이비드는 아직도 그 소식들에 압도된 것처럼 보였는데, 폴란드 과학자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를 되풀이 밝힌 뒤 "부모님들이 이 날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슬프다"고 말한다.
데이비드는 곧 영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그곳에서 누이 발레리와 함께 마침내 형을 안식에 들게 할 계획이다. "정말 멋지다. 형을 만나러 갈 것이다. 설레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설렌다. 그가 발견돼, 지금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